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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 베른의 <해저2만리>

영화 <해저2만리> 1954년

by 노용헌

영화 <해저2만리>(1907), <해저2만리>(1916), <해저2만리>(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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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경우에 행해진 관찰 결과를 평균하면 --그 물체의 길이를 60미터로 과소평가하거나, 길이 5킬로미터에 너비 1.5킬로미터라고 과대평가한 것은 빼고-- 이 놀랄 만한 괴물은 이제까지 어류학자가 인정한 최대의 동물보다 훨씬 크다고 단언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괴물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하지만 그 괴물은 실제로 존재했고,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었다. 환상적인 것을 추구하는 인간 심리의 경향을 고려하면, 이 초자연적인 괴물의 출현에 전 세계가 들끓은 것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제는 그것을 인간의 상상력이 지어낸 가공의 존재로 물리쳐버릴 수는 없게 되었다.

1866년 7월 20일 콜카타-버마 해운회사 소속의 ‘가버너 허긴슨’호가 오스트레일리아 동쪽 8킬로미터 해상에서 움직이고 있는 이 물체를 만났기 때문이다. 이 물체를 처음 보았을 때 베이커 선장은 알려지지 않은 암초를 만난 줄 알았다. 그래서 그 정확한 위치를 측정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그 불가해한 물체에서 두 개의 물기둥이 휘파람 소리를 내면서 공중으로 50미터나 솟구쳐 올랐다. 따라서 그것이 간헐천을 내뿜는 암초가 아니라면, ‘가버너 허긴슨’로는 공기와 증기가 섞인 물기둥을 뿜어내는 미지의 수생 포유류를 만난 것이 분명했다.

같은 해 7월 23일, 서인도-태평양 해운회사 소속의 ‘크리스토발 콜론’호도 태평양에서 그와 비슷한 현상을 관찰했다. 그렇다면 이 신비한 고래는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가버너 허긴슨’호와 ‘크리스토발 콜론’호는 700해리(海里) 이상 떨어진 해도상의 두 지점에서 사흘 간격으로 그 괴물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P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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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뉴욕에 도착했을 때는 괴물 문제가 한창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어 있었다. 자격도 없는 몇몇 사람은 괴물이 떠다니는 섬이거나 좀처럼 포착하기 어려운 암초라는 가설을 내놓았지만, 이 가설은 이제 완전히 허물어졌다. 암초의 배 속에 엔진이 들어 있지 않다면, 어떻게 그처럼 놀라운 속도로 돌아다닐 수 있단 말인가?

떠다니는 선체, 즉 난파선의 거대한 잔해라는 의견도 배제되었다. 이유는 역시 그 물체가 움직이는 속도였다.

이렇게 되면 남은 가능성은 두 가지였고, 그래서 사람들은 완전히 다른 견해를 각각 지지하는 두 파로 갈라졌다. 한쪽은 엄청난 힘을 가진 괴물이라는 설을 지지했고, 또 한쪽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잠수함’이라고 주장했다.

이 두 번째 가설은 나름대로 근거가 있다고 인정받을 수도 있었지만, 구세계와 신세계에서 행해진 조사를 통해 배제되었다. 그런 기계장치를 개인이 제작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개인이 그런 잠수함을 언제 어디서 만들 수 있겠는가? 그리고 어떻게 그 사실을 비밀로 유지할 수 있겠는가?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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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양함은 원정에 대비하여 무장을 갖추었고 무시무시한 사냥 도구까지 갖추었지만, 그 배를 어디로 보내야 할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날로 초조감이 높아지고 있었다. 그런데 6월 3일, 괴물이 출현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샌프란시스코와 상하이를 잇는 태평양 항로를 항해하던 한 기선이 열흘 전에 북태평양에서 또다시 그 괴물을 보았다는 것이다.

이 소식은 엄청난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패러것 함장은 24시간 안에 출항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식량이 배에 실렸다. 선창에는 석탄이 넘쳐흘렀다. 승무원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소집 명령에 응했다. 이제는 보일러에 불을 지피고 닻을 올리기만 하면 되었다! 반나절의 지체도 용납되지 않았다! 어쨌든 패러것 함장은 한시라도 빨리 출항하고 싶어서 몸이 달았다. (P24-25)


패러것 함장은 그가 지휘하는 순양함에 걸맞게 훌륭한 해군장교였다. 함장과 배는 일심동체였다. 그는 배의 영혼 자체였다. 그는 문제의 고래에 대해 털끝만 한 의심도 품지 않았으며, 그 고래가 과연 존재하느냐 아니냐를 놓고 부하들이 토론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선량한 여자들이 리바이어던의 존재를 믿듯이, 이성이 아니라 신앙으로 그 고래의 존재를 믿고 있었다. 괴물은 분명히 존재했고, 그는 그 괴물을 바다에서 없애버리겠다고 맹세했다. 그는 자신의 섬을 황폐하게 만드는 뱀과 싸우기 위해 용맹하게 나아가는, 로도스 기사단의 기사 디외도네 드 고조 같았다. 패러것 함장이 일각고래를 죽이든가 아니면 일각고래가 패러것 함장을 죽이든가, 둘 중 하나였다. 타협은 결코 있을 수 없었다.

장교들도 함장과 같은 의견이었다. 그들이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면서 일각고래와 만날 가능성을 계산하고 토론하고 논쟁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자진해서 망루 꼭대기로 올라가 망을 보는 사람까지 있었다. 어느 때 같으면 그런 일은 끔찍하게 힘들고 싫은 일로 생각했을 것이다. 해가 날마다 하늘에 반원을 그리는 동안, 배의 식구(食具)에는 안달이 나서 한곳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도 없고 갑판이 너무 뜨거운 탓에 걸어다닐 수도 없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에이브러햄 링컨’ 호는 고래가 출현한 태평양 해역에 아직 발도 들여놓지 못한 상태였다. (P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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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브러행 링컨‘ 호에서 우현 쪽으로 300미터쯤 떨어진 수면이 밑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착각일 리가 없었다. 그것은 결코 평범한 인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괴물은 몇 길 물속에서 강렬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여러 선장의 보고서에 묘사된 것과 똑같았다. 이 환상적인 빛은 엄청나게 강력한 발광체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빛을 받아 환하게 빛나는 수면은 거대하고 길쭉한 타원형을 이루었고, 그 중심에는 참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한 빛이 응축되어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지만,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빛은 차츰 희미해졌다.

