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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Apr 12. 2023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

영화 <비러브드Beloved> 1998년

소설 <빌러비드>(Beloved)는 미국의 흑인 여성 작가 토니 모리슨의 1987년 소설이다. 미국 남북 전쟁 이후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신시내티의 집에 사악한 영혼이 도사린 전 노예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서 영감을 받았다. 켄터키주의 노예인 마가렛 가너(Margaret Garner)는 1856년에 탈출하여 자유주 오하이오주로 도피했다. 그녀는 1850년의 도망노예법에 따라 체포되었다. 미국 경찰이 가너와 그녀의 남편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던 오두막으로 돌진했을 때 그녀는 아이들을 죽이려 했고, 노예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이미 두 살배기 딸을 죽인 상태였다. 여성이고 어머니이기 때문에 성적 억압과 모성애의 박탈까지 겪어야 했던 한 흑인 여성이 노예라는 운명의 대물림을 끊기 위해 딸을 죽인 실화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구성했다. 이 소설은 1988년 픽션 부문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으며 1987년 내셔널 북 어워드 최종 후보에 올랐다. 1998년에는 오프라 윈프리 주연의 동명의 영화로 각색되었다. 그녀는 조상의 전통을 암시하지만 미국 문학 장르의 친숙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아프리카 신화적 요소를 사용하여, 고딕 소설(gothic novel)과 마술적 리얼리즘(magic realism)의 요소를 아프리카계 미국인 경험에 적용했다.  

   

"세월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단다. 세월이란 걸 믿기가 힘들다고. 어떤 순간은 떠나가. 그냥 흘러가지. 또 어떤 순간은 그냥 머물러 있고. 예전에는 그게 내 재기억 때문이라고 생각했단다. 너도 알 거야. 어떤 일들은 까맣게 잊어버리지만, 또 어떤 일들은 절대 잊지 못하잖니.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 그 자리, 자리가 여전히 거기 남아 있어. 만약 집이 불타 무너져버렸다 해도, 그 장소,  그 집의 광경은 남아 있거든. 단지 내 재기억 속에서만이 아니라, 세상 어딘가에 말이야. 내 머릿속이 아니라 세상 밖 어딘가를 떠도는 광경을 내가 떠올리는 거야. 내 말은, 설사 내가 그걸 생각하지 않더라도, 심지어 내가 죽더라도, 내가 했거나 알았거나 본 일들의 광경은 여전히 어딘가에 남아 있다는 거지. 그 일이 벌어진 바로 그 자리에." (P67) 

    

그녀는 삶을 정화하라든가,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들이 이 땅의 축복받은 존재라든가, 세상을 물려받을 온유한 존재라든가, 영광을 누릴 순결한 존재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들이 누릴 수 있는 은총은 오직 그들이 상상할 수 있는 은총뿐이라고 말했다. 은총을 볼 수 없다면, 누릴 수도 없다고. (P149)     

다른 무엇보다도 철저하게, 그들은 사람들이 ‘삶’이라고 부르는 화냥년을 죽였다. 그들을 계속 살아가게 했으니까.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는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라고, 또다른 시간의 일격이 마침내 이것을 끝낼 거라고 믿게 했으니까. 그년의 숨통이 끊어진 뒤에야 비로소 그들은 안전해질 것이다. 성공을 거둔 죄수들─삶을 병신으로 만들고 사지를 절단하고 심지어 땅에 묻어버릴 만큼 오랫동안 그곳에서 지낸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거시기를 간질이는 그년의 품에 빠져 앞날을 기대하며 걱정하고 과거를 돌아보며 기억하는 다른 죄수들을 계속 주시했다. (P184)     


“난 아주 크고 깊고 넓었어. 두 팔을 쫙 벌리면 우리 아이들이 모두 품에 들어올 정도였지. 그렇게 넓었던 거야. 이곳에 도착한 후로 아이들에 대한 사랑은 더 깊어진 것 같았어. 어쩌면 켄터키에서는 제대로 사랑할 수 없었는지도 몰라.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내 것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곳에 도착해 마차에서 뛰어내리는 순간, 나는 원하기만 하면 이 세상에 사랑하지 못할 사람이 하나도 없었어. 무슨 뜻인지 알아?”

(……)

그는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무엇이든 선택해서 사랑할 수 있는─욕망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는─곳에 도달하는 것, 그래, 그게 바로 자유였다. (P268~269)     

“세서.” 그가 말한다. “당신과 나, 우리에겐 어느 누구보다 많은 어제가 있어. 이젠 무엇이 됐든 내일이 필요해.”

그는 몸을 숙여 그녀의 손을 잡는다. 다른 손으로는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당신이 당신의 보배야, 세서. 바로 당신이.” 그의 믿음직한 손가락이 그녀의 손가락을 꼭 잡는다. (P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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