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빠귀
지빠귀 한 마리가 아카시아 나무에서 울기 시작한다. 내게는 그 무엇보다, 새 울음소리가 과거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지빠귀는 방금 먼지를 뒤집어쓴 것 같은 모습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리고 찌르레기는, 빛이 나는 검은색 깃털 덕분에 이제 막 연못에서 솟아난 것처럼 보이지만, 부리를 여는 순간 정반대가 된다. 찌르레기 울음 소리는 건조하다. 지빠귀는 살아남은 이들처럼 노래한다. 헤엄을 쳐서 물을 건너고, 안전한 밤의 이쪽 편에 도달한 이, 그런 다음 나무 위로 날아올라 등에 묻은 물기를 털어내며 "나 여기 있어"라고 외치는 이처럼.
-존 버거, 결혼식 가는 길, P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