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흥길의 '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를 읽고
저것 좀 보라고 청년이 갑자기 소리칩니다. 그렇잖아도 난 이미 보고 있었는데요. 빗속에서 사람들이 경찰하고 한참 대결하는 중이었죠. 최루탄에 투석으로 맞서고 있었어요. 청년은 그것이 마치 자기 조홧속으로 그려진 그림이나 되는 것같이 기고만장입디다만, 솔직히 얘기해서 난 비에 젖은 사람들이 똑같이 비에 젖은 사람들을 상대로 싸우는 그 장면에 그렇게 감동하지 않았어요. 그것보다는 다른 걱정이 앞섰으니까요. 이 친구가 여기까지 끌고 와서 끝내 날 어쩔 작정인가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잠시 지켜보고 있는 사이에 장면이 휘까닥 바뀌져 버립니다. 삼륜차 한 대가 어쩌다 길을 잘못 들어 가지고는 그만 소용돌이 속에 파묻힌 거예요. 데몰 피해서 빠져나갈 방도를 찾느라고 요리조리 함부로 대가리를 디밀다가 그만 뒤집혀서 벌렁 나자빠져 버렸어요. 누렇게 익은 참외가 와그르르 쏟아지더니 길바닥으로 구릅니다. 경찰을 상대하던 군중들이 돌멩이질을 딱 멈추더니 참외 쪽으로 벌떼처럼 달라붙습니다. 한 차분이나 되는 참외가 눈깜짝할 새 동이나 버립디다. 진흙탕에 떨어진 것까지 주워서는 어적어적 깨물어먹는 거예요. 먹는 그 자체는 결코 아름다운 장면이 못 되었어요. 다만 그런 속에서도 그걸 다투어 줏어먹도록 밑에서 떠받치는 그 무엇이 그저 무시무시하게 절실할 뿐이었죠.
이건 정말 나체화구나 하는 느낌이 처음으로 가슴에 팍 부딪쳐 옵디다. 나체를 확인한 이상 그 사람들하곤 종류가 다르다고 주장해 나온 근거가 별안간 흐려지는 기분이 듭니다. 내가 맑은 정신으로 나를 의식할 수 있었던 것은 거기까지가 전부였습니다. <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사내>
우연이든 필연이든, 내가 찍는 카메라 프레임안에 한 마리 새가 날아들었다. 예정된 행사에서 예기치 않은 돌발적인 상황은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다. 시위대에게 참외대를 실은 차가 등장을 하는 장면이 연출된다는 것이 아이러니할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삶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원하던 방향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다. 머피의 법칙이든 셀리의 법칙이든 사람은 항상 변화유동적이다. 현장은 그만큼 잠시 다른 곳을 쳐다볼 때, 언제든지 새로운 상황(spot news)이 벌어진다.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대회에서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에 맞고 크게 다치는 상황이 벌어졌었다. 나는 당시 종로와 광화문 사거리 세종대로의 두 곳의 차벽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전경버스를 줄에 묶어 잡아당기는 시위대와 그것을 막는 경찰은 물대포로 대응하고 있었다. 종로 르메이에르 빌딩 앞 사거리에서 줄을 당기던 사람중 홀로 줄을 당겼던 사람이 있었고, 경찰은 그 한 사람에게 직수살수를 하였다. 여러명이 줄을 당겼다면 피해가 없었을수 있었을까. 경찰은 왜 연약한 한 사람에게 집중해서 살수를 했을까. 상황은 눈깜짝할 사이에 벌어졌다. 그 속에서 사진가는 많은 생각이 교차된다. 나는 과연 그 현장에서 그를 도왔을까. 군중속에 한 개인은 개인으로서 존재하지만, 개인들이 모인 집단인 군중은 무엇을 느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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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선생한테 빚지고 신세지면서 살아가는 거나 이런 취급을 당하는 거나 부끄럽긴 아마 마찬가질 겁니다. 허지만 같은 값이면 이제부터라도 빚 안지고 신세 안 져도 되는 부끄러움 쪽을 택하고 싶습니다. 구두를 태우기 전이면 오 선생보다 훨씬 더 분하고 억울하다고 펄펄 뛰었을 겁니다. 허지만 오 선생도 아시다시피 이미 구두를 태워 버린 겁니다.”
“땅바닥에다 내던지는 걸 주워 먹는 똥개 신세는 결코 되지 않겠다고 그러셨죠? 천만에요! 내 눈엔 지금 권 선생이 똥개 그 이하로밖에 안 보입니다. 전에 단대리에서 살 적에 우리 집 동준이란 놈이 시궁창에다 과자를 집어 던지는 걸 봤습니다. 동네 꼬마 하나가 그걸 주워 먹겠다고 둑 밑으로 내려갑디다. 그걸 보고 나는 꼬마 녀석을 때리는 대신에 내 자식 놈을 마구 때렸습니다.”
