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후드> 2018년
영화 <로빈 훗>(1973), <로빈 훗의 모험>(1938), <로빈 훗>(1983), <로빈 훗>(1991), <로빈 후드>(2022), <로빈 훗>(1991), 리들리 스콧 감독의 <로빈 후드>(2010), <의적 로빈 후드>(1991), <로빈 후드:리벨리언>(2018)
지금까지의 로빈후드의 이야기는 잡다한 민요나 전설들을 섞어 놓은 것에 불과했으며, 대부분이 아동용으로만 요약, 출판되었다.
이렇게 입으로만 전해지던 로빈후드의 전설을 가장 충실하게 만든 사람은 오늘날, 미국 삽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하워드 파일이다.
하워드 파일은 다듬어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일정한 형식을 갖추어 썼으며 기존에 흩어져 있던 많은 에피소드들을 흥미있게 서로 연결시켰다. 그 속에는 왕과 귀족들의 탐욕스러운 생활 속에서 백성을 구하는 용기와 지혜가 담겨져 있다. (P5)
옛날 옛적 헨리 2세가 통치하던 잉글랜드의 이야기다. 노팅엄 근처 셔우드의 숲속에 로빈 후드라는 유명한 수배자가 살고 있었다. 로빈 후드만큼 잿빛 거위 털을 단 화살을 잘 쏘는 사람이 없었으며 그의 부하가 되어 숲속을 활보하던 백사십 명의 장정들 중에서도 그를 능가할 자가 없었다.
그들은 아무 부족함과 걱정거리 없이 셔우드 숲 깊은 곳에서 즐겁게 살고 있었다. 활쏘기와 봉술 겨루기로 매일을 보내며 왕의 소유인 숲속의 사슴고기와 자신들이 직접 만든 맥주를 먹고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들은 로빈 후드를 필두로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범법자와 수배자들로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살고 있었지만 주변 마을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왜냐하면 도움이 필요할 때에는 언제나 로빈을 찾아가기만 하면 빈손으로 돌아오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P13)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로빈은 뒤로 돌아서는 동시에 화살을 먹여 활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네놈은 나를 가지고 놀았다. 더 이상 용서할 수 없어.”
로빈의 외침과 동시에 화살이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으윽 하는 비명이 숲속의 정적을 깨면서 삼림 감독관 한 명이 꼬꾸라졌다. 회색 거위 깃털이 달린 화살이 피로 붉게 물들며 흔들리고 있었다.
삼림 감독관들이 정신을 차려보니 로빈의 모습은 숲 깊숙이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로빈의 활솜씨에 겁에 질린 삼림 감독관들은 아무도 뒤를 쫓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죽은 사람을 들춰 업고 노팅엄으로 돌아갔다.
로빈은 숲속을 달리고 있었다. 사람을 죽인 로빈의 마음은 세상 모든 것이 슬픔과 어둠으로 둘러싸인 것 같았다. 로빈은 이제 두 번 다시 아름다운 록슬리의 친구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로빈은 수배자가 됐기 때문이다. 사람을 죽였을 뿐만 아니라 왕의 사슴을 죽인 로빈의 목에는 200파운드의 현상금이 걸렸다. 로빈을 붙잡아 왕의 재판장에 데려오는 사람은 누구라도 200파운드의 상금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노팅엄 주 장관은 반드시 로빈을 잡으리라고 결심했다. 왜냐하면 200파운드의 현상금이 절실하게 필요했으며 로빈의 화살을 맞은 삼림 감독관이 주 장관의 친척이었기 때문이다. (P16-17)
그런데 주 장관의 계획이란 게 과연 뭘까?
“그래. 만약 로빈이란 놈을 노팅엄 가까이까지 유인해 낼 수 있다면 놈을 두 번 다시 놓치지 않고 붙잡을 수 있어.”라고 주 장관은 생각했다.
