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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실 해밋의 <유리열쇠>

영화 <더 글래스 키> 1942년

by 노용헌

영화 <유리 열쇠>(1935)


더 글래스 키(The Glass Key)는 미국에서 제작된 스튜어트 하이슬러 감독의 1942년 드라마, 느와르, 범죄, 미스터리 영화이다. 브라이언 돈레비 등이 주연으로 출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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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드 보몬트는 불쾌한 듯 얼굴을 찌푸렸다. “알았어. 그만 할게.”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곧장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며 회의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가 재선되고 나서도 계속 형과 손잡을 거라 생각해?”

매드빅은 걱정없는 표정이었다. “그를 다루는 방법쯤은 알아.”

“그럴 테지만 그가 평생 지금껏 단 한 번도 당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마.”

매드빅은 전적으로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그와 손잡은 제일 중요한 이유도 바로 그거고.”

“그렇지 않아.” 네드 보몬트가 진지하게 말했다. “최악의 이유가 될 수도 있어. 골치 아프더라도 곰곰이 잘 생각해 봐. 의원의 금발 미녀 딸에게 완전히 홀린 거야?”

매드빅이 말했다. “그녀와 결혼할 거야.”

네드 보몬트는 휘파람을 불 듯 입을 오므렸지만 실제로 그러지는 않았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것도 거래의 일부야?”

매드빅은 순진한 아이마냥 씩 웃었다. “그건 아직 아무도 몰라. 너와 나 두 사람 말고는.” (P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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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드 보몬트는 시신에서 손을 떼고 몸을 일으켰다. 고개가 왼쪽으로 약간 돌아가 도로변을 향하고 있는 죽은 청년의 얼굴이 가로등 불빛에 환하게 드러났다. 곱슬거리는 금발이 이마에서 눈썹까지 비스듬한 곡선을 그리며 어둡게 드리워져 있어서, 얼굴에 어린 분노가 더 강렬해 보였다.

네드 보몬트는 차이나가 양쪽을 둘러보았다. 길 위쪽으로는 아무도 없었다. 두 블록 떨어진 길 아래쪽 건너편의 <로그 캐빈 클럽> 앞에 남자 둘이 자동차에서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클럽 앞에 네드 보몬트와 마주 보게 차를 세우고 클럽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차를 바라보던 네드 보몬트는 갑자기 고개를 홱 돌려 길 아래쪽을 둘러보고는, 급히 몸을 돌려 근처 가로수 그늘 아래에 몸을 숨겼다. 그는 입으로 숨을 쉬었고, 손등에 맺힌 땀방울이 가로등 불빛에 번들거렸다. 몸이 부들부들 떨리자 그는 외투 옷깃을 세웠다. (P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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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 호남형인 매드빅의 얼굴은 차분해 보였다.

「최악은 아니었어.」 네드 보몬트는 문을 닫고 매드빅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 앉았다. 「헨리 의원과 식사 자리는 어땠어?」

매드빅이 얼굴을 찌푸리자 눈가에 주름이 졌다. 「나도 최악은 아니었어.」

네드 보몬트는 얼룩덜룩한 시가 끝을 잘라 냈다. 손은 떨렸지만 목소리는 침착했다. 「테일러도 함께 있었어?」 그는 매드빅을 쳐다보지 않고서 물었다.

「식사 자리엔 없었는데, 그건 왜?」

네드 보몬트는 꼬았던 다리를 쭉 뻗어 의자에 몸을 기댔고, 시가를 잡은 손으로 무심히 원을 그리며 말했다. 「길 위쪽 하수구에 죽어 있어.」

매드빅은 여전히 침착한 모습으로 물었다. 「그래?」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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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이지, 어떻게 하면 돼?”

“그게..... 다소 비정상적인 방식일 거야. 범행을 입증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그를 확실히 잡아넣도록 다소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도와줄 수 있어?”

“뭐든 할게.” 그녀가 대답했다.

네드 보몬트는 숨을 내쉬고는 입술을 오므렸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돼?” 그녀가 다급하게 물었다.

“모자를 가져다줘.”

“뭐라고?”

“테일러의 모자가 필요해.” 네드 보몬트의 얼굴이 불그레해졌다. “하나 가져다줄 수 있겠어?”

그녀는 당혹스러워하며 되물었다. “모자는 도대체 왜?”

