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

120. 무엇을 찍을 것인가?

by 노용헌

무엇을 찍을 것인가와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는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진가는 이리저리 배회하며, 자신이 보았던 상황과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사진기라는 수단을 통해 남긴다. 무엇을 찍을 것인가라는 점은 사진가의 관점과 생각에 의해 주제와 소재를 선정하고 사진가에게 큰 의미를 가진다면,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는 점은 자신의 느낌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에로 확장되는 타자의 시선까지도 생각하게 할 것이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작업한다는 것, 주제로 한다는 것은 결국 주제의식이다. 나의 관심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무엇을 찍을 것인가에 접근하게 될 것이다.


플라톤의 동굴 우화에서처럼 동굴안의 그림자처럼 사진은 무엇을 재현하는가? 사진은 빛과 그림자를 통해서 현실(대상)을 재현한다고 본다면 그것은 재현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인식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사진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만 재현하는 것인지, 작가의 표현에 따라 허구를 만들 것인지는 사진가의 ‘바라보기(Seeing)’와 ‘지각하기(Perceiving)’의 문제에 달려있을지 모르겠다. Gregory Currie의 논문 “Photography, Painting and Perception”(1991)에서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논문-사진의 본질에 대한 인식론적 접근-‘바라보기(Seeing)’와 ‘지각하기(Perceiving)’의 분석을 중심으로, 연세대학교, 신선미>


사진가의 바라보기와 지각하기는 관객의 입장에서 사회적, 문화적으로 달리 전달될 수도 있다. 사진가의 주관적인 의도는 제3자의 관객에게 다르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속의 정보들은 많은 기표(signiriant)들과 기의(signifie)로 구성되어 있다. 특정한 정보(예를 들면 사과)들은 맥락에 따라 많은 기의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고, 이러한 기의들은 사회문화적 관습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언어의 구체성은 사실 이미지에서 더 많은 기의들을 내포한다. 롤랑 바르트는 “기의는 곧 개념(concept)이며 기표는 곧 (정신적 차원의) 청각적 이미지이며, 개념과 이미지의 관계는 곧 기호(예를 들어 단어) 혹은 구체적 실체이다”라고 어렵게 말한다. 사진의 본질적 재현이란 문제는 사실 프레임안에서 무엇을 찍었냐에 따라 많은 기의들을 담게 된다.


어떤 사건의 모습을 담고 있는 사진은 결코 의미 있는 특정 사건-‘사진으로 찍을 만한 가치가 있는 그 무엇인가’-에 선행할 수 없다고 수잔 손택은 이야기한다.사진이 도덕적 영향력을 발휘할 있느냐는 그에 상응하는 정치의식이 존재하느냐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수잔 손택, 사진에 관하여 41P> 경험과 이론, 대상과 대상을 인식하는 주체에게 무엇을 찍을 것인가는 인간 주체의 인식론에 달려 있다. 나는 무엇을 찍을 것인가.


대상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사유함으로써 나는 대상을 이해한다. 그것이 가치 있는 사진이 되었으면 하고, 나의 삶 또한 가치 있는 그 무엇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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