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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멀리건의 <트래쉬>

영화 <트래쉬> 2015년

by 노용헌

내 이름은 라파엘 페르난데스, 쓰레기 마을의 소년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쓰레기를 뒤져서 뭘 발견하게 될지 알 수 없잖아! 어쩌면 오늘은 억세게 운이 좋을지도 몰라.” 그러면 난 이렇게 대꾸해 준다. “이봐, 난 뭐가 나올지 이미 알고 있어.” 게다가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발견하게 될지도 알고 있다. 왜냐하면 벌써 여기서 십일 년이나 쓰레기 더미를 뒤졌으니까. 그건 한마디로 ‘스투프’다. 역겹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스투프’란 사람 똥을 가리키는 우리말이다. 아, 기분 나쁘게 하려는 건 아니다. 뭐, 기분이 상했다고 해도 어쩔 수 없지만, 하여튼 이 끝내주는 도시에는 손에 넣기 어려운 것투성이지만, 화장실과 흐르는 물이 특히 그렇다. 그래서 급하면 대개는 아무 데서나 볼일을 본다. 여기 사람들은 대부분 층층이 쌓아 올린 상자 같은 곳에서 살아가는데, 보통은 종이에 볼일을 보고 둘둘 말아 쓰레기 더미에 던져 버린다. (P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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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우리는 열쇠를 보았다. 노란 플라스틱으로 된 작은 번호표가 있었고 양면에 101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지도는 시내 지도였다.

나는 그것들을 몽땅 바지 주머니에 넣고는 가르도와 함께 다시 쓰레기를 뒤적거렸다. 그런 일이 있을 때는 다른 사람의 이목을 끌지 않아야 한다. 운 좋게 얻은 것을 모두 빼앗길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흥분되었다. 가르도도 흥분했고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가방이 결국 모든 것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나는 혼자서 생각하곤 한다. 누구에게나 열쇠가 필요하다고.

맞는 열쇠가 있어야 당신을 가로막은 문을 열어젖힐 수 있다. 왜냐하면 아무도 당신을 위해 문을 열어 주지 않기 때문이다.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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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발견한 건 가방이었잖아. 이제 사실대로 말해 봐.”

“아뇨, 내가 발견한 건 돈이었어요.”

“그런데 왜 신발이라고 했지? 왜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어?”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난 경찰이 지갑을 찾는다고 생각했어요.”

“지갑 속에 돈이 있었다고? 지금 지갑은 어디 있는데?”

“내가 가지고 있을 거예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다들 나를 노려보고 그리고…….”

“가방에서 지갑을 발견했잖아. 나한테는 거짓말 못 해.” (P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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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가방을 감춰야 해.” 내가 말했다.

“그냥 버리는 게 어때?”

“경찰이 버려진 가방을 발견하면 가방 안에 든 것을 누군가 가져갔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경찰이 뭘 찾고 있는지 알고 있다면 말이야.”

“누가 잃어버린 건데? 경찰이 찾는 게 뭐야?”

래트가 물었다.

나는 일어난 일을 간략하게 말해 주었다. 래트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만 페소라고? 라파엘. 너 미쳤구나. 얼른 주고 돈을 받아.”

“돈을 받으라고?”

가르도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경찰이 정말 돈을 줄 거라고 생각해? 거짓말일 거야. 그들이 설사 그렇게 한다 해도 라파엘이 고작 그것에 연연할 것 같아?”

래트는 나에게서 가르도에게로 눈길을 돌리더니 다시 나를 쳐다봤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 내가 제안을 했다. “우선 가방을 감춰야 해. 내일 경찰이 와서, 가방 찾는 일을 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돈을 준다고 했어. 우리도 며칠 일한 다음에, 아마 다음 주 정도에 가방을 돌려줘도 될 거야.”

“그럼 다들 좋아하겠다.” 래트가 말했다. “멋진 생각이야. 하지만 하나 물어봐야겠어. 그들이 왜 그렇게 그것을 찾으려고 하는지 말이야. 이 안에 얼마가 들어 있었는데?”

래트는 가느다란 손가락을 들어 지갑을 열고 주민등록증을 꺼냈다.