“디스페인의 유죄를 못 박으려고. 지금은 더 이상 말해 줄 수 없어. 모자 가져다줄 수 있어 없어?”

“가져다줄 수는 있지만--”

“언제?”

“오늘 오후엔 가능하지만--”

네드 보몬트는 재차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지금은 모르는 게 나아.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을 테니까. 모자를 가져오는 것도 마찬가지고.” 그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아 가까이 당기며 물었다. “말썽쟁이 아가씨, 그를 정말 사랑한 거야, 아니면 아버지 성화에 못 이겨--”

“정말 사랑했어.” 그녀가 흐느껴 울며 말했다. “정말이야. 정말 사랑했어.”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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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드 보몬트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도 안 된다는 듯 웃었다. “내가 이곳 지방 검찰에서 한자리 꿰찼다는 사실을 잊었나 보군.”

“하지만 난 기소당하지 않았어. 지명 수배자도 아니고 너도 그렇게 말했잖아.”

“어떤 이유로 널 속였던 거야. 난 수배 중이야.”

“무슨 혐의로?”

“테일러 헨리 살해 혐의.”

“뭐라고? 그거라면 직접 가서 조사받도록 하지. 도대체 무슨 증거가 있어? 그자의 차용 증서를 갖고 있고, 그가 살해된 날 그곳을 떠난 것도 사실이야. 그자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 혼내 준 것도 사실이고, 1급 변호사가 끼어들 사건도 아니야. 리 말로는 내가 9시 30분 이전에 차용 증서를 금고에 뒀다는데. 그렇다면 내가 그날 밤 차용증서를 되찾을 생각이 없었다는 것 아니겠어?”

“아니, 우리가 갖고 있는 증거는 그것뿐이 아니야.”

“그거 말고 있을 리가 없어.” 디스페인이 다급하게 말했다.

“틀렸어. 버니. 오늘 아침 널 찾아갔을 때 내가 모자 쓰고 있던 것 기억나?”

“음, 그랬던 것 같은데.”

“나올 때 외투 주머니에서 모자를 꺼내 썼던 것도 기억나?”

디스페인의 작은 눈에 당혹감과 두려움이 드리웠다. “젠장!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사건의 증거를 말하는 거지. 모자가 나한테 맞지 않았던 것도 기억나?”

버니 디스페인은 목이 잠겼는지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네드,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내 모자가 아니기 때문에 맞지 않았던 거지. 테일러가 피살 당시 쓰고 있던 모자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거 기억해?”

“몰라. 그자에 관해선 아무것도 모른다고.”

“내가 오늘 아침에 쓰고 있던 모자가 테일러의 것이고, 지금 그 모자는 네가 사는 벅맨 아파트의 갈색 안락의자 쿠션 뒤에 숨겨져 있어. 그 증거까지 추가되면 사형에 처해지겠지?”

디스페인이 겁에 질려 소리 지르려 하자, 네드 보몬트는 그의 입을 틀어막고 귀에 대고 말했다. “닥쳐!” (P6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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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리가 말했다. 「폴, 난 대가를 치르고 경찰의 비호를 받아 왔고, 지금도 그러길 바랍니다. 사업은 사업이고 정치는 정치이니, 따로 떼어서 생각해 줘요.」

매드빅이 대꾸했다. 「안 돼.」

섀드 오로리의 눈빛이 어렴풋이 어딘가 먼 곳을 응시하는 듯했다. 그는 서글픈 웃음을 짓고는 아일랜드 억양이 약간 묻어나는 바리톤 음성으로 말했다. 「그럼 서로 죽여야 할 텐데요.」

매드빅의 푸른 눈빛은 모호했고, 목소리도 눈빛만큼이나 헤아리기 힘들었다. 그가 말했다. 「네가 그럴 생각이라면 그렇게 되겠지.」

백발의 섀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여전히 구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그럴 수밖에요. 나도 이제 덩치가 너무 커져서 당신이 함부로 걷어차 버리지는 못할 겁니다.」

매드빅은 의자에 몸을 기대어 다리를 꼬고 여전히 무심한 어투로 말했다. 「덩치가 커져서 쉽게 당하지는 않겠지만, 결국 당하게 될 거야.」 그는 입을 꼭 다물었다가 생각을 곱씹듯 덧붙였다. 「그렇고말고.」 (P9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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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길 뜨는 이유는?」

