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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Dec 06. 2022

EM 포스터의 <하워즈 엔드>

영화 <하워즈 엔드> 1992년

“저한테도 새로운 생각이에요. 하지만 지각 있는 사람들은 옛날부터 그걸 알고 있었어요. 이모나 저, 그리고 윌콕스 가족은 돈이라는 섬을 딛고 서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게 우리를 튼튼하게 받쳐 주고 있어서, 때로는 그런 게 있다는 것도 잊고 지낸다고요. 이따금 주변에서 사람들이 비틀거리는 걸 보면 그제야 재산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죠. 어젯밤에 여기 벽난로 앞에 모여 앉아서 이야기할 때, 저는 이 세상의 영혼 자체가 경제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사람에게 가장 끔찍한 나락은 사랑이 없는 게 아니라 돈이 없는 거예요.”

“그 말은 냉소적으로 들리는구나.”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자만 헬렌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싶어지면 우리가 돈의 섬을 딛고 서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돼요.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바닷물 아래 잠겨 있어요. 가난한 사람들은 사랑하고 싶은 사람에게 다가가지도 못하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한테서 빠져나오지도 못해요. 하지만 우리는 돈이 있으니까 그럴 수 있어요. 만약 헬렌하고 폴 윌콕스가 가난한 사람들이었다면 지난 6월에 어떻게 됐을 것 같아요? 얼른 기차표를 사거나 자동차를 타고 나가서 헤어질 수가 없었다면요?”

“말하는 게 무슨 사회주의자 같구나.” 먼트 부인이 의구심을 보이며 말했다.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제 생각에 이건 그저 인생을 솔직하게 사는 것뿐이에요. 저는 돈 있는 사람들이 가난한 듯이 굴면서, 자기들을 물 위로 떠받쳐 주는 돈더미를 고상한 척 무시하는 게 보기 싫어요. 저는 연 수입 6백 파운드의 돈더미를 딛고 서 있고, 헬렌도 마찬가지예요. 티비한테는 곧 8백 파운드가 생기고요. 돈이 바다 속으로 부서져 들어가는 대로 또 그만큼이 생겨요. 바다에서 말이에요. 그래요. 바다에서요. 그리고 우리가 하는 생각은 모두 6백 파운드 수입을 가진 사람의 생각이에요. 우리가 하는 말도 마찬가지고요. 우리는 우산을 훔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바다 속에서 허우적 대는 사람들이 그걸 훔치고 싶어 한다는 걸. 그리고 때로는 정말 훔친다는 걸 잘 모르죠. 여기서는 농담인 것이 거기서는 현실이 된다는 걸요....”

<E.M. 포스터, 하워즈 엔드, P81-82>     

E.M. 포스터의 소설은 <하워즈 엔드> 외에도 <전망 좋은 방>(1984년), <인도로 가는 길>(1984), <모리스>(1987), <몬테리아노 연인>(1991), 5편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소설 <하워즈 엔드>는 “단지 연결하라....”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계층간의 연결, 상류계층, 중산계급, 하층계급은 어떻게 연결될까?     

결혼식은 이달 11일이었어요. 폴이 떠나기 며칠 전이었죠. 찰스가 동생을 신랑 들러리로 세우고 싶어 해서 11일에 결혼한 거예요. 퍼셀 집안 사람들은 크리스마스가 지난 다음에 하기를 바랐지만 양해해 주셨어요. 돌리의 사진도 있어요. 거기 두 개가 연결된 사진틀에. (p94)     


단지 연결하라! 그녀의 설교는 그게 전부였다. 산문과 열정을 연결하라. 그러면 그 양쪽이 모두 고양되고, 인간의 사랑은 정점에 이르게 될 것이다. 다시는 조각난 삶을 살지 마라. 단지 연결하라. 그러면 고립을 먹고 사는 짐승과 수도승은 생명줄을 잃고 죽을 것이다.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진지한 이야기>가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조용히 알려 주는 일만으로도 다리는 세워지고 그들의 인생은 아름다움으로 뻗어 갈 것이다. (p243)     


또한 집이란 매개도 연결을 의미한다. 가문을 이어주는 연결이기도 하다.      


“하워즈 엔드 - 하워드 가문이 끝났다!” 돌리가 소리쳤다. “오늘 저녁에는 저도 이야기가 잘 되네요!” (p265)     


집들도 나름대로 죽는 방식이 있다. 그 방식은 수세대의 인간들처럼 다양하다. 어떤 집은 비극적 울부짖음 속에 죽고, 어떤 집은 고요하게 죽어서 유령의 도시에서 내세의 삶을 산다. 반면에 다른 집들은 - 위컴 플레이스의 죽음이 그랬는데 - 몸이 소멸하기 전에 영혼이 먼저 빠져나간다. (p333)     


이런 영국 농장에서는 인생을 집중적이면서도 전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그 덧없음과 영원한 젊음을 한 시야에 담을 수 있고, 아무 쓰라린 느낌 없이 모든 사람이 형제가 될 때까지 서로를 연결할 수 있다. (p348)

    

영화 <기생충>에서 상류계급의 대저택과 하층계급의 주거 공간은 <반 지하>로 나온다. 주택의 소유는 계급을 결정하는 요소인가?      


