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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Apr 10. 2023

대실 해밋의 <몰타의 매>

영화 존 휴스턴 감독의 <말타의 매> 1941년

캐나다 출신으로 미국에서 영화배우 및 감독으로 활동하던 월터 휴스턴의 아들로, 존 휴스턴은 영화 <말타의 매>로 데뷔했다. 그는 권투선수 출신으로 185cm 키의 인상적인 체구를 가지고 있고 몇몇 영화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는데 그중에는 그가 오스크상 후보에 올랐던 오토 프레민저 감독의 <추기경>과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차이나타운>도 있다. 영화 <말타의 매>는 ‘필름 느와르’의 교과서로 불린다. 어둡고 냉소적이며 비관적인 분위기가 영화 전체를 감싼다. 주인공 탐정 샘 역을 맡은 험프리 보가트는 첫 인상부터 시니컬하다. 험프리 보가트를 영화 팬들 뇌리에 깊이 각인시킨 작품이기도 하다.     

 

“어제.... 제가 한 이야기는.... 모두 가짜예요.” 그녀가 더듬더듬 말하더니 비로소 애처로움과 두려움이 가득한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아, 그 이야기요.” 스페이드는 가볍게 말했다. “그걸 완전히 믿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면.... ?” 그녀의 눈에 담긴 애처로움과 두려움 위에 당황이 더해졌다.

“우리는 당신이 준 2백 달러를 믿었습니다.”

“그 말씀은.... ?” 그녀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기색이었다.

“그게 진실이었다면 그만한 돈을 주지 않았겠지요.” 그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 정도의 돈이면 거짓말도 용납할 수 있습니다.”

그녀의 눈이 밝아졌다. 그녀는 긴 의자에서 일어나려고 하다가 도로 앉아서 치마를 매만졌다. 그러고는 몸을 앞으로 숙이고 열띤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 지금도 스페이드 씨는 제 일을 기꺼이.... ” 스페이드는 손바닥을 위로 하고 손을 들어 그녀의 말을 막았다. 그의 얼굴 윗부분은 인상을 썼지만 아랫부분은 미소를 지었다. “그건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곤란한 건.... 그건 그렇고 당신 이름은 원덜리입니까, 르블랑입니까?”

그녀는 얼굴을 붉히고 조그맣게 말했다. “진짜 이름은 오쇼네시예요. 브리지드 오쇼네시오.”

“곤란한 건 말입니다. 오쇼네시 양, 두 건의 살인이....” 그녀가 몸을 움찔했다. “이런 식으로 얽혀서 발생하면 모두가 흥분하고 경찰도 물불을 안 가리게 됩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을 다루는 일에 힘도 돈도 더 많이 들게 된다는 겁니다. 달리....”

그녀가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이야기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고 그는 말을 멈추었다.  (P46-47)  

   

“스페이드 씨, 신문 기사가 암시하듯이 이 불행한 사건과 그에 잇달아 일어난 서스비라는 사람의 죽음 사이에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스페이드는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카이로는 일어나서 고개를 꾸벅했다. “죄송합니다.” 그러고는 자리에 앉아서 두 손바닥을 책상 한구석에 나란히 올려놓았다. “단순한 호기심 이상의 어떤 것 때문에 그런 질문을 했습니다. 스페이드 씨, 저는 그동안..... 뭐랄까? ...... 제자리를 잃었던...... 그..... 어떤...... 장식물을 되찾고자 합니다. 당신이 저를 도와줄 거라고 기대하고 희망합니다.”

스페이드는 관심이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눈썹을 치켜 올렸다.

“그 장식품이란 조그만 조각상입니다.” 카이로가 신중하게 단어를 고르며 말했다. “검은색의 새 조각이죠.”

스페이드는 예의 바르게 관심을 기울이며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그 조각상의 정당한 주인을 대신해서, 그것을 찾아 주시는 대가로 5천 달러를 지불해 드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카이로는 책상 모서리에서 한 손을 들고 못생긴 검지의 넓적한 손톱으로 허공을 찍었다. “저는 ..... 뭐라고들 하더라? ..... 어떤 질문도 제기하지 않겠다고 약속 드릴 수 있습니다.” 그는 손을 다시 책상 위에 내려놓고 스페이드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5천 달러라면 큰돈이군요.” 스페이드가 심각한 얼굴로 카이로를 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P60-61)       