「시골뜨기 동네 진절머리 나서.」

「나한테 진절머리 난 거야?」

네드 보몬트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매드빅 역시 아무 말 없이 잠시 있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절묘한 타이밍에 날 버리는구나.」

바텐더가 연한 색 맥주 두 잔과 프레첼 한 접시를 들고 왔다. 바텐더가 문을 닫고 나가자마자 매드빅이 소리쳤다. 「네드, 너 정말 함께하기 힘든 놈이야!」

네드 보몬트는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아니라고 한 적 없어.」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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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이 있는 제안이군요.” 네드 보몬트는 다소 시들해진 듯 말했다. “선거에서 이긴다는 조건. 어쨌건 난 선거가 끝난 이후에, 아니 그 전까지도 여기에 있고 싶은지 모르겠습니다.”

오로리는 개의 코끝을 문지르다 그만두었다. 그는 어렴풋이 웃음 지으며 네드 보몬트를 올려다보았다. “우리 편이 선거에서 이길 거라 생각하지 않는 건가요?”

네드 보몬트는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돈을 걸라고 하면 당신도 마찬가지일 텐데요.”

오로리는 여전히 어렴풋한 웃음을 띤 채 또 다른 질문을 했다. “보몬트, 나와 한 배를 타는 게 그리 달갑지 않은 모양이군, 그렇죠?”

“맞아요.” 네드 보몬트는 자리에서 일어나 모자를 챙겼다. “어차피 내 생각도 아니었고.” 그의 목소리와 표정은 무심했다. “위스키에게도 시간 낭비일 거라고 했고요.” 그는 외투를 집어 들었다.

백발의 오로리가 말했다. “앉으시죠. 얘기는 더 나눌 수 있을 텐데, 안 그래요? 얘기가 끝나기 전에 뭔가 결론을 얻을 수도 있고.”

잠시 망설이던 네드 보몬트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모자를 벗어 외투와 함께 소파에 걸치고 자리에 앉았다.

오로리가 말했다. “우리 편으로 오면 당장 현금 1만 달러를 주고, 우리가 선거에서 폴을 이기면 추가로 1만 달러를 주겠습니다. 도박장 운영도 당신 원하는 대로 하고.”

네드 보몬트는 입을 꼭 다물고 미간을 찌푸리며 음울한 눈빛으로 오로리를 응시했다. “당신은 내가 폴을 배신하길 바라겠죠.”

“그가 연루된 모든 사건들을 <업저버>지에 제보해 진상을 밝혀 줘요. 하수도 계약 건, 테일러 헨리를 왜 어떻게 살해했는지, 작년 겨울 슈메이커 마약 건, 그리고 그가 공직자로 일하면서 저지른 비리까지.” (P11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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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드 보몬트는 문손잡이를 힘껏 당기고 있었다.

원숭이 남자가 말했다. “후디니 납셨군.” 그는 오른손에 체중을 실어 네드 보몬트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네드 보몬트는 뒤로 밀려 벽에 부딪쳤다. 뒤통수가 벽에 부딪고는 몸이 충돌하더니 벽을 타고 바닥으로 미끄러져 내렸다.

카드를 들고서 테이블에 앉아 있던 볼이 불그레한 러스티는 별다른 감정 없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제프, 그러다 사람 잡겠어요.”

제프가 말했다. “이놈 말이야?” 그는 발끝으로 네드 보몬트를 가리키고는 허벅지를 툭 걷어찼다. “이놈은 안 죽어. 질기거든. 엄청 질긴 놈이라 이런 상황도 즐길걸.” 그는 몸을 숙이고는, 의식을 잃고 쓰러진 네드 보몬트의 멱살을 잡고서 무릎을 꿇렸다. “그렇지? 즐기는 거지?” 그는 한 손으로 네드 보몬트를 세워 두고 다른 한 손으로 얼굴을 가격했다.

바깥에서 문손잡이를 잡아 여는 소리가 났다.

제프가 큰 소리로 물었다. “누구야?”

섀드 오로리의 유쾌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야.”

제프는 문을 열 수 있을 만큼 네드 보몬트를 당기고는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오로리와 위스키가 들어왔다. 오로리는 바닥에 쓰러진 네드 보몬트와 제프, 러스티를 차례대로 쳐다보았다. 청회색 눈동자에 못마땅한 눈빛이 역력한 그는 러스티에게 물었다. “제프가 재미 삼아 놈을 두들긴 거야?”

