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울 오브 브레드> 2013년
빵에 관련한 영화 <주노명 베이커리>(1999), <소울 오브 브레드>(2013), <해피 해피 브레드>(2012), <크루아상>(2021), <카모메 식당>(2006), <세상의 모든 디저트: 러브 사라>(2020)
출간 즉시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BBC 방송과 《가디언》, 《퍼블리셔스 위클리》 등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보도하며 큰 화제가 되었다. 마치 영화처럼 드라마틱하고 동화처럼 뭉클하지만, 실화라는 점이 더욱 묵직하고 잊을 수 없는 여운을 선사한다.
키티 ‘브레드송(breadsong)’ 영상은 내가 맨 처음으로 인스타그램에 올린 게시물이다. 오븐에서 막 꺼낸 뜨거운 빵은 껍질이 팽창하면서 타닥타닥, 쉭쉭 소리를 낸다. 선반 위에 한 줄로 늘어 놓은 빵에 몸을 가까이(귀가 타지 않게 조심하면서) 기울이면 멀리서 박수갈채가 들리는 것 같다. 이게 빵의 노래, 빵의 마법이다.
엘 키티는 오렌지 베이커리의 이야기를 영상화 사진으로 틈틈이 기록했다. 빵 굽는 일의 즐거움을 흘려 보내지 않기 위해서였다. 키티는 빵을 굽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나는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하나도 알 수 없었다. 그저 키티 옆에 있어야 한다는 것, 그것만 알았다.
이 책은 열네 살이던 딸과 내가 어떻게 오렌지 베이커리를 열게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를 도와준 다정한 사람들과 우리 마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림은 내가 그렸고, 레시피는 키티가 만들었다. 이야기는 우리 둘이 함께 썼다. (P9)
사람들이 자주 하는 질문은 두 가지다. “언제부터 그랬어?” “왜 그렇게 된 거야?” 나는 지금도 제대로 대답하기 어렵다. 그나마 답하기 더 쉬운 건 ‘언제’ 쪽이다. 그즈음 몇 가지 이벤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때는 우리 부모님의 결혼기념일 파티가 열리던 2018년 초봄이었다. 오랜만에 키티의 친가쪽 가족들이 다 모였다. 때로는 복잡하고, 미묘하기도 한 가족 역학에서 키티는 부러울 정도로 단순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항상 이상한 양말을 신어서 모두를 웃게 했고, 사랑스러운 빨간 머리에, 수다스럽고 주근깨가 많은 유쾌한 아이였다. 변화는 아주 천천히 진행됐고, 아내 케이티와 나는 키티가 얼마나 위축되어 있는지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오랜만에 키티를 본 가족들은 곧바로 변화를 알아차렸다. 키티는 말을 하지 않았고, 산만해졌으며, 창백하고 술퍼 보였다. 키티의 변화를 눈여겨본 할머니와 고모가 따로 전화를 걸어 키티의 안부를 묻기도 했다. (P11)
반죽에는 부드럽게 기포가 일었고,
기포 하나가 터지면 다른 기포가 일었다.
반죽은 살아 있었다.
키티와 내가 처음으로 함께 빵을 구웠던 때를 제대로 기억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사실 나는 키티가 집중할 수 있는 활동을 찾아 주려고 여러 시도를 하고 있었고, 빵 굽기도 그중 하나였다. 키티는 TV에는 몇 분도 집중하지 못했다. 정원 가꾸기도 시도했지만 허사였다. 꽃을 몇 종류 골라 심어봤지만 결국 시비가 모조리 파헤쳐버렸고, 별 재미를 보진 못했다. 실험 삼아 공예도 해봤지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바느질이 잠시 불씨를 살리는 듯했으나, 야망에 비해 손이 잘 따라주지 않았다. (P21)
아빠가 오븐을 열면 빵에서 듣기 좋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 빵의 노래를 들으면 목덜미 털이 곤두섰다. 꼭 연금술 같았다. 돌멩이처럼 아무것도 아니던 것이 정말 찬란하게 변신했다. 지푸라기로 금을 만들어내는 동화 속 소녀처럼,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다시, 그리고 또 다시 빵을 구웠다. (P24)
