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베를린의 노이에 바헤(Neue Wache) 추모관에 들어서면, 깊고 묵직한 침묵 속에서 한 조각 작품이 시선을 붙잡는다. 케테 콜비츠의 ‘피에타(Pietà)’이다. 이 작은 조각은 어머니의 품에 안긴 죽은 아들의 모습으로, 전쟁과 폭력이 남긴 고통을 강렬하게 압축해 놓은 형상이다.
케테 콜비츠가 이 작품을 만든 배경은 매우 개인적이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녀의 18세 아들 페터가 전쟁에 자원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후, 그녀의 손자 페터마저 1942년 러시아 전장에서 전사했다. 그녀의 삶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 슬픔과 전쟁의 폭력으로 깊은 상처를 입었다.
유진 스미스(Eugene Smith, 1918~1978), <토모코를 목욕시키고 있는 어머니>, 1972
수잔 손택은 미켈란젤로의 역작 <피에타>와 견줄만한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이 사진은 스미스가 일본의 미나마타시에서 직접 이 공해병을 알리기 위해 1971년부터 1973년까지 3년 간 머물며 촬영한 사진이다. 그의 이러한 미나마타병을 알리기 위한 시도는 일본의 공해책임회사인 칫소의 원한을 샀고 저들이 고용한 불량배에게 폭행을 당해 척추 손상 및 한 쪽 눈 실명이라는 중상을 입기도 했다. 그럼에도 유진 스미스는 라이프지의 보도사진가를 지냈던 책임감, 나아가 진실을 알리는 사진가로서의 신념을 잃지 않고 1971년 촬영한 <토모코를 목욕시키고 있는 어머니>를 1972년 발표했다.
구와바라이 시세이도 일본 사진가로 같은 장소에 촬영을 했었다.
15세기 르네상스 화가 피에트로 페루지노(Pietro Perugino, 1445-1523)는 1482년에 피렌체 화가들과 바티칸궁 시스티나 성당 벽화장식을 했고,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 화파’의 지도자였으며, 감미롭고 감상적이며 단순화된 인상의 화풍이었고 라파엘로의 스승이었다.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피에타>는 페루지노가 회화 전통에 따라 그린 작품이다.
이탈리아어 피에타는 경건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미술에서 말하는 피에타는 의미가 조금 다르다. 1300년 이후 성모마리아가 예수의 시신을 앞에 눞혀 두거나 안고 있는 경배화의 한 유형을 가리킨다.
예수를 십자가에서 내린 뒤 입관하기에 앞서 마리아가 잠시 예수의 주검을 끌어안고 있는 애통한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매장을 돕던 니고데모와 아리마데 사람 요셉, 그리고 요한과 막달라 마리아 등 주변 인물들을 배제하고 성모 마리아와 예수만 표현한 것이다.
19세기 고흐(1853~1890)가 남긴 피에타도 있다. 낭만주의의 거장 들라크루아의 피에타를 본뜬 이 작품에는 죽음과 고통이 깊게 배어있는, 자신을 꼭 빼닮은 예수의 모습이 있다.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의 거칠고 투박한 손은 삶의 고난을 나타낸다.
https://en.wikipedia.org/wiki/Piet%C3%A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