러스티는 고개를 힘껏 가로저었다. “보몬트가 미친놈이에요. 정신이 들 때마다 일어나 헛짓거리를 한다니까요.”

“아직은 죽이면 안 돼. 할 얘기가 있는데, 정신 차리게 할 수 있겠어?” 오로리가 네드 보몬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P123-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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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매드빅은 이른 오후 시간에 도착했다. “맙소사, 살아서 이렇게 다시 만나 다행이야.” 그는 붕대를 감지 않은 네드 보몬트의 왼팔을 양손으로 덥석 잡았다.

네드 보몬트가 말했다, “난 괜찮아. 우선 할 일이 있어. 월터 아이번스를 잡아다가 브레이우드에 데려가서 총기 거래상들에게 낯짝을 보여 줘.”

“그 얘긴 이미 했잖아. 벌써 그렇게 조처했고.”

매드빅의 말에 네드 보몬트는 얼굴을 찌푸렸다. “내가 말했던가?”

“널 데려온 날 아침에, 응급 병원으로 데려왔는데 날 만날 때까지 치료를 거부했잖아. 날 보자마자 아이번스를 브레이우드로 데려가야 한다고 말하고는 기절해 버렸잖아.”

“전혀 기억 안 나. 녀석들은 잡았어?”

“아이번스 형제는 잡았어. 월터는 브레이우드 총기 거래상들이 얼굴을 알아보자 이실직고했고, 대배심이 제프 가드너와 신원 미상의 남자 둘을 기소했지만, 그걸로 섀드를 잡아 넣을 순 없을 거야. 가드너가 월터와 거래한 인간이고 그자는 섀드의 지시 없이는 꼼짝도 하지 않는 놈이라는 건 누구나 다 알지만, 그걸 입증하는 건 다른 문제지.”

“제프라면 그 원숭이 같은 놈? 아직 못 잡았어?”

“응, 네가 없어지고 나서 섀드가 숨긴 모양이야. 그놈들 소굴에 있었던 거지?”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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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은 캐묻는 듯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질문이 똑같지는 않고요?”

“똑같지는 않지만 결국 결론은 하나지.”

잭은 고개를 끄덕이며 담배 연기를 들이마셨다.

네드 보몬트가 말했다. “잘 알겠지만, 이 일은 아무도 모르게 진행해야 해.”

“물론이죠.” 잭이 담배를 빼냈다. “결론은 매드빅이 살인 사건과 관련이 있다, 이건가요?”

“응.” 네드 보몬트는 까무잡잡하고 윤기 있는 잭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어떤 관련도 없지.”

잭의 까무잡잡한 얼굴은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그는 일어서며 덧붙여 말했다. “관련이 있을 수 없죠.”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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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죽였는지 알아?」

네드 보몬트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빠는?」

네드 보몬트는 눈을 깜박였다. 「누가 죽였는지 폴은 아느냐고 묻는 거야?」

그녀는 한쪽 발을 힘껏 구르며 소리쳤다. 「아빠가 죽였느냐고 묻는 거야.」

네드 보몬트는 그녀의 입을 막고는 닫힌 병실 문을 노려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입 다물어.」

그녀는 한 걸음 물러서며 그의 손을 밀어냈고, 고집을 꺾지 않으며 재차 물었다. 「아빠가 그랬느냐니까!」

그는 화난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했다. 「멍청하게 굴고 싶다면 적어도 확성기는 들고 다니지 말아야지. 혼자 생각하는 거라면 어떤 멍청한 생각이라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겠지만, 이렇게 떠들어 대면 안 되지.」

그녀는 눈을 크게 떴고 눈빛은 어두웠다. 「아빠가 죽인 거구나.」 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단호하고 확신에 차 있었다. (P145~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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섀드 오로리는 네드 보몬트를 밀치고 지나가 바닥에 누운 매튜스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뒤에 서 있던 네드 보몬트는 테이블에 놓인 종이를 재빨리 알아차리고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제프가 들어왔고, 러스티가 옷도 제대로 걸치지 않은 채 따라 들어왔다.

오로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최종 선언을 하듯 양손을 조금 벌리며 말했다. “입천장을 쏴 자살했군, 사망했어.”

몸을 돌려 방에서 나가던 네드 보몬트는 복도에서 오팔과 마주쳤다.

