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R. R. 톨킨의 <반지의 제왕>

영화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 2001년

by 노용헌


존 로널드 루엘 톨킨이 지은 3부작 판타지 소설이다. 소설은 1부 《반지 원정대》, 2부 《두 개의 탑》, 3부 《왕의 귀환》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본래는 단권으로 내거나 두 권으로 나누어 낼 예정이었으나, 2차 대전 직후 경기부진 등 출판사의 사정에 따라 총 세 권으로 나누어 출간되었다.


피터 잭슨이 연출한 J. R. R. 톨킨의 판타지 소설 《반지의 제왕》의 실사영화 3부작. 영화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2001), 두 개의 탑(2002), 왕의 귀환(2003).

영화 반지의 제왕 08.jpg

[1]

조심성이 있어 외부에는 그리 드러나지 않았지만 호빗은 아주 오래된 종족으로서, 예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수가 많았다. 그들은 평화와 고요와 비옥한 땅을 사랑했던 것이다. 잘 정돈되고 제대로 경작된 전원은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였다. 그들은 대장간의 풀무, 물레방아, 베틀보다 더 복잡한 기계에 대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알지 못하고 좋아하지도 않지만 연장을 다루는 솜씨는 뛰어났다. 옛날에도 그들은 대체로 <큰 사람들>(그들은 우리 인간을 그렇게 불렀다)을 보면 겁을 먹었는데, 지금도 사람을 보면 몹시 놀라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호빗은 청각과 시각이 예민하고, 비록 몸이 뚱뚱하고 여간해서는 서두르는 법이 없으나 동작이 빠르고 민첩하다. 그들은 별로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상대가 무리를 지어 접근할 때 신속하고도 소리없이 사라지는 기술을 터득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 기술을 인간의 눈엔 거의 마법으로 보일 경지까지 갈고 닦았다. 하지만 실제로 호빗들은 어떤 마법도 익힌 적이 없었다. 그들의 모습이 우리 눈에 잘 띄지 않는 것은 오로지 핏속에 물려받아 한층 더 연마한 기술과, 몸집이 더 크고 동작이 굼뜬 종족으로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땅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했다. (P11-12)


산맥을 가로지르기 전 호빗족은 이미 서로 이질적인 세 종족으로 분할돼 있었는데, 그것은 하풋족과 스투어족, 팔로하이드족이었다. 하풋족은 피부가 짙은 갈색이고 몸집과 키가 더 작았으며 수염도 없고 다리 싸개도 하지 않는 종족으로 손발이 말쑥하고 민첩했다. 그들은 산악지대와 구릉지대를 좋아했다. 스투어족은 몸집이 크고 탄탄했으며 손발이 큰 편이고 평지와 강가를 좋아했다. 팔로하이드족은 피부와 머리색이 훨씬 옅고 다른 두 종족에 비해 몸매가 홀쭉했다. 그들은 숲과 삼림지대를 좋아했다.

하풋족은 옛날에는 난쟁이족과 깊은 관계가 있었으며 오랫동안 산맥 구릉지에 살았다. 그들은 일찍이 서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해서 다른 종족들이 아직 월더랜드에 살던 무렵 이미 에리아도르 너머 폭풍산까지 흘러갔다. 그들은 가장 전형적인 호빗으로서 호빗족 가운데 대표적인 종족이며 수도 가장 많았다. 그들은 다른 종족들보다 한곳에 정착하려는 성향이 강했고 굴과 구덩이 속에서 살던 선조의 생활 습관을 가장 오래도록 고수했다.

스투어족은 오랫동안 큰강 안두인의 제방에 살았으며 다른 종족에 비해 인간을 그닥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풋족을 따라 서쪽으로 이동했고 라우드워터의 흐름을 따라 남행한 다음 다시 북쪽으로 이동하기 전까지 한참 동안을 사르바드와 던랜드 외곽 지대 사이에 거주했다.

수적으로 가장 적은 팔로하이드족은 주로 북부에 거주한 종족이었다. 그들은 다른 호빗족에 비해 요정족과 한결 우호적으로 지냈으며 손재주보다는 언어와 노래에 뛰어났다. 옛날에는 경작보다 사냥을 선호했다고 한다. 그들은 리벤델 북쪽 산맥을 가로질러 호어웰 강으로 내려왔다. 에리아도르에 이른 그들 종족은 얼마 가지 않아서 그들보다 앞서 그곳에 정착한 다른 호빗들과 섞여 살았는데, 대담하고 모험을 좋아하는 기질 덕에 하풋이나 스투어족 가문들 사이에 살면서도 종종 지도자가 되곤 했다. 빌보 시절에조차 팔로하이드족의 강한 혈통은 툭 집안이나 버클랜드의 주인집 같은 명문들 속에 두드러졌다. (P14-15)


<호빗>에 나오듯이 어느 날 빌보의 집에 위대한 회색의 마법사 간달프가 열 세 명의 난쟁이를 데리고 찾아왔다. 그들은 바로 망명중인 왕족의 후예인 참나무방패 소린과 그의 동료 열두 명이었다. 4월의 어느 날 아침 빌보는 그들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 그 자신도 두고두고 놀랍게 여긴 그 여행은 샤이어력 1341년에 이루어진 것으로, 동쪽 멀리 데일의 에레보르 아래 산 밑에 묻힌 난쟁이 왕족의 보물을 찾아나선 원정 여행이었다. 그 원정은 성공을 거두었고 보물 창고를 수호하던 용도 처치했다. 그러나 승리를 얻기까지 다섯 종족의 군대가 전투에 임해 그 와중에 소린이 목숨을 잃었으며 명성을 떨칠 만한 공적도 이루어졌지만, 그 일은 훗날의 역사에서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다. 제3기의 장황한 연대기에도 단 한 줄로, 그것도 하나의 <사고>로 기록되었을 뿐이다. 월더랜드로 가던 그들 일행은 안개산맥의 드높은 고갯길을 넘다가 오크의 습격을 받았다. 그 와중에 빌보는 산중 깊은 곳에 있는 캄캄한 오크의 동굴 속에서 한동안 길을 잃고 헤매야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어둠 속을 더듬거리며 배회하던 빌보의 손이 동굴 바닥에 놓여 있던 반지에 닿았다. 그는 그 반지를 주머니 속에 넣었다. 그 무렵에는 그저 행운의 반지 정도로만 여겼다.

동굴을 빠져나올 길을 찾던 빌보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막다른 동굴 바닥에 이르게 되었다. 빛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동굴 밑바닥에는 싸늘한 호수가 고여 있었고 그곳 바위섬에 골룸이 살고 있었다. 골룸은 역겨운 꼬마 괴물로, 커다랗고 편평한 발로 작은 배를 젓고 돌아다니며 허연 빛을 내뿜는 두 눈을 두리번거리다 길쭉한 손가락으로 눈먼 물고기를 잡아 날것으로 먹었다. 골룸은 살아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먹어치웠는데 쉽게 잡아죽일 수만 있다면 오크까지도 먹었다. 그 괴물에겐 아주 오래 전 아직 밝은 세상에 살고 있을 무렵 손에 넣게 된 아무도 모르는 보물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손가락에 끼기만 하면 남의 눈에 보이지 않게 해주는 황금 반지였다. 그 반지는 그가 아끼는 물건이며 <소중한 보물>이었고 그는 반지를 지니고 있지 않을 때도 반지와 대화를 하곤 했다. 그는 사냥을 하거나 동굴 속 오크들의 동태를 살피러 갈 때를 제외하고는 그 반지를 자기가 사는 섬의 구멍 속에 안전하게 보관해 두었다. (P24-25)


배긴스 노인은 돈에 관해선 너그러웠기 때문에 사람들 대부분은 그의 괴팍한 행동과 지나친 행운을 묵인해 주었다. 친지들 일에 발벗고 나서길 그치지 않은 덕분에(물론 색빌배긴스 일가만은 제외하고) 가난하고 비천한 호빗들 중에는 그에게 헌신적인 자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친척 아이들이 장성하기 전까진 빌보에겐 속을 터놓을 만한 벗이 없었다.

그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고 빌보가 총해한 친지가 젊은 프로도 베긴스였다. 빌보는 아흔아홉 살이 됐을 때 프로도를 상속자로 삼고 백엔드로 데려와 함께 살았다. 결국 색빌배긴스 일가의 희망은 꺾이고 만 셈이었다. 빌보와 프로도는 우연찮게도 생일이 똑같이 9월 22일이었다. 어느 날 빌보가 이렇게 말했다.

“넌 여기 와서 사는 게 낫겠어. 그러면 생일 잔치도 함께 지낼 수 있고 말이야.”

그 무렵 프로도는 아직 소년기와 서른셋에 시작되는 호빗의 성년기 사이에 낀 철없는 20대로, 호빗들은 그 시기를 어중간한 나이라는 뜻에서 <트윈스>라고 불렀다. (P34)

그것은 간달프의 표식이었으며 그 노인은 마법사 간달프였다. 샤이어에서 그는 주로 불과 연기와 빛에 대한 기술로 이름이 나 있었다. 그의 본업은 그보다 훨씬 더 까다롭고 위험한 것이었지만 샤이어 주민들은 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들에게 노인은 그저 잔치를 한몫 거드는 여러 인기인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다. 그래서 호빗 어린애들은 노인을 보고 흥분했다.

“위대한 간달프!”

아이들이 외치자 노인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호비턴에 이따금씩 나타나 아주 잠깐씩만 머물 따름이었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노인을 알아보았다. 그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호빗도 그가 불꽃놀이를 펼치는 광경을 본 적은 없었다. 그 일은 과거의 전설이었던 것이다.

노인이 빌보와 몇몇 난쟁이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짐을 다 부리자 빌보는 아이들에게 동전 몇 닢을 뿌려주었다. 그러나 폭죽이나 딱총 하나 얻지 못한 구경꾼들은 몹시 실망했다.

“자, 이제 돌아가거라! 때가 되면 잔뜩 줄 테니까.”

간달프는 말하곤 빌보와 함께 집안으로 들어가 문을 굳게 닫았다. 어린 호빗들은 한동안 문을 바라보며 자리를 지켰으나, 결국 헛수고라는 것을 알고 잔칫날이 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은 절망감을 느끼며 뿔뿔이 흩어졌다. (P39-40)


빌보 배긴스는 연설을 하는 중에도 주머니 속에 든 황금 반지를, 그토록 오랜 세월 비밀히 간직했던 마술 반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는 의자에서 내려오면서 반지를 손가락에 끼었다. 그 뒤로 빌보는 두 번 다시 호비턴의 다른 어떤 호빗의 눈에도 띄지 않았다.

그는 힘찬 걸음으로 자신의 동굴로 돌아와 한동안 미소를 띤 채 천막에서 벌어진 소동과 들판 다른 곳에 벌어진 잔치의 소리들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런 다음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잔치용 예복을 벗어 잘 갠 다음 수놓은 비단 조끼를 박엽지에 싸서 치워놓았다. 그러곤 재빨리 낡고 지저분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낡은 가죽띠로 허리를 동여맸다. 그 위에 까만 가죽으로 된 낡은 칼집에 든 단검을 찼다. 그런 뒤 이번에는 좀약 냄새가 풍기는 잠긴 서랍을 열고 낡은 망토와 두건을 꺼냈다. 무슨 귀중품이라도 되는 것처럼 서랍에 넣고 잠가놓긴 했지만 여기저기 기운 데다 비바람에 변색되어서 원래의 색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는데, 아마 처음엔 암록색이었을 것 같았다. 둘 다 그가 쓰기에는 약간 컸다. 그런 다음 그는 서재로 들어가 커다란 금고에서 낡은 천에 싼 꾸러미 한 개와 가죽끈으로 묶은 원고 한 뭉치, 크고 불룩한 봉투 하나를 꺼냈다. 그는 원고와 꾸러미를 이미 거의 다 꾸려놓은 묵직한 자루 위에 쑤셔박았다. 그러곤 봉투 속에다 가는 사슬에 꿴 황금 반지를 넣고 봉한 다음 수신자를 <프로도 앞>으로 적어놓았다. 빌보는 처음에는 그 봉투를 벽난로 선반에 놓으려 했으나 갑자기 마음이 바뀐 듯 도로 집어 주머니 속에 찔러놓았다. 바로 그 순간 문이 열리더니 간달프가 재빨리 방안에 들어섰다.

