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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Feb 19. 2023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있는 나날>

영화 <남아있는 나날> 1993년

돌이켜보면 나는 한때 열일곱 명의 직원을 거느렸던 사람이다. 그리고 이곳 달링턴 홀에서 스물여덟 명의 직원이 일했던 것이 그리 오래전 일도 아니다. 그런 집을 네 명의 직원으로, 다시 말해 가장 최소한의 인원으로 굴릴 수 있는 방안을 짜 보라니. 생각만 해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 딴에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나의 회의적인 생각이 은연중에 드러났던 모양이다. 안심시키려는 듯 패러데이 어르신께서 곧바로 다음과 같이 덧붙였기 때문이다.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직원을 추가로 고용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또 한 번 되풀이하셨다.

“네 명으로 되게끔 해 주면 나로서는 정말 고맙겠소.”

우리 대부분이 그렇지만 물론 나도 옛날 방식을 지나치게 많이 바꾸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일각에서 목격되듯 단지 전통 그 자체를 위해 전통에 매달리는 식의 집착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전기와 현대식 난방 장치가 일상화된 이 시대에, 한 세대 전이나 필요했을 많은 인원을 고용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실제로 나는 한동안, 오로지 전통을 고수하기 위해 불필요한 인원을 계속 유지하여 그 결과 고용인들의 건강을 해칠 정도로 시간이 남아도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직업 수준을 심각하게 떨어뜨리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믿던 사람이다. 게다가 패러데이 어르신은 지난날 달링턴 홀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것 같은 대규모 사교 행사는 앞으로 극히 드물 것이라고 분명하게 못 박으셨다.   (P14-15)   

  

“이런, 이런, 스티븐스. 여자 친구 얘기로군요. 게다가 당신 나이에 말이오.”

참으로 당혹스럽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예전에 달링턴 어르신은 고용인을 이런 상황으로 몰고 가신 적이 결코 없었다. 내가 패러데이 어르신의 품위를 깎아내리려고 하는 말은 절대로 아니다. 패러데이 어르신은 어쨌든 미국 신사이시고, 따라서 그분의 방식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심심찮게 보아 왔으니까. 그분이 무슨 악의를 가지고 하신 말씀이 아니란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 해도 내 입장에서 얼마나 불편한 상황이었을지 여러분은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당신의 그런 숙녀의 남자일 거라고는 정말 생각해 보지 못했소. 스티븐스.”

그분께서 계속 말씀하셨다. 

“마음만은 젊게 살자, 뭐 그런 거겠지? 하지만 그런 애매한 밀회에 나서는 당신을 돕는 게 잘하는 짓인가 모르겠소.”

나로서는 당연히, 그분이 내게 덮어씌우시는 그러한 동기들을 즉각 단호하게 부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패러데이 어르신께서 던지신 미끼에 걸려드는 짓이어서 상황을 더 난처하게 만들뿐이라는 것을 즉각 파악했다. 그래서 나는 그 자리에 어색하게 선채로, 여행 허락이 떨어지기만 기다렸다. 

비록 당혹스러운 시간이긴 했지만 패러데이 어르신을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는 점을 밝혀 두고 싶다. 그분은 어느 모로 보나 고약한 사람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그분은 그저 농담조의 분위기를 즐기고 계셨던 것 같다. 내가 볼 때 미국에서는 이런 것이 주인과 고용인이 서로 친하게 잘 지내는 다시 말해 일종의 애정 표현으로 해석되는 게 분명하다.  (P23-24)     

사실 위대함에 관한 이 질문은 우리 동업인들 사이에서 오랜 세월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켜 온 질문과 상통하는 면이 아주 많다. ‘위대한’ 집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 하인 전용 홀의 난롯가에 둘러앉아 이 주제를 두고 몇 시간씩 즐겁게 토론했던 일들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여러분도 눈치챘겠지만 나는, 위대한 집사는 ‘누구인가’라고 하지 않고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왜냐하면 우리 세대에 규범을 제공해 준 사람들이 누구냐를 두고 심각한 논쟁이 벌어진 적은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P40)     

[위대한 집사를 무엇인가?]

이 질문을 둘러싸고 오랜 세월 숱한 말들이 나왔는데도 내가 알기로, 우리 업계 내부에서 공식적인 답변을 확립하고자 한 예는 극히 드물었다. 유일하게 생각나는 사례는, 회원 기준을 생각해 내려했던 ‘헤이스 소사이어티’의 시도이다. 여러분은 어쩌면 ‘헤이스 소사이어티’를 모를지도 모르겠다. 요즘에는 세간에 회자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1920년대와 193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 단체는 런던 대부분의 지역과 홈카운티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실제로, 이 단체의 세력이 너무 커졌다고 느낀 나머지, 1932년인가 1933년에 단체가 해산되자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많았을 정도이다. 