“야광충의 군집일 뿐이야!” 장교 하나가 소리쳤다.

“천만에.” 나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평범한 돌맛조개나 살파(원색동물의 일종)는 저렇게 강력한 빛을 내지 않아요. 저 빛은 본질적으로 전기적 성질을 띠고 있습니다. 저길 보세요! 움직이고 있습니다. 앞으로, 뒤로....... 우리 쪽으로 곧장 다가오고 있어요!”

배에서 외침소리가 일어났다.

“조용!” 패러것 함장이 소리쳤다. “키를 바람머리로! 후진!” (P50)


그리하여 순양함의 보트에 구조되는 것이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기회이고, 따라서 되도록 오랫동안 보트를 기다릴 수 있도록 조처를 취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나는 둘 다 기진맥진하지 않도록 힘을 나누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하기로 했다. 한 사람이 다리를 쭉 뻗은 채 물 위에 드러누우면, 다른 사람이 헤엄을 치면서 그 사람을 밀고 간다. 예인선 역할을 10분씩 번갈아 맡으면 몇 시간은 헤엄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동이 틀 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가능성은 희박했지만, 희망은 사람의 가슴속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는 법이다. 게다가 우리는 둘이었다. 나는 아예 모든 희망을 버리고 가장 깊은 절망 속에 빠지려고 애썼지만, 끝내 희망을 버릴 수가 없었다. 있을 성싶지 않은 일이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순양함과 고래의 충돌은 밤 열한 시경에 일어났다. 그래서 나는 해가 뜰때까지 여덟 시간만 헤엄을 치면 된다고 생각했다. 둘이 교대로 헤엄을 친다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다행히 바다가 잔잔해서 우리를 별로 지치게 하지 않았다. 나는 이따금 짙은 어둠 속을 응시하며, 그 너머를 꿰뚫어보려고 애썼다. 어둠을 깨뜨리는 것은 우리의 움직임 때문에 생긴 인광뿐이었다. 나는 내 손 위에서 부서지는 빛나는 잔물결을 바라보았다.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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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환상적이고 신화적인 존재를 발견했다 해도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물주라면 어떤 놀라운 생물도 만들어낼 수 있을 테고, 그것은 누구나 쉽게 믿을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손이 만든 신비로운 물건을 갑자기 발견하면, 도저히 믿기지 않는 기적적인 물건을 제 눈으로 보게 되면,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혼란에 빠뜨리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의심할 여지는 전혀 없었다. 우리는 잠수함의 등 위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판단할 수 있는 한, 그 잠수함은 거대한 강철 물고기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네드의 의견이었고, 콩세유와 나도 거기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장치를 움직이려면 기계가 있어야 하고, 기계를 작동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말했다.

“물론 그래야겠죠.” 캐나다인이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벌써 세 시간 동안 이 떠다니는 섬 위에 있었는데, 그동안 이 안에 사람이 있는 기미는 전혀 없었어요.”

“배가 움직이지는 않던가?”

“파도에 흔들리기는 했지만, 움직이지는 않았습니다.” (P67)


콩세유와 네드는 깔개 위에 드러누워 깊이 잠들어버렸다.

나는 쏟아지는 잠에 그들만큼 호락호락 굴복하지 않았다. 너무나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서 우글거렸고, 답할 수 없는 수많은 의문이 마음을 짓눌렀고, 너무나 많은 영상이 눈앞에 어른거려 눈을 완전히 감을 수가 없었다.

우리가 있는 곳은 어디일까? 우리를 데려가고 있는 이 야릇한 힘은 무엇일까? 나는 잠수함이 가장 깊은 심해로 내려가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아니, 느꼈다고 생각했다. 잠이 들지도 않았는데 무서운 악몽이 나를 괴롭혔다. 나는 신비로운 피난처에 살고 있는 미지의 동물들의 세계를 언뜻 보았다. 이 잠수함도 그 동물들 가운데 하나였다. 잠수함도 그들처럼 살아서 움직였고, 그들처럼 만만찮은 존재였다. 이어서 내 머리가 조금 차분해지고, 상상은 졸음 속으로 사라져갔다. 나는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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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로낙스 박사. 나는 당신이 말하는 의미의 문명인은 아닙니다! 나는 사회와 인연을 끊었어요. 그 이유를 평가할 권리는 오직 나만이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사회의 규칙에 따르지 않습니다. 내 앞에서 다시는 사회의 규칙을 들먹이지 마시오!”

선장은 분명하게 또박또박 말했다. 눈에서 분노와 경멸의 불꽃이 번득였다.

나는 이 남자의 무서운 과거를 언뜻 본 것 같았다. 그는 인간의 법 테두리를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어떤 것에도 속박되지 않은 독립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는 가장 엄밀한 의미에서의 자유인이었다. 그는 해상에서도 모든 공격을 좌절시킬 수 있는데, 어느 누가 감히 바다 밑바닥까지 그를 추적하려 하겠는가? 어떤 배가 그의 잠수함과 충돌하고도 멀쩡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두꺼운 철갑도 그 강력한 층각 장비의 공격을 버텨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에게 왜 그런 짓을 하는지 해명해보라고 요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를 심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신 --그가 신을 믿는다면-- 과 양심 --그가 양심을 갖고 있다면-- 뿐이었다.

이런 생각이 빠르게 내 마음을 스치고 지나가는 동안, 선장은 자신의 껍데기 속에 틀어박힌 것처럼 말이 없었다. 나는 호기심과 두려움이 뒤섞인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오이디푸스가 스핑크스를 바라볼 때의 눈빛이 꼭 그러했을 것이다.