갑자기 주 장관의 뇌리를 섬광처럼 스친 생각은 활쏘기 대회를 열어 엄청난 부상을 내걸면 로빈 후드가 제 발로 시합에 참가하러 올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가 “맞아!”하고 무릎을 탁 치며 소리 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주 장관은 무사히 노팅엄에 돌아오자마자 사방팔방으로 전령을 보냈다. 전령은 이 마을 저 마을 구석구석까지 활쏘기 대회가 있다는 것을 알렸다. 그리고 활을 쏠 줄만 안다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으며 부상으로 순금 화살이 걸려 있다는 것을 알렸다.
로빈 후드는 이 소식을 링컨 마을에서 들었다. 그리고 셔우드 숲으로 황급히 돌아가 일당들을 불러 놓고 이렇게 말했다.
“모두 잘 들어! 우리의 친애하는 노팅엄 주 장관께서 활쏘기 대회를 개최하고 부상으로 멋진 황금 화살을 준다고 한다. 나는 사랑스런 주 장관님의 호의를 무시할 수 없어 기꺼이 시합에 출전하려고 하는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때?”
그러자 젊은 돈커스터의 데이비드가 소리쳤다.
“대장님! 잠시 제 말을 좀 들어주십시오. 이 이야기는 ‘블루 보어’ 여관의 주인 이돔에게서 들은 이야기고 이돔은 주 장관의 전령들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주 장관이란 놈은 대장을 잡기 위한 덫으로 이 시합을 개최하려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절대로 가시면 안 됩니다. 주 장관이란 놈이 대장을 노리고 있는 이상 이 숲에 숨어 있는 것이 제일 안전합니다.”
“맞아, 자네는 영리한 젊은이네. 하지만 지혜로운 숲의 주인이 될 때까지는 그 귀는 열어두고, 그 입은 닫는 게 좋을 거야. 노팅엄 주 장관이 무법자 로빈 후드와 백사십 명의 용사들을 농락하고 있는데도 참을 수 있는가? 데이비드, 오히려 자네 덕분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황금 화살을 내 손에 넣고자 하는 의욕이 더욱 솟구치는 것 같아. 꾀에는 꾀로 대하지 않으면 안 되네. 자네들은 수사복장을 하거나 농부, 땜장이, 아니면 거지 복장을 하도록 해! 하지만 만에 하나의 경우를 생각해서 활과 칼을 가지고 가자! 그리고 나는 황금 화살을 위해 활시위를 당길 테니, 반드시 황금 화살을 차지하고 우리 모두를 위해 아름답고 푸른 숲의 나뭇가지에 그 화살을 걸도록 하자.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좋아, 그렇게 합시다!” 모두가 큰 소리로 외쳤다. (P51-52)
“저 친구는 돈 때문에 땅을 팔아먹은 후레자식인 것 같습니다. 제멋대로 사는 한량 같습니다.”
그러자 주 장관은 그 남자가 로빈 후드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로빈을 불러 자신의 오른 쪽에 앉혔다. 주 장관은 돈 많은 한량이란 말에 솔깃했던 것이다. 어쩌면 이 한량의 돈으로 자신의 주머니 속을 채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흥분이 될 정도였다. 그래서 로빈과 함께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즐겼다.
식사준비가 다 되자 주 장관은 로빈에게 식사 전 감사의 기도를 하라고 명했다. 그리고 로빈이 일어서 기도를 시작했다.
“신이시여,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식탁위의 술과 고기에도 축복을 내리소서. 또한 우리 푸줏간 주인들이 모두 저처럼 정직한 사람이 되게 해 주소서.”
로빈의 기도를 들은 모든 사람들이 껄껄대며 웃었다. 그 중에서도 주 장관이 가장 큰소리로 웃었다. 왜냐하면 “이 놈은 정말 후레자식인 것 같군. 놈이 지갑을 열어 빈털터리로 만들어 줘야겠군.”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큰 소리로 로빈에게 말을 걸었다.
“자네는 정말 유쾌한 친구군. 나는 자네가 정말 맘에 드네.” 라고 말하여 로빈의 어깨를 툭툭 두들겨 줬다.