“1100페소.” (P3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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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작 경찰의 속을 바짝바짝 태운 건 가방이 거기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어. 매킨리의 쓰레기통은 쓰레기처리장으로 오기 전에 아이들의 차지가 되기도 하거든. 간혹 거리에서 쓰레기를 뒤지는 아이들이 있으니까. 심지어 쓰레기가 쓰레기처리장에 오기 전에 쓰레기차 안에서 잠을 자기도 해. 그래서 가방이 쓰레기처리장까지 왔는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었지. 가방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이 이 세상에 단 세 명의 아이들뿐이라고 생각하니 이상하기 짝이 없었어.

모두가 둘러앉았어.

마침내 돈이 지불되었고, 다들 100페소를 벌었지. 날이 어두워지자 하늘이 노을로 붉게 물들었어. 경찰은 드디어 포기하고 철수하기 시작했어. 나와 라파엘은 속으로 미소 지었지. 그러고 나서 귀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기계의 벨트가 돌아가고 트럭들은 다시 작업을 시작했어.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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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드 신부라고 부르게. 이 사건을 설명하기로 한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이름을 완전히 바꾸기는 했지만 말일세. 아마 이야기가 끝날 무렵에는 자네도 그 이유를 알게 될 거야. 이어서 일어나는 일들은 나와 예전에 함께 일했던 올리비아 선생이 들려줄 걸세.

베할라 쓰레기처리장에서 칠 년간 파스칼 아길라 미션스쿨을 운영했네. 원래 임용 기간은 일 년이었지. 내 주된 임무는 부실한 재정 관리를 바로잡는 것이었어. 예순여섯 살인 내게는 그곳이 마지막 근무지였지. 하지만 그곳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 이후 지금까지 계속 있게 된 걸세. 불행하게도 올해에는 은퇴할 예정이야.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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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날 쳤고 난 뒤로 쓰러졌다. 경찰이 나를 들어 올리자 양복 입은 남자가 내 목덜미를 잡고 벽으로 밀어붙였다. 나는 벽에 기댄 채였는데 다리가 풀려 단순히 서 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악취가 진동하는 몸으로 덜덜 떨면서 나는 간신히 소리쳤다.

“선생님, 전 가방 몰라요!”

“밖으로 던져 버려!”

경찰들이 나를 들더니 창문으로 끌고 갔다. 양복을 입은 남자는 창문을 열고 있었고 경찰들은 내 발목과 팔을 잡은 채 창문으로 향했다. 활짝 열린 창문이 점점 커다랗게 다가왔다. 따뜻한 바람이 불었던 것 같다. 그들은 내 몸을 창밖으로 내밀고 내 발목 하나만 잡고는 거꾸로 매달았다. 눈앞에 더러운 벽이 보였고 아래로 멀리 쓰레기통처럼 보이는 것이 가득 있는 돌바닥이 보였다. (P82-83)

“넌 너희 집의 가장이야, 그렇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를 올려다보지는 않았다.

“만약 네게 무슨 일이 생기면 가족들한테 아주 큰 문제가 생길 거야. 고모는 어떻게 될까?”

“모르겠어요, 선생님.”

“사촌 동생 둘은? 그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내 말 듣고 있니?”

“예, 모르겠어요. 전 가방은 몰라요. 제발 믿어 주세요.”

“우리는 널 저 창밖으로 던져 버릴 수도 있어. 아니면 저 뒤로 끌고 갈 수도 있고, 지금 당장 말이야. 거기엔 아주 특별한 곳이 있는데, 알고 있니? 너 같은 쓰레기에게는 완벽한 곳이지. 거기에선 아무리 비명을 질러 봤자 들리지 않아. 우린 원하면 네 몸의 뼈를 전부 부숴 버릴 수도 있어.”

그는 내 팔을 잡더니 비틀어 올렸다.

“이것부터 먼저 부숴 줄까? 내 말 알아듣겠니?”