오랜 침묵이 흐른 뒤, 선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나는 망설였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관대한 대우를 요구할 권리가 있고, 그 자연스러운 관대함이 내 이익과도 일치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운명이 당신들을 여기로 보냈으니, 이 배에 남아도 좋습니다. 여러분은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는데, 그 조건을 받아들이겠다고 약속만 하면 됩니다.” (P9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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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인간 사회와 관계를 끊었다 해도, 인간다운 감정까지 다 포기했다고는 믿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당신 배에 구조된 조난자이고,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을 겁니다. 과학에 대한 흥미가 자유에 대한 욕망까지도 억누를 수 있다면, 우리의 만남은 나한테 큰 보상을 약속해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나는 협정이 맺어졌다는 표시로 선장이 악수를 청할 줄 알았다. 그러나 선장은 손을 내밀지 않았다. 이럴 때는 당연히 악수를 청해야 하는 것 아닌가.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나는 그 불가사의한 인물이 물러가려는 기색을 보이는 순간 얼른 말했다.

“뭡니까, 박사?”

“당신을 뭐라고 불러야 합니까?”

“그냥 네모 선장이라고 부르세요. 나한테 당신과 당신 친구들은 단지 ‘노틸러스’ 호의 승객일 뿐입니다.” (P96)


“네모 선장, 당신이 어떤 인물인지 알아내려고 애쓸 필요도 없이. 당신을 예술가로 인정해도 될까요?”

“기껏해야 아마추어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도 한때는 인간의 손으로 창조된 뛰어난 작품들을 즐겨 모았지요. 나는 탐욕스러운 수집가였고, 지칠 줄 모르고 돌아다니면서 가치 있는 물건을 몇 개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이 예술품들은 이제 내게는 죽은 거나 다름없는 이 세상의 마지막 추억입니다. 내 눈에는 현대 예술가들도 고대인과 마찬가지예요. 그들은 2천 살일 수도 있고 3천 살일 수도 있습니다. 내 마음속에서 그들은 모두 한데 뒤섞여 있습니다. 대가들은 나이와 시대를 초월하여 영원한 젊음을 누리지요.”

“그럼 저 작곡가들은?”

나는 판벽널 하나를 가득 채우고 있는 유명한 악기 제작자의 오르간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오르간 위에는 베버와 로시니, 모차르트, 베토벤, 하이든, 마이어베어, 에롤, 바그너, 오베르, 구노 같은 작곡가들의 악보가 흩어져 있었다.

“저 음악가들은 오르페우스와 동시대인입니다. 죽은 사람의 기억 속에서는 시대의 차이가 지워져 버리니까요. 나는 죽은 사람입니다. 지하 2미터 무덤 속에서 쉬고 있는 당신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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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 선장은 침실 벽에 걸린 기구들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아로낙스 박사. 저건 ‘노틸러스’의 항해에 필요한 기구들입니다. 나는 객실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항상 저것을 보고, 바다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내 위치와 정확한 방향을 알 수 있지요. 저 기구들 가운데 일부는 당신도 이미 아는 것들입니다. 온도계는 ‘노틸러스’호 내부의 온도를 알려주고, 기압계는 대기의 압력을 측정하여 날씨 변화를 예보해주고, 습도계는 공기 중에 있는 습기의 양을 알려줍니다. 폭퐁우 예보기로는 혼합액의 분리 상태를 통해 폭풍우가 다가오고 있음을 미리 알 수 있지요. 나침반은 항로를 나타내고, 육분의는 태양의 고도로 현재의 위도를 알려주고, 크로노미터는 현재의 경도를 계산하는 데 쓰입니다. 그리고 끝으로 주야간 겸용 망원경은 ‘노틸러스’ 호가 수면에 떠 있을 때 수평선을 살피는 데 사용하지요.”

“이것들은 일반적으로 쓰이는 항해 장비니까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기구들은 ‘노틸러스’ 호에만 특별히 설치되어 있는 것 같군요. 문자반에 바늘이 움직이고 있는 저 기구는 압력계가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건 바깥의 물과 연결되어 있어서 수압을 알려줍니다. 그걸 보면 내 배가 현재 어느 정도의 깊이에 있는지를 알 수 있지요.” (P110-111)


“나트륨이라고요?”

“그렇습니다. 나트륨을 수은과 섞으면 분젠 전지의 아연을 대신할 수 있는 아말감이 생깁니다. 수은은 절대로 소모되지 않습니다. 나트륨만 소모되지요. 나트륨은 바다가 얼마든지 공급해줍니다. 나트륨 전지는 가장 많은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인정받아야 합니다. 나트륨 전지의 동력은 아연 전지의 두 배니까요.”

“현재 상황에서 나트륨이 가장 적당하다는 것은 충분히 알겠습니다. 나트륨은 바다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으니까요. 거기까지는 좋습니다. 하지만 나트륨 전지를 만들려면 우선 나트륨을 만들어야 합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바닷물에서 나트륨을 추출해야 합니다. 그건 어떻게 하십니까? 물론 전지를 쓸 수도 있겠지만, 내가 잘못 생각한 게 아니라면 전기 장치가 필요로 하는 나트륨은 바닷물에서 추출되는 양보다 훨씬 많을 겁니다. 따라서 생산량보다 소비량이 훨씬 많을 텐데요.”

“그래서 나는 나트륨을 추출할 때 전지를 사용하지 않고, 석탄을 태울 때 나오는 열을 이용합니다.”

“석탄이라고요.”

“아니면 해탄(海炭)이라고 해둘까요?”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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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갑자기 객실 양쪽에서 빛이 나타났다. 타원형 구멍을 통해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이제 전류가 바깥의 물을 환히 비추었다. 크리스털 유리 두 장이 우리와 바다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처음에는 나도 약한 유리창이 깨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몸을 떨었지만, 튼튼한 구리 창틀에 보강된 유리는 거의 무한한 강도를 갖고 있었다.