그러자 로빈이 큰 소리로 웃으면서 “저는 주 장관님의 유쾌한 젊은이들을 좋아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저번에 벌어진 활쏘기 대회에서 로빈 후드라는 젊은이를 붙잡지 않고 주 장관님 손으로 직접 황금 화살을 부상으로 줄 정도니까요.”
이 말을 들은 주 장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셨고 푸줏간 주인들도 표정이 굳은 채 서로 눈만 깜박이고 있었다. 하지만 로빈만은 유쾌하게 웃으며 “자, 어서 술이나 한 잔 합시다! 오늘 술값은 전부 내가 책임지겠소. 푸줏간 주인이든 주 장관님이든 단돈 한 푼도 낼 필요가 없소.”라고 소리쳤다. (P84-85)
주 장관은 연단에서 내려와 사로로 가서 리틀 존을 주시했다. 그리고 본적이 없는 얼굴이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떠보기로 했다. “아무래도 자네를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그럴지도 모르죠. 저는 주 장관님을 자주 뵈었으니까요.” 리틀 존이 태연하게 말했다.
리틀 본은 이렇게 말하면서 주 장관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때문에 주 장관은 리틀 존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털어버렸다.
“그대는 정말 용감하군. 듣자하니 오늘 링컨의 에릭을 때려눕혀 노팅엄의 강인함을 널리 알렸다고 하더군. 그래, 자네 이름은 무엇인가?” 주 장관이 말했다.
“레이놀드 그린리프라고 합니다. 주 장관님.”
“그래, 레이놀드 그린리프. 자네는 내가 알고 있는 한 로빈 후드라는 도둑놈 다음가는 뛰어난 실력의 궁사네. 어떤가. 내 휘하에 들어오지 않겠는가? 보수는 넉넉히 주겠네. 1년에 옷 세 벌과 마음대로 먹고, 마음대로 마실 수 있네. 그리고 성 미카엘 축일에는 40마르크를 주겠네.”
“저는 현재 아무도 모시고 있지 않은데다 주 장관님의 부하가 된다는 건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던 영광입니다.”라고 리틀 존이 말했다.
왜냐하면 리틀 존은 주 장관의 부하가 되면 뭔가 재미있는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말을 들은 주 장관은 뛸 듯이 기뻐하며 살찐 수송아지 부상에 더해 최상급 맥주 한 통을 덤으로 선물했다.
“그럼, 저는 주 장관님의 부하가 된 것을 자축하기 위해 살찐 송아지와 맥주를 여기 모인 마을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기쁨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리틀 존이 말했다. (P102-103)
이렇게 억지로 주 장관을 나무 그늘에 앉히고 나서 부하 한 명에게 술을 가져오라 명한 뒤 정중하게 주 장관에게 권했다. 하지만 주 장관은 그 술잔에 손을 댈 수 없었다. 왜냐하면 술이 담긴 은주전자도, 그리고 은쟁반도 전부 주 장관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주 장관님, 왜 그러시죠? 저희의 새 은그릇들이 맘에 드시지 않나요? 오늘 운이 좋게도 그것들이 들어있는 자루가 생겼지 뭡니까.”
로빈은 이렇게 말해면서 리틀 존과 요리사가 가져온 자루를 열어보였다. 주 장관은 안절부절 했지만 이를 꽉 다물고 땅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로빈은 한동안 그 모습을 날카로운 눈초리로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주 장관님, 전에 당신이 셔우드 숲에 왔던 건 한 한량을 등쳐먹으려고 했기 때문이었지만 결국 당신이 당하고 말았죠. 하지만 오늘은 전혀 나쁜 맘을 먹고 온 것도 아니고 누굴 속였다는 말도 듣지 못했소. 우리는 가난한 백성들이 온갖 갈취와 착취당하는 것을 가엽게 생각하고 그들을 돕기 위해 욕심 많은 교회와 귀족들로부터 십의일조를 세금으로 거두고 있소. 따라서 오늘은 당신에게서 한 푼도 받을 생각이 없소. 내가 당신 부하들 있는 곳까지 안내할 테니 따라오시오.”