‘헤이스 소사이어티’는 ‘오직 일류급’ 집사들만 인정하자고 주장했다. 이 단체가 끊임없이 확보하고자 했던 권력과 권위의 상당 부분이, 금방 생겨났다 사라지는 다른 유사 조직들과 달리 회원 수를 극히 제한함으로써 회원 자격에 일정한 신뢰성을 부여하는 방식에서 비롯되었다. 회원이 서른 명을 넘은 적이 한 번도 없었고 대체로 아홉 명 혹은 열 명 선에 머물렀다고 한다. 여기에 또 하나 원인을 덧붙이지만, ‘헤이스 소사이어티’가 다소 비밀 결사의 성향을 띠게 되면서, 전문적 사안들에 대해 이따금 발표하는 성명들이 석판에 쪼아 놓은 신성한 규범인 양 받아들여질 정도로 신비로운 존재로 부각되었다는 점이다.  (P43-44)     

나는 ‘헤이스 소사이어티’의 열렬한 지지자는 아니지만, 최소한 이 특별 성명만큼은 의미심장한 진실을 깔고 있었다고 믿는다. 어느 누구나 ‘위대한’ 집사라고 동의할 수 있는 사람들, 이를테면 마셜 씨나 레인 씨 같은 사람을 보게 되면, 그저 무작정 유능하기만 한 집사들과는 다르다고 느끼게 만드는 요소가 있는데 거기에 가장 근접하는 의미를 담아낸 것이 바로 이 ‘품위’라는 단어이다.   (P45)     

나는 우리가 말하는 ‘품위’란 것은 이 업에 몸담고 있는 한 끊임없이 의미 있게 추구할 수 있는 어떤 것이라고 지금도 굳게 믿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갖춘 마셜 씨 같은 저 ‘위대한’ 집사들도 오랜 세월 자기 자신을 단련하고 꼼꼼하게 경험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그것을 얻어 냈으리라고 확신한다.  (P46)     

진정한 의미의 집사가 존재하는 곳은 영국밖에 없으며 그 외의 나라들에는, 실제로 사용되는 칭호가 무엇이든, 오직 하인들만이 있을 뿐이라는 말을 이따금 듣게 된다. 나는 이 이야기가 진실이라고 믿는 편이다. 대륙 사람들은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는 혈통들이기 때문에 집사가 될 수 없다. 오직 영국 민족만이 할 수 있다. 대륙 사람들, 여러분도 물론 동의하겠지만 켈트족도 대체로 마찬가지인데, 그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격한 순간에 자기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며 따라서 최소한의 도전적 상황 외에는 전문가다운 품행을 유지하지 못한다.  (P58)     

루이스 씨는 말을 끊고, 어떻게 이어 갈까 잠시 고민하는 것 같았다. 이윽고 그는 다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좀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저기 있는 프랑스 친구 때문에 시간 낭비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기왕 이렇게 되었으니 저도 한 말씀 드리겠는데 지금 다들 상당히 솔직하게 나오시니까 저도 솔직해지겠습니다. 장내에 계신 신사 여러분,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여러분들은 순전한 몽상가 집단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국제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대사(大事)에 끼어들겠다고 고집하지만 않는다면 여러분은 정말 매력적인 사람들일 것입니다. 우리를 초청해 주신, 여기에 계신 우리의 훌륭한 분을 봅시다. 그는 어떤 사람이냐? 물론 신사입니다. 이 자리의 누구도 이견이 없을 줄 압니다. 전형적인 영국 신사죠. 점잖고 정직하고 선량하고. 그러나 이 어른은 ‘아마추어’입니다.”

그는 여기서 말을 멈추고 좌중을 둘러보았다.

“그는 아마추어이며, 오늘날의 국제 정세는 신사 아마추어들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유럽인 여러분들이 이 사실을 빨리 깨달을수록 좋을 겁니다. 점잖고 선량하신  신사 여러분, 제가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을 둘러싼 세계가 어떻게 변해 가고 있는지 혹시 아십니까? 여러분의 그 고상한 직관으로 활약할 수 있었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다만, 여기 유럽인 여러분들이 아직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를 초청해 주신, 선량한 분 같은 신사분들은 스스로 이해하지도 못하는 문제들에 끼어드는 것을 아직도 업으로 믿고 있습니다. 지난 이틀 동안 이 자리에서 시답잖은 얘기들이 너무나 많이 나왔습니다. 의도는 선량하지만 순진하기 짝이 없는 공론들이었죠. 유럽인 여러분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풀어 가기 위해서는 프로들이 필요합니다.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조만간 재앙으로 치닫게 될 것입니다. 건배합시다. 여러분. 제가 선창하겠습니다. 프로페셔널리즘을 위하여!”

모든 손님들이 대경실색하여, 입을 열지도 움직이지도 못했다 

루이스 씨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좌중을 향해 잔을 쳐들었다가 쭉 들이켜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거의 동시에, 달링턴 경께서 벌떡 일어나 말씀하셨다.

