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러브드Beloved> 1998년
소설 <빌러비드>(Beloved)는 미국의 흑인 여성 작가 토니 모리슨의 1987년 소설이다. 미국 남북 전쟁 이후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신시내티의 집에 사악한 영혼이 도사린 전 노예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서 영감을 받았다. 켄터키주의 노예인 마가렛 가너(Margaret Garner)는 1856년에 탈출하여 자유주 오하이오주로 도피했다. 그녀는 1850년의 도망노예법에 따라 체포되었다. 미국 경찰이 가너와 그녀의 남편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던 오두막으로 돌진했을 때 그녀는 아이들을 죽이려 했고, 노예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이미 두 살배기 딸을 죽인 상태였다. 여성이고 어머니이기 때문에 성적 억압과 모성애의 박탈까지 겪어야 했던 한 흑인 여성이 노예라는 운명의 대물림을 끊기 위해 딸을 죽인 실화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구성했다. 이 소설은 1988년 픽션 부문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으며 1987년 내셔널 북 어워드 최종 후보에 올랐다. 1998년에는 오프라 윈프리 주연의 동명의 영화로 각색되었다. 그녀는 조상의 전통을 암시하지만 미국 문학 장르의 친숙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아프리카 신화적 요소를 사용하여, 고딕 소설(gothic novel)과 마술적 리얼리즘(magic realism)의 요소를 아프리카계 미국인 경험에 적용했다.
"뭘 위해 기도했어요, 엄마?"
"무얼 위한 기도는 하지 않았어. 엄마는 더이상 기도하지 않는단다. 그저 얘기를 할 뿐이지."
"무슨 얘기를 했는데요?"
"얘야, 넌 이해하지 못할 거야."
"아니에요. 이해할 수 있어요."
"세월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단다. 세월이란 걸 믿기가 힘들다고. 어떤 순간은 떠나가. 그냥 흘러가지. 또 어떤 순간은 그냥 머물러 있고. 예전에는 그게 내 재기억 때문이라고 생각했단다. 너도 알 거야. 어떤 일들은 까맣게 잊어버리지만, 또 어떤 일들은 절대 잊지 못하잖니.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 그 자리, 자리가 여전히 거기 남아 있어. 만약 집이 불타 무너져버렸다 해도, 그 장소, 그 집의 광경은 남아 있거든. 단지 내 재기억 속에서만이 아니라, 세상 어딘가에 말이야. 내 머릿속이 아니라 세상 밖 어딘가를 떠도는 광경을 내가 떠올리는 거야. 내 말은, 설사 내가 그걸 생각하지 않더라도, 심지어 내가 죽더라도, 내가 했거나 알았거나 본 일들의 광경은 여전히 어딘가에 남아 있다는 거지. 그 일이 벌어진 바로 그 자리에."
"다른 삶도 볼 수 있나요?" 덴버가 물었다.
"오, 그럼. 그렇지, 그렇고 말고. 어느 날 길을 걷는데 무슨 소리가 들리거나 혹은 뭔가 눈앞을 스쳐지나갈 때가 있잖아. 아주 선명하게. 그럼 넌 네가 그걸 떠올렸다고 생각할 거야. 네가 머릿속에서 끌어올린 광경이라고. 하지만 아니야. 그때는 누군가 다른 사람의 재기억과 우연히 맞닥뜨린 거야. 여기 오기 전에 내가 있었던 곳, 그곳은 정말 있어. 절대 사라지지 않아. 농장 전체가, 나무 한 그루, 풀잎 하나까지 몽땅 죽는다 해도. 그 풍경은 여전히 거기 남아 있어. 그뿐만 아니라 네가, 평생 그곳에 가본 적도 없는 네가 그곳에 가서 한때 농장이 있던 그 자리에 서면, 그 일은 다시 일어날 거야. 거기서 널 기다리고 있다가 네 앞에 나타날 거라고. 그러니까 덴버, 넌 절대 그곳에 가면 안 돼. 절대로. 모든 일이 다 지나갔다 해도, 완전히 끝났다 해도, 언제나 그곳에서 널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그래서 엄마는 자식들을 모두 거기서 빼내야만 했단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말이다."