돌아보면 내가 침착했던 게 이상할 정도다. 나는 쉰 살이었고, 통장의 잔고는 거의 네 자리로
떨어져 있었으며 이제 직업도 없었다. 우리 부부는 우리 집 경제에 관해 심각하게 얘기해본 기억도 없다. 우리 둘 중 한 사람은 집에서 키티 곁에 있어야 했으므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우리는 담보대출을 늘렸고, 나는 일을 완전히 접었다. 처음에는 곁에 있어주는 것 외에 내가 키티에게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몰랐다. 어떤 말을 들려줘야 키티가 슬픔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지 궁리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P29)
나는 사람들이 아침 식사로 빵에 버터와 잼을 발라 먹는 장면을 상상했고, 그 생각만 하면 파란색 자전거의 페달을 밟는 두 다리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 창가에 서서 내가 오는 걸 기다리다가 내 파란 자전거가 보이면 곧바로 현관으로 뛰어나오는 아이도 있었다. 내가 노크하면 갈색 머리의 작은 남자아이가 바로 문을 열어주었고, 나는 꼬마에게 따뜻한 빵 봉투를 건네곤 했다. (P33)
가족들은 내가 주방 벤치에서 잔다는 사실을 아무 말 없이 묵인해주었다. 내가 학교에 가지 않거나 매일 같은 옷을 입는 걸 받아들여 준 것처럼. 덕분에 나는 머리가 덜 아팠고, 가족들이 원하는 것은 그뿐이었다. (P34)
위로빵은 키티가 처음으로 혼자 만들어낸 빵이다. 위로빵은 아주 간단하고도 탁월했다. 마마이트를 한 스푼 듬뿍 떠 물에 섞어서 오버나이트 빵으로 만들었다. 마마이트의 짭짤함이 빵의 속살에 전혀 다른 맛을 더했고, 다 구워진 빵 껍질에는 잔가지 같은 무늬가 생겨났다. 모든 면에서 정말 위로가 되는 빵이었다. 우리 빵을 주문해 먹는 고객은 모두 우리 집에서 2킬로미터 반경에 살았다. 사람들은 키티의 빵을 받고 진심으로 기뻐했다. 고마워하는 고객에게 따뜻한 빵을 건네며 키티의 안에서 작은 불꽃이 일었다. (P35)
빵을 받아든 갈색 머리 아이는 너무 좋아서
딸꾹질까지 하며 주방으로 잽싸게 돌아갔다.
그걸 보면 기분이 정말 좋았다.
다음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름이었다. 아빠와 나는 ‘브레드 헤드’를 내세웠지만, 그때 엄마가 ‘오렌지 베이커리’란 이름을 떠올렸다. 내가 항상 보드라운 오렌지색 멜빵바지를 입었기 때문이다(그 옷을 입으면 안전하다고 느꼈다). 매일 입다 보면 옷은 반죽으로 뒤덮였고, 꼭 배에 따개비가 들러붙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면 엄마는 제발 옷을 빨자고 했다. 멜빵바지는 우리 팀 제3의 멤버였다. 그렇게 ‘오렌지 베이커리’가 탄생했다.
아빠한테 있던 알파벳 도장으로 오렌지 베이커리라는 단어를 만들고, 나는 감자를 깎아 오렌지 모양 도장을 만들었다. 예전에 미술 시간에 즐겨 했던 감자 프린팅(감자를 깎아 도장처럼 만드는 놀이)이 떠올랐다. 온라인으로 갈색 종이 봉투를 주문해 일요일 저녁 내내 봉지 50개에 도장을 찍었다. 이렇게 로고가지 탄생했다. (P36)
나는 키티가 느끼고 있을 실망감이 걱정 돼 신경이 곤두섰다. 그러나 키티의 눈에는 눈물 대신 강인한 결의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앞으로 내가 점점 더 많이 보게 될 모습이고 표정이었다. “나 매니큐어 칠하거나 드레스 입는 거 별로 안 좋아해. 밀가루 포대 500킬로그램을 들어 올리고 새벽 네 시에 일어나고 싶어. 커피를 좋아하지 않지만, 그것도 해볼래. 내가 살아낼 수 있는 삶인 것 같아. 내가 원하는 게 바로 저거야. 나는 강해지고 싶어.” (P40)
엘리 아주머니는 전화를 걸어와 혹시 내 사워도우를
그 음식들과 함께 판매해보는게 어떻겠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좋아요’하고 대답했다.