나는 벌벌 떨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비틀린 팔은 허공에 떠 있었고 나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그들이 뼈를 부수길 기다렸다. 고통이 너무 커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우리는 너를 쓰레기 속에 던져 버릴 수도 있어. 아무도 모를 거야. 네 목숨은 거기에서 끝나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니?”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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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의 죄는 부통령에게서 600만 달러를 훔쳤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 그랬다면 그 돈은 어디에선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는 체포되기 전에 가방을 쓰레기 속에 넣었을 테고, 경찰은 아마도 호세의 자백을 받아 낸 날 쓰레기처리장으로 왔을 것이다.

한 신문의 기사에서 호세 안젤리코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조금 다루고 있었다. 그는 고아였다. 하지만 콜바 교도소에 복역 중인 가브리엘 올론드리스의 아들 단테 제롬 올론드리스의 양자로 입양되었다. 호세 안젤리코는 십팔 년 동안 부통령의 집사로 일했다. 그리고 여덟 살 난 어린 딸 말고는 가족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가브리엘 올론드리스에게 편지를 썼을 것이다.

그때 비를 맞아 떨리는 몸으로 앉아 있는 동안 나는 비로소 분명하게 깨달았다. 콜바 교도소에 가서 그 편지를 전해야만 한다. (P93)


“나도 이제 그래요. 운이 좋으면 한 달에 한 번 읽을까? 바깥소식에 아주 굶주려 있어요. 변화를 기다리는 일은 나를 지치게 만들죠. 올리비아 양, 난 중요한 사람이 아니에요. 이 도시 동부 지역에서 말단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었지. 당신은 여기 시스템을 모를 거예요. 나도 모르니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사십 년 전에 상원의원 자판타가 국제 원조 기금 3000만 달러를 감쪽같이 가로챘다는 거요. 유엔 주도의 그 기금은 병원과 학교를 짓기 위한 것이었지. 그들은 그걸 옥수수 씨앗 기금이라고 불렀어요. 그 기금은 이러한 원조가 진행되는 방식에서 아주 중요했소. 한 나라가 그런 기금을 받을 때는 정부와 원조국들이 지원받는 규모에 맞는 돈을 출자하도록 되어 있지. 그래서 3000만 달러는 더 큰돈으로 불어나게 되오. 정부와 개인 투자자, 거대 은행이 같이 참여하게 되는 거요. 따라서 3000만 달러는 6000!7000만 달러가 될수도 있었소. 올리비아 양, 7000만 달러면 이 도시를 바꿀 수도 있는 돈입니다. 그러나 학교도 병원도, 세워진 것은 하나도 없고 도시는 여전히 빈곤하오. 상원의원 자판타가 그 돈을 가로챈 게지. 나는 그걸 입증하려고 애썼어요. 하지만 그 사건은 자판타의 맞고소로 법정에 가지도 못했고 결국 나만 유죄판결을 받았죠. 나의 호소는 비웃음만 산 게요. 결국 난.... 종신형을 선고받았지.”

그는 또다시 말을 멈추더니 고통으로 몸을 뒤틀었어요.

“이제 내 형기도 끝나려나 보오.”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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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 경찰들이 우두커니 서 있다가 극도로 정중하게 ‘의원님, 다시 말씀해 주십시오. 어떻게 의원님의 집사가 600만 달러를 밖으로 가지고 나갈 수 있었지요?’라고 묻는 거야.”

그는 오랫동안 큰 소리로 웃었고, 라파엘도 미소를 짓기 시작했지. 나도 웃었어.

“600만 달러, 그걸 들고 문밖으로 나가다니. 어떻게 했는지 알고 있니?”

우리는 좀 더 크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어. 그 일을 생각하면서 저렇게 즐거워하다니, 우리도 기분이 좋았지.

“여기 사람들은 다 아는데 신문에서는 아직 제대로 몰라.”

“어떻게 한 건데요?” (P158)


여기까지가 제 이야기예요.