“무슨 일이야?” 그녀는 겁에 질려 있었다.

“매튜스가 자살했어. 난 매튜스 부인에게 내려갈 테니 넌 옷 좀 챙겨 입어. 볼 거 없으니 들어가지 말고.” 그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긴 의자 옆 바닥에 누워 있는 엘로이즈의 희미한 형체가 보였다.

네드 보몬트는 재빨리 두어 걸음 그녀에게 다가가 멈추어 섰고, 냉정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그녀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앉아 맥박을 확인했다. 꺼져 가는 희미한 불빛에 비친 그녀를 최대한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의식이 있다는 징후가 전혀 없었다. 그는 매튜스의 종이를 주머니에서 꺼내어, 벽난로 옆에 무릎을 꿇고서 깜부기불에 비친 글을 읽었다. (P186-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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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소파에서 일어나 벽난로로 가서 남은 시가를 던져 넣었다. 자리로 되돌아와서는 긴 다리를 꼬고 편안하게 몸을 기댔다. “상대편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게 정치를 잘하는 거라 생각하니까요.” 그는 자기가 방금 말한 것에 아무 관심도 없는 듯한 어투와 표정이었고, 태도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보몬트 씨, 증거가 없다면, 혹은 증거로 보일 만한 게 없다면 사람들이 왜 그렇게 생각할까요?”

그는 흥미롭고 호기심이 생긴 듯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는 엄지손톱으로 콧수염을 가다듬었다. “물론 있죠. 당신도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요즘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익명의 편지 못 받았나요?”

그녀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고, 흥분한 탓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맞아요! 오늘 받았어요.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녀가 큰 소리로 외쳤다.

그는 가볍게 웃고는 괜찮다는 듯 손바닥을 펴서 들어 보였다. “그럴 필요 없어요. 내용도 다 엇비슷하고 이미 많이 봤거든요.”

그녀는 마지못해 천천히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가 말했다. “음, 그 편지들, 우리가 <업저버>를 싸움에서 밀어낼 때까지 그 신문에 지금껏 실린 기사들, 사람들 사이에 도는 소문들.” 그는 마른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 것들을 끌어모아 폴을 그럴듯하게 몰아붙인 거죠.”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가...... 폴이 정말 위험에 빠진 건가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고, 확신에 찬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거에서 지고 이 도시와 주 정부를 장악하지 못하게 되면, 아마 전기의자에 앉게 되겠죠.”

그녀는 몸을 떨었고 목소리도 떨렸다. “하지만 이기면 안전한 거죠?” (P198-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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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드 보몬트는 상체를 숙이고 책상 옆에 놓인 재떨이에 시가 재를 조심스럽게 털고는 무심하게 말했다. “형을 배신할 거야.”

“배신한다고?”

“왜 안 그러겠어? 형은 섀드가 밑바닥 놈들을 뒤편에서 빼내 가도록 내버려 뒀잖아. 존경할 만한 사람들과 더 괜찮은 사람들에 의지해서 선거에서 이기려 하고 있고, 사람들이 형을 점점 더 의심하고 있어. 형이 미는 후보들은 그럴듯한 연기를 하고 나서 형을 살인죄로 체포할 거야. 존경스러운 시민들은 법을 어기면 자신들이 보스로 인정하는 사람마저 감방에 보낼 만큼 용감한 공직자들을 보면서 기뻐하며 앞다퉈 투표소로 달려가겠지. 그 영웅들에게 표를 던져 4년 동안 이곳 행정을 맡길 거야. 밑에서 일하는 똘마니들을 탓할 수도 없어. 그자들은 그렇게 하면 자기 자리를 지킬 거고 아니면 일자리를 잃게 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매드빅은 턱을 만지던 손을 내렸다. “밑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충성할 거라 믿지 않는구나, 그렇지?”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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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드 보몬트는 시가를 재떨이에 넣었다. “이미 말했잖아. 테일러 헨리 사건을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형은 끝장날 거야. 그게 전부야. 그게 바로 유일하게 해결해야 할 일이야.”

매드빅은 더 이상 네드 보몬트를 쳐다보지 않고서 텅 빈 벽을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두툼한 입술은 꼭 다물었고 관자놀이에 땀이 맺혀 있었다. 목소리는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 나오는 듯 묵직했다. “그건 안 돼. 다른 방도를 생각해 봐.”