“....그 남자한테 일어난 일은 이런 겁니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사무용 건물을 짓는 공사장 앞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건물은 아직 골격만 있었죠. 그때 빔인가 뭔가 하는 게 10층 정도 높이에서 떨어져서 플릿크래프트 앞의 보도를 박살냈습니다. 아주 가까운 거리였지만 플릿크래프트에게 직접 닿지는 않았어요. 깨진 보도 조각이 튀어 올라 뺨을 강타했을 뿐이죠. 피부만 약간 까진 건데도 나와 만났을 때까지 흉터가 있더군요. 그 사람은 그 이야기를 하면서 그 흉터를 손가락으로.... 뭐랄까 사랑스럽다는 듯이.... 만졌습니다. 플릿크래프트는 당연히 머리가 쭈뼛 섰지만, 경악했다기보다는 충격을 받았다고 했어요. 누군가 인생의 어두운 문을 열고 그 안을 보여 준 것 같았다고 하더군요.”

플릿크래프트는 훌륭한 시민이자 좋은 남편이고 아버지였다. 외부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주변 환경에 맞추어 사는 것이 편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런 식으로 교육을 받고 자랐다. 주변 사람들도 그와 같았다. 그가 아는 인생은 공평하고 정연하고 이성적이고 책임 있는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철제 빔의 추락이 인생은 본래 그런 것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훌륭한 시민이자 남편이자 아버지인 그도 사무실에서 식당에 가다가 떨어지는 빔에 맞아 즉사할 수 있었다. 그 순간 그는 죽음은 그렇게 마구잡이로 찾아오며, 사람은 눈먼 운명이 허락하는 동안만 목숨을 부지한다는 걸 깨달았다.   (P85)    

 

“자네가 누구를 죽였다는 말은 하지 않았네. 자꾸 그 말을 꺼내는 건 자네야. 하지만 내가 그런 의심을 했다고 해보세. 아니라는 걸 증명하면 되지 않나. 그게 바로 사실을 알아가는 방법일세.”

“그래요, 내가 마일스의 아내를 빼앗으려고 그 사람을 죽였을지 몰라요. 그런 뒤에 그 혐의를 뒤집어씌우려고 서스비를 죽였고요. 아주 멋진 논리예요. 거기다 이제 서스비의 살해 혐의를 뒤집어씌울 사람을 찾아내면 더 좋겠군요. 그런 식으로 어디까지 갈 거죠? 이제 샌프란시스코에서 일어나는 살인 사건은 전부 내가 혐의를 받게 되는 겁니까?”   (P95-96)     

“그건 정확한 종류는 모르지만 어떤 매 같은 모양으로 만든 검은 조각상이에요. 크기는 이만해요.” 그녀는 두 손을 30센티미터가량 벌렸다.

“그게 왜 그렇게 중요한 거죠?”

그녀는 브랜디가 든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도 몰라요. 말을 안 해줘요. 그걸 구하는 데 협력해 주면 나한테 5백 파운드를 주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우리가 조하고 헤어진 뒤 플로이드는 나한테 750파운드를 주겠다고 했어요.”

“그러면 그것의 값어치가 7500달러가 넘는다는 얘기로군요?”

“아니, 그보다도 훨씬 커요. 나하고 균등하게 나눈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으니까요. 그 사람들은 나를 그저 협력자로 고용했을 뿐이에요.”

“어떻게 협력하는 거였습니까?”    (P115)     

지방 검사는 안경을 벗어서, 강조하기 위해 흔들며 말했다. 

“우리는 서스비가 모너핸의 경호원이었고, 모너핸이 시카고를 뜰 때 그와 동행했다는 걸 알고 있어. 모너핸이 20만 달러가량의 도박 빚을 떼어먹고 도망쳤다는 것도 알아. 그의 채권자들이 누구인지, 아직은 모르지만.” 그는 다시 안경을 쓰고 차갑게 웃었다. “하지만 돈을 떼어먹은 도박꾼과 그 경호원이 채권자들에게 발견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모두가 잘 아는 일이지. 전에도 이런 사건이 있었어.”    

스페이드는 입술을 핥더니 이를 드러내며 음흉하게 웃었다.   (P190)     

스페이드의 가슴팍과 수평이 되는 순간 덜컥 멈추었다. “그리고 자네는 우리가 이 가운데 어떤 게 답인지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정보를 줄 수 있어.”

