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장 박수칠 때 떠나라]
名與身孰親 身與貨孰多 (명여신숙친 신여화숙다)
得與亡孰病 是故甚愛必大費 (득여망숙병 시고심애필대비)
多藏必厚亡 知足不辱 (다장필후망 지족불욕)
知止不殆 可以長久 (지지불태 가이장구)
노자 도덕경 44장의 첫 구절은 명성과 몸, 재화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명성과 몸, 어느 것이 가까운가?(名與身孰親) 몸과 재화 어느 것이 소중한가?(身與貨孰多) 그리고 마지막 구절은 스스로 만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고(知足不辱), 분에 맞게 머물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知止不殆). 고구려 을지문덕이 수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보낸 시 중 ‘족함을 알고 그만두기를 바라노라’(知足願云止)고 한 구절은 그 변용이다. 지지(知止)는 멈출 곳, 멈출 때를 아는 것이다. 이미 허물이 있어도 도중에 멈출 줄 알면 최악은 면할 수 있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 있듯이 멈춘다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본다.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노자 도덕경> 15장의 두 구절을 벽에다 걸어놓고 수시로 보았다고 한다. “누가 탁한 곳에 처해도 차츰차츰 맑게 할 수 있으며(孰能濁以靜之徐淸), 누가 편한 곳에 처해서도 움직여서 서서히 살아나게 할 수 있겠는가?(孰能安以久動之徐生)” 탁정서청(濁靜徐淸). 흙탕물은 가만두면 절로 맑아진다는 뜻이다. 이 말은 16장의 완전히 비우고(致虛極), 고요함을 돈독히 지켜라(守靜篤)라는 말과 같다. 비움과 고요함은 만족할 줄 아는 삶이다(知足不辱).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행복을 찾고 과도한 욕심을 부리지 않는 삶의 자세이다(安分知足). 만족하는 삶을 희망한다. 명성과 재화를 얻었다면 박수칠 때 떠나는 것(功成身退)도 만족하는 삶이다(도덕경 9장).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족할 줄 모른다. 만족하지 못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것 중에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거짓된 희망으로 스스로를 희망고문(希望拷問)한다. 조금만 더 얻으면, 내가 가진 것을 잃지 않는다면(得與亡孰病), 그러면서 말이다.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는 마르크스주의의 실재관의 일부라고 생각한 것을 완성하기 위하여 '희망의 철학'(Philosophie der Hoffnung)을 전개했다. 나치 때문에 미국으로 망명해서 탈고한 <희망의 원리>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는 단어가 ‘아직-아닌-존재(das Noch-Nicht-Sein)’이다. ‘희망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아직 아니지만 미래에는 희망이 올 수 있을까. 이번 생에는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어쨌든 희망을 꿈꾼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희망의 원리>의 부제는 ‘더 나은 삶에 관한 꿈’이다. 블로흐는 이것을 ‘낮꿈’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보다 나은 가능한 삶에 대하여 얼마나 풍요롭게 꿈꾸어 왔던가? 만인을 위한 삶은 지금까지 ‘낮꿈(공상, Tagtraum)’ 속에서 이어져 왔다.... 그것은 기존하는 나쁜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우리를 체념하게 하지 않는다. 바로 이 다른 부분이야말로 희망의 핵심이다.”라고, 더 나은 삶을 희망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꿈꾸는 자였다. ‘낮꿈’을 계속 인식하고, 이로써 정의를 추구하는 태도를 견지하자고 저항적 면모를 모색한다. 인간은 ‘낮꿈’을 통해서만 냉정한 시각을 가진다고 말한다.
목사가 되겠다고 신학교에 입학한 로드니 스미스(Rodney Smith)의 운명은 사진가 워커 에반스를 만나면서 바뀌었다. 그가 사진은 르네 마그리트처럼, 유머와 위트가 있으면서도 사고를 자극하는 자신만의 매력을 사진에 담았다. 25년 동안 그의 사진집 <The End>로 국제 사진작품상을 포함하여 50여개의 여러 상들을 받았다. 그의 사진중에 인상적인 사진 하나가 있다. <Twins in Tree>는 나무위에 모자를 쓴 중절모의 남자가 아래 모자를 쓴 남자를 내려다보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래의 사람의 현실의 자아이고, 위의 사람은 미래의 자아이다. 또 다른 자아에게 마치 질문을 하는 듯하다.
“사진을 찍는 것은 일상과 이상을 조화시키고, 두려움을 조화시키고, 불안한 외톨이에서 참여자로 전환하는 나의 방식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구성입니다. 사진에서 작곡은 음악에서 리듬과 같습니다. 그것은 대칭과 비율, 사진가와 피사체 사이의 공명에 관한 것입니다. 구도를 잃는다는 것은 심장 박동이 불규칙하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로드니 스미스-
카운트 베이시(Count Basie)는 재즈피아니스트이자 작곡자이다. 카운트 베이시가 이끈 밴드는 1930년대 스윙 밴드의 리프 앙상블 양식(솔로에 맞추어 즉흥적으로 짧은 악구를 반복하는 합주 양식으로, ‘백작(count)’ 베이시 밴드와 ‘공작(duke)’ 엘링턴 밴드 멤버들이 유행시킴)에 뿌리를 두었으면서도 또 한편 자신들의 독자적인 양식을 구사하는 독주자들의 솔로를 강조함으로써, 테너 색소폰 연주자 레스터 영, 트럼펫 연주자 클레이턴, 트럼펫 연주자이며 작곡가 태드 존스 등의 주요활동무대가 되었다. 이 밴드는 앙상블 리듬 개념과 음의 균형에서 모범을 보인 재즈 역사상 중요한 빅밴드였다. 악보 없이 즉흥 편성으로 연주하거나 외워서 연주했으며, 카운트 베이시의 히트 곡인 〈One O'Clock Jump〉·〈Jumpin' at the Woodside〉가 그 예이다. 1957년 레이먼드 호릭의 〈카운트 베이시와 그 악단Count Basie and Orchestra〉이 출판되었다. 카운트 베이시의 <April in Paris>는 1932년 브로드웨이 뮤지컬인 <Walk a Little Faster>에 쓰기 위해 만들어졌던 곡이다. <April in Paris>에서 인상적인 것은, 유명한 "One More Time!" 부분이다. 곡이 끝나자 관객들이 박수를 치고, 앵콜을 외친다. 곡이 끝나갈 무렵 "One More Time!"은 다시 한 번 클라이맥스로 이끌어간다. 그의 피아노 연주는 최소한의 음표로 최대한의 효과를 이끌어내는 "less is more" 철학을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다(https://youtu.be/FIfSTqZ7nyI?si=E_EI4SB2zZlGJ2bl). 이곡은 델로니어스 몽크(Thelonious Monk), 베니 골슨(Benny Golson)도 연주했고, 엘라 피츠제럴드(Ella Fitzgerald)와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이 부른 노래도 있다(https://youtu.be/fCsNg6XB3dg?si=qyue5SkOzgzzaPE_).
Count Basie – April In Paris
https://youtu.be/enijgnO_UA8?si=8nwnI7dzgPNWTh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