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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요한 Aug 28. 2022

6화. 마음의 시간은 봄이다.

한 겨울의 ‘고목(枯木)’이 아니라 봄을 맞이하는 ‘나목(裸木)’이었다.

  토요일 아침 8시다. 어제 정시에 칼 퇴근했을 것 같은 무연이는 못 오고, 어젯밤 친구들과 늦게까지 ‘치맥’으로 놀았다는 준영이는 늘 만나는 상동교 아래 신천둔치에 먼저 나와 있었다. 여름이라 벌써 햇살이 강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어젯밤 내린 비로 바람은 시원하고, 신천에 물소리는 더 경쾌했다. 비라 내린 뒤라 앞산에 맨발 산책로에서는 신발을 벗고 산책하는 시민들이 더 많이 보였다. 


  명현은 신발을 벗고 왕복 30분가량 맨발 산책로를 걸었다. 자갈이 깔여있는 지압보도도 있지만, 시원하고 촉촉한 질감의 흙길이 더 좋았다. 준영이는 30분 내내 신발을 신은 채로 아스콘으로 포장된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앞산공원 입구 세족시설에서 발을 씻고 손수건으로 발을 닦은 뒤에 마치 약속이라도 해 놓은 듯 두 사람은 골목길 카페로 향했다. ‘시간의 향기가 있는 카페’ 간판이 반갑게 맞았다.


 ‘아아’ 1잔, ‘라떼’ 1잔, 명현은 또 따뜻한 ‘라떼’ 1잔을 마신다.

나무 그림을 바라보면서 카페 주인에게 틈을 보아 말을 건넸다.
“지난번 이야기 한 박수근 화백의 그림, 확인해 보니 ‘나무와 두 여인’ 이더라고요. 그런데 다시 봐도 그림 속의 나무는 ‘고목’에 가깝던데요.” 명현은 그림도 음침한 분위기라고 덧붙여 말했다. 


  카페 주인은 캔버스 앞에 의자를 우리가 있는 쪽으로 당겨 앉으면서 말했다. 말이 좀 길어질 듯했다. “‘나무와 두 여인’ 그림 속은 겨울일까요? 겨울이기도 하고, 겨울이 아니기도 합니다. 봄이 오기 바로 직전의 순간입니다. 죽은 고목처럼 보이지만, 봄에 새순이 나오기 바로 직전의 순간입니다.” ‘직전’과 ‘순간’을 강조하듯 한 단어씩 더 힘을 주어 말했다. “그래서 겨울처럼 음산하지만, 생명을 품고 있지요.” 저만의 주장이 아닙니다. 카페 주인은 박완서 작가의 소설 『나목』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박완서의 소설 『나목(裸木)』에는 ‘나무와 여인’이라는 그림이 나온다. 박수근의 ‘나무와 두 여인’이 소설 속의 그림이라고 짐작된다. 박완서 작가는 한국전쟁 당시에 1년 정도 실제 박수근 화백과 알고 지냈던 시간이 있다. 소설 속의 ‘나목’은 추운 겨울 잎이 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목(裸木)’이지만, 봄이 되면 다시 잎이 나고 꽃이 피는 희망을 상징하는 살아있는 나무다. 말라서 죽어버린 ‘고목(枯木)’이 아니다. 소설 속의 암울한 전시 상황에서 박완서는 겨울의 ‘고목’이 아니라 생명을 품고 있는 봄을 맞이하는 ‘나목’을 본 것이다.


  “겨울이기도 하고, 겨울이 아니기도 하다”는 말씀이 어떤 의미인가요? 명현은 다시 한번 확인이라도 하듯 물었다. “그렇죠. 달력의 시간, 시계의 시간은 겨울입니다. 하지만, 박수근 화백, 박완서 작가의 생명의 시간, 마음의 시간은 봄입니다.” 카페 주인은 분명 ‘생명의 시간’이라고 또 말했다. 


  명현은 여전히 생명과 시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았지만, 물리적인 시간, 시계의 시간과 다른 마음의 시간은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지난주 ‘코비’ 선배가 이야기한 ‘시간이동’의 소극적인 미래와 ‘자아이동’의 적극적인 미래와 연결해서 복습을 하듯 다시 생각해 보았다. 


  박수근 화백은 봄이 오기를 마냥 기다린 것이 아니라, 봄을 향해서 자기 자신이 다가가면서 ‘나무와 두 여인’ 그림을 그린 것이다. 한 여인은 아이를 업고 나무 옆을 서성대고 있다. 아이는 자라나는 생명이다. 한 여인은 짐을 이고 나무 옆을 총총히 지나가고 있었다. 봄을 향해 총총히 걸어가는 화백 자신이 아니었을까? 전쟁으로 폭력이 지나가고, 폐허만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묵묵히 살아내고 있는 서민들을 바라보며 박완서 역시 희망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목’에서 마음의 시간으로 봄을 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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