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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Feb 23. 2023

조지프 헬러의 <캐치-22>

영화 <캐치-22> 1970년

영화 <캐치-22> 2019년 미국드라마 6부작으로 만들어졌다. 요사리안 대위역은 크리스토퍼 애봇, 개스카트 대령역은 카일 챈들러, 셰이스코프 중위역은 조지 클루니가 맡았다.      

[“자신이 미쳤다는 것을 아는 미치광이는 미치광이가 아니므로 제대할 수 없다”-캐치-22조항]     


<조지프 헬러, 캐치-22 Ⅰ> 

“여러분.” 조심스럽게 말을 쉬어 가면서 그는 장교들에게 얘기하기 시작했다. “여러분은 미국의 장교입니다. 세계의 어느 다른 나라 군대도 그 말을 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 생각을 해 봐요.” 그는 그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 잠깐 동안 기다렸다. “이 사람들은 여러분의 손님입니다!” 그가 갑자기 소리쳤다. “그들은 여러분을 위문하기 위해서 5000킬로미터나 여행해 왔습니다. 나가서 구경을 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그들의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그들의 사기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 여러분. 똥줄이 타는 건 내가 아닙니다. 하지만 오늘 여러분을 위해서 아코디언을 연주할 여자는 여러분의 어머니뻘이 될 만큼 나이가 많습니다. 만일 여러분의 어머니가 아코디언을 연주하려고 5000킬로미터나 여행을 해서 찾아왔는데 아무도 구경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저 아코디언 연주자처럼 늙은 어머니를 둔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기분이 어떨까요? 우리는 모두 그 대답을 압니다. 자, 여러분. 내 말을 오해하지 말아요. 이것은 물론 다 자발적인 일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USO 쇼를 보러 가서 즐기라는 명령을 내리기는 이 세상에서 어느 대령보다도 싫어하는 사람이지만 나는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할 사람을 제외하고 여러분이 모두 지금 당장 그 USO 쇼에 가서 재미를 보기를 바라며, 이것은 명령입니다!”

요사리안은 거의 병원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을 만큼 속이 뒤집히는 기분이었고. 세 차례 출격을 하고 돌아왔을 때 다네카 군의관이 처량하게 머리를 저으면서 그의 비행 근무를 해제시키지 못하겠다고 거부했을 때는 속이 더 답답했다.   (P47-48)   

  

하버마이어는 목표물을 절대로 놓치지 않는 폭격수였다. 요사리안은 맞거나 말거나 될 대로 되라고 이제는 신경을 쓰지 않아서 강등된 선두 폭격수였다. 그는 노력하다가 죽느니 차라리 얌전하게 끝까지 살기로 작정했으며, 출격 때마다 살아서 착륙하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이륙했다.   (P50)   

  

“비행 근무의 면제를 받기 위해서 그가 할 일은 그것뿐인가?”

“그것뿐이야. 나한테 신청을 하라고 해.”

“그러면 자네가 그의 비행 근무를 해제시킬 수 있나?”

요사리안이 물었다. 

“아니, 그러면 난 그의 비행 근무를 해제할 수가 없어.”

“그런 속임수(catch)가 있단 말인가?”

“물론 함정(catch)이 있지.” 다네카 군의관이 대답했다.

“캐치-22가 있으니까. 전투 임무를 면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누구라도 정말로 미치지는 않았어.”

함정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캐치-22였는데, 그 규칙은 긴박한 현실적인 위험의 면전에서 자신의 안전을 걱정하는 행위는 합리적인 심리의 전개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오르는 미쳤고 그래서 비행 근무를 해제 받을 수 있었다. 그가 할 일이라고는 신청하는 절차뿐이었는데, 그가 신청만 하게 된다면 그는 더 이상 미친 상태가 아니어서 다시 출격을 계속 나가야 한다. 출격을 더 나간다면 오르는 미치게 되며, 그러지 않는다면 정상적인데, 만일 정상적이라면 그는 출격을 나가야 한다. 요사리안은 캐치-22의 이 구절이 내포한 절대적 단순성에 깊은 감동을 느껴서 존경스러운 휘파람 소리를 냈다.