덴버는 손톱 밑을 팠다. "아직도 거기서 기다리고 있다면, 세상에 죽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인가요?"
세서는 덴버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대답했다. "죽는 건 아무것도 없단다."
"엄마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 번도 말해주지 않았어요. 그놈들이 엄마를 채찍질했고 그래서 나를 가진 채 달아났다는 말밖에는." (P66-68)
그렇게 시작되었다. 깔깔 웃는 아이들과 춤추는 남자들, 통곡하는 여자들, 이윽고 모두가 어우러졌다. 여자들이 울음을 멈추고 춤을 추면, 남자들은 주저앉아 통곡했다. 아이들이 춤을 추면 여자들이 웃었고, 그러다가 아이들이 울었다. 모두 기진맥진하고 갈가리 찢긴 채 축축한 공터에 쓰러져 헐떡거릴 때까지, 뒤이어 침묵이 찾아오면, 베이비 석스 성녀는 그들에게 자신의 위대하고 커다란 심장을 내주었다.
그녀는 삶을 정화하라든가,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들이 이 땅의 축복받은 존재라든가, 세상을 물려받을 온유한 존재라든가, 영광을 누릴 순결한 존재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들이 누릴 수 있는 은총은 오직 그들이 상상할 수 있는 은총뿐이라고 말했다. 은총을 볼 수 없다면, 누릴 수도 없다고. (P149)
다른 무엇보다도 철저하게, 그들은 사람들이 ‘삶’이라고 부르는 화냥년을 죽였다. 그들을 계속 살아가게 했으니까.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는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라고, 또다른 시간의 일격이 마침내 이것을 끝낼 거라고 믿게 했으니까. 그년의 숨통이 끊어진 뒤에야 비로소 그들은 안전해질 것이다. 성공을 거둔 죄수들─삶을 병신으로 만들고 사지를 절단하고 심지어 땅에 묻어버릴 만큼 오랫동안 그곳에서 지낸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거시기를 간질이는 그년의 품에 빠져 앞날을 기대하며 걱정하고 과거를 돌아보며 기억하는 다른 죄수들을 계속 주시했다. 눈으로 “나 좀 도와줘, 안 좋아”라든가 “조심해”라고 말하는 죄수들을. 그것은 오늘 난 대들거나 내 똥을 먹거나 달아날지도 몰라 라는 뜻이었다. 마지막 계획이야말로 하지 못하게 지켜봐야 했다. 만약 누구 하나가 무모하게 달아나기라도 하면 모든 죄수들, 즉 마흔 여섯 명 전원이 함께 묶인 사슬에 끌려갈 테고, 누가 몇이나 죽을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제 목숨이야 걸 수 있지만 형제들의 목숨까지 걸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눈으로 말했다. “진정해.” “내 옆에 꼭 붙어 있어.” (P184)
그 안에는, 검둥이 여자 발치에서 톱밥과 흙먼지를 뒤집어쓴 사내 애 둘이 피를 흘리고 있었다. 여자는 한 손으로 피투성이가 된 또다른 아이를 가슴에 끌어안고 다른 손으로는 갓난아이의 발뒤꿈치를 붙잡고 있었다. 여자는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저 팔을 빙빙 돌려 갓난아이를 널빤지 벽에 던지려다가 실패하자 다시 제대로 맞히려 할 뿐이었다. 그때 --백인 남자들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 찰나에-- 늙은 검둥이가 여전히 고양이 소리를 내며 그들 뒤에서 헛간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러고는 호를 그리며 돌리는 엄마의 손에서 아기를 낚아챘다.
