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용헌 Nov 14. 2022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

영화 <야간비행> 1996년

리비에르는 자신이 오래전부터 긴장된 두 팔로 굉장히 무거운 짐을 들어 올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휴식도 희망도 없는 노력이었다. ‘나는 늙어 가고 있다....’ 자신의 유일한 행동에서 더 이상 자신의 양식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늙어 가고 있다는 뜻이다. 그는 한 번도 제기해 보지 않았던 문제들을 깊이 생각하고 있는 스스로가 놀라웠다. 그리고 자신이 늘 피해 왔던 그 부드러운 덩어리가 우수에 젖은 속삭임과 함께 그에게 되돌아왔다. 잃어버린 대양처럼. ‘그러니까 그 모든 것이 이토록 가까이 있었던가?’ 그는 인간의 삶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들을 늙어서 ‘시간이 날 때’로 조금씩 밀쳐 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언젠가는 정말로 시간이 날 것처럼, 삶의 끝에 이르면 상상해 오던 그 다행스러운 평화를 얻어 낼 것처럼. 하지만 평화란 없다. 아마 승리도 없을 것이다. 모든 우편기의 최종적인 도착이란 없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야간비행, P25-26>     

“전체의 이익은 개개인의 이익이 모여 이루어지죠. 하지만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정당화하지 않아요.”

한참 후에 리비에르가 그에게 대답했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을 값으로 따질 수 없다 해도 우리는 언제나 인간의 생명을 넘어서는 가치 있는 뭔가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지요.... 그런데 그게 무엇일까요?”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야간비행, P112>  

    

생텍쥐페리는 당시의 전통적인 학교 교육 이외에 비행과 그에 관련된 기계적인 것에 대한 취향을 일찌감치 드러낸다. 군복무 시절(1921~1926년)에 이미 최초의 단독 비행을 이루어 낸 그는 조숙하고 냉정한 성품으로 라테코에르 항공사에 조종사로 입사하게 된다. 라테코에르 항공사는 전 세계 민간 항공의 선구적인 회사로서, 1927년에 우편기 회사가 되며 1933년에 에어프랑스에 합병된다. 생텍쥐페리를 라테코에르의 조종사로 불러들인 사람은 항로책임자 디디에 도라(Didier Daurat)였다. <야간비행>의 주인공 리비에르의 실존 인물이기도 한 이 사람은 생텍쥐페리에게 커다란 감명을 준 직장 상사였다. (p154-155)     

항공사의 항로 개발 책임자인 리비에르는 비행기가 기차나 선박 같은 기존의 운송 수단들과의 속도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수단으로 야간 비행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당시만 해도 야간 비행을 위한 항공 기술은 아직 초보 단계였다. 게다가 불확실한 기후는 언제나 불시의 위협을 준비하고 있었고, 산악 지대의 지형들은 곳곳에 보이지 않는 위험을 내장하고 있었다. 이렇듯 불안한 조건들 때문에 여론은 물론이고, 항공사 관계자들조차 야간 비행에 대해 전혀 호의적이지 않았다. <야간비행>은 바로 이런 상황속에서 한 조종사의 비극적인 죽음에도 불구하고 야간 비행에 대한 불굴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책임자의 모습을 절제된 서술로 교직해 낸 장엄한 서사시와도 같은 소설이다. (p157)     


조종사 파비앵이 모는 파타고니아선 비행기는 악천후를 만나 안데스 산맥 부근에서 실종되고 만다. 부에노스아이레스 항공 기지에서는 아무리 강직한 리비에르일지라도 야간 비행이 당분간 차질을 빚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리비에르는 유럽선 우편기의 출발을 명령하고 야간 비행은 다시 순조롭게 이어지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p158)     

야간비행을 시도하는 감독관 리비에르와 조종사 파비앵의 야간비행으로 인한 개인의 희생이라는 소설을 통해서 우리는 ‘개인의 희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고대의 지도자는 인간의 고통에 대해서 연민을 갖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인간의 죽음에 대해서는 엄청난 연민을 가졌을 것이다. 인간 개개인의 죽음에 대한 연민이 아니라, 바다가 쓸어 버리는 모래와도 같은 인간 종족에 대한 연민 말이다. 그리하여 그는 사막이 파묻어 버리지 못한 돌기둥이라도 세워 놓으려고 백성을 산으로 이끌었던 것이리라. (p114)     

소설에서 등장하는 조종사 파비앵의 악천후를 무릅쓰고 비행에서 실종되지만, 영화 <야간비행>(1996)는 카이로 부근의 사막에 불시착하고, 모든 역경에도 불구하고 오직 아내 콘수엘로(Consuelo de Saint-Exupery: 미란다 리차드슨 분)에 대한 사랑때문에 그곳을 탈출한다. 생사를 건 비행을 걱정하는 아내 콘수엘로와의 관계는 점점 악화되고 결국, 일생을 조종사로 끝마치려는 그는 세계대전 중에 정찰조종사로 자원입대를 한다. 생텍쥐베리의 생애와 닮아 있다.     


이전 05화 아더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