“우리 모두가 행복한 승리의 순간으로 즐겨야 마땅할 이 마지막 밤에 다투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루이스 씨, 당신의 견해를 존중하는 의미에서라도, 웬 괴짜가 궤짝에 올라가 떠벌이는 소리거니 흘려 버려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선생이 ‘아마추어리즘’이라고 설명하는 그것을, 내가 보기에는 여기에 계신 신사분 대다수는 아직도 ‘명예’라고 부르고 싶어합니다.”

그러자 웅성웅성 호응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일면서 몇 군데서는 “올소, 옳소”하는 고함도 들렸고 박수를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하나 더 예기하고 싶은 것은, 선생.....”

나리께서 말을 이으셨다.

“당신이 말하는 ‘프로페셔널리즘’이란 것에 대해선 나도 꽤 안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속임수와 조작으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됩니다. 다시 말해, 세상에서 선과 정의의 승리를 희구하기보다 탐욕과 이익을 우선 순위에 두는 것이지요. 선생이 말하는 ‘프로페셔널리즘’이 그런 것이라면 나는 관심도 없을뿐더러 굳이 갖추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P132-134)    

 

자신이 봉사해 온 세월을 돌아보며, 나는 위대한 신사에게 내 재능을 바쳤노라고, 그래서 그 신사를 통해 인류에 봉사했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만이 ‘위대한’ 집사가 될 수 있다.   (P149)     

실제로 나는 어쩌다 한때 모시게 된 신사나 숙녀에게 무턱대고 충성을 바쳐야 한다는 생각에 철저히 반대하는 사람에 속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서든 어떤 사람 앞에서든 가치 있게 살아온 집사라면 결국 한 번은 기회가 찾아오게 되어 있다. 마침내 탐색을 끝내고 “이 주인이야말로 내가 생각하는 고귀함과 존경할 만한 덕목을 모두 갖추었다. 이제부터 내 한 몸 다 바쳐 이분을 섬기겠다.”라고 자기 자신에게 단언할 수 있는 순간 말이다. 이것이 바로 ‘이지적으로’ 부여된 충성심이다.   (P251)     

그러고는 다시 침묵을 지키던 켄턴 양이 잠시 후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따금 한없이 처량해지는 순간이 없다는 얘기는 물론 아닙니다. ‘내 인생에서 얼마나 끔찍한 실수를 저질렀던가.’하고 자책하게 되는 순간들 말입니다. 그럴 때면 누구나 지금과 다른 삶, 어쩌면 내 것이 되었을지도 모를 ‘더 나은’ 삶을 생각하게 되지요. 이를테면 저는 스티븐스 씨 당신과 함께했을 수도 있는 삶을 상상하곤 한답니다. 제가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을 트집 잡아 화를 내며 집을 나와 버리는 것도 바로 그런 때인 것 같아요. 하지만 한 번씩 그럴 때마다 곧 깨닫게 되지요.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남편 곁이라는 사실을, 하진, 이제 와서 시간을 거꾸로 돌릴 방법도 없으니까요. 사람이 과거의 가능성에만 매달려 살 수는 없는 겁니다. 지금 가진 것도 그 못지않게 좋다, 아니 어쩌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닫고 감사해야 하는 거죠.”

.....

“옳은 말씀이에도, 벤 부인, 말씀하신 대로 시간을 돌리기엔 너무 늦었습니다. 그래요, 그런 이유들 때문에 당신과 부군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나 또한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겁니다. 당신도 지적했듯 우리는 ‘지금 현재’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얘기를 들어 보니 벤 부인, 당신도 만족하실 만한 여건입니다. 조만간 벤 씨가 은최하고 손자도 보게 될 테니 두 분 앞에도 행복한 세월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군요. 이제는 정말 그런 어리석은 생각들이 당신 자신과 당신 몫의 행복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게 해서는 안 될 겁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스티븐스 씨, 정말 감사합니다.”

“아, 벤 부인, 저기 버스가 오는 것 같군요.”  (P293-294)     

이윽고 선창의 전등들에 불이 들어오자 내 뒤의 군중들이 환호성을 울리며 이벤트를 반겼다. 바다 위의 하늘이 옅은 적색으로만 바뀌었을 뿐이어서, 햇볕이 아직 많이 남아 있는데도 지난 30분 사이에 선창에 모여든 이 사람들은 벌써 어둠이 떨어지기를 바라는 눈치들이다. 이것만 보아도, 조금 전에 이 벤치에 나와 나란히 앉아 묘한 이야기를 나누고 간 사람의 말이 맞다는 것이 확인되는 것 같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저녁은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라고 한다. 내가 생각해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그저 선창에 불이 들어왔을 뿐인데,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왜 이 많은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겠는가?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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