하늘에 가을을 수놓다/엽편소설
그해 가을, 나의 유일한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가을이 끝나갈 때까지만 살고 싶다던 엄마는 가을이 시작할 때 호스피스 변동으로 들어갔고, 지난해 내가 만든 낙엽 책갈피를 손에 쥔 채 잠에 빠지셨다. 한 번도 일어나지 못했던 엄마는 마지막으로 잠에서 일어나 말했다.
“저한테 딸이 있어요. 오면 엄마가 인사를 못하고 가서 미안하다고 전해주세요.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도 꼭 전해주세요. 아빠와 함께 항상 지켜보고 있을 테니 행복하게 지내라고. 부탁드려요.”
나를 잊어버린 엄마에게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엄마는 나의 대답도 듣지 않고, 그렇게 영원한 잠에 들었다. 아직 따뜻한 엄마를 붙잡고, 한참 울었다. 이제 가을은 슬픈 계절이 되었다.
“은영 씨? 무슨 생각해?”
“언제 오셨어요? 이 과장님!”
“은영 씨 보니까 가을이 시작되었구나.”
“그런가요?”
이제는 웃으면서 말하지만, 처음 몇 해는 가을만 되면 우울해하는 나를 위해 사무실 모든 직원들이 우울해했다. 제대로 집중하지도 못하는 나를 이 과장만의 특유의 개그로 웃겨주기도 했었다. 이젠 세상에 가족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내게 이 과장은 언니처럼 이모처럼 챙겨주었기에 겨우 그 긴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은영 씨, 몇 살이지?”
“저요? 이제 서른하나요.”
“벌써 그렇게 되었어? 여전히 24살 대학생 모습 그대로인데, 많이 늙었네.”
“그렇죠.”
“연애 안 할래?”
“연애요?”
연애라, 대학 시절 1년 사귄 남자 친구는 군대를 가더니 연락을 끊어버렸다. 아마도 그게 마지막 연애인 듯하다. 그 이후로 연애에는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아니 그럴 정신이 없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어때?”
“싫어요. 지금은 이대로가 좋아요.”
“그래?”
“네.”
“그래. 은영 씨 마음이 제일 중요하니까. 언제든 마음 바뀌면 말해.”
“네.”
이 과장은 더 이상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평소와 다름없이 가을이 오면 일찍 퇴근하라는 말로 나의 슬픔을 위로해 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부모님이 계시는 하늘공원으로 향했다. 엄마, 아빠가 좋아하는 예쁜 꽃도 샀다. 하얀 국화꽃은 싫다며 색색의 국화꽃을 사 들고 들어간 하늘공원에는 미리 온 손님이 있었다.
“누구세요?”
“아, 저는 오윤호 선생님 제자였던 류지희입니다.”
“제자?”
아빠가 돌아가신 게 벌써 10년이 넘었다. 아빠는 고등학교 선생님이셨다. 국어 선생님이셨던 아빠는 시인이기도 하셨다. 한 편의 시집으로 끝나기는 했지만, 아빠의 시집은 영원한 나의 베스트셀러다.
“네, 졸업하고 몇 번 찾아뵈러 갔는데, 이제야 인사하네요. 아버지 덕에 대학까지 무사히 마치고, 지금은 선생님을 하고 있어요.”
“안녕하세요. 저는 딸 오은영이에요. 처음 뵙겠습니다.”
류지희라고 소개한 그녀는 내가 부모님께 인사를 하는 동안 뒤에서 조용히 기다렸다. 마치 내게 할 말이라도 있는 것처럼 보였기에 내버려 두었다. 인사를 마친 내가 몸을 돌리자 그제야 내게 다가와 말했다.
“많이 컸네요.”
“네?”
“저한테 편지 보낸 거 기억 안 나요?”
“편지요?”
지희라는 그녀는 내가 초등학교 시절 자신에게 주기적으로 편지를 보냈다고 했다. 그때 그녀가 고등학생이었다면 아마도 나보다는 족히 10살은 많다는 것이다. 그때 내가 편지를 보냈던 언니. 그게 이 사람이란 말인가? 아버지의 부탁이었다. 길을 잃은 언니가 있는데, 내게 집을 찾을 수 있게 친구가 되어주라고 말이다. 당시 나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편지를 썼다.
[언니, 길을 잃었을 때는 가만히 그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해. 그래야 엄마랑 아빠가 찾아오지]
나의 짧은 글에 언니의 진지한 답장이 왔다.
[그렇구나. 그런데 언니 엄마, 아빠는 바빠. 그래서 안 와]
나는 다시 답장을 보냈다.
[그러면 112에 전화해. 집에 데려다 달라고 해]
그런 식으로 짧은 편지를 주고받았던 언니. 그게 바로 지희 언니, 이 사람이었구나 생각하니 새롭다. 당시 우리의 우스꽝스러운 편지는 무려 2년이나 계속되었다. 마지막 언니의 편지를 받았을 때가 생각난다.
[덕분에 집을 찾았어. 고마워]
언니의 마지막 편지를 들고, 아버지에게 자랑했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2학년인가 3학년 때였다.
“아! 그때 그 편지가 언니…, 세요?”
“응. 보고 싶었다. 네 덕에 선생님이 되었어. 무사히. 고맙다.”
