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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 #118

갈증

by 노용헌

나는 거기 있다. 나는 한시도 거기 있지 않은 적이 없었다. 물론 방식이 다르긴 하지만, 나는 거기 있다.

거기 있는 것, 즉 현존(現存)의 신비를 헤아리기 위해 뭔가를 믿을 필요는 전혀 없다. 누구나 하는 흔한 경험이니까. 우리는 현존하지 않은 채 얼마나 자주 거기에 있는가? 하지만 그것이 무엇에 기인하는지 우리가 반드시 아는 것은 아니다.

<집중해.> 우리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너의 현존을 모아>라는 뜻이다. 우리는 산만한 학생에 대해 말할 때 현존이 분산되는 현상을 상기시킨다. 잠시 딴 생각만 해도 그렇게 된다.

딴청을 피우는 건 결코 나의 장점이 아니었다. 예수가 되는 것은 아마 진정으로 현존하는 누군가가 되는 것이리라.

나는 비교하는 게 참 어렵다. 내가 직접 경험한 것에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는 다름 사람들과 똑같다. 사람들이 나의 전지(全知)라고 부르는 것은 나를 방대한 무지(無知) 속에 남겨 놓는다.

사실, 진정으로 현존하는 누군가는 그리 흔치 않다. 나의 세 우승마, 사랑, 갈증, 죽음도 엄청나게 현존하는 세 가지 방식을 가르친다.


-아멜리 노통브, 갈증, P128~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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