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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Nov 28. 2022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지킬박사와 하이드>

영화 <지킬박사와 하이드> 2002년

<지킬박사와 하이드씨> 1941년     

그는 유리컵을 입에 대더니 단숨에 들이켜버렸네. 고통스러운 비명이 뒤를 이었지. 그는 비틀거리면서 휘청휘청하다가 테이블을 꽉 붙잡더군. 충혈된 눈으로는 앞을 똑바로 노려보고 벌린 입으로는 숨을 몰아쉬었지. 그리고 내 눈앞에서 변화가 일어났네. 그의 몸이 부풀어오르고, 그의 얼굴빛이 갑자기 시커멓게 변하면서 그 형상이 녹아들어가더니 모습이 바뀌기 시작했네. 그 순간 나는 앉아 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벽을 향해 뒷걸음질쳤지. 괴물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팔을 들어올리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이미 지독한 공포에 휩싸여 있었네. (p99)     


“인간의 절대적이고 근원적인 이중성을 나 자신이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의식속에서 갈등하는 두 개의 본성을 본 것이다.”      

나의 결점 중에서도 가장 나쁜 점은 쾌락을 추구하고 싶은 욕구를 참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세상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나로서는 내 정신을 고결하게 유지하고 사람들 앞에서 위엄 있는 냉정함을 유지하고 싶은 오만한 성격과 그런 욕구를 조화시키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들 몰래 쾌락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 결과 내가 과거를 뒤돌아볼 만한 나이가 되어 내 주변을 돌아보고, 내가 가진 부와 사회적 지위를 평가하게 되었을 때 나는 이미 이중 생활에 깊숙이 빠져 있었다.

내가 저지른 난잡한 생활 같은 죄악을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설정한 높은 이상 때문에 지독한 수치심에 사로잡힌 나는 그런 비밀들을 숨기고 있었다. 현재의 나를 만든 것은 내 결점으로 인한 퇴보가 아니라, 오히려 가차없이 엄격한 나의 향상심이었다. 나에게는 인간의 이중적인 성격을 나누고 화해시키는 선과 악의 영역 사이에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훨씬 깊은 골이 파여 있었고 그 구별이 엄격했다. 

이런 배경으로 인해 나는 종교의 근간에 놓여 사람들을 괴롭히는 고뇌의 원천이 되는 삶의 가혹한 규칙에 따라 과거를 깊이 반성해야 할 처지에 내몰렸다. 나는 비록 이중 생활을 깊이 영위하고 있긴 했지만 위선자는 아니었다. 나의 양면은 모두 똑같이 정직했다. 자제심을 벗어던지고 수치스러운 일에 빠져들 때도, 밝은 햇빛 아래 학문을 연구할 때나 슬픔에 빠진 어려운 사람들을 도욱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전적으로 통찰력과 초월적인 목표를 향해 매진하고 있던 내 학문의 방향이 어느 날 우연히 내 안의 선과 악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던 다툼에 반응을 일으키게 되었고, 목표가 더욱 뚜렷해졌다. 그때부터 날마다 나는 도덕과 지성이라는 양쪽 측면 모두에서 내가 진리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고 믿었다. 내가 끔찍한 파멸이라는 운명을 맞게 된 것은 그 연구의 와중에 발견한 부분적인 사실, 즉 인간은 본래 하나의 존재가 아니라 두 개의 존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킬박사와 하이드, P101-102>     


스티븐슨은 그와 동시에 선도 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의무감은 그의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인간은 악과 난폭한 충동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언제든 그런 성질이 밖으로 표출될 위험이 있으며, 엄청난 노력으로 그 충동을 제어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가 받은 가르침에 의하면 인간은 천성에 존재하는 이 악한 면을 정복해야만 고귀한 삶을 살 수 있었다. (p185)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직접적인 모티브가 되었던 것은 18세기의 실존 인물인 브로디 집사의 이야기였다. 성공회 신자로 신앙심이 깊기로 유명했던 브로디는 아버지의 금고회사를 물려받아 사업적으로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자선을 베풀어 사람들의 신망을 한몸에 받았고 에던버러의 시의원이 되기까지 했다. 또한 브로디는 헌금을 많이 함으로써 성공회 교회의 집사라는 자리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처럼 낮에는 모든 사람에게 존경받는 성공회 집사에 시의원이었던 브로디는 밤만 되면 완전히 다른 인간으로 변신했다. 밤의 브로디는 도둑질을 일삼고, 노름에 싸움질을 즐겼으며, 술을 퍼마시고 매춘부를 찾아가는 것으로도 모자라 교구민들을 몰래 유인해서 살인을 즐기기도 하는 사악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마침내 꼬리를 잡힌 브로디는 1788년 10월 교수형에 처해졌는데, 공교롭게도 교수형틀은 브로디가 설계해서 그의 금고공장에서 제작한 것이었다. (p207)     

선과 악의 이중성을 다룬 소설로서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반쪼가리 자작>도 다루고 있다. 전쟁에 참여하여 포탄에 몸이 세로로 반쪽이 나고, 반쪽은 악하고, 반쪽은 선한 몸으로 살아나 고향으로 돌아온다. 결말은 악한 부분과 선한 부분은 둘다 여인 파멜라를 사랑하고, 봉합수술을 통해서 합쳐지지만 여전히 선과 악은 우리에게 선과 악의 이중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의사들은 메다르도를 꿰매고 맞추고 혼합했다. 그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다음 날 나의 외삼촌은 한쪽 눈 , 반쪽 입을 열었고 팽창된 한쪽 콧구멍으로 숨을 쉬었다. 외삼촌은 테랄바 가문의 강한 체질로 버텨 낸 것이다. 이제 그는 반쪽이 되어 살아났다. 

<이탈로 칼비노, 반쪼가리 자작, P20>  

    

“그렇게 해서 모든 사람들이 둔감해서 모르고 있는 자신들의 완전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야. 나는 완전해. 그리고 내게는 모든 것들이 공기처럼 자연스럽고 막연하고 어리석어 보여. 나는 모든 것을 볼 수 있다고 믿었는데 그건 껍질에 지나지 않았어. 우연히 네가 반쪽이 된다면 난 너를 축하하겠다. 얘야, 넌 온전한 두뇌들이 아는 일반적인 지식 외의 사실들을 알게 될 거야. 너는 너 자신과 세계의 반쪽을 잃어버리겠지만 나머지 반쪽은 더욱 깊고 값어치 있는 수천가지 모습이 될 수 있지. 그리고 너는 모든 것을 반쪽으로 만들고 너의 이미지에 맞춰 파괴해 버리고 싶을 거야. 아름다움과 지혜와 정당성은 바로 조각난 것들 속에만 있으니까.”  

<이탈로 칼비노, 반쪼가리 자작, P60>    

  

그렇게 해서 외삼촌은 사악하지도 선하지도 않은, 사악하면서도 선한 온전한 인간으로 되돌아왔다. 표면적으로는 반쪽이 되기 전과 달라진 점은 없었다. 그러나 그에겐 두 반쪽이 재결합된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주 현명해질 수 있었다. 그는 행복한 생활을 했고 많은 자녀를 두었으며 올바른 통치를 했다. 아마도 우리는 자작이 온전한 인간으로 돌아옴으로써 놀랄 만큼 행복한 시대가 열리리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세상이 아주 복잡해져서 온전한 자작 혼자서는 그것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탈로 칼비노, 반쪼가리 자작,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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