이제 되찾을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특히 학교 선생에게는. 멀쩡히 살아 있기를 바랐던, 그래서 켄터키로 데려가 스위트홈에 절실히 필요한 일을 시킬 때까지 제대로 키울 수 있기를 바랐던 애새끼 셋(계집이 도망치는 도중에 하나를 더 낳았으니까 이제는 넷이었다)은 이제 없었다. 둘은 눈을 부릅뜨고 톱밥 속에 쓰러져 있었고, 또하나는 이번 사냥의 표적인 검둥이의 옷에 피를 펌프처럼 쏟고 있었다. 그 여자 노예는 학교 선생이 잉크도 잘 만들고, 수프 끓이는 솜씨도 기가 막히고, 옷깃도 마음에 꼭 들게 다릴 뿐만 아니라 최소한 십 년은 더 새끼를 칠수 있다고 입에 거품을 물고 자랑한 계집이었다. 하지만 이제 미쳐버렸다. 서툴게도 조카 녀석이 매질을 너무 심하게 해서 달아나게 하는 바람에. (P248)
“난 아주 크고 깊고 넓었어. 두 팔을 쫙 벌리면 우리 아이들이 모두 품에 들어올 정도였지. 그렇게 넓었던 거야. 이곳에 도착한 후로 아이들에 대한 사랑은 더 깊어진 것 같았어. 어쩌면 켄터키에서는 제대로 사랑할 수 없었는지도 몰라.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내 것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곳에 도착해 마차에서 뛰어내리는 순간, 나는 원하기만 하면 이 세상에 사랑하지 못할 사람이 하나도 없었어. 무슨 뜻인지 알아?”
(……)
그는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무엇이든 선택해서 사랑할 수 있는─욕망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는─곳에 도달하는 것, 그래, 그게 바로 자유였다. (P268~269)
정원에서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다가오는 그들을 보고, 학교 선생의 모자를 알아보았을 때, 그녀는 날개가 파닥이는 소리를 들었다. 작은 벌새들이 바늘처럼 뾰족한 부리로 머릿수건을 뚫고 그녀의 머리카락 사이를 콕콕 쪼아대며 날개를 파닥거렸다. 혹시 생각이라는 걸 했다면,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라는 절규뿐이었다. 간단했다. 그녀는 무작정 달려갔다. 자신이 만든 행명들, 귀중하고 멋지고 아름다운 자신의 일부들을 빠짐없이 끌어모아서, 이 세상의 장막 너머로 멀리, 아무도 그들을 해칠 수 없는 저편으로 들고, 밀고, 끌고 갔던 것이다. 저 너머로. 이곳 바깥, 아이들이 안전할 수 있는 곳으로. 그리고 벌새의 날개는 계속 파닥거렸다. (P270-271)
1874년이지만 백인들은 여전히 제멋대로 날뛰었다. 온 마을 흑인들이 몰살당하기도 했고, 켄터키 주에서만 한 해에 여든일곱 건의 흑인 린치가 일어났으며, 유색인 학교 네 곳이 완전히 불에 타버렸다. 다 큰 어른들이 아이처럼 채찍으로 얻어맞는가 하면 어린아이들이 어른처럼 채찍질을 당했고, 흑인 여자들은 집단 강간을 당했다. 재산을 빼앗기고 목이 부러졌다. 그는 살냄새를, 살냄새와 뜨거운 피냄새를 맡았다. 살냄새도 살냄새지만, 화형 린치의 불길 속에서 끓어오르는 인간의 피냄새는 완전히 달랐다. 악취가 코를 찔렀다. <노스 스타>의 페이지들에서, 목격자들의 입에서 악취가 풍겼다. 손수 전해진 편지에 적힌 비뚤비뚤한 손글씨에 악취가 새겨져 있었다. 각종 법률 기관에 제출되는 '그런 까닭에'라는 말로 가득찬 문서와 탄원서에도 상세하게 적힌 악취가 났다. 하지만 그 무엇도 그를 뼛속까지 지치게 했던 적은 없었다. 그 무엇도. 그렇게 한 것은 리본이었다. 리킹 강 강둑에 뗏목을 묶고 최대한 안전하게 단속을 하는데, 밑바닥에서 뭔가 붉은 게 눈에 띄었다. 손을 뻗으면서도 그는 붉은색 깃털이 뗏목에 끼었나보다 생각했다. 