이렇게 말할 수 있게 해주어서 정말 고맙다. 얘들아, 너희 나라에 내 마음의 일부분을 놔두고 왔지만 결코 돌아갈 수가 없구나.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단다. 내가 무엇을 배웠을까? 베할라 쓰레기처리장에서 무엇을 배웠고, 그것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아마 대학에서 배운 것보다는 더 많이 배웠을 거야. 세상이 돈 위주로 움직인다는 것. 이 세상에는 가치와 미덕과 도덕이 있고, 관계와 믿음과 사랑도 있으며 그 모든 것이 중요하지. 하지만 돈이 더 중요하더구나. 그것은 소중한 물처럼 흐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넘치고 어떤 사람은 부족하지. 물이 없으면 쪼글쪼글해지다가 죽게 되는 거야. 돈이 없다는 것은 아무것도 자랄 수 없는 가뭄과 같더라. 베할라처럼 돈이 메마른 곳에서 살아 보지 않고서는 아무도 돈의 가치를 모를 거야. 그곳엔 비를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나 많아.

작별 인사도 못 했고 다시 돌아갈 수도 없어. 이렇게 쓰다 보니 가르도, 라파엘, 특히 레트, 너희가 너무나 보고 싶어져서 어느새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종이가 얼룩덜룩해졌구나.

안녕, 그리고 나를 활용해 줘서 정말 고마워. (P172-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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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그 빌어먹을 성경과 숫자와 사선이 적혀 있는 종이 쪽지에 달려 있었지. 두 개가 한 짝이었기 때문에 그 성경을 반드시 가져와야 했어.

결국 가르도가 위험을 무릅쓰기로 했어. 그는 내 더러운 옷을 빌려 입고 콜바 교도소를 향해 걸어갔지.

가르도는 밖으로 나오는 교도관들을 살펴보면서 하염없이 앉아 있었고, 교대하는 것을 보면서 이틀을 더 보냈어. 귀머거리인척, 벙어리인 척하면서, 마침내 찾고 있던 교도관을 발견하고는 그를 쫓아갔지.

가르도는 교도소에서 멀리까지 뒤를 쫓은 다음, 교도관 앞에 모습을 드러냈어. 그러고는 좀 더 따라갔지. 마르코라는 그 교도관은 계속 걷다가 차이나타운에 있는 어느 작은 찻집으로 들어갔어. 거긴 그들 둘뿐이었어. 교도관이 가르도의 목에 현상금이 붙어 있다는 걸 알고 있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가르도로서는 아주 용감한 행동이었지. 교도소에서는 가르도와 쓰레기처리장이 무슨 관련이 있는지 알아내고 경찰에 연락했을 거야. 어쩌면 노인이랑 가르도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알려 주었을지도 몰랐고.

결국 문제는 과연 마르코를 믿을 수 있느냐였지.

가르도는 돌아와서 나쁜 소식을 전했어.

“2만 페소를 달래.”

성경 한 권에 2만 페소라니!

라파엘을 욕을 하며 말했어.

“가지고 있는 거 확실해? 줄 거 같아?” (P18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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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성경과 종이쪽지 주변에 촛불을 잔뜩 켜놓았다. 먼저 책에 숨은 암호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아야 했다. 노인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건 가르도였지만 그 원리를 찾은 건 나였다. 가르도의 기분을 상하게 하려는 건 아니지만 나는 눈썰미가 있다. 가르도는 우리가 함께 찾았다고 하는데 그래, 그게 맞는 말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처럼 웅크리고 앉아 꼼꼼하게 보고 또 보았다. 성경 표지는 낡았고 종이는 지저분했다. 펼쳐보니 937, 940, 922..... 같은 숫자들이 나왔다. 지금까지 수를 배워 본 적은 없지만 살아가려면 더하기 빼기 정도는 할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바보는 아니었기 때문에 조금씩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그 숫자가 나타내는 쪽은 성경의 뒷부분이었고 가르도는 노인이 복음에 대해 말했던 내용을 떠올렸다.

“요한복음, 이루었다고 했어.”

가르도가 말했다.

우리는 찾기 시작했다. 그곳은 손때가 많이 묻어 있었고 다른 곳보다 눈에 띄게 닳아서 찢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십자가 형에 관한 것은 940쪽에 있었다. 쪽지에 첫 번째로 적힌 숫자, 우리는 그 쪽에 집중했다. 밑에 누군가의 글씨로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그때 하늘이 어두워지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다 이루었노라.’......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흔들리고 무덤이 열리더니 성자가 부활하도다. (P194-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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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분명했지. 하지만......

