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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Nov 24. 2022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영화 <안나 카레니나: 브론스키 백작의 사랑> 2017년

<안나 카레니나>(2012), 소피 마르소 주연 <안나 카레니나>(1997). <안나 카레니나>(1985), <안나 카레니나>(1967), <안나 카레니나>(2000), <안나 카레니나>(1961), 비비안 리 주연 <안나 카레니나>(1948)        

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나름의 이유로 불행하다.” (p13)     

레빈은 키티에게 구혼을 하지만 거절 당하고, 니콜라이 친형을 만나고 온 후, 

“그가 들고 들어온 촛불의 빛에 서재가 서서히 밝아졌다. 눈에 익은 물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슴뿔, 책을 진열한 선반, 거울, 통풍구가 달린 스토브 -이 스토브는 오래전부터 수리받지 않은 채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소파, 커다란 책상, 책장이 펼쳐진 책, 깨진 재떨이, 그의 글씨가 적힌 공책, 이 물건들을 보자, 순간적으로 그의 마음속에 그가 집으로 오면서 공상했던 새로운 생활을 과연 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의혹이 생겼다. 그의 삶의 흔적들이 마치 그를 둘러싸고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아니, 넌 우리에게서 벗어날 수 없어. 넌 다른 사람이 될 수 없고, 그저 예전처럼 살아갈 거야. 의혹, 자신에 대한 끝없는 불만, 자신을 개선하려는 부질없는 시도, 타락, 지금껏 손에 넣어 본 적 없고 앞으로도 얻지 못할 행복에 대한 영원한 기대, 그런 것들과 함께 말이지.’

그러나 그것은 그의 물건들이 한 말이었다. 마음속의 다른 목소리는 과거에 굴복할 필요 없다고, 자신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속삭였다. 

<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1, P206-207>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가 경마장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안나는 이미 상류층 인사가 모두 모인 관람석에 벳시와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녀는 멀리서도 남편을 알아보았다. 남편과 연인, 그 두 남자는 그녀의 삶에서 두 개의 중심이었으므로 그녀는 외적인 감각의 도움 없이도 그들의 접근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멀리서부터 남편의 접근을 느끼고는, 자기도 모르게 군중을 헤치고 움직이는 그를 눈으로 좇았다. (p446)     

'난 나쁜 여자야. 타락한 여자야‘ 그녀는 생각했다. ’난 거짓말을 하는 게 싫어. 난 거짓을 참을 수 없어. 그런데 이런 거짓이 그(남편)에게는 양식이지. 그는 모든 걸 알고, 모든 걸 보고 있어. 저렇게 태연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다니, 그가 느끼는 감정은 도대체 어떤 걸까? 그가 나를 죽이려 한다면, 그가 브론스키를 죽이려 한다면, 오히려 난 그를 존경할 텐데. 하지만 아냐. 그에게 필요한 건 거짓과 체면뿐이야.‘ 안나는 자신이 남편에게 바라는 게 무엇인지, 자신이 남편을 어떻게 보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 않고 혼잣말을 했다. 그녀는 오늘따라 유난히 말이 많은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의 모습, 안나를 너무나도 자극하는 그 모습이 그저 그의 내면에 깃든 불안과 초조함의 표현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p448)    

 

바렌카는 솔직하게 말하며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래요, 추억이 있어요. 한때는 몹시 괴로운 기억이었죠. 한 남자를 사랑했어요. 그에게 이 노래를 불러 주곤 했죠.”

키티는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없이 다정하게 바렌카를 바라보았다.

“난 그를 사랑했고 그도 나를 사랑했어요. 하지만 어머니의 반대로 그는 다른 여자와 결혼하고 말았죠. 그는 지금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살아요. 그래서 이따금 그를 보곤 해요. 당신은 내게도 이런 로맨스가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죠?” 그녀가 말했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서 키티가 느끼기에 한때 그녀의 존재 전체를 환하게 밝혀 주었음 직한 작은 불꽃이 희미하게 빛났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겠어요? 내가 남자라면, 당신을 알고 난 후에는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었을 거예요. 다만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건, 어떻게 그가 어머니의 만족을 위해 당신을 잊고 당신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었나 하는 거예요. 그는 심장이 없는 사람이군요.” (p476)     

  

키티의 활동을 눈치챈 프린세스도 키티를 천사 같은 위로자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너무 지나치지만 않으면, 모든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공작부인은 딸이 극단으로 치우치는 모습을 보며 딸에게 이런 말을 하곤 했다.  

