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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루하 Jul 05. 2024

04화 우리 아무 사이 아니군요.

그의 진실성을 확인하기 위해 쳐다봤지만, 그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결국 나는 그를 믿기로 했다. 다른 선택지가 없기도 했다.

“차 어디 있어요?”

“여기서 멀지 않아요. 걸을 수 있어요?”

“잠깐은요.”

앞장서서 걷던 그는 5분도 되지 않는 거리에 있는 차 앞에 멈춰 서더니, 제일 먼저 뒷자리에서 외투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이거 입고 있어요. 지금 영하 10도예요. 계속 그렇게 있으면 감기 걸려요.”

“괜….”

“괜찮은 거 알아요. 뒷자리에 짐이 많아서 그런 거니까 당신이 입고 있어요.”

억지라는 것은 알았지만, 수긍하며 외투를 어깨에 걸쳤다. 그 사이 차는 주차장을 빠져나와 도로에 있었다. 창문에 팔을 올리고 생각에 잠긴 그는 창을 통해 힐끔힐끔 쳐다봤다.

“묻고 싶은 거 있으면 그냥 물어봐요.”

“물으면 답 해줄 거예요?”

“뭔지에 따라서요.”

“이름이 뭐예요?”

나는 답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굳이 그에게 말해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거봐. 답 안 할 거면서…. 괜히 희망만 부풀려 놓고 치사한 분이야.”

구시렁거리면서 하는 말이 귀여웠다. ‘풋’ 소리와 함께 웃고 마니, 그가 오히려 더 속상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이름 정도는 알려줄 수 있는 거 아닌가?”

“우리 아무 사이도 아닌데.”

“그렇군요. 우리 아무 사이 아니군요.”

그의 표정은 눈에 보이게 굳어졌고, 차 안은 고요해졌다. 어느새 길은 익숙한 건물로 들어섰다. 

“다 왔네요.”

“그러네요. 감사합니다. 여기 외투와 목도리 둘게요.”

“조심해서 들어가요.”

다시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그는 바로 돌아가지 않고, 내가 건물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지켜봤다. 완전히 건물안쪽까지 들어섰을 때 비로소 차 소리가 들렸다.     

처음 본 여자의 안전을 걱정하는 남자라…, 그 속내가 문득 궁금했지만, 집 안으로 들어온 후엔 그 속내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으로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그저 차갑게 식어버린 몸을 데우기 위해 욕실로 향했다. 뜨거운 물이 흘러내리는 감촉이 좋아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겨우 몸을 데운 내가 욕실을 나왔을 때 커튼 사이로 비치는 햇빛이 눈부셨다.

“벌써 아침이구나.”

시간 개념은 그새 잊어버렸나 보다. 그와 헤어진 게 동이 트기 시작할 때였는데, 어떻게 잊을 수 있는지 나도 참 대단했다. 그 사람? 스치는 인연일 뿐인데, 오늘 샤워 중에도 지금 순간에도 떠오른다. 내 발을 잡던 그 손길. 아니 그 따뜻함이 문득 나를 그에게로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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