“수진리 고개 밑에 가면 양산도집이란 술집이 있죠. 그 집에서 전에 작부로 일하던 신양이라고 혹시 아십니까? 모르시죠? 그 여자를 오선생한테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그 여자하고 긴 얘기를 나누고 나면 아마 오선생도 누구를 때리고 싶다, 누구를 때렸다믄 말을 그렇게 힘 안 들이고 할 수는 없게 될 겁니다. 오선생 생각은 오선생이 경험한 바탕 안에서만 출발하고 멈춥니다. 자기 경험만을 바탕으로 남의 생각까지 재단하기는 애당초 무립니다. 오선생은 보름 안에 자기 손으로 집을 지어 본 적 있습니까? 배고프다고 시위하다 말고 엎어진 트럭에 벌떼같이 달려들어서 참외를 주워먹는 인생들을 본 적 있습니까? 죽었다가 살아난 경험은요? 그리고 생명만큼이나 아끼던 자기 구두를 태우는 아픔은요? 이건 결코 자랑이 아닙니다. 내가 경험한 이런 일 모두가 사회 탓이라고 세상을 원망하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모자란 탓에 자업자득으로 그런 거니까 뒤늦게나마 좀 넉넉해 보자는 겁니다. 보기 나름이고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후회를 하더라도 아주 나중에 하겠습니다. 오선생더러 박수를 쳐달라고 그러는게 아닙니다. 산 속으로 끝까지 가 봐도 길이 없으니까 이제부터 되돌아서 들판 쪽으로 나와 보려는 것뿐입니다.” <직선과 곡선>
사진가는 전체적이든, 부분적이든, 상황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있든, 멀리 떨어져 보고 있든, 자신의 경험이다. 따라서 개인적인 경험이 모든 것을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무시할수도 없다. 내가 광장에서 많은 상황들을 보았다. 2014년 세월호 참사이후 광장에 모인 세월호, 한일일본군 위안부합의로 인해 소녀상 주변의 외침들. 그리고 2016년 박근혜정부 탄핵을 위한 촛불집회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리고 태극기집회로 불리우는 우파들의 집회, 코로나를 거쳐 광장의 재구조화사업까지. 광장은 수많은 사람들로 모였다 사라지고. 과거 조선시대의 유구의 발견과 다시 묻히는 광장에서. 현실에 타협하는 사람들과 자신들의 부당함을 외치는 사람들, 아픔을 조금씩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 속에 광장이 홀로 외로이 덩그러니 놓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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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상관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한쪽에선 작업중에 팔이 뭉텅 잘려져 나간 사람이 있고 그 팔값을 찾아주려고 투쟁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다른 한쪽에선 몸에 걸치는 옷 때문에 거기에 자기 인생을 걸려는 분들도 계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지나칠수가 없었습니다.”
“팔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옷도 중요해. 옷을 지키려는 건 다시 말해서 팔을 찾으려는 거나 마찬가지 일이야. 팔이 옷에 우선한다 생각하고 우릴 비웃었다면 당신은 분명히 덜떨어진 사람이야” <날개와 수갑>
세월호는 노란리본으로 상징화된다. 근조리본은 보통 검은색인데, 노란색으로 정해지면서 사람들은 노란리본을 만들고, 노란리본과 관련된 수많은 아이템들을 만들었다. 팔찌며, 뱃지, 스티커며, 심지어 귀고리까지 악세서리의 모든 형태는 노란색이고, 노란색은 세월호를 의미했다. 같은 색의 옷을 입는다는 것은 그와 내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고, 든든한 동지로 여겨지는 것은 동일감에서 오는 느낌일까. 직장에서 입는 작업복의 동일함이든, 중고등학교의 획일화된 교복이든, 같은 패턴의 색에서도 연대, 입장의 동일함을 느낀다. 심지어 아픔의 동일함도. 흑백사진과는 달리 컬러사진은 색을 드러낸다.
예정된 날짜에 검진이 실시되었고 폐결핵 환자는 다섯 명인 것으로 밝혀졌다. 폐결핵이 직업병이 아니었으므로 공원들 사이에선 가장 무서운 병이었다. 안양은 공장장실로 불려간 날 퇴근 후에 권씨를 기다렸고 이젠 출근 할 수 없게 되었다며 어떡하면 좋냐고 했다. 권씨는 도망치듯 안양 곁에서 멀어져 갔다.
다음날도 안양은 여전히 출근해 있었다. 문둥이를 피하듯이 모두들 자기를 멀리하는데도 작업장을 떠나지 않았다. 중식시간이 되어 새로운 임자가 재단기에서 손을 떼기를 기다려 안양이 잽싸게 뛰어 들면서 핸들을 거머잡았다 기계를 날치기 당한 여공이 자기 몫을 찾으려고 안양을 등뒤에서 덮쳤다. 권씨가 아무래도 예사롭지 않은 비명 소리를 듣고 재단기 쪽으로 쫓아갔을 때는 이미 상황이 끝나 있었고 중상을 입고 기절한 안순덕이 건장한 남자 공원들 손에 들려 병원으로 떠나고 나자 공장 안이 온통 뒤집혀 술렁거렸다. 법에 의해서 폐결핵은 보상을 못받아도 잘려나간 팔목은 보상이 가능한 업무상의 상병에 해당된다는 게 추측의 근거였다.
그날 오후에 권씨는 현관 앞에서 잔뜩 술에 취해 얼쩡거리고 있는 박군을 다시 보았다. 권씨는 박군을 상대하지 않고 병원에 들어가려 했으나 평생펜대나 굴려 먹을 종자를 내려보냈다며 잡역부 깝데기를 벳기면 뭐가 튀어나올지 기어코 밝혀 내고 말겠다며 박군이 주먹을 뻗어 왔다.
내가 만약 이 자리에서 저 미치광이 젊은이한테 타살 당하지 않고 살아 날수만 있다면 하고 권씨는 가정을 해보았다. 살아난 값을 톡톡히 해야지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 먼저 노조간부를 만나 볼 필요가 있었다. 다음순서로 본사에 가서 사장을 만나는 일도 당연히 고려에 넣으면서 권씨는 차츰 의식을 잃어 갔다. <창백한 중년>
2019년 12월 중국 우한시에서 발생한 코로나바이러스는 2020년 3월 세계보건기구가 팬데믹을 선언하고 백신개발과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변이종이 발생하고 올해는 오미크론으로 그리고 일상회복은 점점 더 힘들어지고, 마스크가 생활화되고, 거리두기와 급기야 백신패스까지. 우리의 삶은 백신을 맞은자와 맞지 않은자, 못맞은자로 나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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