‘노틸러스’ 호에서 반경 2킬로미터 안에 있는 바다가 환히 바라보였다. 얼마나 멋진 광경인가! 어떤 말로 그것을 묘사할 수 있을까? 그 투명한 바닷물에 빛이 비쳤을 때의 효과, 빛이 바다의 위쪽과 아래쪽으로 차츰 사라져가는 그 광경을 제대로 묘사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바다가 투명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바닷물이 민물보다 더 맑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바닷물 속을 떠다니는 광물질과 유기물질이 실제로 바닷물을 더욱 투명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서인도 제도의 일부 해역은 물이 놀랄 만큼 맑아서 150미터 깊이의 모랫바닥을 환히 들여다볼 수 있다. 햇빛은 수심 300미터 깊이까지 뚫고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노틸러스’ 호가 항해하고 있는 환경에서는 물속에서 나온 빛이 바다의 심장 속으로 뚫고 들어갔다. 그것은 빛을 받은 물이 아니라, 물 같은 빛이었다. (P133-134)


“루케롤-드네루즈 장비를 쓰면 됩니다. 당신의 동포인 두 프랑스인이 개발한 건데, 내가 목적에 맞게 개량했지요. 그걸 사용하면 몸의 어떤 장기도 전혀 괴롭히지 않고 새로운 생리적 조건을 시험해볼 수 있을 겁니다. 이 장비는 50기압의 압력으로 공기를 채워 넣은 두꺼운 철판 탱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탱크를 배낭처럼 가죽 끈으로 등에 고정시키는 겁니다. 탱크 윗부분에는 일방통행 방식으로 공기가 보관되어, 정상적인 압력으로만 공기가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루케롤 장비에서는 이 공기통에서 사용자의 입과 코를 둘러싼 일종의 마스크까지 고무관 두 개가 연결되어 있는데, 하나는 숨 쉴 공기를 받아들이는 데 쓰이고 또 하나는 숨 시고 난 공기를 내보내는 데 쓰입니다. 둘 다 호흡할 때 필요에 따라 서로 닫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해저의 수압은 상당히 강하기 때문에, 나는 잠수복 같은 구리 헬멧으로 머리를 완전히 둘러싸야 했습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 쓰는 고무관은 이 헬멧으로 이어져 있지요.”

“알겠습니다. 네모 선장. 하지만 탱크에 넣은 공기는 순식간에 없어져버릴 텐데요. 공기 속에 산소가 15퍼센트 아래로 내려가면 숨을 쉴 수 없습니다.” (P147-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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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선장이 다시 말을 이었다. “바다는 실제로 순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조물주는 바다가 끊임없이 움직이도록 바다에 열과 소금과 작은 동물을 늘려주었습니다. 조물주가 해야 할 일은 그것뿐이었지요. 열은 밀도의 차이를 낳고, 밀도의 차이는 조류를 일으킵니다. 극지방에서는 증발이 거의 일어나지 않지만 열대지방에서는 증발이 아주 빨리 일어나기 때문에, 열대와 극지방의 물은 끊임없이 교환됩니다. 나는 수면의 물이 바닥으로 내려왔다가 다시 위로 올라가는 것도 발견할 수 있었어요. 그것이야말로 바다의 호흡입니다. 나는 수면에서 덥혀진 소금물 분자가 깊은 곳으로 내려가고, 영하 2도에서 최대 밀도에 도달하고, 온도가 더 내려가면 가벼워져서 다시 위로 올라가는 것을 관찰했습니다. 북극과 남극에 가면 이 현상의 결과를 직접 보게 될 테고, 선견지명을 가진 이 자연의 법칙을 통해 얼음이 수면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이유도 이해하게 될 겁니다.”

네모 선장이 말하는 동안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남극이라고! 이 대담한 사람은 우리를 거기에 데려갈 수 있다는 건가?’ (P173-174)


“그래, 하지만 이 대추고둥은 시곗바늘 방향으로 돌지 않고 왼쪽으로 돌고 있어.”

“설마! 그럴 리가요.”

“정말이야. 이건 좌회전 조개야!”

“좌회전 조개요?” 콩세유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누르면서 내 말을 되풀이했다.

“이 나선을 봐!”

“아아, 정말......” 콩세유는 떨리는 손으로 귀중한 조개를 받아들면서 말했다. “이런 흥분을 느껴보기는 난생 처음입니다.”

흥분할 이유는 충분했다. 박물학자들이 지적했듯이, 우회전이 자연의 법칙이다. 행성과 그 위성들은 오른쪽으로 움직이고 회전한다. 인간은 왼손보다 오른손을 더 많이 쓰고, 따라서 인간의 도구와 기계, 계단, 자물쇠, 시계 태엽은 모두 오른쪽으로 사용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자연은 조개의 나선에서도 대체로 이 법칙을 따랐다. 조개는 모두 우회전이고, 예외는 거의 없다. 우연히 나선이 좌회전인 조개가 있다면, 수집가는 그 조개와 같은 무게의 황금을 주고서라도 그것을 손에 넣으려든다.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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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을 비추고 있던 전등이 갑자기 꺼졌다. 우리는 캄캄한 어둠 속에 갇혀 버렸다. 네드 랜드는 곧 잠이 들었다. 콩세유도 깊은 잠에 빠져들어 나를 놀라게 했다. 갑자기 쏟아지는 잠을 피하지 못하고 굴복해버린 느낌이었다. 그 이유를 궁금해 하고 있을 때, 내 머리도 몽롱한 마비 상태로 빠져드는 것을 느꼈다. 눈을 뜨고 있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저절로 눈이 감겼다. 불길한 환상이 나를 사로잡았다. 우리가 먹은 음식에 수면제가 섞여 있었던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감방에 가두는 것만으로는 네모 선장의 활동을 우리에게 감출 수 없었다. 그래서 선장은 우리를 잠재울 필요가 있었다!

해치를 닫는 소리가 들렸다. 배를 좌우로 흔들고 있던 파도가 멈추었다. ‘노틸러스’ 호가 해수면을 떠났을까? 움직임이 없는 심해로 다시 내려갔을까?