“안녕하시오! 언제 나타나시나 생각하던 참이었소.” 빌보가 말했다.

“이렇게 다시 실물로 나타난 모습을 보니 반갑군요.” 마법사는 대꾸하면서 의자에 앉았다. “떠나기 전에 몇 마디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말이오. 모든 일이 계획대로 잘된 것 같지 않소?” (P49-50)


호빗들은 모르도르라는 이름을 기억의 배후에 서린 그림자처럼 암울했던 과거의 전설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불길하고도 걱정스러운 이름이었다. 백색회의가 어둠숲으로부터 내쫓는 사악한 힘이 한층 더 강대해져 모르도르의 옛 본거지에 나타난 것 같았다. 소문에 의하면 암흑탑이 재건되었다고 했으며, 사악한 힘은 그곳을 거점으로 사방으로 세력을 확장하여 멀리 동쪽과 남쪽까지 이르러 전쟁을 일으키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오크들은 산속에서 다시 세를 불리고 있었다. 트롤들은 더 이상 우둔한 괴물이 아니라 교활하고 가공할 무기로 무장한 세력이 되어 외부로 나섰다. 그리고 이들보다 더 무시무시한 괴물들이 나타났다는 얘기도 은근히 돌고 있었으나 아직 그것이 무언지는 알 수 없었다. (P70)


“간밤에 마법사님께서는 반지에 대해서 이상한 얘기를 하시려고 했지요. 그러다 그런 얘기는 밝은 대낮에 하는 편이 나을 거라면서 말씀을 중단하셨어요. 이제 그 얘기를 마무리하시는 게 어떨까요? 마법사님께서는 그 반지가 위험하다고, 제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물건이라고 하셨는데, 그게 무슨 말씀이지요?”

“여러 가지 면에서 위험하다네.”

마법사가 대답했다.

“그 반지는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갖고 있네. 그 힘은 아주 강해서 결국 그 반지를 가진 이는 누구나 그 힘에 짓눌리고 말 걸세. 반지가 사람을 지배하는 셈이지.

오래 전 에레기온에서 요정 반지 여러 개가 만들어졌다네. 흔히 마술 반지라고 하는 것들이지. 그리고 물론 거기엔 여러 종류가 있었네. 어떤 것은 힘이 더 세고 어떤 것은 대단치 않은 것이었지. 대단치 않은 것들은 기술이 발전되기 전에 시험삼아 만들어본 것들인데, 요정 장인의 눈에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다른 종족에겐 위험한 물건이라네. 그에 비하면 위대한 반지, 힘 있는 반지들은 그야말로 극히 위험하지.

프로도, 이 위대한 반지 하나만 가져도 죽음을 타고난 종족이 죽지 않게 된다네. 성장하지도 않고 더 많은 생명력을 가질 수도 없지만 그저 명맥을 유지하게는 되는 거지. 그래서 마침내 모든 순간순간이 권태 그 자체가 될 때까지 말일세. 그리고 만약 그 반지를 이용해서 자신의 모습을 감추는 데 재미를 붙일 경우에는 시들어버릴 수가 있네. 결국에 가서는 영영 눈에 보이지 않게 되어서 반지를 지배하는 암흑의 힘이 감시하는 어스름 지대로 들어가게 되는 게지. 그래, 늦든 빠르든 언젠가는..... 만일 그가 강인하거나 선의를 가진 자라면 시간을 좀 늦출 수는 있을 테지만 그런 힘도 선의도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는 걸세. 조만간 암흑의 힘이 그자를 삼켜버리고 말게 된다네.”

“정말 무서운 일이군요!” 프로도가 말했다. 다시금 오랜 침묵이 이어졌다. 들리는 소리라곤 샘 감지가 정원에서 잔디 깎는 소리뿐이었다. (P74-75)

영화 반지의 제왕 01.jpg

“이 불꽃 같은 글자들은 읽을 수가 없어요.”

프로도는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러자 간달프가 말했다.

“그럴 테지. 난 읽을 수 있네. 그 문자는 요정의 문자로, 거기엔 고대 문자체로 적혀 있지만 그 언어 자체는 지금 모르도르가 쓰고 있는 언어일세. 지금 원음으로 발음하진 않겠네. 그것을 우리가 쓰는 말로 옮기면 이런 뜻에 가까울 걸세.

<그 모든 반지는 다스릴 반지 하나, 그 모든 반지를 찾기 위한 유일반지, 그 모든 반지를 암흑 속에 가두기 위한 반지는 유일반지뿐.>

그건 요정족의 전승으로 아주 오래 전부터 알려진 시에서 두 행만 따온 것일세. 그 시는 이런 거라네.

반지 세 개는 하늘 아래 요정왕들을 위한 것,

일곱 개는 돌의 전당에 있는 난쟁이 군주들을 위한 것,

아홉 개는 죽을 운명의 인간을 위한 것,

하나는 암흑의 왕좌에 앉은 암흑 제왕을 위한 것,

그곳은 망령들이 지배하는 모르도르의 땅,

그 모든 반지를 다스릴 반지 하나, 그 모든 반지를 찾기 위한 유일반지,

그 모든 반지를 암흑 속에 가두기 위한 반지는 유일반지뿐,

바로 망령들이 누워 있는 모르도르의 땅에.”

그는 잠시 말을 끊더니 이윽고 깊숙이 잠긴 어조로 천천히 말했다.

“이것이 최고의 반지, 모든 반지를 다스리는 바로 그 유일반지일세. 그자는 오래 전 이 반지를 잃어버렸고 그래서 크게 힘을 잃고 말았지. 그자는 이 반지를 몹시 찾고 싶어하네.... 하지만 이 반지는 절대로 그자의 손에 들어가면 안 돼.”

프로도는 꼼짝도 않은 채 말없이 앉아 있었다. 동쪽으로부터 일어나서 집어 삼킬 듯 엄습해 오는 먹구름처럼 공포가 그를 향해 커다란 손을 쭉 내밀었다. 그는 더듬더듬 말했다.

“바로 이 반지가요? 어떻게..... 대체 어떻게 해서 이 반지가 저에게까지 오게 된 거죠?” (P80-81)

영화 반지의 제왕 02.jpg

“나도 마찬가질세. 그건 우리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의 바람이기도 하지. 하지만 그건 우리가 결정할 문제가 아닐세. 우리가 결정할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이 시대에 어떻게 사는가 하는 것뿐일세. 프로도, 우리 시대에는 이미 불길한 그림자가 덮이기 시작했네. 적은 순식간에 아주 강대해지고 있지. 그자의 계획은 아직 무르익지 않았지만 조만간 그렇게 될 걸세. 우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네. 설혹 이처럼 무시무시한 기회가 없었다고 해도 틀림없이 혹독한 상황에 처했을 걸세.

그런데 그 적은 한 가지 물건을 아직 갖추지 못했네. 그것만 있으면 모든 저항세력을 일거에 물리칠 힘과 지식을 손에 넣어서 최후의 저항을 분쇄하고 온 세상에 제2의 암흑기를 가져올 수 있을 텐데 말이야. 그것이 바로 이 유일반지일세.

모든 반지 중에서 가장 훌륭한 반지 세 개는 그자의 손에 들어가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 없도록 요정왕들이 감춰버렸어. 난쟁이왕들이 갖고 있던 반지 일곱 개 중에서 세 개는 그자가 다시 빼앗았고 나머지는 용들이 없애버렸지. 그 자는 반지 아홉 개를 오만 방자한 인간에게 주어 그들을 함정에 빠뜨렸네. 인간들은 오래 전에 유일반지의 지배에 떨어져 반지의 악령이 되었고 위대한 그림자의 부하 그림자, 암흑의 가장 무서운 종이 되었지. 오래 전에 말이야. 반지 아홉 개가 세상을 나돌기 시작한 것도 오래 전 일이라네. 하지만 누가 알았겠는가? 암흑이 다시 성장하고 그 반지들이 다시 돌아다니게 될 줄이야. 아니, 이제 그만! 아무리 샤이어의 아침이라 해도 이런 일을 말하고 싶지 않네.

아무튼 지금은 그자가 반지 아홉 개를 다시 손에 넣었고, 반지 일곱 개 중에 일부는 그자의 손에 들어갔고 나머지는 파괴되었지. 반지 세 개는 여전히 감춰져 있고, 하지만 그는 이제 그 일에 그닥 신경 쓰지 않아. 그자에게 필요한 것은 유일반지뿐이야. 그는 유일반지를 자기 손으로 직접 만들었기 때문에 그건 그의 것이지. 그자는 예전에 갖고 있던 자신의 힘 대부분을 그 반지 속에 집어 넣었거든. 나머지 반지들을 다스릴 생각으로 그랬던 것이지. 만약 그자가 유일반지를 되찾으면 다시 모든 반지를 부릴 수 있게 되는 걸세. 그 반지들이 어디에 있건 상관없이 말이야. 요정왕이 감춰버린 세 개까지도, 그렇게 되면 그 동안 기울인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그자는 전보다 더 강해질 거야.

프로도, 바로 이것이 내가 <무시무시한 일>이라고 말한 거라네. 그는 유일반지가 사라졌다고, 요정족이 파괴해 버렸다고 여겼지..... 사실 그렇게 했어야 했는데, 그런데 그자는 이제 그 반지가 없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누군가가 발견했다는 것을 알게 된 거야. 그래서 지금 그자는 미친 듯이 유일반지를 찾고 있는 거라네. 그는 그 반지를 찾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어. 반지를 찾는 일은 그자의 가장 큰 희망이자 우리에겐 더할 나위 없는 절망이지.”

“그렇다면 어째서 이 반지를 파괴하지 않은 거죠?” 프로도가 외쳤다. “그리고 그자가 그렇게 강하고 또 이 반지가 그렇게 소중한 물건이라면 적은 어쩌다 이걸 잃어버렸나요?” 그는 마치 벌써 그것을 잡아채려는 어둠의 손가락이 눈에 보이기라도 하는 양 있는 힘껏 반지를 움켜쥐었다. (P82-83)

영화 반지의 제왕 03.jpg

“그걸 내놔, 데아골.” 스메아골이 친구의 어깨 너머로 그렇게 말했네.

“어째서지?” 데아골이 반문했지.

“그야 오늘이 내 생일이니까, 친구. 그리고 난 그걸 원해.” 스메아골이 말했다네.

“그야 내가 알 바 아니잖아.” 데아골이 말했지. “생일 선물은 벌써 줬어. 그것도 분에 넘치는 것을 줬다구. 이걸 발견한 사람은 나야. 그러니까 이건 내거야.”

“아, 그래?” 스메아골은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데아골의 목을 졸라 죽이고 말았네. 그 황금반지가 너무도 눈부시고 아름다워 보였던 거지. 그러곤 그 반지를 자기 손에 끼었네.

