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용헌 Apr 16. 2023

기 드 모파상의 <벨아미>

영화 <벨아미> 2012년

스크린에서 여성의 아름다움이 무기가 되는 ‘팜프파탈(Femme fatale)’ 소재는 익숙히 다뤄져 왔지만 반대로 영화 <벨아미>는 한 ‘남자’를 둘러싼 세 여인의 치명적 도발을 다루며 아름다운 남자가 가진 파괴력을 그려낸다. 가난한 군인 출신인 조르주는 우연히 상류층 사회에 발을 들이게 되며 숨겨져 있던 신분상승에의 욕망을 드러내고, 매력적인 외모와 우아함을 타고난 남자 조르주는 ‘옴므파탈(homme fatale)’ 캐릭터이다.     

그의 집에는 조그마한 면도용 거울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는 자기 전신을 비춰 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즉흥적인 몸단장으로 여러 부분이 몹시 어색하게만 보였기 때문에 그는 불완전한 곳을 과장해서 생각했으며, 자신이 기괴한 모습일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뜻밖에도 이렇게 전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가 누군가 다른 사람, 첫눈에 봐도 참으로 훌륭하고 멋진 사교계의 신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지금 찬찬히 바라보니 전신 모습도 정말 만족할 만했다.

그는 배우가 자신의 배역을 익힐 때처럼 여러 가지 몸짓을 해 보았다. 자신에게 웃어 보이기도 하고, 손을 뻗쳐 보기도 하고, 갖가지 몸짓을 하며 놀라움, 기쁨, 동의하는 감정을 표현해 보았다. 그리고 부인들에게 멋지게 보이기 위해, 부인들을 찬미하고 욕망하고 있다는 것을 납득시키기 위해 적당한 미소와 시선을 연습해 보았다.   (P34-35)     

“<고티에 소송 사건>을 읽어 보셨습니까? 참으로 우스운 일이더군요!”

사람들은 공갈 소동으로 뒤얽힌 간통 사건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하는 말투는 신문에 발표된 사건에 대해 흔히 가정에서 이야기하는 것 같지 않고 의사가 병에 대하여, 채소 장수가 채소에 대하여 말하는 것 같은 어조였다. 사람들은 사건에 관하여 분개하지도 놀라지도 않고 그저 직업적인 호기심과 죄 그 자체에 대한 절대적인 무관심으로 비밀의 원인을 깊이 파고들었다. 행위의 근원을 분명하게 이해하려 하고 비극을 빚어 낸 심리 현상을, 즉 특수한 정신 상태의 과학적인 결과를 결론지으려고 애썼다. 여자들도 그러한 규명이나 노력에 열중했다. 그 밖에도 최근의 사건을 모두 규명하고 해석을 붙이고 모든 면을 검토해 개개의 가치를 비판했는데, 그 태도는 한 줄에 얼마로 인간 희극을 잘라 파는 뉴스 상인들의 실제적인 견식과 특별한 안목으로 이루어졌다. 마치 도매상에서 세상에 내다 팔 물건을 조사하고 뒤집어 보고 저울에 올려 놓아 달아 보거나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P40-41)     

그의 노르망디 기질은 병영 생활에서 그날그날의 일과로 닦이고 아프리카에서의 약탈이나 부정한 이득, 수상한 속임수 같은 일로 의기양양해지고 군대에서 유행하는 공명심이나 애국정신이나 하사관들 사이에서의 자랑거리며 직업에서 오는 허영심에 자극되어 무엇이든 없는 것이 없는, 바닥이 세 겹인 상자처럼 되어 버렸다. 

그러나 출세하고 싶다는 욕망이 그 가운데 가장 비중을 많이 차지했다.

