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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Apr 14. 2023

로버트 제임스 월러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1995년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멀리는 데이비드 린의 〈밀회〉, 가깝게는 로버트 드 니로와 메릴 스트립 주연의 〈폴링 인 러브〉를 연상케 하는 ‘중년의 러브 스토리’다. 무척 감동적이고 서정적인 재미를 갖춘 이 영화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대놓고 로맨틱한 주인공을 맡은 유일무이한 작품이다. 떠돌이 독신남 로버트 킨케이드(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기자이다. 사랑이냐 이별이냐 선택의 기로에 선 외로운 시골 주부와 독신남의 불륜 멜로드라마이다. 단지 사흘간의 만남을 통해서 불륜인지 사랑인지, 감정(感情)과 선택(選擇)의 문제에 직면(直面)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판단할까. “할 이야기가 있소, 한 가지만. 다시는 말하지 않을 거요, 누구에게도. 그리고 당신이 기억해줬으면 좋겠소.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이런 확실한 감정은 단 한 번만 오는 거요. 몇 번을 다시 살더라도 다시는 오지 않을 거요.” (p149~150)     

"내가 지금 이 혹성에 살고 있는 이유가 뭔 줄 아시오, 프란체스카? 여행하기 위해서도, 사진을 찍기 위해서도 아니오. 당신을 사랑하기 위해서 이 혹성에 살고 있는 거요. 이제 그걸 알았소. 나는 머나먼 시간 동안, 어딘가 높고 위대한 곳에서 이곳으로 떨어져 왔소. 내가 이 생을 산 것보다도 훨씬 더 오랜 기간 동안. 그리하여 그 많은 세월을 거쳐 마침내 당신을 만나게 된 거요.”

[…] 오, 하나님, 저는 그를 너무나 사랑합니다. 변함없이. 그를 더 많이 원하는 이 마음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어젯밤에 입었던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어요. 그 샌들도 신고. 딱 그것만 걸쳐요. 오늘 아침, 당신이 어떤 모습인지 사진을 찍고 싶소. 우리 두 사람만을 위한 사진을.” (p141)     

나는 그 이야기를 소설로 옮기는 것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자정이 막 지났을 때, 나는 이야기를 소설화하는 데 동의했다. 잘 안 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시도는 해 보기로 했다.

이 이야기를 세상에 공개하기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 그들로서는 퍽 어려운 일이었다. 그들의 어머니, 더욱이 아버지와 관계된 주변 환경이 미묘했다. 마이클과 캐롤린은 알고 있었다. 이 이야기로 인해 결국은 천박한 소문이 떠돌게 되리라는 것을, 그리하여 리처드와 프란체스카 존슨 부부에 대해 사람들이 품고 있던 기억이 어쩔 수 없이 평가절하되리라는 것을.

그러나 모든 형태의 신뢰가 산산조각이 나고, 사랑이 편리성의 문제가 되어 버린 이 세상에서, 그들 두 사람은 이 놀랄만한 이야기를 공개할 가치가 있다고 느꼈다. 그때 나는 그들의 평가가 옳다고 믿었고, 지금은 그보다 더 확실하게 믿는다.

조사하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나는 마이클과 캐롤린을 세 차례 더 만났다. 그들은 매번 불평하는 일 없이 아이오와까지 와주었다. 이야기를 과연 정확하게 쓰고 있는지 그들은 성의를 다해 확인하고자 했다. 때때로 우리는 거의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침묵 속에 앉아 있었다. 천천히 매디슨 카운티의 도로를 달릴 때도 있었다. 그들은 이야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들을 지적해 주었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마이클과 캐롤린이 도움을 준 것과 프란체스카 존슨의 일기장에 있는 정보들에 기초한 것이다. 또 미국의 북서부 지역, 특히 시애틀과 워싱턴 주의 벨링햄에서 조사 작업을 벌였고, 아이오와 주의 매디슨 카운티에서도 조용하게 조사를 했다. 로버트 킨케이드의 사진 에세이에서 정보를 얻었고, 잡지 편집자들의 도움도 얻었다. 사진 필름과 촬영 도구 생산업자들에게도 자문을 구했고, 오하이오 반즈빌이 고향인 근사한 노인 몇 분과는 긴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은 킨케이드가 어렸을 적부터 그를 아는 사람들이었다.

