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

213. 치유와 놀이

by 노용헌

나에게 있어서 사진은 놀이이자, 힐링이자, 치유이다. 가슴이 답답하고 힘이 들 때는 먼 산을 바라보거나, 사진을 찍는 것이 그나마 위안인 셈이다. 사람들에게 치이고,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지만 사람들의 사진을 찍고 있지만, 여전히 사진은 내게 있어서 무언가 가르침을 주기도 하고, 무언가 위안을 주기도 한다. 사진이 누군가의 마음을 치유한다기 보다는 나 자신의 단지 놀이일 뿐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누구나 자신의 짐들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내 마음도 다스리지 못하는데, 어찌 남의 마음을 헤아리고 치유를 해줄 수 있는가 말이다. 결국 치유는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세월호 사건을 겪으면서 많은 상담사, 복지사 등이 많이 있었다. 누군가의 아픔이나 고통을 치유해준다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과연 치유가 뭔지 알고 할까. 정신과 의사나, 심리상담을 하는 사람들이 건강하지 못하다면, 과연 그들에게 무얼 치유받고, 무얼 상담받겠는가 말이다. 돌팔이 의사에게 몸을 맡긴 것이 아닐까 말이다. 1994년 브루스 윌리스 주연 영화 ‘컬러 오브 나이트(color of night)’에서 정신과 의사는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받는다. 인간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니, 또다른 사람에게서 상담을 받을지 모른다. 어줍지 않은 심리극을 한다고, 단기간 기분이 좋아질지 모르지만, 해결책은 여전히 소원하다. 미술치료, 모래그림치료, 음악치료, 그 어떤 아트 힐링 치료도... 사진치유, 그것이 가능할까. 결국 치유는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 배려하고 진심으로 다가가는 행위를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수 없다. 선한 도덕적 이타의 본성을 가지기에는 나의 마음수련이 부족할 것이다. 그보다는 그의 말에 귀기울여주고, 이해해준다는 것, 놀이의 방법을 제시해줄 뿐이다. 우리는 모두 놀이를 하고 있고, 놀이를 하면서 살아간다. 약간의 긴장도 놀이를 통해서 전달된다. 운동장에서 뛰는 선수들을 플레이어(player)라고 하고, 그들의 경기를 보는 관중석도 무언가 행위, 응원행위를 통해서 놀이를 하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때리는 사람은 극히 적다. 돈을 버는 행위도 플레이(play)를 해야 한다. 플레이는 그 사람의 역할인 셈이다. 동냥을 하는 걸인도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고, 동냥도 하지 않고 멍때리고 있는 사람은 없다. 다들 무언가를 하고 있는 셈이다.


어릴적 팽이치기가 그렇게 재미있었다. 나무팽이, 플라스틱 팽이, 쇠테가 있는 팽이... 팽이종류도 많았고, 실을 감아 팽이를 돌리고 상대방의 팽이를 밀어내거나, 상대방의 팽이를 찍는 행위의 놀이도 있었다. 상대방 팽이를 찍다가 튕겨서 가게 상점 유리도 깨기도 했지만. 아이들에게 놀이는 정말 중요하지 않을까.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거리에서 놀지 못한다. 모두들 집안에서 레고블럭을 만지던지, 핸폰 게임이 다 인 것 같다. 예술은 누군가를 치유할수도 있지만, 그것이 다는 아닌 것이다. 그것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 사진이 치유의 도구로 쓰일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놀이를 통해서 치유된다. 치유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방법만 제시할 뿐이다. 결국 치유는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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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들고 자신의 내면에 쌓인 어두운 감정과 당당히 맞선다. 말은 쉽지만 그것이 쉽겠는가. 어둡고 힘든 감정은 숨기고 잊고 싶은 것이다. 그것을 웃으면서 말하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단지 분노를 표출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니, 더욱 시간이 걸리겠지, 아마도 죽을 때까지 해결이 안될 수도 있고, 결국 그것을 해결하는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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