그는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매일 밤 습관대로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공상을 좇기 시작했다. 그리고 희망하는 것을 단번에 실현으로 이끌어 줄 수 있을 만한 굉장한 연애 사건을 상상했다. 은행가나 대귀족의 딸을 거리에서 만나 첫눈에 정복하여 결혼한다든가 하는 그런 것이었다.   (P58)   

  

물론 뒤루아는 기회를 잡아서 짤막한 문장을 실었다. 단신을 직접 다룬 덕택으로, 두 번째 알제리 기사를 썼을 때에는 알지 못했던, 부드러운 필치로 쓰는 요령을 터득했기 때문에, 써 낸 시평을 퇴짜 맞는 그런 괴로운 경우는 당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과 자기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대로 기사를 쓰고 심판자로서 정치 문제를 논하는 것 사이에는, 마부로서 불로뉴 숲으로 마차를 모는 것과 그 마차의 주인으로서 마차 안에 앉아 가는 것과 같은 차이가 있었다. 특히 화가 나서 견딜수 없는 것은 사교계의 문이 닫혀 동등하게 대해 주는 교제가 없고, 귀부인들과 친밀해질 기회도 없다는 것이었다. 다만 이름 있는 여배우 두서너 명이 타산적인 우정에서 이따금 불러주는 데 지나지 않았다. 

그는 귀분이나 시시한 말단 여배우를 막론하고 모두가 첫눈에 자신에게 호의와 묘한 관심을 보이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장래에 출세의 실마리가 될 만한 여자와 안면을 트지 못하는 것이 마치 말뚝에 매인 말처럼 초조하게 느껴졌다.   (P100-101)      

그는 시선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돌렸다. 

부인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역시 비통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 슬픈 듯한 얼굴에 늘어진 금발이 한층 더 아름다웠다. 희망의 손으로 부드럽게 쓰다듬은 듯한 감미로움이 젊은이의 마음을 스쳤다. 아직 앞날이 많이 남았는데 슬퍼할 필요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는 부인을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부인은 골똘한 생각에 잠겨서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는 생각했다.

‘아무튼 인생의 즐거움이란 이것뿐이다. 연애뿐이다! 사랑하는 여자를 품에 안는다! 그것이 인간 행복의 극치다!’    (P247-248)    

 

‘세상은 강한 자의 것이다. 강해져야 한다. 모든 사람들의 위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

마차는 더욱 빨리 달렸다. 그리고 요새 옆을 다시 지나쳤다. 뒤루아는 눈앞의 하늘에 거대한 용광로를 반사하는 듯한 불그스름한 빛을 보았다. 그리고 끊임없이 요란하게 울려오는 갖가지 많은 소리를 들었다. 가깝게 또 멀리, 은은히 울리는 그 소리는 희미하면서도 거대한 생명의 고동이며, 이 여름밤에 파리가 기진맥진한 거인처럼 숨 쉬는 숨결이었다.

뒤루아는 생각했다.

‘이런 일로 화를 내는 건 쓸데없는 일이다. 각자가 자기 일만 생각하면 된다. 승리는 대담한 자에게 떨어지는 법이다. 모든 것이 이기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야심과 부귀를 노리는 이기주의는 여자와 사랑을 뒤쫓는 이기주의보다는 낫다.’   (P317)   

  

왈테르 영감이 다시 말했다.

“좋아, 그럼 나도 이제부터 남들처럼 벨아미라고 부르겠네. 그런데 여보게, 굉장한 사건이 생겼네. 내각이 310표 대 102표로 쓰러졌네. 우리의 휴가는 연기일세. 무기한으로 연기야. 7월 28일인데 말일세. 스페인이 모로코 문제로 몹시 분개해서 결국은 뒤랑 드 렌과 그 일당이 내팽개쳐진 셈이지. 뭐, 뒤죽박죽 대혼란이야. 마로가 후계 내각을 조직할 것을 위촉받았네. 그는 부탱 다크르 장군을 국방 장관으로, 내 친구인 라로슈 마티외를 외무장관으로 앉히고, 총리와 내무 장관 자리는 자신이 겸임할 모양일세. 우리 신문은 앞으로 정부 기관지가 되는 걸세. 그래서 지금 내가 사설을 쓰는 중일세. 각 장관들에게 그들이 나아가야 할 길을 보여 주는 간단명료한 원칙 선언을 말일세.”     (P365)     