“Il ne faut jamais rien outrer." '무슨 일이든 극단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프랑스어) (p484)  

   

그 자신이 민중과 함께 살고 있고 그의 모든 이해관계가 민중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그리고 스스로를 민중의 일부라고 생각하여 자신과 민중 안에서 어떤 특별한 성질이나 단점을 찾으려 하지 않았고 자신을 민중과 대립된 존재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는 오랫동안 주인으로, 중재자로, 특히 조언자로(농부들은 그를 신뢰하여 40베르스타 떨어진 곳에서도 그에게 조언을 구하러 왔다.) 살아왔으면서도 민중에 대해 어떠한 고정된 견해도 갖지 않았다. 따라서 민중을 이해하느냐는 질문은 민중을 사랑하느냐는 질문만큼이나 그를 난처하게 했을 것이다. 그에게는 민중을 안다고 말하는 것이 인간을 안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그는 모든 종류의 인간을 끊임없이 관찰하며 그들을 이해하려 했다. 그 가운데에는 그가 훌륭하고 흥미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농부들도 있었다. 그는 인간들 안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특징을 찾아 그들에 대한 이전의 견해를 바꾸고 새로운 견해를 확립하였다. 세르게이 이바노비치는 그 반대였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지 않는 생활과 대조하여 시골을 사랑하고 찬미한 것과 똑같이, 민중에 대해서도 그가 좋아하지 않는 계급의 사람들과 대조하여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사람 일반과 대조되는 무엇으로서 파악했다. 그의 체계적인 이성 안에서 민중의 생활에 대한 일정한 형식이 뚜렷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 형식은 민중의 생활 자체에서 어느 정도 끌어낸 것이기도 하지만 주로 대조를 통해 얻은 것이었다. 그는 민중에 대한 자신의 견해와 그들에게 공감하는 태도를 결코 바꾸려 하지 않았다.    

<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2, P13>     


안나 카레니나와 키티 알렉산드로브나 두 여자의 삶. 알렉세이 브론스키와 드미트리치 레빈 두 남자의 삶. 그들의 이야기.     

‘꿋꿋하게 자신의 목표를 향해 걸어가기만 하면 돼. 그러면 그 목표에 도달하게 될 거야.’ 레빈은 생각했다. ‘일하고 노력하는 것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어. 이 일은 나의 개인적 일이 아니라 공익에 관한 문제야. 농업 전체, 무엇보다 민중의 처지가 완전히 바뀌어야만 해. 빈곤 대신 만인의 부와 만족이, 적의 대신 화합과 이해의 일치가 필요해. 한마디로 이것은 무혈(無血) 혁명이야. 처음에는 우리 군이라는 작은 영역에서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현과 러시아, 나아가 전 세계로 확산될 대혁명이 될 거야. 왜냐하면 올바른 사상은 열매를 맺지 않을 수 없으니까. 그래, 이것이야말로 노력할 가치가 있는 목표이지.

<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2, P232>       


안나는 자유와 빠른 회복을 맛본 이 첫 시기에 자신이 용서받을 수 없을 만큼 행복하고 생의 기쁨으로 충만한 생활을 한다고 느꼈다. 남편의 불행에 대한 기억도 그녀의 행복을 깨뜨리지 못했다. 한편으로 그 기억은 생각하고 싶지 않을 만큼 너무나 끔찍한 것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남편의 불행은 후회하기에는 너무나 큰 행복을 그녀에게 안겨 주었다. 병을 앓은 뒤 그녀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한 기억, 즉 남편과의 화해, 불화, 브론스키의 부상 소식, 그의 출현, 이혼 준비, 남편의 집을 떠난 것, 아들과의 이별, 이 모든 일들이 그녀에게는 열에 들뜬 꿈처럼 느껴졌고, 그녀는 브론스키와 외국에 나온 뒤에야 비로소 그 꿈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남편에게 불행을 준 사악함에 대한 기억은 그녀의 마음속에 혐오와 비슷한 감정, 물에 빠진 사람이 자기에게 들러붙는 사람을 떨쳐 버렸을 때 느꼈음 직한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 사람은 물에 빠져 죽었다. 물론 그것은 나쁜 짓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유일한 구원이었고, 그런 무서운 일들은 세세히 기억하지 않는 편이 낫다.