“그런가요?” 스페이드는 느릿하게 말했다. 그의 얼굴은 음울했다. 그는 한 손가락으로 아랫입술을 만지고 그 손가락을 본 뒤 같은 손가락으로 목 뒤를 긁었다. 그의 이마에 불쾌한 주름들이 가늘게 나타났다. 그는 콧구멍으로 무겁게 숨을 내쉬면서 빙퉁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드리는 정보는 검사님이 원하는 정보가 아닐 겁니다. 전혀 도움이 안 될 거예요. 그건 이 도박꾼의 복수 시나리오하고 아무 상관이 없으니까요.”     (P193)     

“그래. 가슴에 맞았어. 대여섯 발은 맞은 것 같아.” 스페이드는 손을 씻었다.

“그러면 빨리.....” 그녀가 입을 열었지만 그가 말을 잘랐다. 

“의사를 부르기에는 너무 늦었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그는 손을 다 씻고 세면대를 헹구었다. “이런 상태로 먼 길을 왔을 리는 없어. 만약 이게..... 아, 저 사람이 조금만 더 버텨서 이야기를 좀 해주었으면 얼마나 좋아?” 그는 에피를 보며 인상을 쓰고, 다시 손을 헹군 뒤 수건을 집어 들었다. “기운내, 나한테 토하면 안 돼.” 그는 수건을 던지고 손가락으로 머리를 훑었다. “이제 저 꾸러미를 좀 봐야겠어.”

그는 다시 안쪽 사무실로 들어가서 죽은 사내의 다리를 넘어 간 뒤 갈색 종이에 싼 꾸러미를 집어 들었다. 무게를 가늠해 보는 그의 눈에 밝은 빛이 떠올랐다. 그는 꾸러미를 책상에 내려놓고 뒤집어서 밧줄 매듭 부분이 위쪽으로 오게 했다. 매듭은 단단하게 묶여 있었다. 그는 주머니칼을 꺼내 밧줄을 잘랐다. 

에피가 다시 안으로 들어와서, 고개를 돌린 채 죽은 사내 옆을 돌아 스페이드 곁에 와 섰다. 그러고는 두 손으로 책상 한 구석을 짚은 채, 스페이드가 밧줄과 갈색 종이를 푸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녀의 얼굴에서 구역질의 흔적은 사라지고 대신 흥분이 감돌았다. “이게 그건가요?” 그녀가 속삭였다.

“보면 알겠지.” 스페이드가 말하고, 두꺼운 손가락으로 갈색 종이 아래에 나타난 거친 회색 종이 세 겹을 부지런히 벗겼다. 그의 얼굴은 딱딱하고 건조했다. 두 눈은 빛났다. 회색 종이를 벗기자 연한 색 완충재 조각들이 달걀 모양으로 단단하게 뭉쳐 있는게 보였다. 완충재 뭉치를 찢어 내자 30센티미터가량 되는, 색깔은 석탄처럼 검고, 나무 부스러기 및 완충재 조각들과의 마찰로 윤기를 잃은 부분을 제외하면 반짝반짝 빛나는 새가 나타났다.

스페이드는 웃으며 새 위에 한 손을 얹었다. 그러더니 손가락을 넓게 벌려 새를 꽉 움켜잡았다. 그는 다른 한 팔을 에피 페린에게 두르고, 그녀를 으스러질 듯 끌어안으면서 말했다. “드디어 이 물건이 우리 손에 들어왔어.”    (P205-206)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그의 아파트까지 갔다. 그녀가 그의 팔을 놓고 옆에 서 있을 때 --- 여전히 숨을 헐떡이며 두 손을 가슴에 얹고 --- 스페이드는 문을 열었다. 그런 뒤 현관 입구에 불을 켜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문을 닫고 다시 한 팔로 그녀를 안은 채 거실로 갔다. 그런데 거실 문 앞에 이르자 거실에 딸깍 불이 켜졌다. 

브리지드는 비명을 지르며 스페이드에게 매달렸다.

거실 안에는 뚱뚱한 거트먼이 너그러운 미소를 짓고 서 있었다. 윌머 청년이 부엌에서 스페이드와 오쇼네시의 등 뒤로 나왔다. 그의 조그만 손에 들린 검은 권총 두 자루가 거대해 보였다. 카이로가 욕실에서 나왔다. 그의 손에도 권총이 있었다. 

거트먼이 말했다. “선생, 보시다시피 우리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구려. 들어와요. 편안히 앉아서 이야기 좀 합시다.”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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