데아골이 죽은 내막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네. 그는 마을에서 먼 곳에서 살해당했고 시체도 아주 교묘하게 감춰졌기 때문이었지. 스메아골은 혼자서 돌아왔네. 그는 그 반지를 끼고 있으면 집안 사람 어느 누구도 자기 모습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 그는 득의 양양해서 반지를 잘 감춰두었네. 그러곤 비밀을 캐는 데 반지를 이용했지. 그는 자신의 지식을 잘못되고 사악한 용도로 이용했으며 남에게 유해한 온갖 일들에 눈과 귀를 곤두세웠지. 반지는 그에게 걸맞는 능력을 부여한 셈이었다네. 그가 친척들에게서 인기를 잃고 나날이 백안시당하게 된 것도(물론 그가 눈에 보일 때 말이지만) 놀랄 일이 아니었지. 남들이 자기를 멀리하면 할수록 스메아골은 그들에게 해꼬지를 했다네. 그는 도둑질에 재미를 붙였고 끊임없이 혼자 중얼거리며 돌아다니고 목구멍에서 골록거리는 소리를 냈지.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골룸>이라고 불렀고 저주를 하며 마을에서 사라지라고 말했네. 평화를 원했던 그의 할머니는 손자를 가문에서 추방하고 집에서 내쫓아 버렸네. (P85-86)

영화 반지의 제왕 04.jpg

“내가 자네에게? 내가 지금까지 한 말을 모두 듣고도 그런 말을 하나? 자넨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군. 하지만 그걸 버린다는 건 잘못된 생각일세. 이 반지들은 나름대로 누군가에 의해 발견되는 힘을 갖고 있다네. 만약 그것이 사악한 존재의 손에 들어갔다간 엄청난 재난이 닥쳤을 걸세. 그것이 적의 손에 들어가기라도 하는 날엔 가장 끔찍한 재난이 닥칠 테고 말이야. 실제로 그렇게 될 거야. 이건 유일반지라네. 그자는 지금 전력을 다해 이 반지를 찾아 손에 넣으려 하고 있으니까.

프로도, 물론 이 반지는 자네에겐 위험한 물건이라네. 그 때문에 난 몹시 괴롭게 생각했다네. 하지만 여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일이 걸려 있어서 모험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었네. 하지만 내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을 때라도 주의 깊은 시선이 하루도 빠짐없이 샤이어를 수호하고 있었네. 난 자네가 그 반지를 사용하지 않는 한 반지는 자네에게 지속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네. 사악한 영향력 말일세. 어쨌든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할 거라고 말이야. 그리고 9년 전 마지막으로 자네를 만났을 때만 해도 내가 아무것도 확실하게는 알고 있지 못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게.” (P96-97)

영화 반지의 제왕 05.jpg

언덕의 서쪽 기슭에 이른 그들은 좁은 오솔길로 통하는 입구에 다다랐다. 그곳에서 걸음을 멈추고 등짐의 끈을 조절했다. 이내 샘이 숨을 헐떡이며 다가왔다. 그의 등짐은 어깨 위까지 높이 치솟았고 머리에는 되는 대로 담은 자루를 모자처럼 얹었다. 어둠 속에 나타난 그의 모습은 흡사 난쟁이 같았다.

“아무래도 내게만 무거운 짐을 잔뜩 넣은 모양인데, 달팽이 신세가 가엾지. 집을 등에 지고 다니니 말이야.” 프로도가 말했다.

“제가 짐을 더 들 수 있는뎁쇼. 나리. 제 짐은 아직 가볍거든요.” 샘이 용감하게 말했지만 그건 뻔한 거짓말이었다.

“아냐, 그러지 말아요, 샘! 그건 당신 주인 건강에도 좋다구요. 저 짐 속에는 우리보고 꾸리라고 한 물건밖에 들어 있지 않으니까. 저 양반은 최근 들어 몸이 약해졌어. 좀 걷다 보면 가볍게 느낄걸요.” 피핀이 말했다.

“가엾은 늙은이에게 친절을 베풀게나!” 그러면서 프로도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러다 버클랜드에 도착하기도 전에 버들가지처럼 휘어버리고 말겠어. 하지만 좀전에 한 말은 농담이었네. 아무래도 자네가 자네 몫보다 더 진 것 같은데, 샘. 다음번 짐을 꾸릴 때 한번 보기로 하자구.” 그는 다시 지팡이를 집어들었다. “자, 우리 모두 밤길 가기를 좋아하잖나, 그러니 잠자기 전에 몇 마장이라도 더 줄이세.”

그들은 얼마간 오솔길을 따라 서쪽으로 향했다. 그런 다음 그 길을 버리고 왼쪽으로 접어들어 다시금 소리없이 들판으로 나섰다. 이어이어 난 관목과 잡목 숲 가장자리를 따라 한 줄로 걸어가는 그들 주위를 어두운 밤이 에워쌌다. 까만 망토를 두른 그들은 어둠에 묻혀 마술 반지를 끼기라도 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호빗족이었고 되도록 소리를 내지 않으려 조심하고 있었기 때문에 같은 호빗들조차 그들의 인기척을 들을 수 없을 정도였다. 들과 숲속의 야생 짐승들도 그들이 지나가는 것을 거의 알아채지 못했다. (P113-114)

영화 반지의 제왕 06.jpg

또다시 프로도의 마음 속에 반지를 끼고 싶은 욕망이 일었다. 이번엔 전보다 훨씬 강한 욕망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한 손으로 주머니를 더듬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노래와 웃음이 한데 섞인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맑은 목소리가 별빛 가득한 밤하늘에 울려퍼졌다. 다음 순간 검은 그림자가 몸을 일으키더니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림자는 똑같이 시커먼 말에 올라타서는 오솔길을 가로질러 반대편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제야 프로도는 참았던 숨을 토했다.

“요정들인뎁쇼!” 샘이 나지막하고 쉰 목소리로 외쳤다. “주인님, 요정들이에요!” 샘은 두 호빗이 끌어당기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숲을 뛰쳐나가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달려들었을 것이다. 프로도가 말했다.

“그래, 요정들이야. 우디엔드에선 종종 볼 수 있지. 요정들은 원래 샤이어에는 살지 않지만 봄가을마다 본거지를 떠나 멀리 탑 언덕 너머로 갈 때 샤이어를 지나가거든. 정말 다행이야! 자네들은 보지 못했겠지만 흑기사가 바로 이곳에 멈춰서서 우리를 향해 막 기어오려던 참에 노랫소리가 시작됐던 걸세. 그자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그대로 사라지더군.”

샘은 너무 흥분해서 이젠 기수에 대한 일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요정들은 어떻죠? 저쪽으로 가서 좀 만나보면 안 될까요?”

“가만! 그들이 이쪽으로 오고 있네. 우린 여기서 기다리고 있기만 하면 돼.”

프로도가 말했다. (P126-127)

영화 반지의 제왕 07.jpg

“<질러 가는 길이 더 돈다>는 속담도 있잖아요.” 피핀이 반박했다. “이 주위는 온통 험한 지형뿐이고 저 아래 늪지에는 수렁 같은 온갖 장애물이 잔뜩 있을 거예요. 나도 이 지역은 좀 알고 있다구요. 게다가 흑기사를 걱정하는 거라면 숲이나 들판보다는 차라리 길에서 맞닥뜨리는 편이 더 나을걸요.”

“숲과 들판에선 여간해서는 인적을 찾기 어렵지. 게다가 우리가 길을 이용할 거라고 생각하고 길을 먼저 수색하지, 길이 아닌 곳을 수색하지는 않을 거야.”

“좋아요! 수렁과 도랑 속으로 따라가 드리죠. 하지만 정말 괴롭군요! 난 해가 지기 전에 스톡의 <황금 농어>를 지나가게 될 것으로 기대했는데, 동파딩 최고의 술집 말예요. 아무튼 전엔 그랬죠. 그 집 술맛을 본 지도 꽤 오래됐으니까.”

“그럼 결정된 거야! 질러 가는 길이 더 돌 수도 있지만, 술집에 걸리면 그보다 더 지체하게 될 걸세. 무슨 일이 있더라도 <황금 농어>만은 피해야겠군. 어두워지기 전에 버클버리에 가고 싶으니까 말이야. 자네 생각은 어떤가. 샘?”

“전 주인님과 함께 가겠어요, 프로도님.” 불안을 숨긴 채, 동파딩 최고의 술집을 놓치는 데 대한 아쉬움마저도 삼키고 샘은 그렇게 말했다.

“자, 어차피 수렁과 찔레 덤불을 뚫고 가야 한다면 지금 당장 출발하세!” 피핀이 말했다. (P141)

영화 반지의 제왕 09.jpg

“사랑하는 호빗 친구들!” 프로도가 너무나 감동한 나머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난 그 일을 허락할 수 없네. 난 이미 오래 전에 마음을 작정했다네. 자네들이 위험에 대해 얘기들을 하고 있지만 그게 어떤 건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네. 이 모험은 보물 사냥도 아니고 갔다가 돌아오는 그런 여행도 아니야. 목숨을 걸고 위험을 각오해야 한다구.”

“물론 우리도 무슨 위험인지 이해하고 있어요.” 메리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바로 그 때문에 우리도 가기로 결정한 겁니다. 우리는 반지 문제가 웃어넘길 장난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요. 하지만 우린 적으로부터 당신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할 셈이에요.”

“반지라고?” 프로도는 이제 완전히 질린 어조로 외쳤다.

“그래요, 그 반지요. 친애하는 호빗, 당신은 친구들의 호기심이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하는군요. 난 벌써 오래 전부터 그 반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사실 빌보님이 사라지기 전부터 알고 있었죠. 하지만 그분이 그 일을 비밀에 붙이려는 것 같기에 나도 마음속에 담아두기만 했던 거죠. 우리가 모의를 하게 되기 전까지는요. 난 물론 당신만큼 빌보님을 알지는 못했죠. 그때만 해도 내가 너무 어렸고 빌보님도 무척 조심하셨으니까. 그러나 그분 역시 조심성이 모자랐지요. 내가 그 사실을 어떻게 처음 알게 됐는지 궁금하다면 말해 드리죠.” (P166-167)

영화 반지의 제왕 10.jpg

프로도와 샘은 홀린 듯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바람이 잦아들었다. 나뭇잎들은 뻣뻣한 가지에서 조용해졌다. 또다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갑자기 갈대숲 위로 길고 파란 깃털 하나를 높다랗게 꽂은 낡은 모자 하나가 깡총거리고 춤을 추며 오솔길을 따라오는 것이 보였다. 모자가 한 번 더 깡총 뛰는 순간 인간처럼 보이는 사내 하나가 나타났다. 인간족처럼 키가 크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호빗치고는 몸집이 너무 컸다. 그렇지만 그는 인간족이라고 해도 될만큼 요란한 소리를 내며, 마치 물을 마시러 가는 암소처럼 굵은 두 다리에 신은 크고 노란 긴장화로 풀잎과 골풀을 썩썩 뭉개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푸른 웃옷에 긴 갈색 수염을 길렀고 두 눈은 파랗게 반짝이는데, 얼굴은 잘 익은 사과처럼 붉었지만 웃을 때면 일시에 수백 개의 주름이 생겨나곤 했다. 그는 커다란 나뭇잎을 쟁반 삼아 하얀 수련꽃 무더기를 받쳐들고 있었다.

“도와주세요!” 프로도와 샘이 팔을 앞으로 뻗은 채 그를 향해 달려가며 소리쳤다.

“이런, 이런! 다가오지 말라구!” 노인이 한 손을 들며 외쳤다. 그들은 그 소리에 한방 맞기라도 한 듯 걸음을 멈췄다. “자, 꼬마 친구들, 그렇게 소리소리 지르면서 대체 어디로 가는 길이시오? 무슨 일이 있소? 내가 누군지는 알고 있소? 난 톰 봄바딜이라고 하오. 무슨 일인지 말을 해보시오! 톰은 바쁘단 말이오. 내 수련을 건드리지 마!”