잡아당겨 보니 아직도 머릿가죽이 고스란히 붙어 있는 젖은 곱슬머리에 묶인 빨간 리본이 손안에 있었다. 그는 리본을 풀어 주머니에 넣고 머리카락은 수초 사이에 버렸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 그는 숨이 차고 어지러워서 걸음을 멈췄다. 증상이 가실 때까지 기다린 뒤에야 다시 길을 갈 수 있었다. 잠시 후, 또 숨이 찼다. 이번에는 울타리 옆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는 잠시 쉬다가 일어났지만 한발짝도 못 가서 지나온 길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얼어붙은 개흙과 그 너머 강을 향해 중얼거렸다. "대체 이 사람들은 뭐란 말입니까? 말씀해주십시오, 예수님. 그들은 어떤 인간들인가요?" (P296-297)
유리창 너머로 두 사람의 등을 보고 황급히 계단을 내려왔던 그날, 스탬프 페이드는 그 집 주위를 에워싸고 아우성치는 그 해독할 수 없는 말들이 성난 흑인 원혼들의 지껄임이라고 생각했다. 베이비 석스처럼 침대에 누워 임종을 맞은 흑인은 매우 드물었고, 베이비 석스를 포함해 그가 아는 사람 중에 살 만한 인생을 산 흑인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교육받은 흑인들, 즉 고학력자나 의사, 선생, 신문기자, 사업가 들도 힘들게 살았다. 앞서가기 위해 머리를 써야 했을 뿐 아니라, 흑인 전체가 기대고 있다는 부담도 느꼈다. 그러한 삶에는 머리가 두 개는 필요했다. 백인들은 겉으로 보이는 태도가 어떻든, 새까만 피부 밑에는 예외 없이 정글이 도사리고 있다고 믿었다. 항해할 수 없는 급류, 줄타기를 하며 끽끽대는 개코 원숭이, 잠자는 뱀, 백인들의 달콤하고 하얀 피를 언제나 노리는 붉은 잇몸. 어떤 점에서는 백인들이 옳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들에게 흑인들이 사실은 얼마나 점잖고 영리하고 다정하고 인간적인지를 입증하려고 기를 쓰면 쓸수록, 흑인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백인들에게 납득시키느라 자신을 소진하면 할수록, 흑인들의 마음속에는 점점 더 깊고 빽빽한 정글이 자라났으니까. 하지만 그 정글은 흑인들이 어디 살 만한 다른 곳에서 가져온 것이 아니었다. 백인들이 흑인들의 마음속에 심어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정글은 자라났다. 퍼져나갔다. 삶 속에, 삶을 통해, 삶 이후에도, 정글은 자라났고 그걸 만든 백인들을 침범하기에 이르렀다.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건드렸다. 변화시키고 바꿔놓았다. 심지어 그들이 원한 것보다 훨씬 더 잔인하고 어리석고 약하게. 백인들은 자신들이 만든 정글을 무척 두려워했다. 끽끽대는 개코원숭이는 바로 그들의 새하얀 피부 밑에서 살고 있었다. 붉은 잇몸은 바로 그들의 것이었다.
그동안 은밀하게 확산된 이 새로운 종류의 백인 정글은, 이따금 124번지 같은 장소에서 그 지껄이는 소리가 들려올 때를 제외하면 조용히 숨겨져 있었다. (P326-327)
족쇄를 찬 채, 꿀벌이 사랑하는 향기로운 것들 사이를 걸어가며 폴 디는 백인 남자들끼리 하는 말을 듣고 난생처음 자신의 값어치를 알게 된다. 그는 항상 자신의 가치를 알았다. 아니, 안다고 믿었다. 어엿한 일꾼, 농장에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노동자로서의 가치를, 하지만 이제야 그는 자신의 값어치를, 다시 말해 몸값을 알게 된다. 그의 몸무게, 그의 힘, 그의 심장, 그의 머리, 그의 성기 그리고 그의 미래를 달러로 매긴 가치를.
