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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Nov 16. 2022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영화 <장미의 이름> 1986년

아델모가 죽기 이틀 전에 수도사님께서는 바로 이 문서 사자실에서 있었던 토론회에 자리를 함께 하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아델모는 기이하고 환상적인 형상에 몰두하는 자기 예술을 변호하여, 형상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는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낸다고 했습니다. 즉, 자기 예술로써 천상적인 것들을 드러내 보인다고 했던 것입니다. 윌리엄 수도사께서는 방금 아레오파고 재판관 이야기를 하셨습니다만, 이 재판관 역시 왜곡된 것으로 바른 것을 말하였습니다. 이날 아델모 역시 아퀴노의 석학을 인용했습니다. 신성한 것은 귀한 몸보다 천한 몸을 그 형상으로 취한다는 주장이 그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첫째로, 인간의 영혼은 실수의 용납에 인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귀한 육신으로 그려지면 그 속성은 신성한 것에 닿지 못하고 그 뜻이 흐려지고 맙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이 겸허한 표현이야말로 이땅의 우리가 하느님에 대해 가진 지식에 합당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있는 것보다는 없는 것을 통하여 당신을 더 많이 드러내십니다. 따라서 하느님으로부터 가장 먼 이 형상은 가장 정확한 개념으로서의 하느님에 접근시킵니다. 이유인즉, 하느님은 우리가 말하고 생각하는 이상의 존재이시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까닭은, 이렇게 해야 하느님에 속한 사상(事象)이, 긴히 알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의 눈에 가려지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씀드리면, 그날 우리는 진리가, 짓궂은 형상과 수수께끼 같은 형상이라는 이 놀라운 표현법으로 어떻게 드러날 수 있느냐는 문제를 토론했습니다. 저는 그날 아델모에게, 저 위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에는 이 문제에 대한 적절한 해답이 보이더라고 말했습니다.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1, P141>     

진정한 앎이란, 알아야 하는 것, 알 수 있는 것만 알면 되는 것이 아니야. 알 수 있었던 것, 알아서는 안되는 것까지 알아야 하는 것이다. (p165)     


그리스 어에 능통한 베난티오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 다음에 쓴 저서에서 웃음의 문제를 특히 마음을 다하여 다루었다면서, 그렇게 위대한 철인이 서책 한 권을 웃음에 바쳤다면 필시 웃음이라고 하는 것이 그만치 중요하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했습니다. 호르헤 노수도사는, 많은 교부들은 죄악 이야기만으로 책을 썼는데, 이거야말로 죄악이라고 하는 것이 중요하면서도 사악한 것이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응수했습니다. 그러자 베난티오는, 자기가 아는 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웃음이라고 하는 것이 참으로 우리 삶에 바람직한 것일 수 있으며 진리를 나르는 수레일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말했습니다. 호르헤는 한심하다는 어조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문제의 책을 읽어 보았느냐고 물었고, 베난티오는, 자신이 읽어 본 적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어쩌면 영원히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르는 책이기 때문에 읽어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실제로 모르베카 사람 기욤의 수중에도 이 책만은 없었습니다. 호르헤 노수도사는, 쓰여지기는 쓰여졌으되 아무도 읽은 사람이 없다는 것을 보면 하느님의 섭리가 헛된 것을 영광되게 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두 분의 의론을 진정시키고 싶었습니다. 베난티오는 묘하게 호르헤 노수도사의 성미를 긁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우리가 아는 <시학>과 <수사학>의 한 부분을 예로 들면서, 여기에 아주 기발한 수수께끼에 관한 대단한 통찰이 엿보인다고 넌지시 말했더니 베난티오가 제 말에 찬성하고 나서더군요.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1, P185-186>     

1327년, 영국의 수도사 윌리엄(프란체스코회)은 이탈리아의 베네딕트 회 수도회 수도원에서의 살인사건의 조사관으로 온다. 그리고 묵시록에 예언된 것처럼 연쇄 살인이 벌어지는데, 첫날은 폭설 속의 시체(아델모, 채식수도사), 둘째 날은 항아리 속에 처박힌 시체(베난티오, 고전을 번역하는 수도사), 셋째 날은 피묻은 천과 욕조에서 발견(베렝가리오, 장서관 보조 사서). 넷째 날은 살바토레와 여인이 체포된다(살바토레의 가방에는 칼 한자루, 검은 고양이 한 마리와 달걀두개, 여인의 품안에는 갓 잡은 수탉 한 마리), 다섯째 날은 세베리노는 그의 실험실에서 천구의로 머리를 얻어맞고 시체로 발견되었다, 여섯째 날 찬미가가 울려 퍼지고 있을 동안 말라키아가 바닥에 꼬꾸라진다, 일곱째 날 장서관의 밀실 <아프리카의 끝>에서 호르헤 노인을 만나고 불길에 화재로 번진다. 미로같은 장서관의 중요한 서책이 살인 사건의 실마리이고,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의 2권, 웃음편이다.     