“친구들이 버드나무 속에 갇혔어요.” 프로도가 숨찬 목소리로 외쳤다. (P191)

영화 반지의 제왕 11.jpg

그때 머리 뒤쪽에서 삐걱이며 뭔가를 긁는 듯한 소리가 났다. 한쪽 팔을 짚고 몸을 일으킨 프로도는 어렴풋한 빛 속에서 자신들이 누워 있는 곳이 뒤편에 꺾어지는 모퉁이가 있는 일종의 통로 속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때 모퉁이를 돌아 긴 팔 하나가 더듬더듬 다가왔다. 그 팔은 손가락으로 바닥 위를 걸으면서 제일 가까이에 있는 샘을 향해, 샘의 목에 얹혀 있는 칼자루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 주문에 의해 돌로 변하기라도 한 것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다음에는 그곳에서 도망치자는 생각이 엄습했다. 황금 반지를 낀다면 고분 유령이 자기 모습을 보지 못할 테고, 그러면 빠져나갈 길이 생기지 않을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이곳을 벗어나 메리와 샘과 피핀을 잃은 것을 슬퍼하면서 목숨을 부지한 채 풀밭 위를 뛰어가는 광경을 그려보았다. 간달프도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달리 없었다는 사실을 인정해 줄 터였다. (P224-225)

영화 반지의 제왕 12.jpg

호빗들은 말을 탄 채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외딴집 몇 채를 지나쳐서는 주막 앞에 이르렀다. 그곳의 집들은 그들의 눈에는 크고 이상해 보였다. 샘은 창문이 잔뜩 달린 3층으로 된 주막을 본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는 여행길에 나서면서 나무보다 더 큰 거인이나 그보다 훨씬 더 무서운 괴물들을 만나게 되리라고 상상했지만, 기진맥진한 하루를 보내고서 난생 처음 인간과 그들의 높다란 건물을 보자 이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주막 마당의 어둠 속에 안장을 얹은 검은 말들이 서 있고 흑기사들이 어두운 위층 창으로 자신들을 내다보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정말 여기서 오늘밤을 묵으실 건가요, 나리? 이곳에 호빗족이 있다면 우리를 반겨줄 만한 호빗을 찾아보는 게 낫지 않겠어요? 그쪽이 훨씬 더 편안할 것 같은뎁쇼.” 샘이 외쳤다.

“이 주막이 어때서 그러나? 톰 봄바딜님이 추천한 곳일세. 저 안은 필시 아늑할 거야.”

밖에서 보기에도 그 주막은 그 분야에 정통한 이의 눈에는 썩 쾌적한 집으로 보였다. 동로 쪽으로 문이 나 있었고, 이어붙여 지은 두 채의 길쭉한 건물이 야트막한 산기슭을 일부 끊고서 뒤쪽까지 뻗어 있어서 그 후면은 3층이 지면과 통하게 되어 있었다. 양쪽 별채 사이로 안마당으로 나가는 널찍한 아치문이 있고, 그 문 밑 왼쪽으로 폭이 넓은 계단을 몇 단 오르면 넓은 현관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활짝 열린 현관문으로는 밝은 불빛이 흘러나왔다. 아치 위에 등불이 있고 그 밑에 통통하고 하얀 조랑말이 뒷다리로 서 있는 커다란 간판이 걸려 있으며, 문 위에는 흰 색으로 <발리맨 버터버의 깡총거리는 망아지>라고 적혀 있었다. 아래층 창문들엔 대개 두꺼운 커튼이 쳐져 있어서 그 틈으로 불빛이 보였다. (P241-242)

영화 반지의 제왕 13.jpg

피핀은 안절부절 못한 채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스트라이더는 샘의 말에는 대꾸를 하지 않은 채 날카로운 눈으로 프로도를 쳐다보았다. 프로도는 그 시선을 받고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마침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동의할 수 없소. 당신의 지금 그 모습은 본래의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하오. 당신은 처음에 마치 브리인처럼 내게 말을 걸었지만 이제 말투가 바뀌었소. 그리고 샘이 한 말도 일리가 있는 것 같소. 난 당신이 우리에게 조심하라고 경고하는 이유를 모르겠소. 우리에게 당신을 믿으라고 하는 것도 말이오. 어째서 가장을 하는 거요? 당신은 어떤 사람이오? 당신이 내 일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무엇이오? 그리고 그걸 어떻게 알게 된 거요?”

스트라이더는 쓴웃음을 지었다.

“흠, 조심하라는 훈계를 단단히 받으셨군. 하지만 조심을 하는 것과 주저하는 건 다른 문제요. 선생은 이제 혼자서는 절대로 리벤델까지 갈 수 없을 거요. 나를 믿는 것이 선생에게 남은 유일한 기회란 말이오. 선생은 결정을 해야 하오. 이미 나를 믿지 못하고 있는 바에야 내 얘기를 믿어주지도 않을 거잖소? 그래도...... ” (P264)

영화 반지의 제왕 14.jpg

“당신이 간달프님이 말한 그 스트라이더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겠어요? 당신은 간달프님에 대해선 이 편지가 나올 때까지 아무 말도 없었죠. 어쩌면 우리를 따라오기 위해 연기하는 첩자일지도 모르죠. 진짜 스트라이더를 죽이고 그의 옷을 빼앗았을지도 모르고요. 그 점을 어떻게 해명하겠어요?”

“용감한 친구로군. 하지만 샘 감지, 내가 자네에게 해줄 수 있는 대답은 이것뿐일세. 내가 만약 진짜 스트라이더를 죽였다면 자네도 죽일 수 있다고 말일세. 그리고 이렇게 구구하게 얘기를 늘어놓을 것도 없이 여러분들 모두 죽였을 거라고 말이야. 내가 반지를 노리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그럴 수 있다네!”

스트라이더는 그 말과 함께 벌떡 일어섰는데 그 순간 그의 키가 더 커진 것 같았다. 그의 눈에는 날카롭고 당당한 섬광이 번뜩였다. 그는 망토를 뒤로 제치고 한 손을 옆구리에 감춰진 칼 손잡이에 갖다댔다. 호빗들은 움직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을 벌린 채 그런 그를 지켜보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난 진짜 스트라이더일세.” 그가 갑자기 미소를 짓고 누그러진 얼굴로 그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난 아라소른의 아들 아라고른일세. 그리고 목숨을 걸고 여러분을 구할 수도 있네.” (P272-273)

영화 반지의 제왕 15.jpg

“산 위에서는 내가 너무 경솔했소.” 스트라이더가 대꾸했다. “간달프의 흔적을 찾느라 너무 신경을 썼던 거요. 우리 셋이 그곳에 올라가 그렇게 오래 서 있었던 건 실수였소. 왜냐하면 그들이 타고 있는 흑마들이 우리를 볼 수도 있고, 브리에서도 확인했듯이 흑기사들이 인간이나 다른 동물을 첩자로 이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오. 흑기사들은 우리처럼 밝은 세상을 보지는 못하오. 하지만 우리의 형체가 그자들의 마음에 그림자를 드리우는데 정오의 태양만이 그것을 막을 수 있다오. 그들은 어둠 속에서 우리가 보지 못하는 많은 신호와 형태를 감지할 수 있소. 바로 그때가 그자들을 가장 두려워해야 할 때라오. 그리고 그들은 언제나 살아 있는 것의 피 냄새를 맡고 욕망이나 증오를 품는다오. 시각이나 후각과 다른 감각들도 있소. 우린 그자들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소. 그래서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그들을 보기도 전부터 두려움을 느낀 거요. 그런데 그들은 훨씬 더 날카롭게 우리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소. 뿐만 아니라....” 그는 한층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반지가 그자들을 끌어들이고 있소.”

“그렇다면 달아날 길이 없다는 말이오?” 프로도가 거칠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움직이면 눈에 띄어 쫓길 테고, 그대로 있으면 내가 그자들을 끌어들이게 된다니!”

스트라이더가 프로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아직 희망은 있소. 당신은 혼자가 아니오. 불을 피우려고 준비해 놓은 이 장작을 신호로 삼기로 합시다. 이곳에는 우리를 보호하거나 방어할 것이 거의 없지만 불은 그 두 가지 역할을 다 해줄 거요. 샤우론은 불을 포함해서 모든 것을 사악한 용도로 이용할 수 있지만, 이 흑기사들은 불을 좋아하지 않고 불을 쓸 줄 아는 자를 두려워한다오. 황야에서는 불이 우리의 친구인 셈이오.”

“그럴지도 모르죠.” 샘이 투덜거렸다. “동시에 외칠 필요도 없이 <우리가 여기 있다>고 알려줄 좋은 방법이기도 하고요.” (P299-300)

영화 반지의 제왕 16.jpg

“이 땅엔 누가 살고 있소?” 프로도가 스트라이더에게 물었다. “이 탑들은 누가 세운 거죠? 이곳이 트롤의 땅이오?”

“그렇지 않소! 트롤들은 지상에 뭘 세우거나 하지 않는다오. 이 땅에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소. 옛날엔 한때 인간족이 이곳에 살기도 했지만 그들도 지금은 이곳에 없소. 전설에 의하면 그들은 앙그마르의 그림자에 싸여 사악한 자들이 되었다고 하오. 하지만 북왕국을 파멸시킨 전쟁 때 그들 모두 죽고 말았소. 그것도 벌써 오래 전 일이어서 이곳 산들조차 그이들을 잊었을 거요. 아직 이곳에 그때의 흔적이 남아 있긴 하지만 말이오.”

“이 일대가 아무도 살지 않고 기억에서 잊혀진 곳이라면 당신은 그런 얘기를 어디서 들었지요? 새와 짐승들이 그런 얘기를 해주었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에요.” 페레그린이 물었다.

“엘렌딜의 후계자는 과거의 일들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다오. 그리고 리벤델에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일들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이 있소.”

“당신은 리벤델에 자주 가보았소?” 프로도가 물었다.

“그렇소. 난 한때 그곳에 산 적이 있고 지금도 종종 들르곤 하오. 그곳은 내 마음의 고향인 셈이지. 하지만 내 운명은 아무리 엘론드의 웅장한 저택이라 할지라도 한곳에 평화롭게 앉아 지낼 수 없게 돼 있다오.” (P318-319)

영화 반지의 제왕 17.jpg

하지만 추적자들이 바로 등뒤에 있었다. 말은 둔덕 위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사나운 울음소리를 내며 몸을 돌렸다. 바로 발 밑 물가에 아홉 명의 흑기사들이 있었다. 그들의 무시무시한 얼굴을 본 프로도는 소름이 끼쳤다. 그가 방금 그랬듯이 그자들이 손쉽게 여울을 건너는 것을 막을 방도가 없었다. 그리고 일단 흑기사들이 여울을 건너면 이 여울목에서 리벤델 변경까지 확실치도 않은 먼길을 달아나 봤자 소용없을 거라는 느낌도 들었다. 아무튼 그는 다급하게 멈춰서라는 명령을 받고 있었다. 다시금 증오심이 끓어올랐지만 이제는 더 이상 저항할 기력도 없었다.

그때 갑자기 선두의 흑기사가 말에 박차를 가해 앞으로 달려나왔다. 말은 강물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앞다리를 번적 들었다. 프로도는 있는 힘을 다하여 몸을 똑바로 세우며 칼을 휘둘렀다.

“돌아가라! 모르도르의 땅으로 돌아가라! 이제 더 이상 나를 따라오지 말라!”

그의 목소리는 자신의 귀에도 여리고 새되게 들렸다. 흑기사들은 말을 멈췄지만 프로도에게는 봄바딜 노인 같은 힘이 없었다. 적들은 쉰 목소리로 몸을 오싹하게 하는 웃음소리를 냈다. 그러곤 이렇게 외쳤다.

“이리 돌아오라! 우리가 네놈을 모르도르로 데려가겠다!”

“돌아가라!” 프로도가 다시 한번 작은 소리로 외쳤다.

“반지! 반지를!” 그들이 집념이 서린 목소리로 그렇게 외치는 순간 갑자기 흑기사의 우두머리가 말을 물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흑기사 둘이 그 뒤를 바짝 따랐다.

“엘베레스와 루시엔님의 이름으로 말하나니......” 프로도가 칼을 높이 쳐들고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외쳤다. “너희는 결코 반지도 나도 얻지 못할 것이다!” (P337)

영화 반지의 제왕 18.jpg

[2]

“이제 곧 알고 싶은 건 모두 알게 될 거야. 자네가 완쾌되는 대로 회의를 열걸세. 다만 우선 내가 잡혀 있었다는 정도만 말해 주지.”