이렇게 해서 로빈은 어깨에 자루를 메고 완전히 넋이 나간 주 장관의 앞장을 서서 성큼성큼 걸어갔다. 얼마 후 두 사람은 주 장관과 함께 사냥을 나선 사람들 가까이에 도착했다. 로빈은 은그릇이 들어있는 자루를 주 장관에게 건네며 말했다.
“여기 당신의 은그릇들을 돌려주겠소. 하지만 앞으로 부하를 쓸 때는 각별히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로빈은 말이 끝나자마자 휙 돌아서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P121-122)
“맞아, 내 생각도 그렀네. 하늘에 맹세하건데 저런 귀족 놈들이 바다를 건너와 조상 대대로 이 땅에 살아온 우리 색슨족을 무시하는 걸 보면 참을 수 없어. 내 비록 셔우드 숲에서 제일 높은 나무 꼭대기에 거꾸로 매달리게 된다고 할지라도 귀족 놈들이 강렬한 재산을 전부 되돌려놓고 말거야!” 로빈 후드가 말했다.
“대장, 좀 진정하세요. 내가 보기에 저 놈의 머리카락 색으로 봐서는 노르만족 같아보이지는 않아요. 어쩌면 선량한 친구일지도 모르잖아요.” 리틀 존이 차분하게 말했다.
“아니, 내 말이 틀림없어. 색슨족치고 신발이 더러워질까봐 저렇게 쩔쩔매는 사람은 없다고. 내가 나가서 놈의 정체를 좀 알아봐야겠어. 내 말이 틀리면 저 녀석은 가던 길을 계속 갈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아주 발가벗겨버리고 말거야. 자네들은 내가 저 놈을 어떻게 요리하는지 두고 보라고.” 이렇게 말하고 로빈 후드는 너도밤나무 그늘에서 나와 길 한가운데 나와 허리춤에 양손을 얹은 채 떡 버티고 섰다.
그 남자는 로빈 후드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장미꽃 냄새를 맡거나 저 멀리 풍경을 구경하면서 천천히 다가왔다.
“어이! 거기 멈춰 서라!” 로빈 후드가 소리쳤다. (P142)
젊은 감웰은 대답했다. “늙은 자일스 크룩레그가 죽은 뒤 새로 들어온 집사는 불손하기 이를 데 없는 놈이었는데 어째서 아버님이 그런 자를 집사로 들였는지 저로서는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그야말로 신의 장난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죠. 삼촌도 잘 알고 계시다시피 주변 사람들에게 관대하신 아버님께 놈은 불손하기 이를 데 없는 말투로 대하는 걸 저는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불손한 집사 놈의 제삿날이 돼 버렸지만..... 제가 옆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놈은 아버님에게 욕을 퍼붓고 있었죠. 저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녀석의 귀싸대기를 몽둥이로 때려줬더니 그 자리에서 즉사해 버렸습니다. 목뼈가 완전히 으스러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모님께서 삼촌을 찾아가 법망을 피하라고 해서 이렇게 여행을 떠나게 된 겁니다.”
“잘 알았다. 네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그런데 사람을 죽이고 법망을 피해 다니는 녀석이 장미꽃 향기나 맡으면서 왕궁의 고상한 귀부인들처럼 대로를 활보하는 것은 좀 이상하지 않나?” 로빈이 물었다.
“그건,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옛말에도 서두를수록 일을 그르지치 쉽다고 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저 스스로도 제어가 되지 않는 엄청난 힘을 조금이나마 억제할 수 있으니까요. 조금 전에도 삼촌은 저를 세 대나 가격했고 저는 단 한 대로 삼촌을 쓰러뜨려버렸잖아요. 그것도 저의 무시무시한 힘 때문 아니겠어요?‘ 감웰이 대답했다.
