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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루하 Jun 25. 2024

01화 제가 당신 옆으로 갈게요.

그만 길을 잃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그냥 밖으로 나가자 하는 생각으로 나왔는데, 걷다 보니 방향을 잃고 낯선 곳에 발을 들여놓고 말았다. 이래서 사람은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면 안 된다고 하나 보다.


그냥 뭔가가 하고 싶었다. 아침에 일어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앉아 있다 배고픔도 느끼지 못하고 밤이 되면 잠을 잤다. 어느새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은 점점 늦어졌고, 그러다 보니 하루 중 삼분의 이를 잠으로 채웠다. 그런 일과가 이미 몇 달을 넘기고 있다. 어느새 생활이 되었고, 익숙해졌다.


갑자기 이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선 거였다. 보이는 아무거나 걸치고, 신발도 아무거나 신고 문을 열었을 때 세상은 어둠이었다. 이 어둠 속에 일어난 적이 있었던가? 기억도 나지 않는 시간을 찾을 생각 따위 물론 하지도 않았다. 의식의 흐름대로 움직였다는 것이 아마도 맞을 것이다.


오랜만에 나왔음에도 어색하지 않은 건 아마도 아무도 없었기 때문일 것 같다. 사람의 시선이 없는 오직 나만의 세상에 있는 것 같은 착각에 앞만 보고 걸었다. 걷다가 길이 없으면 방향을 바꾸었고, 여러 갈래가 나오면 앞을 향해 걸었다. 어쩌면 집에서 멀리 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게 함정이 되어 나를 그만 낯선 곳에 데려다 놓았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


정신을 차리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여긴 공원인 듯했다. 그것도 인적이 드문.


“하아.”


나도 모르게 나오는 한숨.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집 근처에 이런 큰 공원은 없었다. 내가 사는 착한 빌라는 고작 어린이 놀이터가 있는 작은 공원이 전부였다. 산책길 따위 당연히 있을 리가 없는 곳. 하지만 나는 지금 산책로를 걷고 있었다.


‘몇 시지?’


핸드폰 없이 생활한 지 몇 개월이 되다 보니 호주머니에는 시간을 확인할 그 어떤 것도 없었다. 이런 한심할 노릇이 어디 있단 말인가? 주위를 둘러보며 온 게 아니라서 그런지 지금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알 수가 없다. 단지 어둠이 더 짙어진 것 같다는 것뿐이다.


‘어디로 가야 집에 가나? 택시는 있으려나?’


일단 돌아서려는 데 인기척 소리가 나서 쳐다보니, 뭔가를 보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더 자세히 보려 고개를 쭉 빼니 핸드폰 속 내용에 관심이 끌렸다. 글자가 많은 것으로 보아 책을 보는 것 같았고, 내 호기심이 발동하고 말았다. 게다가 얼핏 보이는 글자는 글을 좋아하는 나에게 어서 읽으라 손짓하는 것만 같았다. 그만 바로 옆에 앉아 그가 보는 것을 엿보게 되었다.


좋은 시력을 이런데 써도 되나 싶을 정도로 그가 보는 게 잘 보였다. 그가 읽고 있는 것은 읽기 부담 없는 소설이었다. 남자들은 좋아하지 않는 드라마 장르였는데, 나는 이런 장르를 좋아했다. 어느새 옆으로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으나, 모를 정도로 빠져들고 말았다. 그때.


“이거 하세요.”

“…?!”


너무 놀라 반문도 하지 못하고 그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런 나를 한참 바라보다 동의를 받았다고 생각했는지 자기 목도리를 벗어 나에게 해주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몸을 떠는 게 보여서요. 잠깐이라도 하고 계세요.”

“….”


거절하기도 전에 그의 목에서 내 목으로 넘어왔다. 따뜻했다. 그래서 돌려주기가 싫었다. 난감한 내 시선은 핸드폰으로 향했고, 그 사이에 꺼진 핸드폰을 다시 켜주는 그였다.


“잠시만요. 제가 옆으로 좀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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