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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하루시(6.25를 기억하며)

by 그래


요즘 챗지피티에 글 수정을 요청하거나 아예 플롯만 주고 써 달라는 사람이 늘었다. 어떤 기념을 위한 글 같은 경우 나도 요청하기는 한다. 그러나 조언은 조언으로 듣는 게 제일 좋다. 맹신해서도 의지해서도 안된다. 내 글에 주인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그래야 한다. 나는 글의 주인이고 싶다는 점에서 조언 그 이상 이하로 보지 않는다.

감정이 진하게 담긴 좋은 초안입니다. 6.25라는 비극적 배경을 두고 무력한 개인의 시선으로 풀어내려는 시도는 효과적이에요. 다만 지금 형태는 감정이 직설적으로 분출되면서 시적 긴장감이나 이미지의 설득력이 약간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아래에 개선을 위한 조언을 드릴게요.

1. 반복의 강약 조절

"하필 내가, 하필 내가, 하필 내가."
반복은 강력한 장치지만, 너무 반복되면 힘이 빠집니다. 오히려 절제된 반복이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어요.
→ 제안:

하필 내가 하필, 내가

혹은 다른 반복 구조로 감정을 확장해 보세요:

"하필 나였고 / 하필 너였고 / 하필 오늘이었고"

2. 이미지의 밀도 높이기

“바지를 걷고 / 냇가를 뛰어나녀야 했는데”
이 대목은 좋아요. 어린 시절의 평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새는 어디 가고 / 파란 하늘은 온통 흙빛이”*는 다소 일반적이에요. 흙빛 하늘보다는 더 구체적인 묘사로 감정을 전할 수 있어요.
→ 제안: “새 한 마리 날지 않고 / 하늘엔 포성의 먼지만 남았네”
혹은
“하늘을 올려다보면 / 너의 얼굴만 흩어진다”

3. 화자의 입장 더 분명히

지금은 ‘화자’가 누구인지 모호합니다. 어린아이 일 수도, 청년일 수도, 노인이 지난 시절을 회상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 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려면, 초반에 단서를 주세요. 예:

“열두 살 나에겐 / 전쟁이란 말도 어려웠다”
이런 식의 뉘앙스를 넣으면 독자가 감정이입하기 쉬워집니다.

4. 내러티브 흐름 다듬기

지금은 감정의 나열이 중심입니다. 그보다는 *“평화 → 상실 → 자책”*의 흐름을 조금 더 구조화해 보세요. 예:

전쟁 전 – 친구, 가족과 뛰놀던 날들

전쟁 중 – 잃어버린 풍경과 관계

화자의 고백 – 왜 나는 힘이 없었는가

→ 이런 구조를 살짝 넣기만 해도 시의 메시지가 더 선명해져요.

5. 제목 제안

지금 시에는 제목이 없지만, 다음과 같은 제목을 생각해 볼 수 있어요:

“하필 나”

“잃어버린 냇가”

“그날, 우리는 어디로 갔는가”

“힘이 없던 아이”

전체 구조 조정 예시 (축약형)

왜 하필 나는 힘이 없었을까 열두 살, 바지를 걷고 냇가를 뛰어야 했던 그날, 당신은 형이었고 친구였고, 가족이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서로를 겨눴을까 새는 날지 않고 하늘은 먼지를 뒤집어썼다 어제 밥을 먹던 집은 오늘 무너졌고 하필, 나였고 하필, 너였고 하필, 이 나라였다

요약

감정은 충분히 전달됨

반복과 이미지 다듬기

화자의 시점과 서사를 구조화

시적 언어의 밀도 강화 필요

지금 시는 충분한 가능성을 갖춘 초안이에요. 약간의 정돈과 구체화만 거치면 깊은 울림을 줄 수 있습니다. 원하시면 다시 다듬은 버전으로도 함께 만들어드릴게요.


챗지피티 답이다. 냉철한 조언을 부탁해 얻은 것이다. 약간 다듬기는 했지만, 큰 변화는 주지 않았다. 나는 6.25와 관련된 일화를 쓰고 싶은 거지 그걸 구체화하고 싶은 건 아니니까 말이다. 구태여 제목까지 추천받고 싶지 않았는데 과하게 친절한 AI다.


시점에 중심에선 그가 화자다. 그의 무력함과 상실감과 처절함을 표현하고 싶었다. 전쟁의 잔상을 기록하고 싶은 건 아니었기에 무시했다. 수정 또한 패스했다. 챗지피티는 평가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방대한 자료를 이용한 평균치를 제시할 뿐이다.


창작을 하는 당신에게 아니 나에게 주인 의식이 더 강하다면 AI 조언 혹은 서평에서 좀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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