말들을 묶어놓은 곳에 이르러 말에 올라타자마자, 백인들은 냉정을 되찾고 지금 처한 어려움에 대해 자기들끼리 이야기한다. 온갖 문제들에 대해, 그 목소리들은 학교 선생에게 가너가 이 노예들을 얼마나 망쳐버렸는지 상기시킨다. 가너는 법을 어기는 짓을 했다. 검둥이들이 자유 시간에 돈을 받고 일을 해서 스스로 몸값을 치르는 걸 허락하다니. 심지어 저 자식들 손에 총을 쥐여주지 않았나! 그렇다고 검둥이들을 짝지어 수를 더 늘리기라도 했나? 천만의 말씀! 그는 검둥이들을 결혼시킬 작정이었다. 이보다 더 황당할 수는 없다! 학교 선생은 한숨을 쉬며 말한다. 내가 그걸 모르는 줄 아나? 그래서 이곳을 바로 잡기 위해 왔지. 이제 농장은 가너가 죽었을 때보다 더 큰 몰락에 직면했다. 노예 중 최소한 둘을 잃었고, 어쩌면 셋을 잃을 수도 있다. 핼리라고 불리는 녀석을 찾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주머니는 너무 쇠약해서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규모 집단 탈출을 지금 내 손으로 처리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여기 이놈은 가능하다면 9백 달러를 받고 팔 생각이다. 그리고 어서 가서 애를 낳을 수 있는 년과 그년의 새끼와 다른 한 놈, 그놈도 찾기만 하면 가둬놓아야한다. '여기 이놈'에게서 나온 돈으로 열둘이나 열다섯 살쯤 되는 어린놈을 둘 살 수 있으리라. 애를 낳을 수 있는 노예 하나에다 그년의 새끼 셋, 그리고 뭐가 될지는 모르지만 뱃속에 든 새끼까지 있으니 어쩌면 그와 그의 조카에게 일곱 명의 노예가 생기는 셈이고, 스위트홈도 이 정도 골치를 썩고 고생할 만한 가치는 있을 것이다. (P372-373)
어떤 말도 빌러비드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 빌러비드는 자기를 두고 떠났다고 세서를 비난했다. 다정하게 굴지도 않고 미소짓지도 않았다고. 엄마와 자기는 똑같고 얼굴도 똑같은데 어떻게 자길 두고 떠날 수 있었냐고 말했다. 그러면 세서는 울면서, 절대 떠난 적 없다고, 적어도 그럴 생각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아이들을 멀리 보내야만 했다고, 그동안에도 내내 젖을 간직하고 있었다고, 비석을 살 돈도 있었지만 충분하지 않았다고. 온 가족이 다 저세상에서 영원토록 함께 사는 게 언제나 그녀의 계획이었다고. 빌러비드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자기가 울 때 아무도 없었다고 말했다. 죽은 사람들이 자기 위에 누워 있었다고. 먹을 게 아무것도 없었다고. 피부가 없는 유령들이 그녀의 몸에 손가락을 쑤셔넣고 어두울 때는 빌러비드라고 하다가 밝을 때는 잡년이라고 했다고. 세서는 용서를 빌었다. 자신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구구절절 헤아리며 늘어놓았다. 빌러비드가 훨씬 더 중요했다고, 자기 목숨보다 더 소중했다고. 언제라도 처지를 바꾸고 싶었다고. 빌러비드가 흘린 눈물 한 방울이라도 되돌릴 수 있다면 자기 인생을 일 분도 남김없이 전부 내놓을 수 있다고. 모기가 아기를 물면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아느냐고. 아기를 땅에 내려놓고 저택으로 뛰어갈 때면 괴로워 미칠 뻔했다고. 스위트홈을 떠나기 전 빌러비드는 밤마다 엄마 품이나 등에서 잤다고. 빌러비드는 무조건 아니라고 했다. 세서는 한 번도 자길 찾아온 적이 없었고, 자기한테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며 미소조차 짓지 않았다고. 뭐니뭐니해도 제일 나쁜 건, 손을 흔들어주지 않고 심지어 돌아보지도 않고 자기를 두고 달아난 거라고 했다. (P393-394)
“세서.” 그가 말한다. “당신과 나, 우리에겐 어느 누구보다 많은 어제가 있어. 이젠 무엇이 됐든 내일이 필요해.”
그는 몸을 숙여 그녀의 손을 잡는다. 다른 손으로는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당신이 당신의 보배야, 세서. 바로 당신이.” 그의 믿음직한 손가락이 그녀의 손가락을 꼭 잡는다.