3주 뒤 토요일, 나는 음식 장만에 여념이 없는 그들의 주방을 감탄하며 구경했다. 오븐에서 막 나온 매콤한 고기 파이와 달래와 아스파라거스를 넣은 키슈 파이가 김을 내뿜고 있었다. 그 옆에는 내가 만들어 온 스무 개의 소박한 사워도우가 있었다. 엄청난 음식들 옆에 놓인 빵이 약간 주눅 들어 보였다. 우리 빵을 주문해서 먹는 이웃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 빵을 선보이는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오전 열 시 반쯤 내 빵이 다 팔렸다. 앤드류 아저씨가 말했따.
“오, 이정도면 괜찮은데.”
우리한테 크리스마스 빵을 팔아보라고 부추긴 이들이 바로 앤드류와 엘리였다. 두 사람은 우리 사워도우가 정말 맛있다고 했고 나는 그들의 의견을 신뢰했다. 두 사람은 우리가 주문 수량을 감당할 수만 있다면, 자기들이 하듯 선주문 시스템으로 크리스마스이브 주문을 받으라고 조언했다. 우리는 종이를 펼치고 열심히 계획을 세워보았다. 빵을 제때 내놓으려면 새벽 네시에 일어나야 할 테지만, 하루에 사워도우 60개 정도는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에 더해 약간의 포카치아, 바게트까지. 주문을 받는 일은 쉬었다. 어려운 건 그렇게나 많은 반죽을 만드는 일이었다. 작업은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P60-61)
기분이 엉망진창이었다.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 다니며 빵을 사는 데는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을 위해 와틀링턴을 저버린 셈이었다. 마치 그림형제의 동화 <어부와 그의 아내> 같았다. 어부는 아내의 설득에 따라 마법에 걸린 물고기에게 더 나은 집을 갖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아내는 점점 더 많은 걸 원하고 끝내 두 사람은 첫 번째 집에서 가장 행복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가져갔던 빵을 모두 포장해서 마법 캐비닛에 넣고, 번은 덮개가 있는 상자에 쟁여두었다. 그러고는 인스타그램에 빵을 가져가라고 글을 올렸다. 5분도 안 돼 시비가 짓기 시작했다. 나는 우리 집 위층에서 사람들이 캐비닛 문을 여닫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한 시간 만에 빵은 마지막 부스러기까지
모두 사라졌다. 마법 캐비닛에는 이런 메모가 남아 있었다. “휴, 정말 다행이에요!
시댁 식구들이 왔는데, 여기 시나몬 번 맛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했거든요.” (P85)
‘우리는 세 가지 재료로 빵을 만듭니다.
밀가루, 물, 소금.
아, 그리고 하나 더. 시간.’
아내는 네 번째 단어가 ‘사랑’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개업 하루 전, 사이먼이 새로운(그리고 예산을 한참 초과하게 한) 오븐 로프코에 전선을 연결해주었고, 배관도 모두 완비했다. 이제 드디어 일이 일어날 모양이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때도 여전히 이 모든 사태를 조금은 부정하고 있었고, 생각도 많았으며, 가게도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추려면 아직 먼 것 같았다.
마침내 일이 일어날 참이었고 나는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빠가 가게 준비를 끝내는 동안 나는 화려한 시작을 위해 첫날 구울 빵을 계획했다. 팝업 매장에서 판매하던 것보다 훨씬 많은 빵을 구워야 할 터였다. 모든 종류의 사워도우(무화과와 호두, 바삭한 양파와 구운 감자, 치즈와 할라페뇨), 포카치아, 페스토와 초리조를 넣은 브리오슈 번, 피스타치오와 다크초콜릿 스월, 크림이 듬뿍 든 파스테이스 데 나타까지.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일찍 일어나야 했다. 새벽 네시 반에 알람이 울렸고 스파키는 내 침대에서 내려가려 하지 않았다. (P99)
매 시간대에 다른 손님들이 가게를 찾았다. 메모리얼 클럽의 요가 수업이 끝나는 오전 열 시에는 항상 활기 넘치고 유연한 여성 손님들이 나타나 마마이트 치즈 스월 혹은 푹신한 앨버트빵을 쓸어 담아 갔다. 직장인들은 잠시 컴퓨터에서 눈을 뗄 수 있는 오후 열두 시에 자타르와 페타치즈 혹은 베이컨, 달걀, 토마토, 양파를 넣어 만든 샌드위치를 사곤 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앨버트빵이 다 팔렸다고 하면 발을 쾅쾅 구르는 남자가 있었는데 우리는 그에게 룸펠슈틸츠킨(독일 만화에 나오는 캐릭터, 화가 나서 발을 구르다 마룻바닥이 꺼졌고 거기에 발이 끼어 뺄 수 없었다는 이야기)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우리 가게에서는 아무도 서두르지 않았고 가끔 낯선 사람들끼리도 잡담을 나누곤 했다.