“마법사님이 말인가요?” 프로도가 소리쳤다.

“그래, 회색의 마법사인 나 간달프가 말일세.” 마법사가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이 세상에는 선하고 악한 수많은 힘들이 있다네. 나보다 더 큰 힘들도 있지. 또 아직 어느 정도의 힘을 가졌는지 알 수 없는 것들도 있네. 하지만 이제 내가 움직일 시간이 왔네. 모르굴 군주와 그의 흑기사들이 나타났지. 전쟁이 시작되고 있는 거라네!”

“그렇다면 그 흑기사들에 대해서 알고 계셨군요? 내가 그자들과 만나기도 전에 말이에요.”

“그래, 알고 있었네. 실제로 한번 자네에게 그자들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네. 흑기사들은 반지 유령이고 반지들의 지배자의 아홉 부하들이거든. 하지만 난 그자들이 다시 활동을 개시했는 줄은 몰랐네. 알았다면 즉시 자네를 데리고 달아났을 걸세. 난 6월에 자네 곁을 떠난 뒤에야 그자들 소식을 들었네. 하지만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해주겠네. 우선 당장은 우리가 아라고른 덕분에 재난을 모면한 셈이지.”

“그래요, 우리 목숨을 구한 것은 스트라이더였죠. 하지만 처음엔 그를 두려워했어요. 샘은 글로르핀델을 만나기 전까지는 계속 그를 믿으려 하지 않았죠.”

그 말에 간달프가 미소를 지었다. “샘에게서 다 들었지. 이젠 더 이상 의심하지 않고 있다네.” (P11-12)

영화 반지의 제왕 20.jpg

샘은 그를 데리고 몇 개의 통로를 지나고 수없이 많은 층계를 내려간 다음 가파른 강둑 위에 있는 정원으로 나섰다. 저택의 동편 현관에 친구들이 앉아 있었다. 발 밑 골짜기는 그늘져 있었지만 멀리 보이는 산꼭대기에는 아직 햇살이 남아 있었다. 공기는 따스했다. 졸졸 흐르다 어딘가로 떨어지는 물소리가 크게 들려왔고, 흡사 이곳 엘론드의 정원에만은 아직 여름이 머물고 있는 듯 저녁 대기 속으로 나무숲과 꽃의 희미한 향기가 떠돌고 있었다. 피핀이 그를 보고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만세! 여기 우리의 귀한 사촌께서 오시는군! 반지의 제왕 프로도님 지나가시게 길을 비켜라!”

“쉿!” 현관 뒤편 어둠 속에 있던 간달프가 말렸다. “지금 이 골짜기에는 사악한 것들이 들어와 있지 않지만, 그래도 함부로 그들의 이름을 발설해선 안 되네. 반지의 제왕은 프로도가 아니라 다시 세력을 뻗치고 있는 저 모르도르의 암흑탑 주인을 말하는 걸세! 우린 지금 요새에 앉아 있네. 저 바깥은 어두워지고 있고 말일세.”

“간달프님은 계속 저런 즐거운 얘기를 들려주고 계세요. 나를 얌전하게 만들려고 생각하시는 모양이지요. 하지만 이곳에선 왠지 음산한 생각을 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지금 이 순간에 딱 맞는 노래만 알고 있다면 노래를 불렀을 텐데.”

“나도 노래를 부르고 싶은걸.” 프로도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우선 뭘 좀 먹고 마셨으면 좋겠군!”

“그건 바로 준비될 거예요, 당신은 언제나처럼 영악스럽게도 식사 시간에 딱 맞춰 나타났으니까!” 피핀이 말했다.

“그냥 식사가 아니지! 잔치예요! 간달프님이 자네가 회복되었다고 말하자마자 잔치 준비가 시작되었다구요.”

메리가 그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그들을 홀로 부르는 종소리가 울렸다. (P19-20)

영화 반지의 제왕 21.jpg

엘론드는 얼굴을 보아선 늙은 것인지 젊은 것인지 도무지 나이를 알 수가 없었지만, 거기에는 기쁘고도 슬픈 수많은 일들의 기억이 서려 있었다. 머리는 석양의 그림자처럼 검은데 그 위에 은색 고리가 얹혀 있었다. 두 눈은 맑게 갠 저녁녘 같은 잿빛을 띠고 별빛인 양 반짝였다. 그는 이미 오래 전 왕좌에 오른 왕답게 숭고해 보이면서도 강하고 믿음직한 전사의 당당함도 갖추고 있었다. 그야말로 리벤델의 군주였으며 요정계와 인간계를 통틀은 강자였다.

탁자 가운데에 벽걸이를 배경으로 차양을 친 의자가 놓여 있고 거기 한 아름다운 여인이 앉아 있었는데, 흡사 엘론드를 여성으로 만들어놓은 모습처럼 꼭 닮아서 프로도는 그녀가 그의 가까운 친척일 거라고 짐작했다. 그녀는 젊어 보였는데 다시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았다. 땋아내린 그녀의 흑발에는 흰머리 하나 없었다. 하얀 팔과 맑은 얼굴은 흠 하나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매끄러웠고,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처럼 잿빛을 띤 반짝이는 두 눈은 별빛과 같았다. 그러면서도 여왕의 위엄이 있었으며 눈길에서는 오랜 세월 많은 일들을 겪었던 사람다운 생각과 지혜가 느껴졌다. 그녀는 하얗게 반짝이는 작은 보석들로 레이스처럼 엮은 은빛 모자를 이마에 얹어두고 있었지만, 부드러운 잿빛 의상에는 은으로 짠 나뭇잎 모양의 허리띠를 제외하면 아무런 장식도 달고 있지 않았다. (P21)

영화 반지의 제왕 22.jpg

엘론드가 앞으로 다가가 그 말없는 형체 옆에 섰다. 그러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 잠을 깨시오, 꼬마 친구!”

그러더니 엘론드는 이번에는 프로도를 보고 손짓을 하며 말했다. “이제 드디어 당신이 그토록 바라던 순간이 왔소, 프로도. 여기 당신이 오랫동안 보고 싶어하던 친구가 있다오.”

그때 검은 형체가 머리를 들고 얼굴을 가렸던 망토를 치웠다. 그 얼굴을 알아본 프로도가 소리치며 앞으로 뛰어갔다. “빌보님!”

“잘 있었느냐, 내 아들 프로도! 마침내 이곳에 도착했구나. 네가 그 일을 해내기를 바랐지. 좋아, 아주 잘했어! 내가 듣기론 이 모든 잔치가 바로 너를 축하해 주려는 것이라고 하더구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테지?”

“어째서 잔치에는 참석하시지 않았죠? 그리고 왜 진작 저를 만나시지 않았던 거예요?”

“네가 잠자고 있었기 때문이야. 사실 난 여러 번 너를 보았단다. 샘과 함께 매일 네 곁을 지키고 있었거든. 하지만 이제는 별로 잔치 같은 데 마음이 내키지 않는구나. 할 일도 좀 있었고.”

“뭘 하고 계셨는데요?”

“뭐 그냥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지. 요즘엔 주로 그렇게 시간을 보내거든. 그리고 그러기엔 이 장소가 더할 나위 없는 곳이고, 아니 그런데, 잠을 까라니요!” 빌보가 엘론드에게 한쪽 눈을 세워 보이면서 말했다. 프로도는 그 반짝이는 눈에서 졸음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잠을 깨라니! 난 자고 있었던 게 아니오, 엘론드님. 알고 싶으시다면 말인데 잔치석에서 너무 일찍 나오시는 바람에 한참 노래를 짓던 도중에 방해를 받았다오. 한두 구절에 막혀서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단 말이오. 하지만 이제 완전히 글러버리고 말았군요. 이제부터 온통 노래로 법석을 떨게 될 텐데 있던 생각마저 달아나 버리고 말거요. 내 친구 두나단의 도움을 받아야겠군. 그런데 그 친구는 어디 있소?”

엘론드가 웃음을 터뜨렸다.

“찾아오도록 하지. 그가 오거든 두 분이 한쪽 구석에 가서 일을 마저 끝내도록 하시오. 나중에 여흥이 모두 끝나기 전에 노래를 들어보고 심판을 하리다.”

그는 빌보의 친구를 찾도록 부하들을 내보냈지만 그가 어디 있는지, 어째서 잔치에는 참석하지 않았는지는 아는 이가 없었다. (P26-27)

영화 반지의 제왕 23.jpg

그러다 1년 전 한 사자가 다인을 찾아왔지만, 그자는 모리아의 사자가 아니라 모르도르의 사자였소. 한밤중에 한 기사가 문앞에 나타나 다인의 이름을 불렀던 거요. 그자는 사우론 대제께서 우리와 친교를 맺고자 한다고 말했소. 그 대가로 예전에 주었던 것과 같은 반지들을 주겠다고 했소. 그러면서 <호빗족>이 어떤 족속이며 어디에 살고 있는지를 알아내려고 다그쳤다오. 그자는 <사우론 대제께서는 예전에 그대들이 그들 족속 가운데 하나와 알고 지냈음을 알고 있소.>하고 말했소.

그 말에 우린 몹시 난처해져서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소. 그러자 그자는 그 무시무시한 음성을 낮추었는데,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부드러운 어조로 얘기할 수 있다는 투였소. “그리고 사우론 대제께서는 그대들로부터 아주 조그만 친교의 증표를 요구할 뿐이오. 즉, 그대들이 이 도둑놈을(그것이 그자의 표현이었소) 찾아내서 그자로부터 수단을 가리지 말고 그자가 예전에 훔쳐갔던 조그만 반지, 반지들 가운데 가장 하찮은 것 하나를 빼앗아 오는 것이오. 사우론 대제께서는 그대들의 성의 표시로 그런 하찮은 물건을 원할 뿐이오. 그 반지를 찾아오면, 저 옛날 난쟁이족의 소유였던 세 반지를 돌려줄 것이고 모리아 땅도 영원토록 그대들 소유로 해드리겠노라고 하셨소. 그 도둑놈이 아직 살고 있는지, 그렇다면 거기가 어디인지 알아오기만 해도 후한 상을 내리고 대왕과의 영원한 친교를 약속할 것이오. 거절한다면 뒷일이 좋을 리 없을 거요. 그러니 어떻게 하겠소?” 그자는 그렇게 말했소.

그러는 그자의 숨소리는 흡사 뱀이 쉿쉿거리는 것 같았소. 그 소리에 거기 있던 우리는 모두 몸을 떨었소. 그러나 다인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소. “지금으로서는 가부간에 대답을 할 수 없소. 우선 그 제안의 이면에 무슨 다른 의미가 있는지 생각을 좀 해봐야겠소.” (P44-45)

영화 반지의 제왕 24.jpg

남쪽의 곤도르 왕국은 그보다 오래 살아남았소. 그리고 한동안 멸망 직전 누메노르의 강성함을 연상시키는 영광을 누렸죠. 그들은 높은 탑, 견고한 요새, 수많은 선박이 드나들 수 있는 항구를 건설했소. 인간의 왕들이 쓴 날개 달린 왕관이 다른 많은 종족들로부터 경외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 말이오. 그들의 중심 도시는 <별들의 요새>라는 뜻의 오스길리아스였으며 그 복판으로는 강이 흘렀소. 그들은 <떠오르는 달의 탑>이라는 뜻의 미나스 이실을 건설했고 서쪽으로 백색산맥 기슭에는 <지는 태양의 탑>이라는 뜻의 미나스 아노르를 건설했소. 왕궁의 뜰에는 하얀 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그것은 이실두르가 심연을 건너오면서 가져온 씨앗에서 자란 나무였소. 그 나무 씨앗은 원래 에렛세아에서 온 것이고, 그 이전에는 태초의 서녘끝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오.

