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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 #69

실타래

by 노용헌

우리의 영혼을 연결해주는 실타래는 수없이 많았네. 이 실타래가 모두 소진되면 다른 실타래가 나타나고 또 나타났지. 공기와 풀, 뒤늦게 핀 들꽃, 열매, 새들의 외침, 책의 글귀, 현의 선율, 심지어 침묵까지도 모두 우리 사랑의 전령들이었네. 감정을 더 깊숙이 숨겨야 할수록 그 감정은 더욱 애틋해졌고 가슴속에서 더욱 활활 불타올랐네..... 함께 산책을 나가게 되면 이름 없는 크나큰 행복의 시간이 이어졌지. 온 세상이 몽롱해졌고, 나란히 걷는 동안 우리의 영혼은 남몰래 하나로 연결되었고, 하늘과 구름, 산은 우리를 향해 미소를 지었고, 우리는 서로의 말소리를 들었고, 말을 하지 않을 때는 발소리를 들었으며, 그 소리를 들을 수 없거나 그냥 조용히 서 있을 때는 우리가 마음으로 하나임을 깨달았고, 서로를 소유하고 있다는 느낌이 온몸을 휘감았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 느낌은 한층 커져 있었네.


애정과 존중, 혹은 경멸과 혐오의 원인에 대한 판단은 항상 타인에게 맡길 수밖에 없네. 사람은 어떤 분야에서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아무리 잘 안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시시각각 변하는 의지를 아무리 잘 깨닫고 있더라도 자신의 품성은 타인에게 향해 있기에 스스로 그것을 알 수는 없고, 오직 자기 자신에게 향한 품성만 알 뿐이네. 두 방향은 무척 상이하네.


-아달베르트 슈티프터, 늦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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