오렌지베이커리는 내 머리를 진정시키고 마음을
안심시키는 장소다. 나는 이곳에서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조금도 불안하지
않았다. 정말 행복한 곳이었다. (P111)
첫째, 키티의 웃음이 되돌아왔다. 눈가에 주름이 잡히고 온몸이 흔들릴 정도로 깔깔 거리던 웃음이 돌아온 것이다.
키티의 인스타그램에는 그해 가을 키티가 강에
뛰어드는 사진이 있다. 그리 따뜻하지도 않은
날이었다. 씩씩하던 어릴 적 키티의 모습이 보였다.
두 번째 지표는 소음이었다. 전에 키티는 묵묵히 일하는 걸 더 좋아했지만 이젠 늘 음악과 함께한다. 데이비드 보위, 닉 케이브, 플레이밍 립스가 우리 베이커리의 플레이리스트를 주로 차지한다. 때마침 키티는 팟캐스트를 발견하기도 했다. 일하며 들을 수 있는 팟캐스트는 키티에게 안성맞춤이었다. (P121)
키티의 상태가 점차 나아지자 우리가 베이커리를 하며 불러온 무질서에 대한 가족들의 인내도 서서히 바닥을 드러냈다. 현관문을 통과하려면 복도에 잔뜩 쌓인 밀가루 포대를 요리조리 피한 다음 거대한 마마이트 냄비와 달걀 상자를 지나야 했다. 주방 캐비닛은 물론 창문, 바닥, 심지어 세탁기에도 마른 반죽이 붙어 있었다(반죽이 건조기에 들어가면 작고 딱딱한 검은 공으로 변해서 어디든 들러붙는다). 특히 케이티와 아그네스는 반죽이 자꾸만 타이츠에 달라붙어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여전히 우리 집에는 식사를 할 수 있는 식탁조차 없었다. 케이티는 출근할 때마다 혹시 바지에 밀가루가 묻어 있을까 봐 신경질적으로 옷을 탈탈 털어냈다. 앨버트는 차를 내려 마실 때가 아니면 주방에 절대 들어가지 않았다.
케이티는 우리에게 주방을 원상복구하라는
최후통첩을 내렸다.
우리는 빵을 구울 다른 장소를 찾아야 했다. (P135)
이렇게 좁은 반경 안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니, 아빠와 나는 와틀링턴에
점점 더 큰 고마움을 느꼈다.
어느 주말, 아빠는 낡은 유리 진열장을 가져와 푸른색 페인트로 칠한 뒤 상단에 ‘로컬 가게만을 이용합니다’라는 문구를 썼다. 진열장 안에는 우리가 재료를 구하는 모든 업체를 보여줄 수 있는 (심사숙고해서 고른) 플레이 모빌을 진열했다. 안젤라, 톰, 로즈를 닮은 캐릭터 모형과 파일톤의 달걀과 집 근처 레이시 농장에서 가져온 우유병을 넣어두었다 (진짜 우유를 넣으면 금방 상할 거 같아서 물에 흰색 물감을 풀어서 병에 채웠다). 진열장은 우리 가게 유리창 앞에 세워두었다.
어느 날 아침 잔뜩 구운 시나몬 번을 가지고 가게로 들어가는데 가게 케이티가 진짜 우유를 담은 유리병을 카운터로 옮겨 놓은 게 보였다. 다시 진열장 안으로 가져다 놓으려는데 케이티가 말했다. “아 누가 커피에 우유 좀 타달라기에 그거 썼어.”
나는 입을 떡 벌리며 대답했다. “맙소사 이거 물에 물감 섞은 건데!”
가게 케이티가 그렇게 당황한 모습을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케이티는 얼굴이 벌게진 채 커피 컵에 대고 구역질하고 있는 사람을 찾으려고 길을 내려다보았다. 우리는 끝내 그 사람을 찾지 못했다. (P154-155)
모두에게 빵을 나눠주는 일은 봉쇄 기간 동안 내게 큰 힘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아빠와 내가 왜 빵을 두 배나 더 많이 만들어야 하는 이 일을 시작하게 됐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에는 그 일을 하는데 어떤 의문도 없었다. 전에 우리 빵집은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영업을 했지만 이젠 월요일과 화요일에도 문을 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쉬는 날이 하루도 없었다.