그때 불화의 첫 순간에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위안이 될 만한 한 가지 생각이 그녀에게 떠올랐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과거의 모든 일들을 떠올릴 때면 그 생각을 기억해 냈다. ‘내가 그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하지만 난 그 불행을 이용하고 싶지 않아. 나 역시 괴로워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난 내가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던 것을 잃었어. 난 명예와 아들을 잃었단 말이야. 난 나쁜 짓을 했어. 그러니 행복도 바라지 않고 이혼도 바라지 않아. 난 수치와 아들과의 이별로 괴로워할 거야.’ 그녀는 생각했다. (p478-479)      

‘모두가 생을 살고, 모두가 생을 즐기는구나.’ 마차가 아낙들을 지나치고 언덕으로 접어들었다 다시 빠르게 달리는 동안, 그녀는 낡은 포장마차의 유연한 용수철에 기분 좋게 흔들리며 계속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나는 마치 감옥에서 풀려난 것처럼 온갖 걱정거리로 날 죽이는 세계에서 해방되어 잠시나마 정신을 차리게 됐어. 이제야 겨우 잠시나마 제정신으로 돌아온 거야. 모두들 생을 살아가고 있어. 그 아낙들도, 동생 나탈리도, 바렌카도, 지금 내가 찾아가고 있는 안나도. 나만 그렇지 않아.’

‘그런데 사람들은 안나를 공격하고 있어. 무엇 때문에? 과연 내가 더 낫다고 할 수 있을까? 나에게는 적어도 날 사랑하는 남편이 있긴 해. 내가 바라는 방식의 사랑은 아니지만, 난 그를 사랑하고 있어. 하지만 안나는 자신의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잖아? 도대체 그녀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는 걸까? 그녀는 살고 싶은 거야. 하느님이 우리의 영혼에 그것을 불어넣었잖아. 어쩌면 나도 그녀와 똑같이 행동했을지도 몰라. 그녀가 모스크바로 날 찾아온 그 끔찍한 시절에 내가 그녀의 말을 들은 것이 과연 잘한 것인지는, 지금까지도 잘 모르겠어. 난 그때 남편을 버리고 새롭게 인생을 시작했어야 했어. 어쩌면 난 정말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었을지도 몰라. 그런데도 과연 지금이 더 낫다고 할 수 있을까? 난 그를 존경하지 않아. 그가 필요할 뿐이야.’ 그녀는 남편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난 그를 견디고 있지. 과연 이것이 더 나은 걸까? 그때 난 아직 사랑을 받을 수 있었어. 내게도 아직은 아름다움이 남아 있었으니까.’ 다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계속 생각에 잠겨 있다가 문득 거울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3, P126-127>     


그녀는 하루종일 그를 기다렸다. 그리고 밤이 되자, 그녀는 자기 방으로 가면서 그에게 자기의 머리가 아프다는 말을 전하도록 지시하고는 이렇게 생각했다. ‘만약 그가 하녀의 말에도 불구하고 날 찾아온다면, 그건 그가 아직 날 사랑하고 있다는 뜻이야. 만약 그가 오지 않는다면, 그건 모든 게 끝났다는 뜻이지. 그때는 나도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하겠어!’

밤에 그녀는 그의 마차가 멈추는 소리, 그의 벨소리, 그의 발소리, 그가 하녀와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자신이 들은 말을 곧이 믿고 더 이상 아무것도 알고 싶어 하지 않으며 자기 방으로 향했다. 따라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이다.

그러자 죽음이 그녀의 마음속에 또렷하고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의 마음에 그녀에 대한 사랑을 되살리고 그를 벌하고 그녀의 마음에 거하는 사악한 영이 그와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둘 유일한 방법..... 