“이제 그 이야기는 그만하자. 감웰, 나는 너를 만나서 정말 기쁘다. 그리고 너는 우리 일당에게 커다란 명예와 신뢰를 더해 주게 될 것이다. 하지만 먼저 네 이름을 바꿔야겠구나. 그러면 너에게 내려진 체포영장이 아무런 위력도 발휘할 수 없을 거다. 그럼, 네가 지금 입고 있는 화려한 옷에서 착안해 너를 빨간 옷의 윌이라 부르기로 하자.” 로빈이 말했다. (P148-149)
“기사양반, 잠깐 기다리시오. 당신에게 잠시 할 말이 있는데 시간 좀 내주시지요.”
“벌건 대낮에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는 그대는 누군가?” 기사가 말했다.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군. 어떤 사람은 나를 인정 많은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무정하다고도 하지요.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나를 정직한 사람이라고 부르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나를 모자란다고도 하지요. 사람들이란 한 남자를 두고 여러 가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같소. 하지만 그대의 두 눈에 내가 어떻게 비치는지 모르지만 나는 로빈 후드라고 합니다.”
“뭐라, 로빈 후드?” 기사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네는 정말 웃기는 말을 하는군. 자네 말대로 두 눈을 크게 뜨고 그대를 바라보는 것은 내 두 눈도 찬서이네. 어쨌거나 나는 그대에 대해 여러 가지 소문을 들었는데 대부분 나쁜 소문뿐이었네. 그런데 내게 무슨 용건인가?”
“만약 당신이 나와 함께 셔우드 숲에 가준다면 세상에 둘도 없는 진수성찬을 대접하리다.” (P229)
노팅엄 주 장관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원장님. 리처드 경의 땅이 원장님 손에 들어가는 건 확실한가요?”
“나는 놈이 빚을 갚고 싶어도 돈이 없어 갚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소.” 수도원장 빈센트는 벌컥벌컥 술을 들이켜고 입술을 핥으면서 말했다. 그러자 법학자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군요. 그 자가 돈을 갚으러 오지 않는다면 그의 땅은 몰수당하게 되겠군요. 하지만 리처드 경의 서명을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땅을 빼앗기가 쉽지 않을 테니까요.”
“그렇소. 그건 당신 말이 맞소. 하지만 이 기사는 아주 가난한데다가 금화 200파운드만 손에 쥐어주면 기꺼이 토지 양도 서에 서명을 하게 될 거요.” 수도원장이 말했다.
그러자 꺽다리 집사가 소리를 질렀다.
“불행한 기사를 이런 식으로 벼랑 끝으로 밀어버리다니 너무 부끄러운 일입니다. 더비 주에서 가장 유서 깊은 가문을 단돈 500파운드라는 헐값에 뜯어내려 하다니 통탄할 일입니다.”
“뭐, 뭐가 어쩌고 어째?” 수도원장은 떨리는 분노로 목소리까지 떨면서 소리쳤다. 그의 눈은 불같이 이글거리고 두 뺨은 분노로 붉게 달아올랐다. “이놈, 누구에게 함부로 입을 놀리는 거야? 뜨거운 맛을 봐야 정신을 차리겠어!” (P248-249)
한가로운 이들을 보고 있던 로빈이 입을 열었다. “나라면 이런 화창한 봄날에 잉글랜드 왕이 되어 왕실에 머물기 보다는 이 숲속을 거닐고 있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네. 그 어떤 왕실이 이 아름다운 숲보다 멋질 것이고, 아무리 산해진미를 다 먹는다고 한들 살찐 사슴 고기와 거품이 가득한 맥주와 비하겠는가? 옛말에 ‘불편한 마음으로 먹는 진수성찬보다 마음 편히 빵조각을 먹는 게 낫다”고 했지.”
새론 꼰 활줄에 밀랍을 먹이던 리틀 존이 맞장구를 쳤다.
