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장 슬픔의 한(恨)]
用兵有言 吾不敢爲主而爲客 不敢進寸而退尺 (용병유언 오불감위주이위객 불감진촌퇴척)
是謂行無行 攘無臂 仍無敵 執無兵 (시위행무행 양무비 잉무적 집무병)
禍莫大於輕敵 輕敵則幾喪吾寶 故抗兵相加 哀者勝矣 (화막대어경적 경적비상오보 고향변상가 애자승의)
전쟁에서 적을 얕잡아 보는 것보다 더 큰 재앙은 없다(禍莫大於輕敵). 경솔하게 적을 가볍게 여기면 나의 보물을 잃게 될 것이다(輕敵則幾喪吾寶). 그러므로 군사를 일으켜 서로 맞서 싸울 때에는(故抗兵相加) 슬퍼하는 쪽에서 이기는 법이다(哀者勝矣). 화가 나는 상황에서 같이 화를 내는 것을 우리는 공분(公憤)이라고 한다. 기쁠 때 같이 기뻐하고 슬플 때 같이 슬퍼하는 것을 우리는 공감(共感)이라고 말한다. 노자는 전쟁을 즐기는 자는 살인을 즐기는 놈이라고 말한다. 다투지 않고, 싸움을 걸지 않고, 오히려 슬퍼하는 자가 이기는 자라고 말한다. <한비자(韓非子)>의 고사에는 창 모(矛)와 방패 순(盾)의 이야기가 나온다. 단어 자체의 의미는 ‘창과 방패’이나, 고사에서의 뜻은 둘 이상의 논리가 이치상 어긋나서 서로 맞지 않음을 말한다. 공격이 최선의 방법인지, 방어가 최선의 방법인지는 사실 모순(矛盾)적이다. 영화 <승부>의 조훈현 9단은 공격형 바둑을, 이창호 9단은 수비형 바둑을 둔다. 공격형 축구가 우월한지, 수비형 축구가 우월한지는 그 실력이 비슷할 때는 우열을 가누기 어렵다. 전쟁은 이기는 자와 지는 자 모두에게 많은 손실을 가져온다. 정신적으로도 많은 문제를 야기시킨다. 유대민족이나, 노예로 이주한 흑인들이나, 우리 민족 또한 역사적으로 삼국시대에 수많은 백제인들과 고구려인들이 강제 이주 당했고, 대한제국시대 일제에 의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척박한 땅으로 이주 했다. 그런 슬픔들을 달래기 위해 노래는 그들의 위안이 되기도 한다. 아리랑과 같은 민요들은 그들의 슬픔을 반증하는 노래들이다.
모순(矛盾)의 뜻은 oxymoron이란 단어와 같다. 그리스어로 oxys는 날카롭다, moron은 뭉툭하다, 둔하다라는 뜻이다. 영어 아이러니(irony)라는 단어의 뜻은 모순, 풍자, 반어법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리처드 로티(Richard McKay Rorty)는 <아이러니스트의 사적인 진리>,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를 통해서 자아를 스스로 창조해 가는 모든 사람들을 가리켜 ‘아이러니스트’라고 부른다. 각각의 ‘아이러니한 자아’들이 모인 집단인 ‘사회’를 설명하고자 했다. 사회는 아이러니하지만 그는 결국 그의 ‘마지막 어휘’인, 연대를 하자고 역설한다.
나는 “아이러니스트(ironists)"를 다음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으로 정의할 것이다. (1)그는 자신이 현재 사용하는 마지막 어희에 대해 근본적이고도 지속적인 의심을 갖는다. 왜냐하면 그는 다른 어휘들에 의해서, 즉 자신이 마주친 사람들이나 책들을 통해 마지막이라고 간주된 그런 어휘들에 의해서 각인되어왔기 때문이다. (2)그는 자신의 현재 어휘로 구성된 논변은 이와 같은 의심을 떠맡을 수도 해소할 수도 없다는 점을 깨닫고 있다. (3)자신의 상황에 대해 철학함에 있어서, 그는 자신의 어휘가 다른 어휘들보다 실재에 더 가깝다고, 달리 말해서 자신의 어휘가 자기 자신이 아닌 어떤 힘과 접촉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철학을 하고자 하는 아이러니스트는 어휘들 간의 선택이란, 중립적이며 보편적인 메타어휘의 테두리 내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며 현상에서 실재로 가려는 투쟁적인 노력에 의해서도 이루어지지 않고, 오히려 낡은 것과 결별하고 새로운 것과 놀이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본다.
-리처드 로티,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 P164-
브랏사이(Brassaï)는 헝가리의 브라소(Basso)라는 지방도시에서 태어나, 1924년 파리에 정착했고, 파리에서 언론인으로 일하면서 많은 예술가들과 교분을 나눴고, 앗제가 파리의 새벽을 담았다면, 그는 파리의 밤풍경을 기록했다. 그의 초기 사진은 당시 예술가와 범죄자들의 지역으로 유명하던 파리 몽파르나스의 밤의 세계를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플라스 피갈 바의 보석 'Bijoux' in Place Pigalle Bar〉·〈매춘부 Streetwalker〉 같은 사진이 실린 〈파리의 밤 Paris de nuit〉이라는 사진집이 1933년에 출판되어 곧바로 성공을 거두었으며, 〈2명의 아파치 단원 Two Apaches〉과 같은 강렬한 작품을 싣고 있는 〈파리의 즐거움 Voluptés de Paris〉(1935)이 이어 출판되자 곧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파리의 밤> 사진집은 1933년 영국의 가장 권위 있는 사진문화상인 에머슨상을 받았다. ‘북회귀선’으로 잘 알려진 미국 소설가이자 브랏사이의 밤길 동무이기도 했던 헨리 밀러(Henry Miller)는 “브랏사이는 존재 자체가 살아있는 눈이었으며 그의 시선은 모든 것에 담긴 진실의 심장부를 바로 꿰뚫어보았다. 나는 매나 상어처럼 몸을 부르르 떨고 현실로 뛰어드는 그의 모습을 보았다”고 말했다.
“나는 항상 문화를 증오해 왔다. 그것이 내가 지속적으로 내가 내자신을 표현하는 매체를 변화시켜온 이유이다.”
-브랏사이-
호레이스 실버(Horace Silver)는 ‘하드밥’양식의 피아노 연주자이다. 그의 하드밥 양식은 리듬앤드 블루스(R&B), 가스펠, 라틴 음악 요소들이 혼용되어있다. <Song for My Father>은, 1964년 발매된 그의 대표곡이다. 이 곡은 단순히 아버지를 향한 헌정곡을 넘어서, 브라질 삼바 리듬과 하드밥 재즈의 절묘한 조화를 이룬 곡이다. 실버가 이 곡을 작곡하게 된 배경에는 그의 포르투갈계 아버지 존 실버(John Silver)의 영향이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이 곡의 영감을 리듬은 브라질을 여행하며 매료된 보사노바에서, 멜로디는 카보 베르데 출신의 아버지가 종종 연주했던 민요에서 얻었다. 브라질의 리듬,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재즈 전통, 그리고 유럽의 화성 체계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그는 라이너 노트(liner note)에서 "어머니는 아일랜드계와 흑인 혈통이었고, 아버지는 포르투갈계 출신이었다."라고 회상한다.
Horace Silver - Song for My Father
https://youtu.be/NFjmWI-d6d4?si=Gy0tr9iEx2Puth9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