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광화문에서 #70

예술적인 것

by 노용헌


정말이지 봄에는 일이 잘 안됩니다. 그건 왜일까요? 느끼기 때문입니다. 창작하는 자는 느껴도 된다고 생각하는 자는 풋내기입니다. 제대로 된 진정한 예술가라면, 누구나 얼치기의 잘못된 이러한 순진한 말을 듣고 입가에 미소를 띨 겁니다. 어쩌면 우울한 미소일지도 모르지만, 좌우간 미소를 띨 겁니다. 아시다시피 사람들은 중요한 것에 대해 말하는 법이 없고, 근본적으로 아무래도 상관없는 소재만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미학적 형상물을 만들어내려면 유희적이면서도 차분한 태도로, 우월한 입장에서 이러한 소재를 짜맞추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당신이 말하려는 내용에 너무 집착해서, 그로 인해 당신의 가슴이 너무 따뜻해진다면 당신은 완전히 실패하고 말 것이 분명합니다. 당신은 격하게 되고 감상적으로 되며, 당신의 손에서 무언가 서투른 것, 아이러니가 결여된 것, 양념이 덜 된 것, 지루하고 진부한 것이 나오게 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냉담한 반응만을 보일 거고, 결국 당신은 좌절하여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말 겁니다.... 세상 이치가 다 그런 거니까요, 리자베타. 감정 말입니다.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감정은 언제나 진부하고 쓸모없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의 망가진, 정교한 신경 조직의 발끈하기 쉬운 예리함과 차가운 황홀함만이 예술적인 것입니다. 우리 예술가들은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되거나 비인간적으로 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들은 인간적인 것과 이상하게도 멀리 떨어져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않는 게 필요합니다. 인간적인 것처럼 시늉하고, 인간적인 것을 가지고 놀며, 인간적인 것을 효과적이고도 운치 있게 나타내려면, 또한 그렇게 시도라도 하려면 말입니다. 문체와 형식 및 표현을 위한 재능이 있다는 것은 이미 인간적인 것에 대한 이러한 냉정한 관계를, 말하자면 인간적인 면이 부족하고 황폐하게 되었음을 암시합니다. 어쨌든 확실한 것은 건강하고 굳센 감정에는 운치가 없다는 점입니다. 예술가는 인간이 되어 느끼기 시작하자마자 그것으로 끝장입니다. (P150-151)


삶은 정신과 예술에 대한 영원한 반대 개념입니다. 삶은 완전한 위대함과 야만적인 아름다움의 환영(幻影)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와 같이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평범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렇습니다. 정상적이고 예의 바르며 사랑스러운 것이 우리가 동경하는 영역입니다. 그러한 것들이야말로 유혹하고 싶을 정도로 진부한 삶입니다. 이봐요, 리자베타, 세련되고 일반적인 길을 벗어난 것, 악마적인 것을 궁극적 목표로 삼고 그것에 아주 깊이 열광하는 자는 예술가가 되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아무런 악의가 없고 단순하며 생동하는 것에 대한 그리움을 알지 못하는 자, 약간의 우정과 헌신, 친근함과 인간적인 행복에 대한 그리움을 알지 못하는 자 역시 아직 예술가라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리자베타, 평범한 것이 주는 희열에 대한 은밀하고도 애타는 그리움을 알아야 하는 겁니다! (P161)


-토마스 만, 토니오 크뢰거-

20240827-ROH_4560.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광화문에서 #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