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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Nov 20. 2022

페르 라게르크비스트의 <바라바>

영화 <바라바:진실을 찾는 자> 2019년

1951년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페르 라게르크비스트의 <바라바>는 성경을 읽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는 내용이다. 그가 예수 대신 사면을 받고 석방되어 예수의 죽음을 목격하고 그의 시점에서 그의 행적을 다룬 이야기이다.      

“구세주라고? 그 사람은 구세주는 아니야.”

바라바는 중얼거렸다.

다른 사내 하나가 말했다.

“물론 그가 구세주일 리는 없지. 그렇다면 놈들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지 못했을 것야. 그놈들이 먼저 급살을 맞았을 테니까. 저년은 구세주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당연히 아니지! 그렇다면 그 사람은 십자가에서 내려와 그놈들을 다 죽여버렸을테지.”

“구세주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다니! 그게 말이 되나!”

바라바는 그의 큰 손으로 수염을 만지며 땅바닥을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그 사람이 구세주일 리는 없다.....”

“자, 바라바, 거기 앉아 중얼거리지 말고 한 잔 마셔.” (p21-22)     


바라바는 돌판을 들어올리고 그녀를 아기 옆에 눕혔다. 아기는 이미 메말라 시들어 있었다. 바라바는 마치 그녀를 더 편안하게 해주려는 듯 만신창이가 된 그녀의 몸을 매만져주고 마지막으로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윗입술의 언청이 자국은 더는 바라바의 마음에 거슬리지 않았다. 그는 돌판을 다시 덮어놓고 그 옆에 앉아 사막 저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는 사막이 이제 죽음의 땅과 흡사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그녀를 죽음의 땅에 데려다주었다고 생각했다. 일단 죽음의 땅에 들어가면 어디에 묻히든 별 차이가 없는 일이었으나 이제 그녀는 다른 곳이 아닌 그녀의 아기 옆에 누워 있지 않은가. 바라바는 붉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조소하는 듯이 쓴웃음을 지으면서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고 생각했다.

서로 사랑하라....    (p86)

바라바는 예수의 신자들과 접촉하면서도 그들의 교리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간 그들의 예전 산적무리와도 어울릴 수 없었고, 산적의 무리를 떠나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바라바는 무슨 죄목으로 체포되었는지 몰라도 극악범에게 내리는 형벌인 유황 광산 갱도 노동하게 되고, 총독을 따라 로마로 가게 된다.      

총독은 사하크에게 다가가더니 사하크의 노예 표찰을 손에 쥐고 새겨진 인장을 보면서 사하크에게 그 각인의 뜻을 아느냐고 물었다. 사하크는 그것이 로마 제국의 인장이라고 대답했다. 총독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맞다고 말한 후 그러므로 이것은 사하크가 제국의 소유임을 나타낸다고 덧붙였다. 그러고는 그 금속으로 만든 노예 표찰을 뒤집더니 뒷면에 있는 비밀 글씨를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예수 그리스도라....” 하고 총독이 중얼거린다. 그러자 사하크와 바라바는 총독이 하느님의 신성한 이름을 읽을 줄 안다는 사실에 경탄했다. 총독이 그 암호를 읽었다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이건 누구지?”

총독이 물었다.

“저의 하느님입니다.”

사하크가 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그래. 내가 들어본 기억이 없는 이름이군. 신이 하도 많으니까 내가 다 알 수도 없겠지. 이 신은 네 고향의 신이냐?”

사하크가 대답했다.

“모든 사람의 신이라고? 그게 정말이냐? 흐음, 그렇다고 해두자. 나는 이 신에 대해서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데, 말하자면 이 신은 자기 이름을 비밀로 하는 모양이구나.”

“그 분은 모든 사람의 하느님입니다.”

사하크가 다시 한번 말했다. 

“모든 사람의 신이라, 그러면 능력을 좀 갖고 있을 테지. 이 신의 요구는 뭔가?”

“서로 사랑하라는 겁니다.”

“사랑하라? 음, 여하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니 좋을 대로 믿게. 그런데 왜 그의 이름을 노예 표찰의 뒷면에 새겨놓았지?”

“저는 그분의 노예기 때문입니다.”

사하크의 목소리가 다시 떨렸다. 

“무슨 말이냐? 그의 노예라니? 네가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지? 이 인장이 말해주듯이 너는 로마 제국의 노예다. 네가 로마 제국의 노예가 아니란 말이냐?”

사하크는 대답을 못하고 그저 고개를 떨군 채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마침내 총독이 입을 열었다. 총독은 여전히 비교적 친절한 말투였다.

“이 질문에 대답해라. 우리는 이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알겠나? 너는 로마 제국의 노예냐? 대답해라.”

“저는 저의 하느임이신 주님의 노예입니다.”