네드 보몬트는 숨을 거칠게 내쉬었고 눈빛은 더 짙어졌다. “다른 방법은 없어. 다른 방법을 쓰면 결국 섀드나 파 검사에게 걸려들 거고, 저들이 형을 끝장낼 거야.”

매드빅은 다소 쉰 목소리로 말했다. “네드, 분명히 탈출구가 있을 거다. 생각해 봐.”

네드 보몬트는 책상에서 내려와 매드빅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없다니까. 그 방법뿐이야. 좋든 싫든 그렇게 해야 돼. 형이 싫으면 내가 하고.”

매드빅은 고개를 힘껏 가로저었다. “아니, 그건 안 돼.”

네드 보몬트가 말했다. “아무리 형이라도 그 말은 듣지 않을 거야.”

그러자 매드빅은 네드 보몬트의 눈을 응시하고는 갈라지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내가 죽였어. 네드.”

네드 보몬트는 숨을 깊이 내쉬었다가 들이마셨다.

매드빅은 네드 보몬트의 어깨에 손을 얹고는 거칠고 희미한 음성으로 말했다.

“사고였어. 내가 집을 나오자 그가 뒤따라왔어. 나오는 길에 지팡이까지 챙기고서. 그렇잖아도 우리 둘 사이에 문제가 있었는데, 그가 뒤쫓아 와서는 지팡이로 날 내리치려고 했어. 그 다음에 어떻게 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에게서 지팡이를 빼앗아 머리를 내리쳤어. 힘껏 내리치진 않았어. 그랬을 리가 없지. 하지만 그가 뒤로 넘어지면서 머리가 보도에 부딪쳐 버렸어.” (P229-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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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도와주지 않을 건가요?” 그녀가 물었다.

“네.”

“왜요? 그와 싸웠잖아요.”

“난 폴의 말을 믿어요. 그런 설명으로 재판에서 벗어나기엔 이미 너무 늦었다는 것도 알아요. 폴과는 끝난 사이지만, 그에게 그럴 순 없어요. 폴을 그냥 내버려 둬요.” 그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당신이나 내가 나서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할 것 같으니.”

“안 돼요. 그냥 두지 않을 거고,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할 거예요.” 그녀는 호흡을 가다듬었고 눈빛은 어두워졌다. “그가 당신에게 거짓말했다는 증거를 찾아봐도 괜찮을 만큼 그를 믿나요?”

“그게 무슨 말이죠?”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가 거짓말을 하는지 아닌지 알려 줄 증거를 찾도록 날 도와주겠어요? 우리가 찾을 수 있는 확증이 어딘가에 분명히 있을 거예요. 당신이 그를 진정으로 믿는다면, 내가 증거를 찾도록 도와주는 걸 두려워하지 않겠죠.”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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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드 보몬트가 헨리 의원에게 말했다. “당신이 당신 아들을 죽였습니다.”

헨리 의원은 아무 표정 변화도 없었고,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재닛은 한동안 헨리 의원처럼 꼼짝도 하지 않더니, 공포에 사로잡힌 듯 바닥에 서서히 주저앉았다. 넘어지지는 않았다. 서서히 무릎을 굽혀 바닥에 주저앉았고, 오른쪽으로 몸을 기울여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을 들어 자기 아버지와 네드 보몬트를 올려다보았다.

두 사람 모두 그녀의 눈길을 피했다.

네드 보몬트가 헨리 의원에게 말했다. “당신이 폴을 죽이려 하는 건, 당신이 아들을 죽였다는 사실을 폴이 발설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죠. 당신은 아들을 죽이고도 모면할 수 있으리라는 걸 알아요. 구시대의 멋진 신사분이니까. 우리에게 애써 보여 주는 점잖은 모습을 세상 사람들에게도 가장하면 될 테지요.” 네드 보몬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헨리 의원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네드 보몬트는 다시 말을 이었다. “당신은 폴이 체포되면 더 이상 당신을 감싸 주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죠. 왜냐하면 폴은 재닛에게 오빠를 죽인 범인이라는 오해를 받고 싶지 않을 테니까요.”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정말이지 폴에게는 우스꽝스러운 농담 같은 상황이죠.” 그는 머리칼을 쓸어 넘기고 말을 이었다. “상황을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테일러는 폴이 재닛에게 키스했다는 말을 듣고 지팡이와 모자를 챙겨 그를 뒤쫓아 갔습니다. 하지만 테일러가 그렇게 했다는 건 그리 중요하지 않죠. 당신은 자신이 재선될 가능성에 어떤 영향이 미칠지 생각하고는--”