애써 조사 작업을 벌였음에도 불충분한 부분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나는 그런 경우 내 자신의 상상력을 조금 덧붙였지만, 조사를 진행하면서 프란체스카 존슨, 로버트 킨케이드가 내 안에서 살아나, 어느 정도 확신이 설 경우에만 그렇게 했다. 나는 실제로 일어난 일에 매우 가깝게 다가갔다고 자신한다.

킨케이드가 미국 북동부 지역을 여행했을 때의 정확하고 자세한 경로가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우리는, 후에 그가 출판한 수많은 사진에 기초해서 그의 여행 경로를 재구성할 수 있었다. 프란체스카 존슨도 일기에서 간단하게나마 거기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고, 킨케이드가 잡지 편집인에게 남긴 메모도 있었다. 이런 자료를 길잡이로 삼아, 나는 그가 1965년 8월, 벨링햄에서 매디슨 카운티까지 갔으리라고 믿어지는 길을 되밟아 보았다. 답사의 마지막에 매디슨 카운티로 향하면서, 나는 마치 나 자신이 로버트 킨케이드가 된 기분이었다.

킨케이드라는 인물의 본질을 알려는 시도가 내 조사와 글쓰기 작업에서 가장 힘든 부분이었다. 그는 파악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어떤 때는 상당히 정상적인 사람 같지만, 또 어떤 때는 미묘해서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의 인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일에서는 극도의 프로페셔널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조직체의 숫자만 채우기에 급급한 세상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수컷이라고 보았다. 한번은, 자비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이 시대의 아픔을 토로한 적도 있었다. 프란체스카 존슨은 그를 ‘기이하고, 유령이 도는 곳에, 진화가 덜 된 아주 먼 과거에’ 사는 사람이라고 묘사했다.   (p11-13)     

그는 낱말과 이미지를 좋아했다. ‘블루’라는 말이 그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였다. 그 말을 할 때, 입술과 혀가 만들어내는 느낌이 좋았다. 어릴 적부터, 낱말에는 단순한 의미뿐만 아니라 뭔가 느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킨케이드는 또 ‘머나먼’ ‘나무를 땐 연기’ ‘고속도로’ ‘옛날’ ‘통과’ ‘뱃사람’ ‘인디아’ 같은 낱말을 좋아했다. 이런 말이 소리나는 방식과 혀 끝에 맴도는 감칠맛, 또 마음 속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마음에 들었다. 그는 좋아하는 낱말을 적은 목록을 벽에 붙여 놓았다.

그리고 또 낱말들을 조합해 구절을 만든 다음 벽에 붙여 놓곤 했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뜨거운 불.

나는 몇 안되는 여행자 무리와 함께 동쪽에서 왔다.

나를 구해 주려는 사람들과 나를 팔려는 사람들은

계속 즐거운 듯 지껄인다.

부적이여, 부적이여, 내게 너의 비밀을 보여 달라.

키잡이여, 키잡이여, 나를 집으로 데려가라.

푸른 고래들이 헤엄치는 곳에 벌거벗고 누워 있기.

그녀는 그가 겨울의 역을 떠나는 증기 기관차이기를 원했다.