그러나 중원에서 세월이 빠르게 흐르면서 아나리온의 아들 메넬딜의 혈통이 끊어지고 나무는 시들었으며 누메노르족의 피가 열등한 인간들의 피와 섞이게 되었소. 그러던 어느 날 모르도르 성벽의 경비병이 잠든 사이에 시커먼 형체들이 고르고로스에 침투했소. 때가 되자 그 사악한 것들은 정체를 드러내고 미나스 이실을 습격, 그것을 차지하여 공포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렸다오. 그때부터 그곳은 <마술의 탑>, 즉 미나스 모르굴이라 불리었소. 그러자 미나스 아노르 역시 <수호탑>, 즉 미나스 티리스로 이름이 바뀌었소. 이 두 도시는 그 후로 끊임없는 전쟁을 벌였지만 그 사이에 있는 오스길리아스는 폐허가 되었고, 그 폐허 속으로 검은 그림자들이 활보하고 다니게 되었소.

결국 수많은 인명이 사라져갔소. 그렇지만 미나스 티리스의 군주들은 아르고나스로부터 바다에 이르는 강의 통로를 지키기 위해 우리의 적에 대항하여 지금도 싸움을 계속하고 있소이다. 이제 이것으로 내 이야기도 끝납니다. 이실두르 시대에 통치의 반지가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면서 세 반지는 그 지배에서 벗어나게 되었소. 하지만 오늘에 이르러 반지들은 다시 위험에 처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안타깝게도 유일반지가 발견됐기 때문이오. (P50)

영화 반지의 제왕 25.jpg

그런 다음 이실두르는 다음과 같이 반지를 발견했을 때 일을 적어놓았소.

“처음 반지를 잡아보았을 때 그건 몹시 뜨거웠다. 흡사 관솔불처럼, 난 손을 데고 말았다. 그래서 지금은 그 통증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하지만 글을 쓰는 사이에 반지는 식었고 좀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이나 모양에는 변함이 없다. 처음엔 빨간 불꽃처럼 선명했던 반지 위의 글자는 벌써 희미해지고 지금은 읽어보기도 어려울 정도다. 그건 에레기온의 요정 필체로 적혀 있는데, 아마도 모르도르에는 이런 정교한 작업에 적합한 필체가 없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나는 그 언어를 해독할 수가 없다. 나는 그것이 암흑의 땅에서 쓰는 말이리라고 짐작한다. 왜냐하면 모양이 엉성하고 투박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어떤 사악한 내용이 적혀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지 않도록 여기에 기록해 놓겠다. 이 반지는 어쩌면 사우론의 뜨거운 손을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손은 시커먼 데다 불처럼 타오르고 있었으니까. 길갈라드 역시 그 손에 죽지 않았던가? 이 황금 반지를 다시 달군다면 거기에 적힌 글자가 다시 선명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로서는 더 이상 이 반지를, 사우론의 모든 작품 중에서 유일하게 아름다운 이것을 망칠 모험을 할 생각이 없다. 비록 이것 때문에 적지 않은 고통을 겪긴 했어도 이 반지는 내게 소중한 보물이다.”

그 글을 읽는 순간 내 원정도 끝이 났소. 왜냐하면 거기에 적힌 글은 이실두르가 짐작한 대로 모르도르와 그 탑의 종복들의 언어로 씌어진 것이었기 때문이오. 그리고 거기에 적힌 내용은 이미 해독되었소. 사우론이 처음 그 유일반지를 손에 긴 날 세 반지의 장인인 켈레브림보르가 사우론이 하는 말을 멀리서 들었기 때문이오. 이렇게 해서 그자의 사악한 의도는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던 거요. (P63-64)

영화 반지의 제왕 26.jpg

“그렇소, 백색의 사루만, 당신의 도움을 구하러 온 거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 호칭이 그를 화나게 한 것 같았소.

“회색의 간달프, 당신이 정말 도움을 청하러 왔다는 거요?” 그가 비웃듯이 말했소. “회색의 간달프가 도움을 청하다니 거참 듣기 힘든 일인걸. 그렇게 교활하고 지혜로운 마법사, 온 땅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일이든 남의 일이든 온갖 일에 참견하는 당신이 말이오.”

그런 그를 보게 되자 의아한 생각이 들었소. “내가 잘못 안 것이 아니라면 현재의 상황은 우리 모두의 힘을 한데 집결시켜야 할 만큼 다급하게 돌아가고 있소.”

“그럴 수도 있겠지” 하고 사루만이 말했소. “하지만 너무 늦게 깨달은 것 같군. 당신은 회의의 의장인 나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그 문제를 대체 얼마 동안이나 숨겨왔던 거요? 그리고 무엇 때문에 이제 와서 샤이어의 은신처에서 고개를 내민 거요?”

“9인의 무리가 다시 나타났소. 그자들은 강을 건넜소. 라다가스트가 그렇게 말했다오.”

“갈색의 라다가스트가 그렇게 말했단 말이지?” 그러면서 사루만은 웃음을 터뜨렸소. 그는 이제 아예 드러내놓고 조롱을 퍼부었소. “새나 길들이는 라다가스트! 숙맥 라다가스트! 얼간이 라다가스트! 하지만 내가 맡긴 일만큼은 제대로 한 모양이군. 당신이 나타났으니 말이오. 내가 보낸 전갈이 바로 그것이었소. 자, 회색의 간달프, 여기 묵으면서 여독을 푸시오. 나는 현자 사루만, 반지 장인 사루만, 다색(多色)의 사루만이라오!”

나는 그제서야 흰색인 줄로만 여겼던 그의 옷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소. 그 옷은 여러 색을 입힌 것이었는데 그가 움직일 때마다 갖가지 색조로 반짝거려서 눈이 어지러울 정도였소.

“흰색이 훨씬 더 좋았는데.” 하고 내가 말했소.

“흰색이라고?” 그는 냉소했소. “그건 처음 시작할 때뿐이오. 흰 천은 염색될수 있소. 흰 종이엔 뭔가 씌어질 수 있고, 흰빛은 쉽게 사라지게 마련이오.”

“그런 경우엔 더 이상 흰색이 아니오. 그리고 어떤 것의 본질을 찾는다는 명목으로 그것을 파괴하는 자는 이미 지혜의 길을 벗어난 거요.” 내가 말했소.

“당신이 친구로 여기는 멍청이들에게 하는 소리를 내게 떠들어댈 필요는 없소. 당신 가르침을 받으려고 여기로 부른 건 아니니까 말이오. 내가 당신을 부른 이유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요.” (P72-73)

영화 반지의 제왕 27.jpg

“난 이 모든 얘기를 이해할 수가 없소. 사루만은 비록 배신자이지만 섬광 같은 지혜를 번뜩이고 있소. 어째서 여러분은 감추거나 파괴하는 얘기만 하는 거요? 어째서 그 위대한 반지가 바로 지금처럼 절실한 순간에 우리 손아귀에 들어왔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거요? 그 반지를 사용할 경우 우리 자유국의 군주들은 마왕을 물리칠 수 있을 거요. 내 생각에는 그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도 그것일 것 같소.

곤도르인들은 용맹스러우며 결코 적에게 굴복하지 않소. 하지만 지금으로선 패배할 수도 있소. 용맹에는 먼저 힘이 필요하고 두 번째로는 무기가 필요한 법이니까 말이오. 반지가 그렇게 대단한 위력을 갖고 있다면 그 반지를 무기로 씁시다. 그 반지로 승리를 쟁취하잔 말이오!”

“아아, 그건 안 될 말씀이오.” 엘론드가 말했다. “우린 통치 반지를 사용할 수 없소. 그건 이제 우리 모두가 너무나 잘 아는 사실이오. 그 반지는 사우론의 것으로서 그자 혼자서 만든 것이며 전적으로 사악한 물건이오. 보로미르, 그 힘은 너무나 강해서 이미 스스로 위대한 힘을 갖추고 있는 인물이라면 모를까 그 누구도 자기 뜻대로 그 위력을 지배할 수가 없을 정도요. 그러나 그만큼 위대한 이에게도 그 반지는 훨씬 더 치명적인 위험을 끼치게 될 것이오. 반지에 대한 욕망 자체가 마음을 썩게 만들기 때문이오. 사루만을 보시오. 만약 현자 중 누군가가 이 반지를 갖게 된다면 그 자신의 지혜를 써서 모르도르의 군주를 물리칠 수 있겠지만, 그 다음에는 자신이 사우론의 권좌에 앉게 될 거요. 그러면 또 다른 암흑의 제왕이 탄생하는 셈이오. 그것이 반지를 파괴해야 할 또 다른 이유인 것이오. 이 반지가 존재하는 한 그것은 현자들에게조차 위험하기 그지없는 물건이니까 말이오. 어떤 것도 처음부터 악한 것은 없소. 사우론 역시 처음부터 악했던 것은 아니었소. 내겐 감추기 위해 반지를 만지는 일조차 두렵소. 그 반지의 위력을 쓰기 위해 그것을 만질 생각은 추호도 없소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요.” 간달프가 말했다.

보로미르는 의심쩍은 눈길로 그들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그렇다면 할 수 없는 일이로군요. 곤도르에서는 현재 갖고 있는 무기에 의지할 수밖에, 그리고 적어도 현자들이 이 반지를 지키고 있는 동안 우린 계속해서 싸울 거요. 어쩌면 <부러진 검>이 형세를 바꿔놓을지도 모르오. 그 칼을 넘겨줄 손이 단지 가보만 물려준 게 아니라 대대로 인간의 왕들이 지녔던 힘까지 전해 준 것이라면 말이오.”

“그거야 알 수 없는 일이지. 하지만 언젠가는 그것을 시험해 볼 생각이오.” 아라고른이 말했다. (P86-87)

영화 반지의 제왕 28.jpg

“그자가 뭘 예측하는지는 알 수 없소. 그자는 어쩌면 가능성이 있는 길은 물론이거니와 가능성이 없는 길까지 감시하고 있을 거요. 그렇다면 모리아로 들어간다는 것은 함정 속으로 들어가는 셈이 되오. 암흑탑의 문을 두드리는 일이나 다를 바 없는 일이란 말이오. 모리아란 이름은 절망 그 자체요.” 보로미르가 말했다.

“모리아를 사우론의 요새로 비유한다는 것은 당신이 그걸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얘기요.” 간달프가 대꾸했다. “이중에서 암흑 제왕의 토굴 감옥에 있어본 것은 나뿐이오. 난 돌 굴두르에 있던 그자의 예전 근거지에도 가본 적이 있소. 바랏두르의 문을 지나간 사람 중에 돌아온 자는 없소. 그렇지만 출구가 있을 가망이 없다면 내가 여러분을 모리아로 안내할 리가 없지요. 그곳에 오크들이 있다면 좀 고초를 겪게 되리라는 건 사실이오. 하지만 안개산맥에 있던 오크족은 대부분 다섯 군대의 전투 당시 뿔뿔이 흩어지거나 죽고 말았소. 독수리들 얘기론 오크들이 멀리서부터 다시 한데 모여들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 모리아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 같소.

게다가 난쟁이족이 아직 있을 가능성도 있소. 어쩌면 조상의 전당 깊숙한 곳에서 푼딘의 아들 발린과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오. 설혹 어떤 결과가 난다고 해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길이라면 가야 할 거요!”

“난 당신과 함께 가겠소, 간달프! 거기서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더라도 두린의 전당에 가보고 싶소. 닫힌 문을 찾을 수만 있다면 말이오.” 김리가 말했다. (P129-130)

영화 반지의 제왕 29.jpg

달빛이 회색 바위 표면을 비추고 있었지만, 그들의 눈에는 한동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얼마 후 마법사의 손이 지나갔던 바로 그 표면에 서서히 희미한 선들이, 마치 은광석의 가느다란 은빛 광맥처럼 나타났다. 처음엔 너무나 가늘어서 달빛에 희미하게 반짝이는 창백한 거미줄에 불과했던 선이 차츰차츰 굵고 뚜렷해지면서 전체 모양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까지 되었다.