나는 잠을 쫓으려고 애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호흡이 점점 약해졌다. 나는 끔찍한 추위를 느꼈다. 팔다리가 얼어붙고, 마비된 것처럼 무거워졌다. 눈꺼풀이 납물을 바른 것처럼 무거웠다. 나는 내려온 눈꺼풀을 다시 들어올릴 수가 없었다. 악몽으로 가득한 잠이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이윽고 환상이 사라졌다. 나는 기진맥진한 채 무의식 속으로 빠져들었다. (P243)


우연히도 나는 이 강장동물 중에서 가장 귀중한 산호를 발견했다. 그 산호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와 북아프리카의 지중해 연안에서 채집된 산호와 비슷한 성질을 갖고 있었다. 그 화려한 색깔은 상인들이 최고급품에 붙여준 ‘피의 꽃’이나 ‘피의 거품’이라는 시적 이름에 잘 어울렸다. 산호는 1킬로그램에 5백 프랑이나 나가는데, 이곳은 수심이 깊어서 수많은 산호 수집가에게 돌어가고도 남을 만큼 많은 산호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다. 이 귀중한 산호는 대개 다른 폴립 모체와 복잡하게 얽혀서 조밀하고 옹골찬 덩어리를 이루고 있었다. 이 덩어리를 ‘마초타’라고 부르는데, 나는 거기에서 훌륭한 분홍산호 표본을 몇 개 발견했다.

하지만 덤불처럼 키 작은 산호는 점점 작아지고, 나뭇가지 모양의 산호는 점점 커졌다. 진짜 돌처럼 딱딱해진 나무와 환상적인 건축물의 긴 통로가 우리 앞에 펼쳐졌다. 네모 선장은 그 어두운 통로로 들어갔다. 통로는 완만하게 기울어져 우리를 수심 100미터 깊이로 데려갔다. 램프의 유도 코일에서 나오는 불빛은 이따금 이 천연 아치의 도톨도톨한 표면에 달라붙거나 샹들리에처럼 늘어진 부분에 달라붙어 마술적인 효과를 냈다. 불빛을 받은 샹들리에에서는 수많은 불꽃이 반짝거렸다. 산호 덤불 사이에서 나는 산호 못지않게 진기한 다른 폴립을 발견했다. 관절로 이어진 가지를 가진 벌집산호와 무지개산호, 초록색과 빨간색의 산호 다발이었다. 석회질 껍질로 덮인 해초는 박물학자들이 오랫동안 토론을 벌인 끝에 식물로 분류한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 사상가가 말했듯이, ‘이 생물은 생명이 돌의 잠에서 몽롱하게 깨어나, 아직 그 거칠거칠한 출발점에서 완전히 단절되지 않은 상태’일 것이다.

두 시간 동안 걸은 뒤, 우리는 마침내 300미터 깊이에 이르렀다. 수심 300미터는 산호가 형성될 수 있는 한계점이다. (P249-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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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 선장이 다가왔다. 나는 일어나서 그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내가 예고한 대로 간밤에 죽었군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지금 그 산호 묘지에서 동료들 옆에 누워 있군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고인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무덤을 팠고, 이제는 산호층이 고인을 무덤 속에 영원히 밀봉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선장이 움켜쥔 주먹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는 울음을 참으려고 애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잠시 후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곳은 우리의 묘지입니다. 수면보다 수백 미터 밑에 있는 평화로운 묘지지요.”

“적어도 고인들은 평화롭게 잠들어 있습니다. 상어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그렇습니다.” 네모 선장이 엄숙하게 받았다. “상어와 인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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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점을 고려해보건대, 네모 선장이라는 사람을 미워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존경해야 할 것인가? 그는 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를 영원히 떠나기 전에, 그토록 거창하게 시작된 이 해저 세계 일주 여행을 끝내고 싶다. 바다 밑바닥에 완전한 형태로 잔뜩 뿌려져 있는 경이로운 것들을 연구하고 싶다! 이 만족할 줄 모르는 지식욕 때문에 목숨을 잃게 된다 해도, 아직껏 아무도 보지 못한 것들을 마저 다 보고 싶다! 지금까지 내가 발견한 게 무엇인가? 아무것도, 아니 거의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여태 태평양을 6000해리밖에 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노틸러스’ 호가 사람이 살고 있는 해안에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탎출할 기회가 왔을 때 미지의 세계를 알고 싶은 열정 때문에 동료들을 희생시키는 것은 몹쓸 짓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는 결국 동료들을 따라가야 할 것이다. 어쩌면 그들을 앞장서서 이끌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그런 기회가 올까? 자유를 빼앗긴 인간은 탈출할 기회를 갈망하지만, 지식을 탐구하는 과학자는 그런 기회가 오는 것을 두려워한다. (P258-259)


물은 해면의 모든 세포에 생명을 가져다준 뒤에는 끈적거리는 반유동체 물질로 뒤덮인 섬유질의 수축 작용으로 끊임없이 세포에서 밀려나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이 끈적거리는 물질은 해면이 죽으면 사라지고, 암모니아를 방출하면서 부패한다. 그러고 나면 단단하거나 젤라틴 같은 섬유 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이 섬유가 불그스름한 색깔을 띤 가정용 스펀지가 되어, 탄력성과 침투성과 내구성에 따라 여러 가지 용도로 쓰인다.

이런 해면들이 바위나 조가비나 수생식물 줄기에까지 달라붙어 있었다. 아무리 작은 틈새도 해면으로 가득 차 있었고, 옆으로 뻗어 나가는 것이 있는가 하면 산호처럼 똑바로 서 있거나 아래로 늘어져 있는 것도 있었다. 나는 해면을 채취하는 데에는 그물로 걷어올리는 방법과 손으로 일일이 모으는 방법이 있다고 콩세유에게 말해주었다. 손으로 채취하려면 잠수부를 동원해야 하지만, 해면이 손상되지 않아서 훨씬 비싼 값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더 바람직하다. (P308-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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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그런데 증기는 선원들의 관측 기술까지 죽여버린 것 같아요. 당신은 이 바다를 특별히 연구한 모양인데, 홍해라는 이름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아십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만, 14세기 연대기 작가의 의견을 듣고 싶으세요?”

“물론입니다.”