“그 캐치-22라는 거 굉장하구먼.” 그가 말했다.    (P81-82)    

 

마일로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는 클레빈저도 알 길이 없었지만, 그래도 그는 스나크 상등병은 살아도 좋은데 왜 요사리안은 죽어야만 하는지, 또는 요사리안은 살아도 좋은데 스나크 상등병은 왜 죽어야 하는지, 그것만 빼고는 전쟁에 대해서 무엇이나 다 알고 있었다. 이 전쟁은 더럽고 지저분해서. 요사리안은 이까짓 전쟁쯤은 없어도 얼마든지 영원히 살 자신이 있었다. 그의 동포들 가운데 아주 적은 숫자의 사람들만이 이 전쟁에서 이기려고 목숨을 버릴 터였지만, 그는 그러고 싶은 야심은 없었다. 죽느냐 죽지 않느냐, 그것이 문제였으며, 그 문제의 해답을 찾으려고 하다가 클레빈저는 맥이 빠지기 일쑤였다. 요사리안의 때 아닌 서거를 역사는 요구하지 않았고, 그가 죽지 않아도 정의는 실현되었고, 발전은 이룩되었고, 승리는 달성되었다. 사람들이 죽으리라는 것은 필연성이었지만, 어떤 사람들이 죽느냐 하는 것은 상황이 결정했는데, 요사리안은 상황의 제물이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러나 전쟁은 그런 것이었다. 그가 찾아낼 수 있는 전쟁의 장점이라고는 봉급이 많이 나오고, 부모들의 악독한 영향에서 아이들을 해방시켜 준다는 사실뿐이었다.  (P123-124)     


셰이스코프 소위는 학군단 출신이었는데, 팔 주에 한 번씩 도살장으로 가는 길에 그의 손아귀로 끌려오는 아이들에게 딱딱거리는 군대식 말투로 “제군들.” 소리를 하고, 날마다 장교의 군복을 입을 수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전쟁이 터진 것을 반가워하는 편이었다. 셰이스코프 소위는 야망은 많고 재미는 없는 사람이었으며, 긴장된 정신 상태에서 그의 임무들을 수행했고, 산타아나 공군 기지에서 경쟁 상대인 다른 장교가 오래 끄는 병에 걸렸을 때를 제외하고는 웃지도 않았다. 시력이 형편없었으며 만성 치질을 앓아서 해외 복무를 할 위험이 없었기 때문에 그에게는 전쟁이 더욱 신났다. 그에게 있어서 가장 탐탁하게 여길 만한 것이 있다면 그의 아내를 들 수 있었고, 그의 아내에게서 훌륭한 점을 손꼽는다면 남편의 비행 중대에서 누구라도 품에 기어들고 싶어 하는 후보생이 있을 때마다 주말이면 입고 있다가 벗어 버리는 여군 군복의 주인인 여자 친구 도리 더스를 두었다는 점이었다.   (P127)     

“출격은 할 만큼 했으니까 고향으로 돌아가라고요.” 

“출격은 몇 번이나 했지?”

“쉰한 번요.”

“자넨 네 차례만 더 나가면 되겠구먼.”

“횟수는 또 늘어날 겁니다. 제가 거의 다 숫자를 채우기만 하면, 또 늘어납니다.”

“이번에는 안 그러겠지.”

“어쨌든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승무원의 숫자가 모자랄 때까지 모두 교대 명령이 떨어지기만 기다리게 했다가 출격 횟수를 늘리고는 다시 전투지 복무로 되돌려 보내죠. 캐스카트 대령님은 이곳에 부임한 이후 줄곧 그래 왔습니다.”   (P190)     


“전 폭격 비행을 나가고 싶지 않습니다. 전 더 이상 전쟁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요.”  