이제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보즈드비젠스코예에 가든 말든, 남편에게서 이혼 동의를 얻든 말든,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필요한 건 오직 하나, 그를 벌하는 것이었다. (p420-421)     

‘이 모든 일은 어째서 일어나는 것일까?’ 그는 생각했다. ‘왜 나는 이곳에 서서 저들에게 일을 시키고 있는 걸까? 저들은 무엇 때문에 다들 바쁘게 일하고 내 앞에서 자기들의 열심을 보여 주려 애쓰는 걸까? 저 마트료나 할멈은 무엇 때문에 저렇게 열심히 일하는 걸까?(불이 나서 들보가 저 할멈에게 떨어졌을 때, 내가 저 할멈을 치료해 주었지.)’ 그는 단단하고 울퉁불퉁한 탈곡장에서 쇠스랑으로 알곡을 긁어모으며 햇볕에 검게 그을린 맨발로 부자연스럽게 걸음을 내딛는 야윈 아낙을 쳐다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때는 저 할멈도 회복을 했지. 하지만 오늘내일이 아니더라도 10년쯤 지나면 저 할멈은 땅에 묻힐 거야. 저 할멈도, 능숙하고 부드러운 동작으로 왕겨에서 알곡을 떨어내는 빨간 줄무늬 치마의 저 멋진 여자도,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겠지. 저 여자도 땅에 묻히고, 반점이 있는 저 거세마도 얼마 안 있어 곧 땅에 묻힐 거야.’ 그는 벌렁대는 콧구멍으로 세차게 숨을 몰아쉬며 밑으로 기울어지는 한쪽 바퀴 때문에 발을 헛디디는 배불뚝이 말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말도 묻히고, 곱슬곱슬한 턱수염에 왕겨를 잔뜩 붙이고 찢어진 루바슈카 사이로 흰 어깨를 드러낸 일꾼 표도르도 묻힐 거야. 그런데도 그는 낟가리를 풀어헤치고 뭐라고 지시하고 아낙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민첩한 동작으로 플라이휠의 벨트를 수리하지. 그리고 중요한 것은 저들뿐만 아니라 나도 땅에 묻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거야. 무엇을 위해?’  (p512)     

수세기 전에 살았거나 현재 살고 있는 수백만의 사람들, 농부들, 마음이 가난한 자들,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글을 남기고 모호한 언어로 똑같은 것을 말해 온 현자들, 우리 모두가 이 한 가지, 즉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무엇이 선한 것인가에 동의하고 있어. 나와 모든 사람은 확고하고 의심할 여지 없고 분명한 한 가지 지식만을 갖고 있어. 그리고 그 지식은 이성으로 설명될 수 없어. 그 지식은 이성을 초월해 있고 어떤 이유도 갖고 있지 않고 어떤 결과도 가질수 없어.

만일 선이 이유를 갖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선이 아니야. 만일 그것이 결과를, 즉 보상을 갖는다면, 그것 역시 선이 아니야. 따라서 선은 원인과 결과의 사슬을 초월해 있어.  (p517-518)   

  

'난 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 왔어. 하지만 사색은 해답을 주지 못했지. 그 사색은 질문과 아무런 공통점을 갖지 않았어. 내게 해답을 준 것은 삶 그 자체였고, 해답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한지에 대한 나의 깨달음 속에 있었어. 그런데 그 깨달음은 내가 그 무엇으로도 획득할 수 없는 것이었지. 하지만 그것은 나와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져 있었어. 그것이 내게 주어진 것은 내가 그 어디에서도 그것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야.

난 그것을 어디에서 얻었을까? 내가 이웃을 사랑하고 그들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 과연 이성 때문인가? 난 어린 시절에 그렇게 들었어. 그리고 난 그것을 기쁜 마음으로 믿었지. 왜냐하면 사람들이 내게 나의 정신 속에 무엇이 있는지 말해 주었기 때문이야. 그런데 누가 그것을 발견한 거지? 이성은 아니야. 이성은 생존 경쟁과 나의 욕망의 충족을 방해하는 인간들을 교살하라고 요구하는 법칙을 발견했지. 그것이 이성의 결론이야. 이성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라는 결론에 이를 수 없어. 그것은 비이성적이니까.‘

‘그래, 오만이야.’ 그는 배를 깔고 뒹굴뒹굴거리면서 풀잎이 찢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풀잎의 잎자루를 엮어 매듭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성의 오만일 뿐 아니라 이성의 우둔함이지. 무엇보다 속임수, 그래 바로 이성의 속임수야. 다름 아닌 이성의 사기이지.’ 그는 계속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3, P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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