<라비 프랑세즈>는 공공연하게 권력과 유착함으로써 막강한 세력을 얻었다. 중요도가 높은 뉴스보다 앞에 정치 뉴스를 실었고, 친한 장관들의 의향을 암시적으로 나타내기도 했다. 따라서 파리나 지방을 막론하고 모든 신문이 <라비 프랑세즈>에서 정보를 알아 갔다. 사람들은 <라비 프랑세즈>를 인용하고 두려워했으며 마침내는 존경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정치 사기꾼들의 기관지가 아니라 공공연한 내각 기관지가 되었다. 라로슈 마티외는 사회의 중심인물이었고 뒤루아는 그 대변인이었다. 말 없는 국회의원이자 교활한 사장인 왈테르 영감은 배후에 숨어서 모로코에서 은밀하게 구리 광산 사업에 몰두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P374)     

그녀는 응석을 부리는 몸짓으로 젊은이의 가슴에 천천히 장단을 맞추어서 뺨을 문질러 댔다. 그런데 그러는 사이에 긴 검은 머리가 한 가닥 조끼에 얽혔다. 그녀는 그것을 보고 문득 묘한 생각이 떠올랐다. 여자에게는 때로 이성을 대신하는 어떤 미신적인 생각이었다. 그녀는 머리카락을 살그머니 단추에 감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른 머리카락을 다음 단추에 감고 다시 그 위의 단추에도 머리카락을 감았다. 이렇게 해서 그녀는 모든 단추에 머리카락을 얽어매 놓았다.

‘이 사람이 곧 일어설 때면 머리카락이 잡아 뽑힐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아픔을 주겠지. 하지만 난 기뻐! 내 몸에 붙은 것을 한 번도 달라고 하지 않았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내 머리카락을 몇 개 가져가는 셈이니까. 머리카락은 이 사람을 묶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비밀 굴레가 되겠지. 마치 부적을 달아준 것처럼. 그리고 싫든 좋든 내 생각을 하고 꿈꾸고, 내일은 다시 좀 더 나를 사랑해 주게 될지도 모른다!’    (P394)      

소설 <벨아미>를 통해 독자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이 또 하나 있다면 프랑스 언론의 발전에 관한 역사적 지식이다. 소설이 진행될수록 독자는 프랑스 사회에서 언론의 역할이 점차 커져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프랑스에서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1881년 7월 29일에는 출판의 자유를 대폭 허용하는 법령이 공포되기도 했다. 보도가 금지됐던 사항들이 대부분 해제되었고, 그런 이유로 재판 계류 중 드러났던 언론 문제들이 모두 자유로워졌다. 그 덕분에 일간지와 정기간행물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며, 독자를 많이 확보한 언론사는 사회 여론을 형성하는 데 더욱 큰 영향을 미쳤다. 더욱이 신문을 빠른 시간 안에 대향 제작할 수 있는 윤전기가 발명되자 신문사들은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다. 당시 신문에는 네 면만이 있었고, 커다란 활자로 찍힌 머리기사도 없었지만, 발행 부수 70만 부를 자랑하는 신문도 있었다. 언론이 정치와 결탁하여 권력을 조작할 수 있는 여건이 점차로 성숙해 갔던 것이다. 이처럼 갑작스럽게 보장된 언론의 자유는 부작용도 낳았다. 신문사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대상을 막론하고 험담, 비방, 중상, 모략을 일삼기도 했다. 이 소설에서도 역시 경쟁 신문사에 피해를 주기 위해 이야기를 날조하여 비방하는 ‘옐로 저널리즘’의 시초가 보인다. 뒤루아는 그 때문에 결투를 신청하고, 그 일이 전화위복이 되어 성공의 발판이 마련된다. 

모파상은 언론의 또다른 양상에도 주목했다. 1870년 9월 10일에는 기업의 자유를 보장하는 법령이 공포되었다. 프랑스 내무성에 신고해야 하는 조건이 붙긴 했지만, 19세기 말엽의 경제적 도약에는 언론의 힘이 작용했다. 기업의 자유는 증권 시장이나 광고처럼 유권자와 통치자들 양편에 모두 영향을 미치는 자본주의의 은밀한 힘이 되었다. 당시 주요 신문사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실로 막대했다.    (P512-513)  


이전 08화 로버트 제임스 월러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