간달프의 키가 닿는 맨 위쪽에는 요정 문자로 된 문장이 아치를 이루고 있었다. 그 아래쪽에 군데군데 선이 흐릿하거나 깨져 있긴 했지만 일곱 개의 별과 왕관, 그리고 그 밑으로는 모루와 망치 문양의 윤곽이 보였다. 다시 그 밑으로 수많은 초승달이 달려 있는 나무가 두 그루 있었다. 문 한복판에는 별 하나가 이 모든 것들보다 훨씬 선명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두린의 상징물들이 그려져 있소!” 김리가 소리쳤다.

“상위요정의 나무도 보이는데!” 레골라스가 말했다.

“페아노르 가문의 별도 있소이다.” 간달프가 말했다. “이 그림은 별빛과 달빛 만을 반사하는 이실딘이라는 재료로 세공한 것이오. 까마득한 옛날 중원에서 쓰이던 말을 할 줄 아는 자가 만져야만 보이게 되어 있소. 그 말을 들은 자가 너무 오래 되어서 기억하는 데 애를 먹었다오.”

“그런데 저 글은 무슨 뜻인가요? 저도 요정 문자를 약간 알고 있지만 이건 도무지 읽을 수가 없군요.” 아치 위에 새겨진 글자를 해독해 보려던 프로도가 물었다.

“저 글은 고시대 중원의 서쪽 지역에서 쓰이던 요정 문자일세.” 간달프가 대답해 주었다. “하지만 그닥 중요한 말은 아냐. <모리아의 군주 두린의 문. 친구여. 말을 하고 안에 들어가라> 하는 내용일세. 그리고 그 밑에 좀더 작고 희미한 글자로 적힌 것은 <나, 나르비가 이 문을 만들고 홀린의 켈레브림보르가 그림을 그렸다>라는 내용이라네.”

“<친구여, 말을 하고 안에 들어가라> 하는 건 무슨 뜻입니까?” 메리가 물었다.

“그건 뻔한 게 아니겠소? 그대가 친구라면 암호를 말하라. 그러면 문이 열릴 것이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김리가 말했다. (P143)

영화 반지의 제왕 30.jpg

반지의 일행은 발린의 무덤 옆에 말없이 서 있었다. 프로도는 빌보와 그 난쟁이의 오랜 우정을, 오래 전 샤이어를 방문했던 발린을 생각했다. 먼지 자욱한 이 산속의 방에선 그것이 흡사 천년 전 다른 세상에서 일어났던 일만 같았다.

마침내 그들은 몸을 움직이며 주위를 둘러보고 발린의 운명이나 그의 부하들이 어떻게 됐는지에 대해 뭐든 알려줄 만한 것이 없는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석실 맞은편 서까래 바로 아래에 또 하나의 작은 문이 나 있었다. 그들은 그제서야 두 개의 문 근처 여기저기에 뼈들이 있고 그 사이에 부러진 칼과 도끼날, 쪼개진 방패와 투구 따위가 흩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떤 칼은 구부러져 있었는데, 그것은 오크족이 쓰는 칼날이 시컴번 언월도였다.

바위벽 여기저기에 벽감이 있고 그 곳에 쇠테를 두른 큼직한 궤짝들이 들어 있었다. 궤짝들은 모두 부서지고 약탈당한 흔적이 역력했다. 그러나 어느 궤짝의 부서진 뚜껑 옆에 거의 망가진 책 한 권이 놓여 있었다. 여기저기 칼질이 된 데다 일부가 불에 타고 오래된 피 같은 거뭇한 얼룩이 져 있어 거의 읽을 수 없을 정도였다. 간달프는 조심스럽게 그 책을 들어올렸지만 석판에 내려놓는 것만으로도 책장들이 부스러졌다. 그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그 책을 주의깊게 살펴보았다. 곁에 서 있던 프로도와 김리는 마법사가 신중한 손길로 책장을 넘기는 동안 그것이 여러 개의 필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모리아와 데일의 룬 문자로 씌어져 있고 군데군데 요정 문자가 섞여 있다는 사실을 알아볼 수 있었다. 마침내 간달프가 고개를 들었다.

“이건 발린 일행의 운명이 담긴 기록처럼 보이오. 약 30년 전 딤릴 계곡에 오면서부터 시작된 원고인데, 페이지마다 도착 이후의 햇수를 뜻하는 숫자가 적혀 있소. 맨 처음 페이지에 1-3이라는 숫자가 있는 것으로 봐서 적어도 처음 두 장은 없어진 모양이오. 한번 들어보시오!

<우린 큰문에서 오크족을 몰아냈으며.....> 그 다음 말은 흐리고 불에 탔소. 아마도 <방을 지켰다>는 말인 것 같소이다. <우린 눈부신 햇살 속에서 많은 적들을 죽였다. 플로이가 화살에 맞아 죽었다. 그는 대장의 목을 베었다.> 그런 다음 이런 내용이 나오는군. <플로이는 거울호수 근처 풀밭에....> 그 다음 한두 줄은 읽을 수가 없소. 그 뒤에는 <우린 북단 스물한번에 홀을 차지하여 거처로 삼았다. 여기에는.....> 그 다음 말은 읽을 수 없소. <환기갱>이라는 낱말이 있소. 그리고는 <발린은 마자르불의 방에 자리를 잡았다.>는 말이 있소.”

“기록실을 말하는 거요.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있는 이 석실일 겁니다.” 김리가 말했다. (P167-168)

영화 반지의 제왕 31.jpg

“자, 지금이 기회요! 트롤이 돌아오기 전에 어서 빠져나갑시다!” 간달프가 외쳤다.

하지만 그들이 퇴각하려는 순간, 피핀과 메리가 바깥 층계에 채 도달하기도 전에 거의 인간만한 키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시커먼 쇠미늘 갑옷을 입은 거대한 오크 우두머리가 석실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의 등뒤로 부하들이 몰려들어 왔다. 넙적한 얼굴은 시커멓고 두 눈은 석탄처럼 이글거렸으며 혓바닥은 새빨갰다. 그놈은 거대한 창을 휘둘러대며 커다란 가죽 방패를 홱 내밀어 보로미르의 검을 막는 한편 그를 뒤로 몰아 땅바닥에 쓰러뜨렸다. 이어서 몸을 숙여 달려드는 뱀인 양 놀라운 속도로 날아든 아라고른의 일격을 피한 그놈은 일행 속으로 뛰어들며 창으로 곧장 프로도를 찔렀다. 오른쪽 옆구리에 창을 맞은 프로도는 벽으로 나동그라져 움직이지 못했다. 다음 순간 샘이 버럭 고함을 지르며 칼로 창대를 후려쳐서 부러뜨렸다. 그 오크가 부러진 창대를 팽개치고 언월도를 뽑으려는 순간 이번에는 안두릴이 그놈의 투구를 내리쳤다. 불꽃과 함께 섬광이 일면서 투구가 두 조각이 났다. 머리가 쪼개진 오크는 바닥에 쓰러졌다. 그것을 본 부하 오크들은 보로미르와 아라고른이 달려드는 기세에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버렸다.

방, 방, 심연 어딘가에서 북소리가 났다. 곧 이어 누군가 벽력같이 소리를 질렀다. 간달프였다.

“자! 지금이 마지막 기회요. 어서 달아납시다!”

아라고른은 벽 아래 쓰러진 프로도를 번쩍 안아들고 앞에 있는 메리와 피핀을 밀어제치며 층계 쪽으로 뛰어갔다. 다른 일행도 그 뒤를 따랐다. 그러나 김리는 레골라스가 강제로 끌어내야 했다. 이런 위험한 순간에도 김리는 고개를 숙인 채 발린의 무덤 옆에서 얼쩡대고 있었던 것이다. 보로미르가 돌쩌귀에 달린 동쪽 문을 잡아당겼다. 그 문에는 양쪽으로 커다란 쇠고리가 달려 있었지만 잠글 수는 없었다.

“난 괜찮소. 걸을 수 있으니 내려놓으시오!” 프로도가 헐떡이며 말했다.

아라고른은 깜짝 놀라 하마터면 프로도를 떨어뜨릴 뻔했다. “당신이 죽은 줄 알았소!”

“아직 죽지 않았군!” 간달프가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놀라고 있을 때가 아니오. 모두 층계 밑으로 내려가시오! 밑에서 잠시 나를 기다리다가 내가 오지 않으면 길을 계속 가시오! 오른쪽으로 내리막길을 찾아서 서둘러 가야 하오.”

“당신 혼자서 문을 막도록 내버려두고 갈 순 없소!” 아라고른이 말했다.

“시키는 대로 하시오!” 간달프가 성난 어조로 말했다. “여기서 칼은 아무 쓸모가 없소. 자, 가시오!” (P173-175)

영화 반지의 제왕 32.jpg

이윽고 일행이 모두 실버로드 강의 동쪽 둔덕에 오르게 되자 요정들은 밧줄 두 줄을 풀어 둥글게 감았다. 강 건너편에 남아 있던 루밀이 나머지 밧줄 하나를 거두어들여 어깨에 메고는 손을 흔들어 보인 다음 망을 보기 위해 님로델로 돌아갔다. 할디르가 말했다.

“자, 친구들. 여러분께서는 이제 로리엔의 나이스에 들어오셨소. 이 땅은 실버로드의 흐름과 큰강 안두인 사이에 창끝처럼 생긴 모양을 하고 있어서 <삼각지>라고 부른다오. 나이스의 비밀을 염탐하지 못하도록 이방인들에게는 출입이 금지된 곳이오. 실제로 이곳에 발을 들여놓았던 이방인은 거의 없다오.

우리가 약속한 대로 이제 난쟁이족인 김리의 눈을 가려야 할 것 같소이다. 다른 분들은 강물 사이의 모서리에 있는 에글라딜의 우리 처소에 가까워질 때까지 얼마 동안은 자유롭게 가셔도 좋소.”

그건 김리로선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 약속은 나의 동의 없이 이루어진 거요. 난 거지나 죄수처럼 눈을 가리고 걷지 않을 거요. 그리고 난 염탐꾼이 아니오. 우리 종족은 마왕의 부하들과는 아무 관련도 없소. 또 요정들에게 해를 끼친 적도 없었고 말이오. 그리고 내가 레골라스나 다른 동료들을 배신한 적이 없으니 당신을 배신할 리도 없소이다.”

“당신을 의심하는 건 아니오. 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법이라오. 내가 그 법을 만들지 않았으니 나로서는 어길 수가 없소이다. 이미 당신이 켈레브란트에 발을 들여놓게 한 것만으로도 큰 호의를 베푼 것이오.” (P207-208)

영화 반지의 제왕 33.jpg

그때 갑자기 흡사 시야에 구멍이 뚫리기라도 한 듯 거울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프로도는 아무것도 없는 그 빈 구멍을 들여다보았다. 그 시커먼 심연 속에 눈 하나가 나타나더니 서서히 커져 거의 거울 전체를 덮을 정도가 되었다. 그 광경이 너무나 무서워서 프로도는 비명을 지르거나 시선을 돌릴 생각도 하지 못하고 못박힌 듯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가장자리에 불로 테가 둘린 그 눈알은 고양이의 눈처럼 노랗게 번들거리며 경계심과 주의에 차 볼 것을 찾고 있었다. 가늘게 째진 까만 동공이 구멍처럼 열리면서 무(無)가 들여다보였다.

다음 순간 눈알이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프로도는 그 눈알이 바로 그 자신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와 동시에 그것이 자신을 볼 수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그랬다. 그 자신이 원치 않는 한 눈알은 프로도를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때 목에 걸린 반지가 커다란 돌멩이처럼 무거워지면서 고개가 점차 앞으로 수그러졌다. 거울이 점점 뜨거워지면서 수면에서 김이 올라왔다. 그는 앞으로 고꾸라지려 했다.