"나? 내가?" (P445)
흔들어서 달랠 수 있는 외로움이 있다. 팔짱을 끼고 무릎을 끌어당겨 세운 채 몸을 흔들고, 계속 흔든다. 이런 동작은 배의 흔들림과는 달리, 몸을 흔드는 사람의 마음을 달래고 가라앉혀준다. 그것은 내면의 문제다. 피부처럼 팽팽하게 감싸고 있다. 그런가 하면 배회하는 외로움도 있다. 몸을 흔들어도 진정시킬 수 없다. 그것은 살아 있어서, 제멋대로 돌아다닌다. 메마르고 확산되는 그것은 자기 자신의 발소리가 아득히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그녀를 뭐하고 불렀는지 모두 알았지만, 그녀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기억에서 지워지고 행방이 묘현하지만 그녀가 실종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아무도 그녀를 찾는 사람이 없으니까. 찾는 사람이 있단 한들, 이름을 모르는데 어떻게 그녀를 부르겠는가? 그녀는 요구받을 권리가 있지만, 그녀를 요구하는 사람이 없다. 길게 자란 풀들이 길을 열어주는 곳에서, 한을 토로하고 사랑받기를 기다리던 소녀는 산산조각으로 폭발한다. 질겅거리며 씹는 웃음소리가 그녀를 삼켜버리기가 쉬워진다.
그것은 전할만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들은 나쁜 꿈을 잊듯 그녀를 잊었다. 자기들의 이야기를 만들고 다듬고 꾸미고 나자, 그날 현관에서 그녀를 보았던 사람들은 일부러 재빨리 그녀를 잊어버렸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살고 사랑에 빠졌던 사람들은 잊는 데 오래 걸렸다. 그러나 그녀가 했던 말을 한마디도 기억하거나 되풀이할 수 없게 되었고, 자기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뿐,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믿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결국 그들도 그녀를 잊어버렸다. 기억하는 것이 현명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그녀가 어디서, 혹은 어째서 웅크리고 있었는지, 그녀가 그토록 원했던 그 물속의 얼굴이 누구의 얼굴이었는지 그들은 영영 알지 못했다. 그녀의 턱밑에 난 미소에 대한 기억이 남았을지도 모르지만 남지 않은 곳, 그곳에는 걸쇠가 걸렸고, 그 금속 걸쇠에는 이끼가 푸른 사과 빛깔의 새순을 붙여놓았다. 빗물이 빗발친 자물쇠를 손톱으로 열수 있겠다는 생각을 그녀는 대체 어떻게 했을까?
그것은 전할 만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녀를 잊었다. 뒤숭숭한 잠자리에서 꾼 기분 나쁜 꿈처럼, 하지만 이따금, 그들이 잠에서 깰 때 아주 잠시 치맛자락이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리다 멈추기도 하고, 꿈속에서 누군가의 뺨을 문지르던 손마디가 꿈꾸던 자신의 것인 양 느껴지기도 한다. 때로는 가까운 친구나 친척의 사진이 --너무 오래 들여다보면-- 슬며시 변해서 그 다정한 얼굴보다 더 낮익은 무언가가 거기서 움직인다. 원한다면 살짝 만져볼 수도 있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는다. 그러고 나면 결코 세상이 예전과 같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이것은 전할 만한 이야기가 아니다.
124번지 뒤로 흐르는 시내 근처에는 그녀의 발자국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나타났다 사라진다. 그 발자국은 아주 친숙하다. 아이든 어른이든 발을 대어보면, 꼭 맞을 것이다. 발을 빼면, 마치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것처럼 발자국은 다시 사라진다.
곧 모든 흔적이 사라지고, 발자국뿐만 아니라 물과 그 물 아래 있는 것 전부가 잊힌다. 남는 건 날씨뿐이다. 기억에서 지워지고 행방이 묘연한 이들의 숨결이 아니라 처마를 스치는 바람, 혹은 너무 빨리 녹는 봄의 얼음이다. 그저 날씨뿐. 물론 키스를 바라는 아우성도 없다.
빌러비드. (P446-4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