지희 언니와 연락처를 교환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조만간 서울로 전근을 온다고 했다. 아빠와 같은 학교에 들어갈 것 같다고 했다. 지희 언니와의 교류는 나에게 새로운 활력소였다. 43살의 언니는 이제 중학생이던 딸과 고등학생 아들이 있었다. 두 아이를 데리고 나의 집으로 와 내 영혼을 쏙 빼놓아서 처음 나의 가을이 부산스러웠다. 언니의 신랑과 주말 부부가 되었다며 우울해하던 언니는 나의 집 위층으로 이사를 왔다.
“은영아, 밥 먹었어?”
“아뇨.”
“나도 못 먹었는데, 같이 먹자.”
“네.”
언니는 매일같이 저녁을 나와 함께 했다. 하루 동안 있었던 학교에서의 사건·사고는 마치 나의 일과처럼 즐거웠고, 나의 회사 스트레스는 마치 언니의 스트레스인 냥 화를 냈다. 내게 가족이 생긴 것 같았다. 방학이면 놀러 오는 두 아이와도 친해져 언니가 바쁠 땐 셋만 여행을 갈 때도 있었다. 아빠가 만들어준 인연이 나를 살게 했다.
오늘 아침은 유독 기분이 좋지 않다. 오늘은 엄마의 기일이다. 지난 주말 언니와 함께 간 하늘 공원에서 엄마의 사진을 바꿨다. 언니는 부부는 따로 있는 게 아니라며 합장을 해주었다. 덕분에 납골당 안에 사진도 마지막으로 찍은 가족사진과 엄마, 아빠의 사진으로 바꿔 두었다. 언니의 딸에 선물로 받은 예쁜 미니어처도 넣어두었다. 그렇게 꾸미고 돌아왔지만, 당일이 되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때 언니의 전화가 왔다.
“은영아, 점심때 시간 돼?”
“왜요?”
“나 지금 너네 회사 앞에 잠시 볼 일이 있어서 나왔는데, 점심 약속하신 선생님이 갑자기 못 오신다고 하시네. 식사는 2인분이 예약되어 있고, 혼자 가서 먹기엔 뻘쭘하고…, 너 시간 되면 같이 먹자.”
“저……, 음, 알겠어요. 잠깐 시간 될 것 같아요.”
언니가 처음 부탁하는 거였다.
“이 과장님, 저 2시간 정도 개인적인 외출 좀 해도 될까요?”
“바쁜 일은 다 끝났어? 오늘 보고서 올려야 하잖아.”
“보고서는 이미 메일로 보냈어요. 오늘 일은 제가 들어와서 마저 할게요.”
“그래, 자기 일 미루지 않는다고 한다면 외출이야 뭐, 다녀와.”
“네. 감사합니다.”
회사 입구에서 언니를 만났다. 언니는 늦었다며 서둘러 내 손을 잡고 식당으로 향했다. 과연 선생님들끼리 이런 멋진 레스토랑을 올까 싶을 정도로 화려한 곳으로 들어섰다. 종업원은 언니의 이름을 듣고 예약된 방으로 안내했다.
“오늘 누구 만나길래 이런 곳에서 밥을 먹어요?”
“누구라 하면 네가 알아? 그냥 여긴 손님이 예약해 준 거야. 그러니까 우리는 즐기기만 하면 돼.”
“뭐. 네.”
“거짓말 아니죠?”
“내가 거짓말해서 뭐 해?”
우린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돌아가기 전 언니는 내게 책을 하나 선물했다.
“많이 낡았지? 이거 네 아빠가 내게 선물로 주신 거다. 나는 이 책과 네 편지 덕에 살 수 있었어. 꿈도 이룰 수 있었고 말이야. 이젠 언니는 필요 없어. 너 줄게.”
“네?”
영문을 알지 못해 답도 못했는데, 언니는 가고 없었다. 내 자리로 돌아와 밀린 업무를 처리하고 급하게 책을 집어 들었을 때 그 속에서 사진 하나가 나왔다. 내가 언니와 편지를 주고받던 시절의 사진이었다. 그리고 뒷장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나의 수호천사]
언니의 수호천사가 나라니. 왠지 뭉클한 순간이었다. 늦은 8시. 유독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피곤하고 지쳤다. 다행히 내일은 주말이라 늦잠을 잘 수 있다는 게 그나마 위로였다. 그런데 당연히 어둡고 차가울 집이 환한 불과 함께 맛있는 냄새가 났다.
“언니예요?”
“왔어?”
나는 울고 말았다. 언니는 늦게 퇴근한 날 위해 맛있는 저녁을 차려두고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엄마처럼 말이다. 그 사이 몇 번이나 국을 데웠는지 조금은 짠 국물을 마시는 데 눈물이 나왔다. 울먹이는 얼굴을 가리기 위해 푹 숙인 고개가 더 내려갔다. 언니는 그런 날 눈치채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래전 나의 부모님과 함께 먹은 저녁이 생각난다며 그때 이야기를 해줬다. 그리고 내 옆으로 와서는 나를 안고 말했다.
“나의 수호천사가 우네. 이젠 언니가 너의 가족이 되어 줄게.”
언니는 나를 안고, 함께 울어주었다. [가족]이라는 두 단어가 나를 행복하게 해 주었다. 이젠 나의 가을도 쓸쓸하지 않을 것 같다. 가을이 시작되는 달은 하늘을 보며 원망하고 울었던 과거는 이제 과거로 남을 것이다. 나의 가을 하늘은 쭉 맑을 테니.
작성일 : 2024년 10월 16일
출판사 : 포레스트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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