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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 #72

혐오의 즐거움에 관하여

by 노용헌

혐오의 즐거움은 종교의 심장을 먹어들어가 원한과 광신으로 가득 채운다. 그것은 애국심을 구실로 다른 나라를 불바다로 만들고 역병을 퍼뜨리고 기아를 낳는다. 혐오의 즐거움이 덕목으로 남기는 것은 흠잡기 좋아하는 성향, 남들의 행동과 동기를 시기하고 꼬치꼬치 파고들 듯 감시하는 편협한 태도뿐이다. 서로 다른 교파와 교의, 신조는 사람들이 서로 공격할 과녁인 것처럼 논쟁하고 싸우고 물어 뜯을 구실만 주었을 뿐이지 않은가? 영국인이 애국심을 내세울 때 그 마음속에 서로 도움이 되고자 하는 우호적 감정과 성향이 있을까? 천만에, 그 애국심은 단지 프랑스든 어디든 현재 영국과 전쟁을 벌이는 나라의 주민들에 대한 혐오를 뜻할 뿐이다. 미덕에 대한 사랑이 우리 자신의 허물을 찾거나 고치겠다는 마음을 의미하는가? 아니다. 미덕에 대한 사랑은 타인의 인간적 결점들을 독살스럽게 관용하지 않음을 뜻하며 이것으로 자신이 고집스럽게 고수하는 악습을 벌충한다. 이 원리는 매우 보편적으로 적용된다. 악은 물론 선에도 적용된다. 우리는 사람의 나쁜 점을 혐오하는 동시에 뛰어나게 좋은 점에도 그에 못지않은 불만을 품는다. 타인의 잘못에 불쾌한 기분이 든다면 타인의 번영도 못 견딘다. 우리는 해를 입으면 복수하고 은혜를 입으면 배은망덕으로 갚는다. 아무리 강한 편견과 편애라도 이윽고 그렇게 일변한다. "쥐엄나무 열매처럼 감미로운 것도 머잖아 콜로신스처럼 쓴맛으로 변한다." 그리고 사랑도 우정도 그 자체의 불에 녹아 버린다. 우리는 오랜 친구를 싫어하고, 오래된 책을 싫어하고, 오래된 의견을 싫어한다. 그리고 결국 우리 자신을 싫어하기에 이른다.


-윌리엄 해즐릿, 혐오의 즐거움에 관하여, P4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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