“자넨 조국이 패배하는 꼴을 보고 싶은가?” 메이저 메이저가 물었다. 

“우린 패배하지 않습니다. 우린 사람과 돈과 물자가 더 많으니까. 저하고 교체해 줄 만한 군인은 천만 명이나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목숨을 잃지만,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은 돈을 벌고 재미를 보죠.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더러 죽으라고 합시다.”

“하지만 우리 편이 모두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나?”

“그런 경우에 제가 다른 생각을 한다면 전 분명히 정신나간 멍텅구리죠. 그렇지 않습니까?” 

(P191)     

캐스카트 대령은 매끈하고, 출세가 빠르고, 단정치 못하고, 불행한, 서른여섯 살 난 남자였으며, 걸을 때에는 기우뚱거렸고, 소원은 장군이 되는 것이었다. 그는 날쌔고, 맥이 빠지고, 균형이 잡힌 자세에, 항상 못마땅해했다. 그는 자만심이 있고 불안정하며, 상관들의 관심을 끌 만한 행정적 처리에 과감했으며, 그의 계략들이 언젠가는 모두 보복으로 돌아올까 봐 조바심했다. 그는 미남이며, 매력이 없었고, 으스대고, 살이 쪘고, 속이 꼬였으며, 계속되는 걱정에 사로잡혀 만성적으로 괴로움을 느꼈다. 캐스카트 대령은 이제 겨우 대령이 되었는데 나이가 벌써 서른여섯이어서 속이 상했다.   (P345)     


불안한 잠깐 동안의 시간에 군목은 과거에 또는 전생(前生)에서 언젠가 이와 똑같은 상황을 겪은 듯한 괴이하고도 오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는 다음에 벌어질 어떤 사태를 미리 예견하고, 가능하다면 조절할 수 있도록 머릿속에 떠오른 인상을 붙잡아 발전시켜 보려고 했지만, 그럴 줄 미리 알았듯이 그 영감은 비생산적으로 스러져 버렸다. Deja vu(이미 보았음). 무질서한 기억력의 특성인 환상과 현실 사이의 미묘하게 반복되는 혼란은 군목을 매료시켰으며, 그는 그것에 대해서 아는 것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그는 그것이 기억의 무질서라고 불리는 것을 알았고, jamais vu(본 적이 없음)나 presque vu(본 듯 만 듯함) 따위의 추론적인 시각적 현상에도 마찬가지로 관심이 있었다. 군목이 거의 평생을 함께 살아 왔던 사물들이나 개념들, 심지어는 사람들까지도 그가 여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전혀 낯설어 보이는 서먹서먹하고 비정상적인 jamais vu라는 형태를 취하는 무섭고도 갑작스러운, 설명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를 찾아온 명석함 속에서, 찬란한 광채를 통해 절대적인 진리를 거의 볼 수 있는 presque vu라는 또 다른 순간들도 있었다. 스노든의 장례식 때 나무 위에 있었던 발가벗은 남자에 대한 일화는 완전히 그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그때까지 그는 스노든의 장례식에서 전에 발가벗은 나무 위의 남자를 본 적이 없었으므로 그것은 deja vu가 아니었다. 낯선 가면을 쓰고 그에게 낯익은 모습으로 나타나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 사물이나 사람의 환상은 jamais vu가 아니었다. 그리고 군목은 그를 정말로 보았기 때문에, 그것은 분명히 presque vu가 아니었다.   (P374-376)    

 

캐스카트 대령은 군목에 대해서는 전혀 아무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으며, 새롭고 위협적인 문제에 얽매여 있었으니, 그 문제란 바로 요사리안이었다!

요사리안! 그 지긋지긋하고 흉측한 이름은 소리만 들어도 등골이 오싹했으며 답답할 만큼 숨이 찼다. 군목이 처음 ‘요사리안!’이라는 이름을 입에 올리자 그 어휘는 그의 기억 속에서 불길한 징소리처럼 울렸다.  (P383)

<조지프 헬러, 캐치-22 Ⅱ>  

“귀관이 누구라고?”