“바로 이게 사람 사는 맛이죠. 대장은 봄이 좋다고 하지만 나는 겨울도 나름대로 재미있다고 생각해요. 지난 겨울에도 대장과 내가 블루 보어 여관에서 며칠 재미있게 놀았잖아요. 윌 스튜틀리 망나니 턱 신부와 대장이 두 거지와 떠돌이 사제와 함께 보낸 날 말이죠.” (P269-270)
“여보게, 친구. 자네에게 한 가지 더 말하고 싶은 게 있네. 나는 자네의 직업이 너무나 맘에 드는군. 나도 한 번 거지 생활을 맛보고 싶네.” 로빈이 한 쪽 팔꿈치를 무릎에 대고 말했다.
“자네가 나 같은 생활이 좋다고 하는 건 그리 놀랄 일은 아니지. 하지만 ‘해보고 싶다.’와 ‘한다.’는 건 엄연히 다른 거야. 게다가 아무리 거지 생활이 쉬워보여도 다 요령이 있는 거야. 그걸 터득하는데도 족히 3년은 걸리지. 그리고 자네는 이 길로 나서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아.” 거지가 말했다.
“그야 그럴지도 모르지. 성 가퍼 스완톨드님도 제화업자는 빵 굽는 게 서툴고, 제빵업자는 구두 만드는 게 서툴다고 하셨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나는 거지 생활을 맛보고 싶네. 그러기 위해서는 자네 옷이 꼭 필요하네.” 로빈이 말했다.
“이보게, 친구. 설령 자네가 거지의 수호신인 성 윈튼님과 똑같은 복장을 했다고 하더라도 결코 거지가 될 수는 없네. 어설프게 거지 흉내를 내다가는 첫 번째 만난 나그네에게 두들겨 맞고 묵사발이 될 걸세.” 거지가 말했다. (P296)
물건이 품귀현상을 일으켜 가격이 뛰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비싸게 팔아 눈먼 돈을 쥐어 짜내는 것이다. 때문에 그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은 그를 증오하고 있었다.
앞에서 오고 있는 나그네가 누군지 알게 된 로빈은 중얼거렸다. “오오, 이런 흡혈귀 같은 놈. 오늘 잘 걸렸다. 하지만 아주 교활한 놈이니 만만한 상대는 아니야. 어쨌거나 해보는 데까지 해보자!”
드디어 매점상은 로빈이 앉아 있는 곳까지 천천히 다가왔다. 그러자 누더기에 온통 주머니가 달린 옷을 입은 로빈이 어슬렁거리며 앞으로 걸어가 말고삐를 잡으며 멈추라고 말했다.
“네놈은 뭐냐! 감히 왕의 대로변에서 나그네의 길을 막어서다니.” 곡물 매점상은 메마른 목소리로 못 마땅하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보시다시피 거지요. 빵조각이라도 사먹게 한 푼만 도와줍쇼.” 로빈이 말했다.
“썩 꺼져라! 너 같은 불한당은 대로변을 활보하기보다 감방에 들어가 있거나 교수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어야 해.” 곡물 매점상은 호통을 쳤다.
“나리,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다 똑같은 사람 아닙니까. 우리 둘 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물건을 빼앗고, 둘 다 열심히 일하지 않고 살잖아요. 그러니 우리는 형제와 마찬가지죠. 단지 당신은 부자고 나는 가난하다는 거만 빼고요. 그러니 매정하게 그러지 마시고 한 푼만 보태줍쇼.”
“흥, 주둥아리만 살아가지고! 내 주머니에는 땡전 한 닢 없다. 로빈 후드가 나타나서 내 주머니를 다 뒤진다고 해도 먼지만 날뿐이야. 게다가 도둑놈들이 우글거리는 셔우드 숲 근처를 지나면서 돈을 가지고 다닐 만큼 미련하지 않다고.” (P307-308)
“그대는 지금 그 어떤 때보다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소. 로빈, 그대가 가고자 하는 길마다 주 장관의 부하들이 이곳저곳 길목을 지키고 엄히 검문을 하고 있어 그 누구도 통과할 수 없소. 나도 지금 막 검문을 통과해 왔으니 틀림없는 일이오. 그대가 앞으로 나가려는 곳에는 주 장관의 부하들이 지키고 있고 그대의 뒤에는 왕의 기마부대가 버티고 서 있소. 그리고 그대는 그 어디로도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소. 이미 그들이 그대가 변장하고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으며 그저 그대가 그물 안에 걸려들기만 기다리고 있소. 내 성도 그대의 것과 마찬가지만 그것도 지금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소. 왜냐하면 지금으로서 나는 왕과 주 장관의 병사들과 노팅엄에서 싸우길 바라지 않기 때문이오.”
