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인간
마음의 방향 감각이 마비되는 것은 상자인간의 지병이다. 그때마다 지축이 움직이고, 뱃멀미 같은 구역질에 호되게 고생한다. 단지 어찌된 일인지, 낙오자라는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다. 상자를 꺼림칙하게 느낀 적조차 한 번도 없다. 상자는 내게 있어 고생 끝에 이르른 막다른 골목이 아니라, 오히려 별세계로 나가는 출구와 같다는 느낌마저 든다. 어디로 나가는 것인지는 모르나, 어쨌든 어딘가 별세계로 가는 출구.... 라고는 했지만, 조그만 엿보기용 창으로 밖을 살피며 그저 구역질을 견디고 있을 뿐이라면, 막다른 골목과도 별반 다를 게 없다. 허풍을 떠는 것은 관두자. 여기에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요컨대 아직 죽을 생각은 없다는 것이다.
-아베 코보, 상자 인간, P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