여기서 뭘 찾아야 되는 거지? 그래,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의 가족무덤을 찾았어. 하지만 그게 지금 상황에서 무슨 소용일까? 쓰레기처리장에서 처음 지갑을 발견했을 때 우리가 보았던 슬픈 얼굴의 남자..... 부인과 아들을 잃었고, 우리는 그의 돈을 찾아 여기저기 뒤지고 있어. 그는 돈을 여기에 감출 수는 없었을 거야.

“그래, 제대로 찾아왔어. 하지만 그 돈을 시신과 함께 무덤에 넣을 수는 없었을 거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호세라면 어떻게 했을까?”

래트가 물었어.

“저기, 저건 뭘까? 저것도 그의 가족무덤일까?”

라파엘이 위를 쳐다보며 말했어.

라파엘은 호세 부인의 것 위에 있는 무덤의 비석을 쳐다보고 있었고 나는 그 비석을 알아보러 올라갔지. 깨끗하고 새것이었지만 너무 어두워서 글자를 제대로 읽을 수 없었어. 래트가 촛불을 건네주었고, 나는 천천히 글자 하나하나를 읽었어.

“씨앗, 그 씨앗에 대한 거야. 그리고 수...... 확. 어떤 긴 글자가 있는데 잘 알아볼 수가 없어.”

“........이루었노라?”

우리는 다 같이 소리쳤어. 내가 다시 읽었어.

“다 이루었노라. 다 이루었노라. 사랑과...... 희망. 그리고 이름이 있네, 아주 작은 이름이야.”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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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뭐니? 뭘 찾고 있는 거야?”

래트가 조용히 물었다.

“찾고 있는 건 없어. 그냥 여기서 기다리는 거야.”

“하지만 사는 곳은 있을 거 아냐?”

“여기야. 지금은 따로 없어.”

“너 혼자? 이름은 뭐야?”

“피아 단테.” 그 애가 말했다. “내 이름은 피아 단테 안젤리코고, 아빠 호세 안젤리코를 기다리고 있어.”

나는, 그러니까 라파엘은 돌처럼 굳어 거의 쓰러질 뻔했다. 래트가 ‘헉’하는 짧은 숨소리와 함께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그 애의 머리카락은 여전히 바람에 흩날렸는데, 그래도 조각상처럼 보이는 건 마찬가지였고 목소리는 아기 같았다....... 처음에 난 분명히 귀신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게 방금 우리 눈으로 그 애 무덤을 직접 확인했으니까.

피아 단테는 죽은 자의 날에 자신의 이름이 적힌 무덤. B25/8을 건너다보며 죽은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기적 같은 우연으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P23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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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관을 땅에 녀려놓으며 빨리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지만, 정말 거기에 돈이 들어 있는지 당장 확인하고 싶은 건 어쩔 수 없었다.

우리는 칼을 드라이버로 썼다. 관에 박혀 있는 여덟 개의 나사를 풀고 관 뚜겅을 들어 올릴 때 나는 알았다. 아니 우리 셋 모두 알았다고 생각한다. 가르도가 말했듯이 혼령들이 주변에 둘러서서 우리가 나사를 돌려 뚜껑을 들어 올리는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오, 이런 세상에! 거기 돈이 있었다.

돈이 거기 있었다. 너무나 딱 맞게 쌓여 있어서 관이 돈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600만 달러가 어떻게 보이는지 알고 싶은가? 이제부터 이야기 할 거다.