“내 이름은 요사리안이에요. 소령님. 그리고 난 다리에 부상을 입어 입원했고요.”

“귀관 이름은 포르티오리야.” 샌더슨 소령이 도전적으로 반박했다. “그리고 귀관은 타액선에 결석이 생겨 입원했어.”

“아, 이러지 마세요. 소령님!” 요사리안이 화를 벌컥 냈다. “내가 누구인지는 내가 더 잘 알아요.”

“그리고 난 그것을 증명하는 군대의 공식 기록을 가지고 있어.” 샌더슨 소령이 반박했다. “너무 늦어지기 전에 귀관은 자신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좋겠어. 처음에 귀관은 던바였지. 이제 귀관은 요사리안이야. 그러다가 귀관은 자기가 워싱턴 어빙이라고 우겨 대기 시작하겠지. 귀관은 어디가 탈인지 알겠나? 귀관은 복합 성격의 소유자야. 그게 탈이지.”

“당신 말이 맞는지도 모르죠. 소령님.” 요사리안은 정책적으로 동의했다. 

“내가 옳다는 건 나도 알아. 귀관은 아주 심한 피해망상증에 걸렸어. 귀관은 남들이 귀관을 해치려고 한다고 생각하지.”

“사람들은 진짜로 나를 해치려고 그러죠.”

“내가 뭐랬어? 귀관은 지나친 권한이나 폐물이 된 전통을 조금도 받들지 않아. 귀관은 위험하고, 퇴폐적이고, 그리고 당장 밖으로 끌고 나가서 총살을 시켜야 할 사람이야!”

“그거 진담이에요?”

“귀관은 민중의 적이야!”

“당신 미쳤어요?” 요사리안이 소리쳤다.   (P147-148)    

 

“귀관은 강탈이나 착취나 굴종이나 모욕이나 기만을 당한다는 개념에 반발하지. 비참한 것을 보면 귀관은 마음이 우울해져. 무지를 보면 귀관은 마음이 우울해져. 빈민굴을 보면 귀관은 마음이 우울해져. 탐욕을 보면 귀관은 마음이 우울해져. 처형장면을 보면 귀관은 마음이 우울해져. 폭력을 보면 귀관은 마음이 우울해져. 범죄를 보면 귀관은 마음이 우울해져. 부패를 보면 귀관은 마음이 우울해져. 정말이야. 만일 귀관이 조울증에 걸렸다고 해도 난 놀라지 않을 거야.”

“예. 소령님. 아마 난 그런지도 모르죠.”  

“부인할 생각은 말아.”

“난 부인하지 않아요. 소령님.” 마침내 그들 사이에 존재하게 된 기적 같은 영교(靈交)로 기분이 좋아진 요사리안이 말했다. “난 소령님의 모든 얘기에 동의합니다.” 

“그렇다면 귀관은 자기가 미쳤다는 사실을 인정하겠나?”

“미쳐요?” 요사리안은 충격을 받았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어째서 내가 미쳤나요? 미친 사람은 당신이죠!”

샌더슨 소령은 화가 나서 다시 얼굴이 붉어졌고, 두 주먹으로 자기 넓적다리를 후려쳤다. “나더러 미쳤다고 한다는 건 전형적으로 사디스트적이고, 복수심에 휩싸이고 편집병적(偏執病的)인 반응이야!” 그는 분해서 침을 튀기며 말했다. “귀관은 정말 미쳤어!”

“그렇다면 당신은 왜 날 귀국시키지 않나요?”

“그래서 난 자넬 귀국시킬 거야!”

“날 귀국시키겠대!” 다리를 절름거리며 병동으로 돌아온 요사리안은 신이 나서 발표했다. 

“나도요!” A.포르티오리가 기뻐했다. “방금 내 병동으로 와서 나더러 그렇게 말했어요.”

“나는 어떻고?” 던바가 의사들에게 성을 내며 물었다.