헨리 의원은 화를 내며 쉰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말도 안 돼! 내 딸 앞에서 감히 어떻게 그런 말을--”

네드 보몬트의 입가에 잔인한 웃음이 떠올랐다. “물론 말도 안 되죠. 아들을 죽인 지팡이를 집에 도로 가져온 것도, 모자를 쓰지 않고 뒤따라 나갔다가 아들의 모자를 쓰고 온 것도 말이 안 되죠. 그런 말도 안 되는 것 때문에 당신은 십자가 형을 받을 겁니다.”

헨리 의원은 경멸에 차 나지막이 말했다. “그럼 폴이 자백한 건 어떻게 되지?”

네드 보몬트는 소리 없이 씩 웃었다. “그에 관해선 할 말이 많죠. 어떻게 할지 말씀드리죠. 재닛, 폴에게 전화해서 당장 오라고 해요. 헨리 의원이 총을 들고 쏘러 갔다고 말하면 뭐라고 하는지 들어 보죠.”

재닛은 몸을 약간 움직였지만 일어서지는 않았다. 멍한 표정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럴 일은 없어.” 헨리 의원이 말했다.

네드 보몬트는 단호하게 몰아붙였다. “재닛, 폴에게 전화해요.” (P287-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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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의원은 여전히 손수건을 쥔 채 양손을 뒤로 하고 네드 보몬트를 쳐다보았다. 눈빛에는 적대감이 없었다. “그날 밤 난 테일러를 따라 나갔네. 아들이 성급한 짓을 저질러 폴과의 관계가 어긋나지 않길 바랐기 때문이지. 두 사람을 뒤 따라가서 차이나가에 이르렀는데, 폴이 테일러에게서 지팡이를 빼앗아 쥐고 있었네. 두 사람은, 아니 적어도 테일러는 흥분해서 말다툼을 하고 있었네. 난 폴에게 그만 가보라고, 아들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했네. 폴은 그러겠다면서 내게 지팡이를 건네 줬고, 테일러는 아들로서 애비에게 입에 담지 못할 말을 내뱉고는, 나를 밀치고 폴을 뒤쫓아 가려 했네. 그 후에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네. 아무튼 내가 내리쳤고, 아들은 뒤로 쓰러지면서 보도에 머리를 찧었어. 멀리 가지 않았던 폴이 되돌아왔고, 테일러가 그 자리에서 죽었다는 걸 알았지. 폴은 그곳을 당장 떠나고 우린 테일러의 죽음과 아무 상관도 없다고 잡아떼야 한다고 했어. 아무리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해도 다가오는 선거에 스캔들이 될 거라 했어. 나도 그의 말이 옳다고 판단해서 따랐고, 테일러의 모자를 집어서 내게 쓰고 가라고 한 것도 폴이었어. 난 모자도 쓰지 않은 채 집 밖으로 나왔으니까. 폴은 경찰 조사가 우리에게 좁혀 온다면 모자가 중요한 단서가 되어 수사가 중단될 거라 했어. 사실, 폴이 테일러를 죽였다는 소문이 돌자, 지난주에 그를 찾아가 사실대로 털어놓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물었네. 폴은 두려워하는 나를 보며 웃고는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며 날 안심시켰네.” 그는 뒤에 있던 손을 움직여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그렇게 된 거라네.” (P289-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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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택시를 타고 그의 집으로 갔다. 가는 내내 거의 말이 없다가 재닛이 불쑥 말문을 열었다. “꿈 이야기에서...... 당신에게 말하지 않은 게 있어요. 열쇠가 유리로 되어 있었는데, 문을 열자마자 산산조각 나버렸어요. 자물쇠가 뻣뻣해서 억지로 열어야 했거든요.”

네드 보몬트는 그녀를 슬쩍 보며 물었다. “그래서요?”

그녀는 몸을 떨었다. “우리가 문을 잠가 뱀을 가두지 못한 바람에 수많은 뱀들이 우리를 덮쳤고, 난 비명을 지르며 꿈에서 깼어요.”

“그냥 꿈일 뿐이니 잊어버려요. 당신은 내 송어를 물에 던져 버렸잖아요. 꿈에서 말입니다.” (P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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