“그 사람은 이스라엘 민족이 홍해를 건넌 뒤 모세의 명령으로 다시 닫힌 홍해에 파라오가 빠져 죽었을 때 홍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주장했답니다.

기적을 알리는 전조로

바다는 붉게 물들었고

그리하여 그들은 그 바다를

붉은 바다(홍해)라고 부르기로 했다.“

“시인 같은 설명이군요. 하지만 나를 납득시키기에는 부족합니다. 나는 당신의 개인적인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선장.”

“그럼 말씀드리죠. 내가 보기에 홍해라는 이름은 히브리어의 ‘에돔’이라는 낱말을 번역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고대인들은 홍해의 독특한 물빛 때문에 그런 이름을 붙였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는 맑은 물밖에 못 보았는데요. 특별한 색깔 따위는 전혀 없었어요.”

“확실히 그렇지만, 만 끝이 가까워지면 진기한 광경을 보게 될 겁니다. 나는 알투르 만이 피바다처럼 완전히 새빨개진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빛깔이 바닷말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맞습니다. 트리코데스마라는 구역질나게 생긴 작은 식물이 끈적끈적한 자줏빛 물질을 만들어냅니다. 이 해조류는 1평방밀리미터에 4만 개나 들어 갈 만큼 작답니다. 알투르 만에 가면 관찰할 수 있을 겁니다.” (P31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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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게, 네드. 솔직히 대답해주게. 이 배에 싫증이 났나? 자네를 네모 선장의 손에 내맡긴 운명을 원망하고 있나?”

캐나다인은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팔짱을 끼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여행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해저 여행을 한 데에는 만족합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만족하려면 여행이 끝나야 합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끝날 거야.”

“언제, 어디서요?”

“어디서 끝날지는 나도 몰라.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네. 아니, 바다가 더 이상 가르쳐줄 게 없을 때 우리 여행도 끝날 거라고 생각하네. 이 세상에서는 시작된 일은 반드시 끝나게 마련이니까.”

“주인님 말씀이 옳아.” 콩세유가 맞장구쳤다. “지구의 모든 바다를 다 돌아다니고 나면, 네모 선장은 아마 우리 세 사람을 풀어줄 거야.”

“풀어준다고!” 네드가 소리쳤다. “풀어주기는커녕, 우리가 떠나는 것을 막으려 하지 않을까?”

“과장하지 말게. 네드.” 내가 말했다. “네모 선장을 두려워할 필요는 전혀 없네. 하지만 나는 콩세유의 생각에도 동의할 수 없어. 우리는 ‘노틸러스’ 호의 비밀을 다 알아버렸어, 그러니 선장이 순순히 우리에게 자유를 돌려주어 ‘노틸러스’ 호의 비밀이 전 세계에 알려지게 할 가능성은 거의 없네.”

“그럼 우리에게 남은 희망은 뭡니까?” 캐나다인이 물었다.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상황, 그리고 이용해야 하는 상황이 일어나기를 기대해야지. 그런 상황은 여섯 달 뒤에 올 수도 있고, 내일 당장 올 수도 있네.” (P331)


네모 선장은 우리의 탈출을 어떻게 생각할까. 얼마나 걱정하고 괴로워할까. 우리의 계획이 도중에 탄로 나거나 실패로 끝나면 선장은 어떻게 나올까! 나는 그에게 불평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사실 나는 그렇게 관대하고 친절한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그를 버리고 떠난다고 해서 나를 배은망덕하다고 비난할 수도 없을 터였다. 우리는 그에게 어떤 약속도 하지 않았다. 선장이 우리를 영원히 길동무로 묶어놓기 위해 의지한 것은 우리의 약속이 아니라 우리의 처지였다. 게다가 선장은 우리를 영원히 포로로 잡아둘 권리가 있다고 내놓고 주장했기 때문에, 우리가 탈출을 시도하는 것은 정당한 노릇이었다.

산토리니 섬을 방문한 뒤로는 선장을 보지 못했다. 떠나기 전에 선장을 만날 기회가 있을까? 그를 만나고 싶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만나기가 두렵기도 했다. 내 방과 붙어 있는 선장의 침실에서 그가 걸어다니는 발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하고 귀를 기울였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선장의 침실은 아마 비어 있을 것이다. (P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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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나는 선장의 말을 이해했다. 이곳은 1702년 10월 22일의 전쟁터였다. 바로 이곳에 스페인 정부의 금은보화를 실은 범선들이 가라앉은 것이다. 네모 선장은 필요할 때마가 이곳에 와서 수백만 프랑어치의 재물을 ‘노틸러스’ 호에 실었다. 아메리카 대륙은 그에게, 오직 그에게만 귀금속을 넘겨 주었다. 네모 선장은 코르테스가 정복한 멕시코와 그밖의 나라에서 빼앗은 보물의 유일한 직접 상속인이었다!

“바다가 이렇게 많은 재물을 갖고 있다는 걸 알고 계셨습니까?” 선장이 웃으면서 물었다.

“바다 속에 잠겨 있는 은이 200만 톤으로 추정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럴 겁니다. 하지만 그것을 물 밖으로 꺼내는 비용이 이익보다 훨씬 클 겁니다. 하지만 나는 이곳만이 아니라 내 해저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수천 척의 난파선에서 다른 사람들이 잃어버린 것을 줍기만 하면 됩니다. 내가 왜 백만장자인지, 이제 아시겠습니까?”

“예, 하지만 당신이 비고 만에서 보물을 인양하는 것은 경쟁사에 선수를 쳤을 뿐이에요.”

“경쟁사라뇨?”

“어떤 회사가 스페인 정부로부터 침몰선을 수색할 권리를 얻었거든요. 출자자들은 막대한 이익의 가능성을 보고 투자했지요. 이 보물의 값어치는 5억 프랑으로 추산되고 있으니까요.”

“5억 프랑이라고요?” 네모 선장이 대꾸했다. “전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P365-366)


여기가 어디지? 도대체 어디일까?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알고 싶었다. 말을 하고 싶었다. 내 머리를 가두고 있는 헬멧을 벗어 던지고 싶었다.

