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 적천리설適千里說
今夫適千里者, 금부적천리자
必先辨其徑路之所在, 필선변기경로지소재
然後有以爲擧足之地, 연후유이위거족지지
- 玩堂先生全集卷一, 說 適千里說완당선생전집권1, 설 적천리설(김정희 완당집 천리길을 가자면)
예전에 개봉동에서 흑석동 학교까지 걸어가곤 했던 버릇은 술이 어느 정도 취해 취기가 올라오면 걸었다. 택시비도 없고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만으로 무작정 걸었다. 걷다보면 술도 깨고. 밤에 걸을 때는 낮에 걸을 때와는 다른 풍경을 가진다. 어두운 골목길도 있고, 도시의 불빛은 길을 안내해주는 별빛과도 같다. 여하튼 차를 타고 휭하니 지나가면 보지 못했던 광경들이 눈 앞에 펼져진다. 사진을 찍을려면 멈춰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에 사람이 걸을 수 있는 것이 천리이겠지. 마라톤 선수들이야 2시간만에 천리를 가겠지만, 뛰는 것이 아니라 걸어간다고 그리고 잠시 쉬기도 하고. 훈련으로 천리행군을 하는 건 아니지만 천리는 내가 사진을 찍으며 생각에 잠기는 길이기도 하다. 길은 끝이 없다. 잠시 쉴 뿐이다. 도착점이 없는 길. 마냥 걸어가는 길. 길바닥인생에 뚜벅이는 그 길을 걸어간다. 기타를 둘러메고 가듯이, 사진기를 어깨에 메고 걷는다. 그것이 수행修行이고 공부工夫다.
로드뷰할때도 하루 10만장을 찍으면서, 올해는 대상체 하나를 3,500장의 사진을 찍는다. 똑같은 장면은 없다. 시간이 다르고, 각도가 다르다. 똑같은 사람도 시시각각 다르다. 똑같은 그 길도 매일 매일 다르다. 사진이 주는 감동과 기쁨은 모두 다르게 전달된다. 어떤 사진이 좋은 사진인지 매일 묻지만, 결국 나만의 사진을 찾기 위해 그 길을 걸어갔는지 모르겠다. 저마다 자신의 사진을 찾기 위한 구도求道의 길이다. 많은 사진을 찍었지만 아직도 찍어야 할 것이 많이 남은.
송정역에서 기차를 세워(내가 세운 것 아님) 논두렁길을 뛰어 조선대까지 뛰어 갔던 날. 달리기에는 자신만만했던 젊은 시절. 그랬던 과거도 20년이 지나고 광우병 집회때는 서울의 길거리를 쫓아다닐 때 어느 순간 무릎이 뚝 소리가 나더니 전방십자인대가 끊어졌었다. 그래도 수술이 잘 되어 이렇게 걸어다닐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사진쟁이의 생명은 건강일 것이다. 몸을 움직일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가 말이다. 사진을 찍는 다는 것은 아마도 길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고, 그 길 위에 내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사진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도 다시 보면 깜짝 깜짝 놀랄때가 많다. 그만큼 사진이 많은 걸 담고 있구나 생각이 든다. 매일 똑같은 풍경도, 같은 사진도 그 속에 얼마나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지. 시간이 지나면 그 깊이는 더해져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길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걸었던 길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걸어갔겠지, 또 다른 사람들이 이 길을 걸을 것이다. 나는 지나가지만 사진은 그 길에 남아서 또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