옆에 앉아 있던 나에게 그것은 음식과 마실 것, 인생을 바꿀수 있는 어떤 것처럼 보였다. 영원히 이 도시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줄 그 어떤 것. 그것은 변화였고, 미래였다. 다른 것은 난 모른다. 우리는 잠시 뚫어지게 쳐다보기만 할 뿐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우리는 계획을 세웠고 그건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어느 누구도 돈을 전부 갖자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계획의 마지막 부분을 바꾸자고 제안한 사람도 없었다. 그 돈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들 알고 있었다. 가브리엘 올론드리스를 만난 적은 없지만 가르도가 이야기해 준 걸 들으면 아주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날은 죽은 자의 날이었으니 올론드리스가 혼령들의 대열 제일 앞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그럴 거라고 믿었다. 그렇게 바로 우리와 함께 말이다. 호세 안젤리코도 팔에 팔을 끼고 줄곧 우리와 함께 있었을 거다. (P24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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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난 옛 친구들, 쥐들을 보러 거기 갔던 게 아니야! 피아는 옷과 배낭을 갖고 땅에서 우리를 올려다보며 기다렸어. 내가 앞에서 돈이 담긴 자루를 묶은 밧줄 끝을 잡아끌고 가르도와 라파엘은 뒤에서 무게를 받치며 올라왔지. 나는 위로, 위로 올라갔어. 바람은 점점 더 거세지고 내 셔츠는 깃발처럼 펄럭거렸어. 벨트 전체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에 마치 배에 타고 있는 것 같더라. 우리는 첫 번째 꾸러미를 제일 높은 꼭대기로 가지고 갔어. 베할라 전체가, 도시 전체가 다 보였고, 멀리 바다까지 보였어. 그때 라파엘이 기분 끝내준다고 소리를 지르며 내 옆으로 왔어. 우리는 서로 껴안고 큰 소리로 웃었어. 그리고...... 돈을 한 주먹 집어서 하늘을 향해 던졌지. 지폐가 쏟아지며 바람을 타고 빙글빙글....... 마치 돈벼락 같더라. 나중에 알았지만 그 바람은 중국 남쪽에서 몰려온 태풍 테레즈였고 다음 날엔 폭우가 쏟아질 것이었어. 그때 우리는 던질 수 있는 한껏 돈을 집어 멀리멀리 날려 보냈지.

얼마 지나지 않아 팔이 아팠어.

라파엘도 지쳤는지 소리치던 것도 멈추고 벨트 꼭대기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어. 두 번째 꾸러미의 돈을 던지는 속도는 더 느렸어. 꾸러미가 가벼워지자 가르도도 올라와 벨트 꼭대기에 서서 튼튼한 팔로 우리와 함께 나머지 돈을 던졌어. 돈을 마저 던졌을 때 갑자기 바람이 더욱 거세지기 시작해서 우리는 크레인에 매달렸어. 허리케인이었지. 돈의 허리케인! 우리는 쓰레기처리장에 던진 돈은 아마 550만 달러는 되었을 거야. 크고 아름답고 끔찍한 우리 마을은 돈으로 온통 뒤덮였어.

돈 꾸러미 밑바닥에서 우리가 무엇을 찾았는지 알면 놀랄걸? 그건 지폐 사이에 끼 있는 호세 안젤리코의 또 다른 편지였어. 가르도가 그 편지를 셔츠 주머니에 쑤셔 넣은 다음 우리는 천천히 벨트를 내려왔지. 머리가 어질어질했어. (P246-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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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린 시절의 어느 날 가브리엘 올론드리스를 알게 된 때부터 불은 타올랐다. 그는 많은 불을 지폈듯이 나를 타오르게 했다. 그는 내게 많은 것을 알려 주었지만 그중에서도 강조했던 것은 상원의원 자판타의 엄청난 범죄였다. 상원의원 자판타는 한 나라가 가야 할 길을 막아선 사람이다. 그는 나라의 발전을 막고 있다. 무엇보다도 더 나쁜 것은 다른 나라가 원조를 중단할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그가 훔쳐간 몇백만 달러 때문에 얼마나 많은 원조를 제공받지 못했을까? 그보다 더 나쁜 것은 다른 정치인이나 관료, 공무원, 교사, 점원 그리고 평범한 이웃이, 빼앗는 것이 잘사는 길이고 가난한 사람의 얼굴을 밟고 일어나는 것이 자연법칙이라고 배운 것이다. 가난한 사람조차도 그렇게 믿으며 그것이 우리가 계속 가난한 이유 중 하나다.

(P25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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