하지만 네모 선장이 다가와 몸짓으로 나를 말렸다. 그러고는 하얀 돌멩이 하나를 집어들고, 검은 현무암 바위로 다가가 낱말 하나를 적었다.

아틀란티스

섬광이 내 머리를 스쳐갔다! 아틀란티스! 테오폼포스의 고대 메로피스, 플라톤의 아틀란티스! 오리게네스, 포르피리오스, 얌블리코스, 당빌, 말트브룅, 홈볼트는 모두 아틀란티스 대륙의 소멸을 전설로 분류하여 그 존재를 부인했지만, 포시도니오스, 플리니우스,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 테르툴리아누스, 셰러, 투른포르, 뷔퐁, 다브자크는 대륙의 존재를 인정했다. 그런데 그 대륙이 지금 내 눈앞에 있었다! 그 대륙을 덮친 재앙의 흔적을 아직도 생생히 간직한 채! 따라서 이곳은 유럽과 아시아와 리비아의 바깥, 헤라클레스의 기둥 너머에 존재했다가 물속으로 가라앉은 땅, 고대 그리스와 최초의 전쟁을 치른 강력한 아틀란티스인의 땅이었다! (P376-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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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틸러스’ 호가 지금 가고 있는 해역은 그런 곳이었다. 그곳은 바닷말과 녹조류와 갈조류가 카펫처럼 촘촘히 깔려 있는 진짜 초원이었다. 해초가 너무 빽빽해서 배의 이물이 뚫고 나가지 못할 정도였다. 네모 선장은 풀이 스크루에 엉겨 붙은 것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노틸러스’ 호는 수면에서 몇 미터 아래 위치를 유지했다.

사르가소라는 이름은 ‘모자반’을 뜻하는 스페인어 ‘사르가소’에서 유래했다. 물에 떠 있는 모자반이라는 해초가 이 거대한 침대의 주요 성분이다. <해양의 자연지리학>을 쓴 매튜 모리에 따르면, 그런 수생식물이 대서양의 이 평온한 해역에 모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이유는 누구나 알고 있는 실험으로 증명된다. 코르크처럼 물에 뜨는 물질을 대야에 넣고 물을 일정한 방향으로 계속 저으면, 수면에 퍼져 있던 물체가 가운데로 모이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물의 움직임이 가장 적은 중심점으로 모이는 것이다. 사르가소 해에 해초가 모이는 현상에서 대서양은 대야이고, 멕시코 만류는 빙글빙글 도는 물의 흐름이고, 사르가소 해는 모든 부유물이 모이는 중심점이다.” (P393)


1만 6000미터 깊이에 이르자, ‘노틸러스’ 호의 측면은 1600기압의 압력을 견디게 되었다. 1평방센티미터당 1600킬로그램의 압력을 받고 있는 셈이다!

“믿을 수 없군요!” 나는 소리쳤다. “인간이 감히 발을 들여놓을 엄두도 내지 못한 이 깊은 심해를 유유히 돌아다니다니! 보세요. 선장, 저 웅장한 바위, 아무도 살지 않는 동굴. 생명이 존재할 수 없는 지구의 마지막 영역을! 아직 아무도 보지 못한 이 광경의 기억만 가져가야 하다니, 그래도 되는 겁니까?”

그러자 네모 선장이 되물었다.

“기억 외에 다른 것도 가져가고 싶으시겠죠?”

“무슨 뜻입니까?”

“이 해저의 풍경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은 없을 거라는 뜻입니다.”

내가 이 제안에 미처 놀랄 틈도 없이, 네모 선장의 명령에 따라 카메라가 객실로 들어왔다. 전등 불빛을 받은 물은 활짝 열린 금속판을 통해 한결같이 고른 빛을 분배하고 있었다. 그림자는 전혀 없었다. 인공조명이 만들어내는 그늘진 부분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태양도 이런 일을 이보다 더 잘 해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경사판의 각도와 스크루의 추진력이 균형을 이루면서 ‘노틸러스’ 호는 움직임을 멈추었다. 카메라는 심해의 밑바닥을 겨누었고, 몇 초도 지나기 전에 우리는 선명한 음화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P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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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는 오래 삽니까?” 콩세유가 물었다.

“천년은 살지.” 캐나다인이 주저없이 대답했다.

“그걸 자네가 어떻게 알아?”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니까.”

“사람들은 왜 그렇게 말하지?”

“알고 있으니까.”

“아닐세. 네드, 사람들은 아는 게 아니라, 그렇게 계산한 거야. 사람들이 그 주장의 근거로 삼는 추론은 이렇다네. 어부들이 처음 고래를 잡은 4백 년 전에는 고래가 요즘 잡히는 고래보다 훨씬 컸지. 그래서 사람들은 요즘 고래가 작은 것은 아직 완전히 자라지 않은 어린 고래이기 때문이라고 추론한 걸세. 뷔퐁은 이 추론에 따라 고개가 천 년까지 살 수 있다고. 사실은 천년 까지 살게 분명하다고 결론지었지. 알겠나?”

네드는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더 이상 내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P413)


돌아가는 길에도 그와 비슷한 놀라움이 기다리고 있을까? 아마 그럴 것이다. 해저의 경이는 무진장하니까! 운명이 우리를 이 배에 붙잡아둔 다섯 달 반 동안 우리는 1만 4000해리를 여행했다. 적도를 따라 세계를 한 바퀴 돈 것보다 훨씬 먼 거리다. 그동안 야릇하고 무서운 사건이 얼마나 많이 일어났던가. 크레스포 섬에서의 사냥, 토러스 해협에서의 좌초, 산호 묘지, 실론 섬에서의 상어 사냥, 아라비아 터널. 산토리니 섬의 분화, 비고 만의 해저 보물, 아틀란티스 대륙, 그리고 남극! 이 모든 기억은 밤새 꿈에서 꿈으로 날아다니면서, 한시도 내 마음을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밤 세 시에 배가 심하게 흔들리는 바람에 잠이 완전히 달아나버렸다. 나는 침대에 일어나 앉아 어둠 속에서 바깥 기척에 귀를 기울였다. 그때 갑자기 내 몸이 방 한복판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노틸러스’ 호는 이제 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좌초한 게 분명했다. (P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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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운한 사내는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누가 그를 그 힘센 다리에서 잡아챌 수 있겠는가. 하지만 네모 선장은 오징어한테 덤벼들어, 다른 다리 하나를 도끼로 잘라냈다. 부관은 ‘노틸러스’ 호의 뱃전으로 기어오르는 다른 괴물들과 맹렬하게 싸우고 있었다. 다른 승무원들도 저마다 도끼를 들고 괴물을 공격하고 있었다. 네드와 콩세유와 나는 각자 지닌 무기로 살덩어리를 쑤셔댔다. 지독한 사향 냄새가 진동했다. 끔찍했다.