이렇게 말하고 리처드 경은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로빈은 뒤에서 들려오는 사냥개소리에 빠져나갈 구멍까지 막혀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는 여우처럼 완전히 기운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잠시 후 리처드 경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대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단 한 가지밖에 없소. 로빈.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것밖에 없소. 런던으로 돌아가서 엘레오노르 왕비에게 의지하는 것이오. 지금 당장 내 성으로 함께 갑시다. 내 부하들의 복장을 하고 내 부하들 틈에 껴서 나와 함께 런던으로 갑시다. 그리고 왕비와 만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보겠소. 그대의 유일한 희망은 셔우드 숲으로 돌아가는 것이오. 그곳에서는 그 누구도 감히 그대에게 접근할 수 없으니까. 그리고 이것밖에는 달리 그대가 셔우드 숲으로 돌아갈 길이 없소.”
그래서 로빈은 리의 리처드 경의 조언을 따르기로 했다. 왜냐하면 로빈은 리처드 경의 충고가 현명하다는 것과 그것이 자신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P363-364)
리처드 경은 고개를 들고 이야기를 했다.
“폐하의 진노를 살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실은 이 로빈 후드라는 자는 제 생명과 명예의 은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의 신변에 위기가 닥쳤을 때 모르는 척 하겠습니까?”
리처드 경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왕의 동행 한 명이 앞으로 나서서 모자를 벗고 그의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는 젊은 리의 헨리 경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리처드 왕이시여, 여기 폐하의 충성스런 종이 무릎을 꿇어앉았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 폐하를 죽음에서 구해드린 종이 무릎을 꿇고 아룁니다 신은 아버님의 뜻에 따라 이 명예로운 수배자 로빈 후드를 위해 은신처를 제공할 것입니다. 설령 그것이 폐하의 진노를 사는 한이 있더라도 아버님의 명예와 안전은 제 목숨과 바꿔서라도 지키지 않은면 안 됩니다.”
리처드 왕은 두 기사를 한동안 번갈아가며 바라보더니 천천히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리처드 경이여, 그대는 자신의 의지를 굳게 지켰고, 그대의 아들 또한 아비를 쏙 빼닮았구려. 헨리 경의 말대로 그대는 내 목숨을 구해 준적이 있소. 설령 그대가 이보다 더 한 잘못을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대를 용서할 수밖에 없소. 자, 이런 즐거운 날 더 이상 이 일로 문제 삼고 싶지 않소. 모두 일어서시오.” (P408-409)
이렇게 로빈 후드는 요크 주의 커크레스 수녀원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그는 그에게 악행을 저지른 모든 사람들에게 자비로운 마음을 갖고 죽어갔다. 왜냐하면 그의 일생은 악자에게는 애처로운 마음을, 약자에게는 동정을 베풀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의 부하들은 뿔뿔이 흩어졌지만 더 이상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너그러운 새 주 장관이 노팅엄에 부임했기 때문이다. 부하들은 모두 평온하고 조용한 삶을 살면서 로빈 후드의 이야기를 자자손손 전해 주었다.
커크레스의 어느 돌담에 다음과 같은 고대 영문자가 적혀 있었다.
여기, 이 작은 돌 아래에
헌팅턴 백작 로버트 잠들다.
그에게 견줄만한 궁사가 없었으며
사람들은 그를 로빈 후드라 불렀다.
그와 그의 동료 같은 인물들을
잉글랜드는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
-1247년 12월 24일 (P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