  

하느님의 백성은 양치기(즉 성직자)와 수양견(守羊犬, 즉 군대)과 양(즉 대중)으로 나뉜다. 나는 이런 견해가 세월이 흐름에 따라 여러 가지로 달리 표현될 수 있다는 것도 배워서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 베넥딕트 수도회에서는 이 하느님의 백성을 세 가지 부류로 나누지 않고 두 가지 부류로 나눈다. 즉, 하느님의 백성을, 지상의 일을 관장하는 부류와 천상의 일을 관장하는 부류로 나누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상의 일에 관한 한 성직자와 세속 군주와 민중이라는 3분법이 유효하게 된다. 하면 <오르노 모나코룸>의 수도사들은 무엇인가? 수도사는 하느님의 백성과 천상의 일을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직분을 가진 사람들이다. 따라서 수도사는 재속(在俗)하는 성직자들과 달라지게 된다. 말하자면 수도사들은 재속의 양치기(성직자)들과 같지 않게 된다. 베네딕트 회의 견해에 따르면 속세의 양치기들은, 도시의 이해(利害) 문제에 끼여들고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어리석고 부패한 무리에 속한다. 더구나 도시에 사는 양들은 선량하고 충직한 농민이 아니라 약삭빠르고 교활하기 짝이 없는 상인 아니면 장인(匠人)들이다. 베네딕트 회의 경우, 평신도에 대한 관리는 재속 성직자들에게 맡겨 버리고, 천상적인 권력의 원천인 하느님과 지상적인 권력의 원천인 황제와 직접 접촉하고 이 관계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권한을 수도회에 맡길 수만 있다면 문제는 없어진다. 이렇게 하자면 베네딕트 회 수도원은, 천상적인 권력을 지닌 교황권과 지상적인 권력을 지닌 황제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지 않으면 안된다. 내가 보기에 바로 이 때문에 베네딕트 회 수도원장들의 대부분이 도시 정권(재속 성직자와 상인이 결탁한)에 대항하여 황제의 권위를 옹호하는 데 동의하는 한편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엄격주의파 수도사들까지 보호해 온 것 같다. 다시 말해서 당시의 엄격주의파가, 막강한 세력으로 자라나는 교황권에 대항하여 황제권에다 훌륭한 공격의 구실을 마련해 주기 때문에, 베네딕트 수도회에서는 그들의 교리 자체에 공감하는 것은 아니면서도 대단히 쓸모 있는 존재로 보고 그들의 피난처 노릇을 해 온 것 같다는 것이다.

나의 추론에 따르면, 베네딕트 회 수도원장이, 황제가 파견한 윌리엄 수도사와 손을 잡고 프란체스코 수도회와 교황청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하려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1, P240-241>   

   

불가리아 교회와 리프란도 사제의 추종자를 구분하지 못하듯이 제국의 성직자들과 이들의 추종자들 역시 엄격주의파와 이단을 구분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제국이 그 반목하는 세력과 싸우기 위해 대중이 지니고 있는 카타리 적(的) 성향을 자극한 것이 어디 한두 번이더이까? 내 말은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알기로 더욱 위험한 것은, 이 세력이 위험하고 불안하고 무식하다고 해서 이들을 이단으로 몰아 화형대에 세우는 일입니다. 원장, 내 눈으로 직업 보았으니 맹세코 하는 말입니다만, 나는 착한 삶의 길을 걷는 사람들, 청빈과 정결의 교리를 따르던 사람들이 단지 주교의 적이라는 이유 때문에 속권에 넘겨지는 것을 무수히 본 사람입니다. (p252)     

"이 세상 만물은 책이며 그림이며 또 거울이거니, 장미는 우리의 모습을 그리고, 우리의 운명을 설명하고, 우리의 삶을 읽어 준다. 장미는 아침에 피어 만개했다가 이윽고 시들어 가니까.“     

“가짜 그리스도는 지나친 믿음에서 나올 수도 있고, 하느님이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믿음과 사랑에서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이단자 중에서 성자가 나오고 선견자 중에서 신들린 무당이 나오듯이.... 호르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서책을 두려워한 것은, 이 책이 능히 모든 진리의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방법을 가르침으로써 우리를 망령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해 줄 수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의 할 일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를 비웃게 하고, 진리로 하여금 웃게 하는 것일 듯하구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좇아야 할 궁극적인 진리가 아니겠느냐?”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2, P762-763>   

  

“우리가 상상하는 질서란 그물 아니면 사다리와 같은 것이다. 목적을 지닌 질서이지. 그러나 고기를 잡으면 그물을 버리고, 높은 데 이르면 사다리를 버려야 한다.”  

