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할아버지의 서재는 거울 속에 사로잡힌 세계였다.
오직 책들만이 나의 새들이며 둥지며 가축이며 외양간이며 시골이었다.
그것은 현실의 세계와 똑같은 무한한 부피와 다양성과 의외성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터무니 없는 모험에 나섰다.
책이 눈사태처럼 쏟아져내려 그 속에 묻히는 한이 있더라도, 의자와 책상 위로 기어올라기지 않고서는 못 배겼다.
제일 높은 책장에 꽂힌 책들에는 오랫동안 손이 미치지 못했다. 어떤 책들은 열어 보기 무섭게 몰수당하는 수도 있었다.
또 어떤 책들은 자취를 감추기도 했다.
되는 대로 손에 잡힌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제자리에 갖다놓은 줄만 알았는데, 그것을 다시 찾아 내는 데는 일주일이나 걸렸다.
나는 무서운 것들과 만나기도 했다.
어떤 그림책을 여니까 천연색 도판이 나왔는데 끔찍한 벌레들이 눈앞에서 기어다니니는 것이었다.
나는 또 양탄자 위에 엎드려서 풍트넬, 아리스토파네스, 라블레와 같은 작가들을 공연히 거쳐가 보기도 했다. 문장들도 사물과 마찬가지로 내게 저항을 했다.
잘 지켜보고 있다가 주위를 한 바퀴 돌고 슬쩍 가 버리는 척하다가 번개같이 되돌아와서,
그것들이 안심하고 있는 틈을타서 꼭 사로잡아야 했다.
그러나 그 문장들은 대개 비밀을 푹 지키고 있었다.
나는 [라페루즈]가 되고 [마젤란]이 되고 또 [바스코 다가마]가 되었다. 나는 야릇한 원주민들을 발견했다.
12음절 시구로 된 [테렌티우스]의 역본에서 [에오통티모푸에노스]라는 말과 만나기도 하고, 비교 문학에 관한 어느 택에서는 '특이질'이라고 말을 찾아내기도 했다.
'어말 생략, '교착적 배어법' '파랑공' 등, [카프라리아]말처럼 아득하고 알 수 없는 숱한 단어들이 책장을 젖힐 때마다 튀어나오고, 이런 말과 맞부딪치기만 하면 한 단락 전체의 뜻이 박살나는 것이었다.
나는 생경하고 기분 나쁜 이런 말들의 뜻을 10년이난 15년 후엥야 비로소 알게 되었지만, 그것들은 오늘날까지도 야릇해 보인다."
-사르트르, 말, P54~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