어른이 되기 전에 나는 화살이었네 --

아주 오래 전에.                   (p25-26)     

사물을 주어지는 대로 찍지는 않습니다. 뭔가 내 개인적인 의식이, 정신이 반영되는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하지요. 이미지에서 시구를 찾아내려고 애씁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나름대로의 스타일이 있어서 요구를 하죠. 하지만 제가 언제나 편집자의 취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대부분은 내 마음에 들지 않아요. 바로 괴로운 점이 그 부분이죠. 어떤 사진을 넣고 어떤 사진을 빼느냐는 그들이 결정하지만요. 그들은 독자들의 취향을 알고 있긴 하지만, 이따금씩은 그들이 좀더 시야를 넓혀 주었으면 하고 바라죠. 그쪽에 그런 말을 하지만, 그쪽 사람들은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예술 행위를 통해 밥을 먹고 사는 데는 바로 그런 문제가 있습니다. 언제나 시장-대형 시장-만 생각하죠. 그리고 시장은 평균의 기호를 충족시키도록 만들어집니다. 많은 수가 거기에 속하니까요. 바로 리얼리티를 요구하는 거죠. 하지만 이미 말한 대로 그것은 대단한 구속입니다. 잡지사에서는 게재하지 않는 사진을 돌려주죠. 그러니까 적어도 내 마음에 드는 걸로 개인 파일을 만들기는 하죠.

어떤 때는 다른 잡지사에서 한두 장 사 가기도 하지요. 제가 가 본 곳에 대해 기사도 쓰고,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좋아하는 것보다 약간 더 대답한 사진을 싣기도 하죠.

앞으로 언젠가 예술로 생계 수단을 삼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아마추어리즘 미덕’이라는 에세이를 만들 예정입니다. 시장이라는 것은 예술적인 열정을 죽이지요. 대부분의 사람은 바깥 세상에서 안정을 추구합니다. 그들은 안정을 원하고, 잡지나 제조 회사들은 그들에게 안정을 주지요. 동질성을 안겨주고, 익숙하고 편안한 것들을 주고, 결코 위험에 빠뜨리지 않습니다.

이윤을 내는 것과 예약 구독자를 얼마나 확보하느냐 등등이 예술을 지배합니다. 우리 모두는 단일함이라는 커다란 바퀴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고 있어요.

시장 사람들은 언제나 ‘소비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저는 그것을 생각할 때면 풍성한 반바지에 하와이언 셔츠를 입고, 맥주 병따개를 단 밀짚모자를 쓴 땅딸막한 사람이 손아귀에 돈을 한 웅큼 쥐고 있는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p73-74)     

프란체스카는 그의 눈길이 계속해서 자신에게 머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그의 눈길이 조심스러웠고, 적나라하지 않았고, 뻔뻔스럽지 않았지만, 그녀는 브랜디를 그 잔에 한 번도 따라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그가 알아차렸음을 감지했다. 그리고 그가 아일랜드 사람다운 비극적인 감각으로 뭔가 공허함을 느낀다는 것도 알았다. 연민이 아니었다. 그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연민은 아니었다. 어쩌면 슬픔. 프란체스카는 그의 마음속의 소리를 듣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혹시 이런 시구를 떠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열지 않은 술병,

그리고 빈 술잔,

그녀는 그것들을 찾으려 손을 뻗었네.

아이오와의

미들 강 북쪽 어느 곳에서,

나는 그녀를 보았네.

아마존을 보았던 눈으로,

대상(隊商)이 먼지를 휘날리는

실크로드를 보았던 눈으로,

아시아의 하늘을 보았던 눈으로.   (p87)     

붉은 빛이 올라오기 시작하며 하늘이 밝아졌다. 카메라를 6인치 가량 낮추고 삼각 다리를 조정했다. 아직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30센티미터쯤 더 왼쪽으로 옮겼다. 렌즈를 f/8에 놓았다. 피사계 심도를 어림잡아서 하이퍼포칼 기술을 극대화시켰다. 태양이 지평선 위로 40퍼센트쯤 올라왔고, 다리의 낡은 페인트칠이 따스한 붉은 색을 띠기 시작했다. 바로 그가 원하는 정경이었다.

