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시
매일 시작하는 오늘은 누군가의 생일이다.
나의 생일은 첫 주가 아버지 생신으로 시작한다. 그다음 주 말에 동생의 생일, 그 달의 마지막이 나의 생일이 있었다. 음력 생일을 챙겼기에 매달 바뀌면서 순서는 항상 변함이 없었다. 어릴 적 나는 당연하게 오늘은 또 누군가의 생일이구나 생각했다. 생일 시작하는 그 달에 가족만 이미 셋이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유독 그런 나의 생일은 왜 말일에 있을까? 원망하고 슬펐다. 이미 우려먹을 만큼 우려먹은 미역국을 보면서 언제쯤이면 나도 내 생일날에 새로 끊인 맛있는 미역국을 먹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 소원은 결혼을 하고 나서 이루어졌다.
단 한 번도 생일날이 행복한 적이 없었다. 학창 시절엔 학기가 시작해서 처음 맞은 중간고사와 항상 겹쳤다. 덕분에 가까운 친구들조차 시험 공부한다고 내 생일을 잊기 일쑤였다.
[응답하라, 1988] 덕선이가 언니와 같이 생일상을 받는 장면이 생각난다. 언니가 불고, 다시 초를 부쳐서 덕선이 부는 장면을 보면서 나의 공감은 100%가 넘어 200%였다. 얼마나 서러울지 울상인 표정을 이해했고, 아버지가 몰래 사주는 투게더 큰 통을 끌어안고 기쁘게 웃는 모습이 부러웠다.
먹고살기 바빴던 부모님은 잊지 않고 미역국을 차려준 것만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그때도 알았다. 아직 버스도 다니지 않는 새벽부터 일어나 생선 노점을 위해 준비하는 엄마에게 그보다 더 일찍 일어나야 하는 수고였다. 그나마 잊지 않기 위해 달력에 빨갛게 표시해 두고, 일어날 때마다 확인했을 것이다. 지금은 알지만, 그때는 그 수고조차 가볍게 보였다. 항상 서러웠고, 항상 외로웠다. 이 집에서 나는 환영받지 못한 아이였나 보다 혼자 땅굴을 팠고, 그 속으로 들어가 혼자 울었다.
건설업을 하시던 아버지 덕에 항상 있던 공사자재는 나의 좋은 아지트를 만들 수 있게 해 주었다. 산길을 깎아 만들어진 동네에서 집은 2층이면서 1층이었다. 옥상은 3층이지만, 동시에 1층이기도 한 이상한 구조에서 옥상 모서리는 기다란 나무로 가지런히 올렸다. 바닥에도 나무를 깔고, 널따란 나무판을 올렸다. 나무 자재를 위해 덮어든 파란 천막을 지붕으로 삼고, 동시에 바닥에 깔았다. 생각보다 큰 천막은 자연스럽게 문도 만들어줬다. 하나 흠이 있다면 환한 낮도 까만 밤으로 만들어준다는 거였다. 그러나 좋았다. 여기서는 내가 주인이었으니까. 나는 거기서 하루를 보냈다.
학교를 마치면 아지트에 올라가 책도 보고, 숙제도 했고, 끄적이는 하루를 보냈다. 어쩔 때 끼니도 잊고, 아지트에서 잠든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무뚝뚝한 아버지는 둘째 딸이 얼기설기 만들어 놓은 아지트를 눈에 띄지 않게 보수공사를 해주셨던 것 같다. 어제는 샜던 비가 오늘은 새지 않았던 신기했던 경험들, 알고 보면 다 아버지 소행이었을 거다.
그때는 모든 게 서운했던 생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생일은 그냥 알아주는 것으로 대충 넘길 정도로 특별한 날도 아닌 그냥 오늘이 되었다. 어머니는 그때가 항상 미안하다며 내 생일이 되면 10만 원을 송금해 주신다. 꼭 케이크 사 먹으라며 맛있는 거 먹으라며 당부도 잊지 않는다.
올해는 생일보다 부려 한 달이나 빨리 10만 원이 입금되었다. 어머니는 작년에도 잊었다고 올해도 잊을 것 같다며 미리 보냈다. 이젠 할머니가 되어가는 어머니와 할아버지가 된 아버지, 시간은 흘르고 매일 생일은 온다. 나 역시 나이를 먹어가고 생일은 그렇게 가고 그렇게 오고 있다. 오늘이 그렇게 오듯이.
나의 생일은 이미 지났다. 오늘은 누군가의 생일이다. 당신의 생일이라며 올린 글을 보면서 축하한다 말을 을전하며 이 글을 썼다. 이 글을 읽은 당신은 감동이라며 동시에 눈물이 났다며 말했다. 당신의 생일도 나와 같았을까? 궁금해하다가도 나는 아무 말 없이 하트 이모니콘을 남겨 읽어준 것에 감사함을 전할 뿐이다.
누군가는 그때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달라지는 만큼 아픈 기억은 좋은 기억으로 바뀌었지만, 누군가에게는 아닐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굳이 말하지 않은 건 덮어두는 것으로 당신의 생일을 축하했다.
오늘, 누군가의 생일일 터다.
진심으로 당신의 생일을 축하하고, 감사하다. 오늘이라는 생일이 있었기에 당신을 만날 수 있지 않았는가? 그러니 오늘은 감사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