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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 #116

삶의 질문

by 노용헌

하지만 살아온 모든 나날들을 총합하면 그저 삶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었다. 평생의 삶에 대고 행복했는지 불행했는지 묻기는 부조리했다. 꼭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을 두고 던지는 질문 같았다. 아니, 불가해하고 다채로우며 변화무쌍한 삶과는 전혀 상관없는 언어로 위장한 질문 같았다. 삶을 행복이나 불행이라는 말로 정의하기란 불가능하다. 마치 호수의 물을 단단한 공으로 압축하는 일처럼. 인생은 호수야. 레이디 슬레인은 복숭아 향기가 풍기는 따뜻한 남쪽 벽 아래 앉아서 생각했다. 그 잔잔한 표면 위로 수많은 형체를 반사해 내는 호수, 태양이 금빛으로, 달이 은빛으로 물들이는 호수, 가끔 구름이 어둠을 드리우고 파동이 물결을 이루지만 결국에는 잔잔함을 되찾는 호수. 넘치지 않는 수면. 호수, 즉 인생은 손에 쥘 수 있을 정도로 작지 않으며 단단하게 압축하기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타인의 인생이 행복했는지 불행했는지 질문하면서 삶을 압축해 버린다.


-비터 색빌웨스트, 모든 열정이 다하고,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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