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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루하 Jul 02. 2024

03화 당신 때문에 추워졌어요.

“….”

“음, 잠깐만요.”


그는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내밀며 믿음을 주겠다는 듯이 자기소개를 했다.


“저기 보이죠? 저 유명한 회사에 다니고 있고, 집은 저기 아파트 보이죠. 저 아파트 5동 1802호에 살아요. 연락처 여기 있어요.”

“전화기 없어요.”

“아, 그럼, 택시 불러드릴까요?

“돈…, 없어요.”


최대한 용기 내어 말했는데, 그는 심술궂은 표정으로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 결론 났네요. 이름 말해봐요.”


마치 어린아이를 가르치는 말투에 기분이 상한 나는 버티며 말했다.


“싫어요.”


심술이 났다. 차라리 경찰서로 갈까? 그게 낫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그가 먼저 선수를 친다.


“여기서 경찰서까지 가려고 해도 차 타고 10분이에요.”

“하아. 잠시만요. 고민, 조금만 더하고요.”


갑자기 그가 웃었다. 얄궂은 표정과는 달리 조용히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내가 생각이 끝날 때까지 진득하게 기다렸다.


“지금 새벽 4시예요.”


현실을 알려주며 독촉하는 그가 얄미웠다.


“착한, 착한 빌라요.”


그는 어딘가를 쳐다보며 거리를 가늠하듯 생각에 잠기더니 갑자기 눈을 크게 뜨며 놀란 듯했다.


“거기 아는데, 여기서 거기 가려면 차 타고 한 30분은 가야 해요.”


놀라움과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왔다.


“어떻게 왔어요? 아, 걸어왔다고 했죠? 아니 얼마나 걸은…. 일단 발부터 좀 봅시다.”


갑자기 몸을 숙이더니 차갑게 얼은 발을 덥석 잡았다. 그제야 맨발인 것을 알았다. 그의 따뜻한 손길이 닿아서 더 내 발이 차가운 것 같았다.


“에고, 다 얼었네. 물집도 생겼는데, 안 아파요?”


그가 물집 난 곳을 만지고 나서야 알았다. 아픔이, 추위가.


“당신 때문에 추워졌어요.”


심술 난 아이처럼 말하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제가 책임지죠.”

“어떻게요?”

“차로 집에 모셔다 드리죠. 불편하시면 걸어서 가도 돼요. 어떻게 하실래요?”


배려하는 것처럼 들렸지만, 사실상 선택사항은 없는 것이었다. 나의 발은 이미 걸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고, 그의 말대로 한다면 집은 여기서 한참 멀리 있었다.


“천천히 생각해도 돼요. 그런데 조금 빨리 했으면 좋겠네요.”


또 그 표정, 장난치는 것 같기도 하고 진지한 것 같기도 한 어중간한 표정이 나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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