나는 빵 만드는 일에 너무 집착하고 있었다.
8월이 되어 5개월 만에 처음으로 쉬게 되었는데,
나는 내가 약간 고장이 났다는 걸 깨달았다.
그간에는 아드레날린이 나를 계속 지탱해 주었기 때문에, 2주 동안 일을 멈추자 몸이 가라앉으며 피로가 엄습했다. 에너지를 분출하지 않으니 마음도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그 감정이 이렇게 빨리 돌아올 수 있다는 게 무서웠다. 빵을 굽기에는 너무 지쳤고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막상 침대에 누워 있자니 마음에 금이 가는 것 같았다. 어떤 것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다시 공황 상태에 빠졌고 숨이 턱턱 막혔다. 피곤했지만 잠도 잘 수 없었다.
빵에 대한 내 마음의 욕구와 휴식에 대한 내 몸의 욕구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했다. 베이킹을 멈추는 게 너무 고통스러워서 차라리 계속하고 싶었지만, 그러다간 결국 완전히 망가져버릴 게 뻔했다. 엄마는 틈날 때마다 침대에 함께 누워 내가 해답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나는 나를 잘 돌봐야 빵도 계속 구울 수 있다는 걸 이해해야 했다. 엄마는 직접 그런 말을 들려주기보다는, 내가 스스로 느끼고 노력해서 해결할 수 있도록 얘기를 들어주었다(어떨 때 엄마는 그러다 스르륵 잠이 들었다). 나는 내 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만 겨우 파악하고 있었고(그러려고 노력했고), 어떤 현명한 해답을 찾니는 못했다.
내겐 베이킹이 전부였고,
내가 존재하는 이유였다.
그러나 무언가에 이렇게 완전히 의존하는 건
안전하지 않았다. 내게 베이킹 외에도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완벽한 해결책은 없지만 도움이 되는 일들은 있었다. 훌륭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팟캐스트 듣기, 덴마크어 배우기(나는 코펜하겐에 살며 ‘하트 바게리’에서 일하는 꿈을 꾼다), 욕조에서 <쿵푸 팬더> 보며 만두 먹기 등. 사소하지만 꾸준히 하려고 노력했던 것들이다. (P161-162)
마침내 나는 바깥세상으로 나갈 준비가 된 것 같다. 내가 처음으로 무대에 나서보기 위해 찾아갔던 곳, ‘레일라스’와 ‘스네이퍼리 베이커리’, ‘사워도우 소피아’, ‘라이 바이 더 워터’에 감사를 전한다. 이 책이 나올 때쯤에는 그런 멋진 빵집이 훨씬 늘어나 있을 것이다.
몇 년 전 우연히 브리스틀에 있는 ‘하츠 베이커리’에 갔다. 그때 나는 그 세계의 일부가 되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제 나는 바라던 대로 그 세계의 일원이 되었다. 여러 오븐에서 뜨거운 빵을 꺼내고, 반죽을 섞고 모양을 만들며 오랫동안 이 일을 해온 다른 베이커들에게 많은 걸 배우고 있다. 대형 냉장고 안에 들어가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다양한 초콜릿을 우걱우걱 씹어 먹어본다. 베이커의 유니폼인 양말에 크록스 슬리퍼를 신고 머리띠를 하고 멜빵바지를 입는다.
나는 반죽의 언어로 말한다.
새롭게 일하게 된 빵집에서 내가 만든 레시피로
빵을 만들 때면 심장이 거의 몸을 벗어날 만큼
쿵쿵 뛴다.
나는 저녁 여덟 시에 잠자리에 들고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난다. 나는 나를 돌본다. 때로 기분이 처지고 피곤하고 슬퍼지기도 하지만 곧 지나간다. 집에 오면 스카우트가 테이스공을 내 발 앞에 물어다 놓으며 나를 반겨준다.
내 초록색 배낭에는 아빠한데 보여주려고 챙겨 온 새로운 빵이 들어 있다. 스카우트 건물로 가서 커리슈마를 만나, 다음에 만들 쿠키에는 땅콩을 통째로 넣어보다는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베이커리 카운터에 서서 사람들이 커스드 브리오슈와 초콜릿 헤이즐넛 오렌지 스월 사이에서 고민하다 두 개를 다 집어가는 광경을 보는 게 정말 좋다.
살아가야 할 이유를 알지 못했던 열네 살 키티를 돌아본다. 그 아이에게 지금의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P176-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