    

[장서관의 구조]

“장서관 안에는 방이 모두 쉰 여섯 개가 있습니다. 그중 네 개는 7면벽실, 쉰 두 개는 4면벽실입니다. 창이 없는 방은 여덟 개.... 쉰 두 개의 방 가운데 스물 여덟 개는 외벽에 면해 있고 열 여섯 개는 내벽에 면해 있습니다.”

“네 개의 탑루에는 각각 4면벽실이 다섯 개씩, 7면벽실이 하나씩 있다..... 장서관은 천상의 조화, 말하자면 갖가지 오묘한 의미와 상통하는 천상의 조화에 따라 설계된 것이로구나.” (p350)     

“지난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Stat rosa pristina nomine, nomina nuda tenemus" - 베르나르의 <속세의 능멸에 대하여>에 나오는 일절.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2, P776>   

  

움베르토 에코는 기호학자이다. 소설 <장미의 이름>은 살인을 실마리를 푸는 열쇠로 기호를 많이 언급한다.     

이 미궁을 빠져 나가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처음 보는 문마다, 우리가 지난 곳마다 세 개의 기호로 나누어 표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 놓으면 한 번 지나간 곳은 쉬 알아볼 수 있어서 두 번 다시는 실수하지 않을 게다. (p290)


이렇게 해 나가면 이 미궁의 분기점에는 기호가 없는 출입구가 하나도 없게 될 경우 세 개의 기호가 그려진 출입구를 통하면 장서관의 미궁을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p291)     

“베난티오의 시신은 돼지 피 항아리로 끌려 들어갔다. 그때 눈 위에 남았던, 베난티오가 끌려간 흔적이 그러하듯이, 비록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 일각수는 나에게 여전히 유용하다. 서책 속의 일각수는 그 흔적과 같다. 흔적이 있으면 흔적을 남긴 존재도 분명히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일각수와 그 흔적은 다른 것일 것 같습니다만.”

“다를 수도 있고 같을 수도 있다. 남기는 것에 따라 흔적의 모양은 늘 같지 않고, 또 흔적이라는 것이 꼭 찍혀야 생기는 것도 아니다. 때로 인간의 육체가 인간으 마음에다 흔적을 남기기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관념의 흔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관념은 만물의 기호요, 형상은 기호의 기호, 관념의 기호인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인간의 육체나 관렴이 없어도 이미지로써 이를 재구성한다.”

“그 이미지라고 하는 것은 사부님 보시기에 넉넉한지요?”

“아니다. 기호에 지나지 못하는 관념에 만족해서는 참 배움이 이뤄지지 않는다. 나름의 진실 안에 도사리고 있는 것을 찾아내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 흔적의 흔적에서, 사슬의 첫 번째 고리인 내 나름의 일각수에게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이제 베난티오의 살해자가 남긴 모호한 기호, 그러나 많은 것을 말해 주는 흔적에서 살해자의 문제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나마 단시간에는, 다른 흔적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2, P505>       


“나는 기호의 진실을 의심한 적 없다. 이 세상에서 인간이 나아갈 길을 일러주는 것은 기호밖에 없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 것은 기호와 기호와의 관계다. 나는 일련의 사건을 두루 꿰고 있다고 믿었고, <묵시록>을 본으로 삼아 호르헤에게 도달했다.” (p763)      

[프란체스코회와 도미니크회의 청빈에 대한 논쟁]

“청빈에 대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론은 우리 프란체스코 회의 이론보다 훨씬 대담하다. 우리는, <우리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되 모든 것을 사용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퀴나스께서는, <물질을 소유하고, 그대 자신을 그 물질의 소유자로 여기되, 필요로 하는 자가 있거든 쓰게 하라, 이는 자비가 아니라 의무이니라>, 이렇게 말씀하셨다. 허나 문제는 그리스도께서 가난했느냐, 가난하지 않았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청빈해야 하느냐, 그렇지 않아도 되느냐 하는데 있다. <가난>의 의미는 궁전을 가지고 있느냐, 가지고 있지 않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이 땅의 물질을 다스릴 권리를 갖느냐 포기하느냐에 있는 것이다.” (p548-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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