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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 #77

[양심이란 가시, 나일론 팬티 같은 윤리, 허수아비 같은 법률]

by 노용헌


”저도 형님을 존경하고 있어요. 고생하시는 형님을, 용케 이 고생을 참고 견디는 형님을, 그러지만 형님은 약한 사람이에요. 용기가 없는 거지요. 너무 양심이 강해요. 아니, 어쩌면 사람이 약하면 약한 만치, 그만치 반대로 양심이란 가시는 여물고 굳어지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양심이란 가시?“

”네 가시지요, 양심이란 손끝의 가시입니다. 빼어버리면 아무렇지도 않은데 공연히 그냥 두고 건드릴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는 거지요.

윤리요? 윤리, 그건 나일론 팬티 같은 것이죠. 입으나 마나 불알이 덜렁 비쳐 보이기는 매한가지죠. 관습이오? 그건 소녀의 머리 위에 매달린 리본이라고나 할까요? 있으면 예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없대서 뭐 별일도 없어요.

법률? 그건 마치 허수아비 같은 것입니다. 허수아비, 덜 굳은 바가지에다 되는 대로 눈과 코를 그리고 수염만 크게 그린 허수아비, 누더기를 걸치고 팔을 쩍 벌리고 있는 허수아비, 참새들을 향해서는 그것이 제법 공갈이 되지요. 그러나 까마귀쯤만 돼도 벌써 무서워하지 않아요, 아니, 무서워하기는커녕 그놈의 상투 끝에 턱 올라앉아서 썩은 흙을 쑤시던 더러운 주둥이를 쓱쓱 문질러도 별일 없거든요. 흥“


-이범선, 오발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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