오징어 다리에 휘감긴 그 가엾은 사내는 금방이라도 강력한 빨판에서 구출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리 여덟 개 가운데 일곱 개가 잘려나갔기 때문이다. 희생자를 깃털처럼 가볍게 휘두르고 있는 다리 하나는 여전히 공중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네모 선장과 부관이 덤벼드는 순간, 괴물이 먹물을 내뿜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자욱한 먹구름이 걷혔을 때, 오징어는 내가엾은 동포를 데리고 이미 사라진 뒤였다.

괴물들에 대한 분노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우리는 더 이상 자제하지 않았다. 여남은 마리의 오징어가 ‘노틸러스’ 호의 갑판과 뱃전을 침략했다. 잘려나간 오징어 다리들은 피와 먹물로 범벅이 된 갑판에서 뱀처럼 꿈틀거리며 몸부림을 쳤다. 우리는 갑판에 나뒹구는 뱀들의 한복판에서 이리저리 미끄러지고 있었다. 끈적끈적한 다리들이 히드라의 머리처럼 되살아나고 있는 것 같았다. 네드 랜드는 오징어의 청록빛 눈을 작살로 연거푸 찔러댔다. 네드의 작살은 한 번도 빗나가지 않고 정확하게 오징어의 눈을 파괴했다. 하지만 그 용맹한 친구가 갑자기 나동그라졌다. 괴물의 다리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얻어맞은 것이다. (P497)


나는 네모 선장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 영원히 모르겠지만, 과학자가 아니라는 것은 더욱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네모 선장과 그의 동료들을 ‘노틸러스’ 호에 가두어놓은 것은 평범한 염세주의가 아니라, 시간이 가도 줄어들지 않는 수상하거나 숭고한 증오심이었다.

이 증오심은 아직도 복수를 원하고 있을까? 그것은 이제 곧 알게 될 것이다. 그러는 동안 ‘노틸러스’ 호의 희미한 형체가 조금씩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곧이어 배가 가볍게 흔들렸다. 나는 배가 수면 위에 떠 있음을 알았다.

그 순간 둔탁한 폭발음이 들렸다. 나는 선장을 쳐다보았다. 선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선장?” 내가 불렀다.

선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P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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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우리가 겪은 해저 여행의 결말이다. 그날 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트가 어떻게 멜스트롬의 무서운 저류(底流)에서 벗어났는지, 네드와 콩세유와 내가 어떻게 깊은 바다 속에서 빠져나왔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로포텐 제도의 어부네 오두막에 누워 있었다. 네드와 콩세유도 무사히 내 곁에 있었다. 그들은 내 손을 움켜잡고 있었다. 우리는 뜨겁게 포옹했다.

지금 이 순간, 프랑스로 돌아가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 노르웨이의 남북을 잇는 교통수단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나는 보름에 한 번씩 노르 곶까지 운항하는 기선을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서 우리를 구해준 친절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이 모험담을 손질하고 있다. 내 이야기는 진솔하고 정확하다. 사실은 단 한 가지도 생략하지 않았고, 아무리 사소한 세부도 과장하지 않았다. 나는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이루어진 믿을 수 없는 탐험 여행을 충실하게 기록했다. 과학이 진보하면 언젠가는 그곳도 인간에게 문을 열어줄 것이다.

그거야 어쨌든, 사람들이 과연 내 말을 믿어줄까?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지금 내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나에게는 바다와 해저 세계 일주에 대해 말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열 달도 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바다를 2만 해리나 여행했고, 태평양과 인도양, 홍해, 지중해, 대서양, 남극해, 북극해의 수많은 경이를 목격했다. 거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내 권리다.

그런데 ‘노틸러스’ 호는 어떻게 되었을까? 멜스트롬의 포위 공격을 견뎌냈을까? 네모 선장은 아직 살아 있을까? 그는 아직도 바다 속에서 무서운 복수를 계속하고 있을까? 아니면 마지막 대학살로 복수를 끝냈을까? 그의 생애가 담긴 원고는 언젠가 파도에 실려 어딘가로 흘러갈까? 나는 결국 선장의 진짜 이름을 알아낼 수 있을까? 가라앉은 전함의 국적이 네모 선장의 국적을 알려줄까?

그러기를 바란다. 네모 선장의 놀라운 배가 가장 무서운 바다를 이겨내고, 그렇게 많은 배가 목숨을 잃은 그곳에서 살아남았기를 바란다. ‘노틸러스’ 호가 살아남았다면, 네모 선장이 스스로 조국으로 택한 바다에 아직 살고 있다면, 그 거친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증오심이 가라앉기를 바란다! 바다의 수많은 경이를 보고 복수심이 사라지기를 바란다! 입법자 노릇을 그만두고, 과학자로서 평화로운 해저 탐험을 계속하기를 바란다! 그의 운명은 야릇하지만 숭고하기도 하다. 내가 왜 그것을 모르겠는가? 나는 열 달 동안이나 그 부자연스러운 생활을 하지 않았던가? 따라서 성서가 6천 년 전에 제기한, ‘너는 바다 속 깊은 곳을 거닐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권리가 있는 것은 모든 인류 가운데 오직 두 사람, 네모 선장과 나뿐이다. (P545-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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