“물을 건드리지 마세요!” 갈라드리엘 마님이 나직하게 속삭였다. 그 순간 영상이 사라지고, 프로도의 눈앞에 놓인 은색 수반에서는 싸늘한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는 온몸을 후들후들 떨며 뒷걸음질을 치다가 그녀를 쳐다보았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본 것이 무엇인지 나도 알고 있어요. 그것이 내 마음속에도 떠올랐거든요. 겁낼 것 없어요! 하지만 나무숲 속에서 부르는 노래나 요정의 가냘픈 화살만으로 이 로스로리엔을 마왕의 손아귀에서 지킬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지도 마세요. 프로도, 지금 이 말을 하는 순간에도 나는 암흑의 제왕을 느끼고 있어요. 그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또 요정들을 어떻게 하려고 하는지 알고 있지요. 그자 역시 나를 보려고 하고 내 생각을 읽으려 한답니다. 하지만 아직 그 문은 굳게 닫혀 있지요!”

그녀는 하얀 두 팔을 들어올리더니 마치 거부하고 부인하듯 동쪽을 향해 밀어내는 몸짓을 했다. 요정들이 가장 사랑하는 별, 저녁별 에아랜딜이 하늘 위에서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 별빛이 어찌나 밝은지 서 있는 요정의 희미한 그림자가 땅에 비칠 정도였다. 별빛이 그녀의 손가락에 낀 반지에 반짝였다. 반지는 은빛이 많이 섞인 금빛을 띠고 있었으며, 거기 박힌 하얀 보석은 마치 그 별이 그녀의 손에 내려오기라도 한 것처럼 빛을 뿜고 있었다. 프로도는 놀란 눈으로 그 반지를 응시했다. 문득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래요.” 그가 하고 있는 생각을 읽은 갈라드리엘이 말했다. “그 얘기는 원래 하면 안 되는 것으로, 엘론드님도 말할 수 없었을 거예요. 하지만 반지의 사자이며 눈동자를 본 당신 앞에서는 숨길 수가 없군요. 이 로리엔 땅 갈라드리엘의 손가락에 있는 반지는 바로 남아 있는 세 반지 중 하나랍니다. 이것은 금강 반지인 네냐이며 내가 그 주인이지요.

그자는 의심은 하고 있지만 알지는 못하고 있어요. 아직까지는 말이에요. 이제 어째서 당신이 찾아온 일이 우리에게 파멸의 발소리가 되는지 아시겠어요? 당신이 실패하면 우린 마왕 앞에 고스란히 노출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당신이 성공한다 해도 우리의 힘은 줄어들고 로스로리엔은 쇠락하여 세월의 파도에 씻겨나가고 말 거예요. 우린 서쪽으로 떠나든가 골짜기나 동굴 속의 이름없는 족속으로 전락하여 세상 일을 서서히 잊고, 또 잊혀질 테지요.”

프로도가 고개를 숙였다. 이윽고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면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일이 마땅히 되어야 하는 방향대로 되는 거예요.” 그녀가 대답했다. (P235-236)

영화 반지의 제왕 34.jpg

이미 정오를 한참 지난 태양이 바람 부는 하늘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갇혔던 강물이 길쭉한 타원형의 호수 낸 히소엘 속으로 퍼지듯 밀려들었다. 그 호수를 에워싼 가파른 회색 산들에는 나무가 우거졌으나 봉우리 끝은 헐벗은 채 햇살속에 차갑게 빛났다. 멀리 남쪽 끝에 산봉우리 세 개가 우뚝 서 있었다. 복판에 있는 봉우리가 다른 것들에서 떨어진 채 약간 앞으로 튀어나와 있어 호수 속에 뜬 섬처럼 보였다. 강물은 하얗게 반짝이는 팔처럼 그 섬을 에워싸듯 흘렀다. 그때 멀리서 흡사 천둥처럼 깊이 울리는 소리가 바람에 실려왔다.

“톨 브란디르를 보시오!” 아라고른이 남쪽의 산봉우리들 중 우선 높은 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왼쪽에 있는 것이 아몬 라우, 오른쪽이 아몬 헨이오. 각각 <청각의 산>, <시각의 산>이라오. 위대한 왕들의 시절에는 저 위에 망루가 있어 파수꾼이 지키고 있었소. 하지만 그 후론 지금껏 인간이나 짐승의 발이 저 톨 브란디르를 디딘 적은 없었다고 하오. 밤이 오기 전에 저곳에 이르게 될 거요. 내 귀에는 라우로스가 부른느 소리가 끝없이 들려오는구려.”

그들은 배가 흐름을 타고 남쪽 호수 중심부를 향해 떠내려가도록 맡겨둔 채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약간의 음식을 먹은 다음 다시 노를 잡아 속력을 냈다. 서쪽 산기슭은 어둠에 묻혔고 태양은 둥글고 붉게 바뀌었다. 여기저기서 물기 어린 별들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황혼 속에 검게 보이는 세 개의 산 봉우리가 그들의 눈앞에 높다랗게 다가들었다. 라우로스 폭포가 우렁찬 소리를 내고 있었다. 여행자들이 마침내 산의 어둠 아래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밤의 어스름이 흐르는 강물 위까지 내려와 있었다.

열흘째의 여행이 끝났다. 윌더랜드는 이제 그들 뒤에 있었다. 여기서는 동쪽인지 서쪽인지 결정하기 전에는 더 이상 길을 갈 수 없었다. 원정의 마지막 단계가 남은 셈이었다. (P281-282)

영화 반지의 제왕 35.jpg

“어째서 내게 그토록 반감을 갖고 있는 거지? 난 도둑도 아니고 사냥개도 아냐. 진실한 인간이라구. 이제 너도 알게 되었지만, 난 네가 갖고 있는 그 반지가 필요해. 하지만 내가 아주 가질 생각은 없다고 약속하겠어. 내 계획을 시험해 볼 수 있도록 해주지 않겠나? 반지를 내게 빌려줘!”

“그건 안 될 말이오! 회의에서는 내게 그 반지를 맡겼소.” 프로도가 외쳤다.

“마왕이 우리를 쳐부순다면 바로 우리의 우둔함 탓일 거야.” 보로미르가 외쳤다. “정말 화가 나는군! 이 멍청이같으니! 고집스러운 바보! 제멋대로 사지에 뛰어들어 우리를 파멸시키려 드는군. 만약 그 반지의 소유권이 인간에게 있는거라면 그건 반인족이 아니라 누메노르인의 것이라야 해. 어떤 불운으로 네놈에게 떨어진 것뿐이다. 내 것이 될 수도 있었어. 아니, 내 것이 되어야만 해. 반지를 내놔!”

프로도는 아무 대꾸도 없이 커다란 바위가 그들 둘 사이에 오도록 자리를 바꾸었다.

“자, 자, 친구!” 보로미르가 한층 부드러운 소리로 말했다. “어째서 그걸 없애지 않는 건가? 어째서 그 모든 의심과 두려움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 거지? 원한다면 자네가 진 짐을 내게 넘기라구. 내가 너무 힘이 세서 무력으로 빼앗았다고 하면 돼. 아무튼 내 힘에 비하면 반인족인 자네는 아무것도 아니지.”

이렇게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보로미르는 바위 위로 뛰어오르더니 프로도를 향해 달려들었다. 잘생긴 그 얼굴은 무시무시하게 바뀌어 있었고 두 눈에서는 사나운 불길이 이글거렸다.

프로도는 옆으로 재빨리 몸을 피하여 다시 그들 사이에 바위가 오도록 만들었다. 여기서 그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 밖에 없었다. 그는 보로미르가 다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순간 떨리는 손으로 줄에서 반지를 빼어 재빨리 손가락에 끼었다. 보로미르는 입을 딱 벌리고 놀란 눈으로 그가 있던 자리를 쳐다보다가는 바위와 나무 사이를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프로도를 찾았다.

“이 괘씸한 사기꾼같으니!” 보로미르가 악을 썼다. “내 손에 걸리기만 해봐라! 이제야 네놈의 속셈을 알겠다. 넌 그 반지를 사우론에 갖다바치고 우리 모두를 팔아넘길 작정이었지. 네놈은 우릴 곤경에 빠뜨릴 기회만 노리고 있었던 거야. 네놈과 모든 반인족에게 죽음과 암흑의 저주를 내리겠다!” 다음 순간 보로미르는 돌부리에 발이 걸려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는 자신이 내린 그 저주가 자신에게 떨어지기라도 한 듯 한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엎드려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벌떡 일어나 손으로 눈물을 닦았다. “내가 무슨 소릴 지껄인 거지? 내가 무슨 짓을 했담? 프로도, 프로도!” 보로미르가 큰소리로 불렀다. “돌아오시오! 내가 잠시 미쳤던 모양이지만 이젠 괜찮소. 어서 돌아오시오!”

아무 대답도 없었다. 프로도는 그가 부르는 소리를 듣지도 못했다. (P290-2921)

영화 반지의 제왕 37.jpg

프로도의 귀에 자신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안 돼! 절대로 안 돼!> 아니면 이런 말이었을까? <가겠어, 기꺼이 가겠어.> 프로도는 어느쪽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다음 순간 흡사 섬광처럼 힘의 다른 지점 어딘가로부터 그의 마음속으로 또 하나의 생각이 뛰어들었다. <그걸 빼! 반지를 빼라구! 이 멍청아, 반지를 빼란 말이야. 어서 반지를 빼라니까!>

마음속에서 두 개의 힘이 싸우고 있었다. 한순간 그는 예리한 두 힘의 끄트머리에서 가까스로 균형을 잡은 채 몸을 비틀며 괴로워했다. 다음 순간 그는 자신의 존재를 다시금 의식했다. 목소리도 눈동자도 아닌 프로도 자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자신을, 이제 선택할 수 있는 시간도 한순간뿐이었다. 그는 손가락에서 반지를 뺐다. 그러곤 눈부신 햇빛을 받으며 망루 바로 앞에 무릎을 꿇었다. 검은 그림자는 거대한 팔뚝처럼 그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아몬 헨을 보지 못한 채 서쪽으로 멀어져갔다. 다음 순간 하늘이 다시 맑고 푸르게 밝아오고 나무에서 새들이 지저귀기 시작했다.

프로도는 일어섰다. 피로감이 엄습했으나 그의 의지는 단호했고 마음은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그는 소리내어 중얼거렸다.

“이제 해야 할 일을 하겠어. 적어도 이것만은 분명해. 반지의 사악한 힘이 벌써 우리 일행 속에도 작용하기 시작했다는 거야. 그러니 반지가 더 이상 무슨 해를 끼치기 전에 일행 곁을 떠나야 해. 난 혼자 가겠어. 일행 중에는 믿을 수 없는 자들도 있고, 믿을 수 있으며 내겐 너무 소중한 이들도 있지. 가엾은 샘, 메리, 피핀, 그리고 스트라이더. 그는 내심 미나스 티리스로 가고 싶어하지. 이제 보로미르도 악의 손길에 떨어졌으니 스트라이더는 그곳에 필요한 존재가 되겠지. 난 혼자 가겠어. 지금 당장.”

그는 재빨리 길을 타고 내려가 보로미르가 자신을 발견했던 풀밭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아래쪽 강변의 숲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나를 찾고 있을 거야. 내가 얼마 동안이나 이곳에 있었던 거지? 몇 시간은 됐겠는걸.” 그렇게 중얼거리며 프로도는 우물쭈물했다. “어떻게 해야 한담? 지금 가지 않으면 결코 가지 못할 거야. 두 번 다시 기회가 생기지 않을 거야. 그들 곁을 떠나기 싫어. 이런 식으로 아무 해명도 하지 않고 떠나는 게 싫어. 하지만 그래도 이해해 주겠지. 샘은 이해할 거야. 달리 어쩔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천천히 반지를 꺼내 다시 한번 손가락에 끼었다.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는 바람소리조차 내지 않고 산 아래로 내려갔다. (P293-294)

영화 반지의 제왕 36.jpg.jpg
yhro95%40naver.com


매거진의 이전글제인 오스틴의 <이성과 감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