“귀관 말인가?” 그들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귀관은 요사리안하고 같이 가. 당장 전투지로!”

그리고 두 사람 다 전투지로 돌아갔다. 요사리안은 구급차를 타고 비행 중대로 돌아가자 격분했고, 그는 다리를 절면서 잘잘못을 따지려고 다네카 군의관에게로 갔는데, 군의관은 비참하고 모욕적인 태도로 그를 뚱하게 노려보았다.   (P156-158)     

요사리안은 그의 폭탄들이 어디에 떨어지든지 간에 이제는 더 이상 개의치 않았지만, 마을을 수백 야드 지나쳐서 폭탄을 투하하고는 고의적으로 그랬다는 사실이 어쩌다 발각되면 군사재판에 회부될 각오를 한 던바처럼 심하게 행동하지는 않았다. 요사리안에게까지도 한마디 얘기도 없이 던바는 출격에서 손을 뗐다. 병원 침대에서 떨어지고 난 다음 그의 머리는 광명을 보았거나 돌아 버렸는데, 어느 쪽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P207)     


그런 것은 존재하지도 않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화가 나서 캐치-22를 저주했다. 캐치-22가 존재하지 않음을 그는 똑똑히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그것이 존재한다고 모든 사람들이 믿는다는 것이었으며, 비웃거나 반박하거나 비난하거나 비판하거나 공격하거나 개정하거나 증오하거나 헐뜯거나 침을 뱉거나 갈기갈기 찢어 버리거나 짓밟거나 태워 버릴 대상이나 텍스트가 없기 때문에 훨씬 더 난처했다.   (P353)     

“당신의 국가는 이제 더 이상 당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아요.” 반발하지 않으면서 요사리안이 따졌다. “그러니까 당신이 하는 일이라고는 그들을 돕는 것뿐이죠.”

“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쓰지.” 댄비 소령이 솔직하게 인정했다. “난 전체적인 결과에만 정신을 집중시키고, 그들이 성공하고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려. 난 그들이 아무 의미가 없는 존재인 척하지.”

“아시겠지만 나도 그것이 문제죠.” 팔짱을 끼면서 요사리안은 동정적으로 차분하게 말했다. “나와 모든 이상(理想) 사이에는, 셰이스코프나 페켐이나 콘이나 캐스카트 같은 사람들이 항상 끼어들어요. 그러면 이상이 달라지죠.”

“그들을 생각해 주도록 자네가 노력해야지.” 댄비 소령이 긍정적으로 충고했다. “그리고 자넨 그들이 자네의 가치관을 바꾸도록 내버려 두면 절대로 안 돼. 이상은 좋지만, 사람들은 가끔 좋지 않기도 하니까. 자넨 차원 높은 조화를 올려다봐야지.” 

요사리안은 회의적으로 머리를 흔들어서 그 충고를 저버렸다. “내가 아무리 올려다봤자 죽어 가는 사람들만 보이죠. 천당이나 성자나 천사는 보이지 않아요. 모든 훌륭한 충동적인 행위와 모든 인간적 비극이 이루어질 때마다 뒷전에서 속셈을 차리는 사람들이 보여요.”

“하지만 그런 생각은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지.” 댄비 소령이 주장했다. “그리고 그런 것 때문에 흥분하지 말아야하고.”

“아, 그건 날 정말로 흥분시키지는 못해요. 내가 정말 화가 나는 건 그들이 날 병신 취급을 하기 때문이죠. 그들은 자기만 똑똑하고 나머지 사람은 모두 멍텅구리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댄비, 처음으로 방금 이런 생각이 떠올랐는데, 그들이 아마 옳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자넨 그런 생각도 해선 안 돼.” 댄비 소령이 말했다. “자넨 국가의 안녕과 인간의 존엄성만 생각해야지.”   (P420-421)     

“출격을 더 나가시겠어요?”  

“아냐. 물론 안 나가지. 그건 완전한 항복이야. 그리고 난 죽을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당신은 도망치겠어요?”   (P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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