그런 뒤 레너드는 아파트 B동에 들어가서 위층으로 올라가는 대신 아래층으로. 그러니까 부동산업자들은 <반 지하>라고 부르고 다른 사람들은 그냥 지하라고 부르는 곳으로 내려갔다. (p66)     


맞은편에 있는 화려한 아파트에 윌콕스 일가가 세를 얻었다는 것이다. ‘분명히 런던 사교계에 드나들려고 오는 걸 거야.’ 이런 불행한 사실을 먼트 부인이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아파트 들에 관심이 많아서 거기 일어나는 변화를 아주 면밀히 관찰했기 때문이다. 부인도 말로는 아파트를 싫어했다. 옛날의 정취를 빼앗아 가고, 햇빛을 가로막으며, 경박한 부류의 사람들을 끌어들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진실을 말하자면 위컴 멘션스라는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부인의 위컴 플레이스 방문은 두 배로 즐거운 일이 되었다. 그녀는 아파트들에 대해서 단 이틀 만에 조카딸들이 두 달 동안, 그리고 티비가 2년 동안 터득할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슬슬 그쪽으로 건너가서 짐꾼들과 인사를 하고 집세를 물어보며 감탄했다. ‘뭐라고요? 지하층이 120파운드라고요? 그렇다면 아저씨가 들어가기는 힘들겠네요!’ 그러면 그들은 ‘그래도 노력은 해볼 수 있죠.’하고 대답했다. 거주자용 승강기, 화물용 승강기, 석탄 공급방식(부정직한 짐꾼에게는 엄청난 유혹이 되는) 같은 일들은 그녀에게는 아주 친숙했고, 어쩌면 슐레겔 자매의 집을 채운 정치적-경제적-미적 분위기에서 한숨을 돌리는 통로가 되기도 했다. (p76)     

사유재산의 시대는 재산 소유자에게도 괴로운 순간은 던져 준다. 이사가 임박하자 가구를 처치하는 게 골칫거리가 되어서, 마거릿은 밤마다 9월이 되면 이 가구들과 세간을 어디로 옮겨야 하나 하는 생각에 늦도록 잠을 못 이루었다. 세대에서 세대로 굴러 내려온 의자들, 탁자들, 그림들, 책들은 다시 쓰레기 더미를 이루어 세대에서 세대로 굴러 내려가야 했고, 그녀는 그것들을 확 바다로 밀어 넣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거기엔 아버지의 책들이 있었다. 슐레겔 자매는 그 책들을 읽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건 아버지의 책들이므로 보존되어야 했다. 꼭대기에 대리석이 덮인 좁은 서랍장은 어머니가 아끼던 것인데, 슐레겔 자매는 그 이유를 기억하지 못했다. 집 안의 손잡이 하나, 쿠션 하나마다 정취가 서려 있었고, 그 정취는 개인적인 것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망자들에 대한 희미한 공경심, 그러니까 무덤에서 끝났을 의식들의 연장 행위 같았다.

생각해 보면 부조리한 일이었다. 헬렌과 티비는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있었지만, 마거릿은 부동산 업자들을 만나러 다니느라 바빴다. 중세 시절의 토지 소유는 위엄을 가져다주었지만, 현대적 동산 소유는 우리를 다시 유목민의 무리로 강등시키고 있다. 우리는 짐을 진 문명으로 회귀하고 있고, 후세의 사가들은 중간 계급이 지상에 뿌리 내리지도 못한 채 살림을 늘려 간  일들을 기록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상상력이 그토록 빈곤한 이유를 거기서 발견할지도 모른다. 슐레겔 남매의 상상력은 위컴 플레이스를 잃은 뒤 확실히 더 빈곤해졌다. 그 집은 그들 삶의 균형추이자 거의 조언자에 가까운 역할을 했다. 그렇다고 그들의 집주인이 영적으로 더 부유한 것은 아니다. 그는 그 자리에 아파트를 지었고, 점점 더 빠른 자동차를 샀으며,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하지만 그는 세월이 증류된 소중한 액체를 땅에 흘렸고, 어떤 화학적 방법도 그것을 사회에 돌려줄 수 없다. (p196-197)