사하크가 고개를 떨군 채 대답했다.

총독은 사하크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사하크의 얼굴을 들어올리고 그의 그을린 얼굴을 뚫어지게 들여다보았다. 사하크의 얼굴은 용광로에서 일하느라 불에 그을려 있었다. 총독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금 있다가 그가 원하는 것을 보았음인지 사하크의 턱을 놓았다. 그러고는 바라바 앞으로 가서 바라바의 노예 표찰을 같은 방법으로 뒤집어 보면서 물었다.

“너도냐? 너도 이 사랑의 신을 믿느냐?”

바라바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해라. 너도냐?”

바라바는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라고? 그런데 왜 그의 이름을 표에 새겨넣었지?”

바라바는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가 너의 신이 아니라고? 이 글씨가 너의 신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신이 없습니다.”

드디어 바라바가 대답했다. 너무나 작은 목소리여서 잘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사하크와 총독은 똑똑히 들었다. 사하크는 실망과 고통에 찬 눈으로 바라바를 보았다. 사하크는 바라바의 말을 못 믿겠다는 얼굴이었다. 바라바는 차마 사하크와 시선을 맞추지 못했지만 그것이 자신의 골수를 꿰뚫는 것같이 느껴졌다.

총독의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이상하군. 그렇다면 왜 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새긴 표를 달고 있지?”

“믿고 싶기 때문입니다.”

바라바가 대답했다.     (p128-131)     

죽음의 땅..... 그가 죽음의 땅속에 갇혀버린 것이었다!

공포가 그를 엄습했다. 그것은 숨막히는 전율이었다. 갑자기 공포에 질린 바라바는 무작정 아무 쪽으로나 뛰기 시작했다. 그는 밖으로 나가는 길을 찾으려고, 죽음의 땅을 벗어날 길을 찾으려고 이 통로를 뛰었다가 저 통로로 뛰고, 보이지 않는 계단에 넘어지기도 했다. 바라바는 땅속에서 숨을 헐떡거리면서 미친 사람처럼 뛰어다녔다. 그는 숨을 헐떡였다...... 그는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면서 해골들이 놓이 벽에 머리를 부딪히기도 했다. 그는 다시는 밖으로 나가지 못할 것 같은 공포감에 휩싸여 있었다....

얼마쯤 그러다가 드디어 바라바는 지상에서 내려온 따스한 공기의 흐름을 느끼게 되었다. 그 공기는 정말 다른 세계에서 온 듯했다.... 반쯤 정신을 잃은 바라바는 겨우 언덕 위로 올라왔다. 그곳은 포도밭 가운데였다.

바라바는 거기서 땅에 누워 쉬면서 어두운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이제 모든 곳이 어둠에 싸여 있었다. 하늘도 땅도 모두 어두웠다. 모든 곳이 어두웠다.  (p148)     


존엄하게 생긴 노인은 차츰 왜 주님의 이름이 십자로 그어졌으며 왜 바라바가 로마에 불을 지르는 것을 도왔는지를 알게 되었다. 신자들과 구세주가 이 세상에 불지르는 것을 돕고 싶었던 바라바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그 말을 들은 노인은 괴로워서 백발이 성성한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노인은 바라바에게 그가 어떻게 기독교 신자들이 불을 질렀을 거라 생각하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불을 지른 것은 그 짐승 같은 카이사르 자신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바가 도와주었던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노예 표찰에 이름이 지워진 채로 계신 주님이 아니라, 그 노예 표찰이 가리키는 당신의 주인, 즉 이 세속의 통치자를 도와준 거요. 당신은 몰랐지만, 당신의 진짜 주인을 위해 일한 거지.”

노인은 인자하게 덧붙였다.

“우리의 주님은 사랑이시오.”    (p159)     

"저 사람은 누구입니까? 저 사람은 누구입니까?“

노인이 일어서자 모두들 외쳤다. 처음에 노인은 대답하지 않으려 했다. 덮어버리려고 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하도 졸라대는 바람에 결국 대답해줄 수밖에 없었다.

“저 사람이 주님 대신 사면받은 바라바요.”

신자들은 놀라 자빠질 뻔했다. 그들은 바라바를 노려보았다. 그들을 이처럼 놀라게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노인이 곧 그들을 진정시켰다. 

“이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우리에겐 이 사람을 벌할 권리가 없습니다. 우리 자신도 과오와 단점투성이입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 것은 우리가 잘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람이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고 하여 우리에게 그를 벌할 권리는 없습니다.”  (p160)     

오직 바라바만이 아직 살아서 거기 홀로 매달려 있었다. 그는 그가 늘 두려워하던 죽음이 닥쳐옴을 느끼자 어둠을 향해 말했다.

“당신께 내 영혼을 드립니다.”

그리고 그는 숨을 거두었다.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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