킨케이드는 노출계를 왼쪽 조끼 주머니에서 꺼냈다. 그리고 f/8을 체크했다. 1초간 노출이었지만, 코닥크롬이 최대한으로 잘 버텨 줄 것이었다. 파인더를 통해 피사체를 보았다. 카메라 놓이를 조절해서 셔터 릴리즈를 누르고 1초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가 막 셔터를 눌러대기 시작했을 때, 뭔가 눈에 들어왔다. 킨케이드는 다시 파인더를 들여다보았다.

“도대체 다리 입구에 뭐가 매달려 있는 거야? 종이 쪽지군. 어저께는 없었는데.”

그가 중얼거렸다. 

삼각다리는 잘 고정되어 있었다. 그는 떠오르는 태양을 등 뒤로 하고 재빨리 강둑을 뛰어 올라갔다. 다리에는 쪽지가 깔끔하게 붙어 있었다. 그걸 뜯어 압정과 쪽지를 조끼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강가로 내려와서 카메라 뒤에 섰다. 해는 60퍼센트 가량 떠올라 있었다.

힘껏 뛴 탓에 숨이 찼다. 다시 셔터를 눌렀다. 똑같은 사진을 만들기 위해 두 번을 반복했다. 바람도 없었고, 초원은 고요했다. 2초 짜리 셔터를 세 번 누르고, 확실히 해두기 위해 1초 반 짜리 셔터를 다시 세 번 눌렀다.

렌즈를 f/16으로 돌렸다. 똑같은 과정이 다시 반복되었다. 삼각다리와 카메라를 강 가운데로 옯겻다. 다리를 세우고 보니 걸어온 모래땅에 발자국이 나 있었다. 다시 장면을 아까처럼 찍었다. 새 코닥크롬 한 롤을 넣었다. 렌즈를 24밀리미터로 바꿔 끼우고, 105밀리짜리는 주머니에 넣었다. 강 상류를 건너 다리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삼각다리를 세우고, 카메라를 조절하고, 노출을 체크하고, 셔터를 세 번 누르고, 확실히 해두기 위해 다시 한번 누르고.

이번에는 카메라를 세로로 세워 구도를 다시 잡았다. 그리고 다시 셔터를 눌렀다. 관례대로 똑같은 장면을 여러 컷 찍었다. 그의 동작에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 모두 몸에 밴 동작이었고, 이유가 있었고, 우연히 이루어지는 행위 없이 효율적이고 전문적으로 이루어졌다.   (p97-98)   

  

“그의 현재 거처를 알고 싶으시다구요? 이렇게 말씀드려도 괜찮을지 모르지만, 그는 끝내주는 사진 작가였습니다. 다루기 힘든 사람이었죠. 못되게 굴어서가 아니라 고집이 워낙 세서요. 그는 예술을 위한 예술을 추구했는데, 그런 점이 우리 출판 의도와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았죠. 우리 출판 의도는 멋진 사진, 기술이 뛰어난 사진이지만 지나치게 야성적인 것은 잘 안 맞아요.

우리는 늘 킨케이드가 약간 이상한 사람이라고 말했죠. 우리 가운데 누구도, 그가 우리를 위해 해주는 일 외에는 그를 잘 아는 사람이 없었어요. 하지만 그는 프로였죠. 우린 그를 어디에든 파견할 수 있었고, 그는 우리가 게재하기로 결정한 사항에 대부분 내켜하지 않으면서도 일을 잘 해주었어요. 그가 어디 있느냐를 알아보려고 지금 파일을 뒤지고 있는 중입니다. 그느 1975년에 잡지사 일을 그만뒀지요. 제가 가진 주소와 전화번호는.... ”  (p167)     

머나먼 과거의 시간부터 계속되어 온, 나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바람이 있다. 나는 그 바람을 따라, 그 바람이 휘몰아가는 기류에 휩쓸려 영원히,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처럼, 달려나간다. 나는 어느덧 Z차원, Z의 세계, 나와 아무런 상관없이 흘러가고 있는 세계를 만나게 된다. 마치 두 손을 주머니에 찌르고, 상체를 기울여 상점의 쇼윈도 안을 무심히 들여다보듯이, 나는 그 세계를 들여다본다.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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