"세상 사람들에게 부를 균등하게 분배해 주어도 몇 년 지나지 않아서 빈부의 차이가 그대로 생겨날 거라는 걸 인정하는 거지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상층으로 올라가고 게으름뱅이들은 아래로 가라앉을 거예요.“ (p204)     


"아버지 생각이 난다. 아버지는 어떻게 독일을 떠날 결심을 하셨을까? 젊은 시절에 목숨 바쳐 싸운 나라를 말이야. 아버지의 정서도 친구도 모두 프로이센에 있었잖아. 어떻게 애국심을 잘라 버리고 다른 것을 지향하실 수 있었을까? 나라면 고민하다가 죽어 버렸을 거야. 아버지는 마흔이 다 된 나이에 국적을 바꾸고 이상도 바꾸셨어. 그런데 우리는 이 나이에 집도 바꾸지 못하잖아. 부끄러운 일이야.“ (p208)    

 

"그런데 윌콕스 씨. 우리 같은 중간계급 사람들이 집 문제에 이렇게 골치를 썩는 게 우습지 않나요?“

그들은 응접실로 나아갔다. 여기는 첼시 분위기와 가까웠다. 색깔도 희미했고 눈에 띄는 것도 없었다. 남편들이 아래 층에서 담배를 피우며 인생의 당면 과제들을 논할 때 부인들이 이곳으로 물러나는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떠올랐다. 하위즈 엔드에 있는 윌콕스 부인의 응접실도 이랬을 것인가? 마거릿이 막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윌콕스씨가 그녀에게 아내가 되어 달라고 말했다. 자신의 짐작이 옳았다는 생각에 압도되어서 그녀는 거의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p215)     


“듣기 싫겠죠!” 그녀가 소리쳤다. “하지만 헨리, 아무리 끔찍한 일이라고 해도 당신은 두 사건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해해야 돼요. 당신은 정부가 있었어요. 나는 용서했어요. 헬렌은 애인이 있었어요. 그런데 당신은 그 애를 집에서 내보내라고 해요. 연결이 되나요? 어리석고 뻔뻔하고 잔인한 일이에요. 너무 끔찍해요! 살아 있는 아내를 모욕해 놓고 죽은 아내의 추억을 말하는 남자, 쾌락을 좇아 한 여자의 인생을 망쳐 놓고 그 여자를 버려서 다른 남자들을 망치게 한 남자. 그리고 엉터리 충고를 해놓고 나중에 자기 책임이 아니라고 발뺌하는 남자. 그런 남자가 바로 당신이에요. 당신은 그런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해요. 왜냐하면 연결시키지 못하니까요. 나는 당신의 무분별한 친절을 이미 충분히 겪었어요. 또 당신의 응석도 충분히 받아 주었어요. 당신은 평생토록 그렇게 응석만 부렸어요. 윌콕스 부인도 당신의 응석을 받아 주었어요. 아무도 당신에게 당신의 진정한 모습을 말해 주지 않았어요. 당신은 모든 게 뒤엉켜 있어요. 죄악에 이를 만큼 뒤엉켜 있어요. 당신 같은 사람은 참회도 방패막이일 뿐이니까 참회도 하지 마세요. 그저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세요. <헬렌이 한 일은 나도 한 일이다>라고요.” (p399)     

연결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서둘러 돌을 집어 드는 법이다. (p404)   

  

헨리가 이런 일을 하고 헬렌에게 저런 일을 야기시킨 뒤 헬렌의 행동이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또 레너드가 헬렌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싶어서 찾아온 것. 찰스가 그런 레너드에게 화를 낸 것도 자연스러웠다. 자연스러웠지만 비현실적이었다. 이 시끄러운 원인과 결과의 연쇄 속에서 그들의 진정한 자아는 어떻게 되었는가? 레너드는 여기 자연스러운 원인으로 죽어 정원에 누워 있다. 그러나 삶은 깊고 깊은 강이었고 죽음은 푸른 하늘이었다. 삶은 집이었고 죽음은 한 줌의 건초, 꽃, 탑이었다. 삶과 죽음은 전부이자 모두이고, 그 예외는 킹이 퀸을 취하고 에이스가 킹을 취하는 이 질서 정연한 광기뿐이었다. 아, 아니다. 그 뒤에는 지금 발밑에 누운 남자가 열망했던 것과 같은 아름다움과 모험이 있었다. 무덤 이쪽에는 희망이 있었다. 지금 우리를 구속하는 한계들 너머 더욱 진정한 관계들이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본 감옥의 수인이 별들의 손짓을 읽듯이, 마거릿은 그즈음의 소동과 참화 속에서 더욱 신성한 수레바퀴들을 엿보았다. (p426-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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