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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Apr 17. 2023

제임스 존스의 <지상에서 영원으로>

영화 <지상에서 영원으로> 1953년

<지상에서 영원으로 2>(2008년) 


제임스 존스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각색한 〈지상에서 영원으로〉는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 있기 직전, 하와이 미군 기지를 무대로 다양한 인물들의 갈등과 사랑, 우정을 그린 영화다. 주인공들은 모두 군대라는 사회와 충돌하는 사람들인데, 진네만 감독은 전작 〈하이 눈〉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싸우는 개인을 다루고 있다.      

[1, 권투 선수인 프리윗의 군대이야기] 

그는 자신이 기억 상실증 환자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낯선 땅에서 깨어났는데 그곳은 전에 와본 적이 없는 곳이고 또 그가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쓰고 있다. 단지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꿈결 같은 희미한 기억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는 이 낯설고 물 선 지역의 사람들 사이에서 넌 어떻게 여기 왔지, 하고 묻는다. 그러면서 그 자신이 내놓을 대답을 듣는 걸 두려워한다.

오. 하느님! 그는 소리쳤다. 나는 부적응자일까? 네게 벌어진 일을 다른 사람들은 전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해. 네가 남들과 특별히 달라야 할 이유가 뭐야? 하지만 권투는 그의 천직이 아니었고 나팔이 천직이었다. 그런데 나는 무슨 이유로 여기에 와서 권투 선수를 하고 있는 것일까?

그때 어머니에게 한 임종의 약속으로 심한 마음의 괴로움을 느끼지 않았더라면, 딕시 웰스 사건 이후에도 사태는 예전처럼 흘러갔을 것이다. 그 오래되고 유별난 침례교도 같은 약속은 하나의 결정타가 되었다. 어린 소년은 약속할 당시 침례교도처럼 상징적으로 그런 약속을 한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남에게 피해는 입히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권투는 불필요하게 상대방에게 피해를 입히는 행위라고 그는 생각했다. 서로 아무런 감정도 가지고 있지 않은 두 남자가 링 위에 올라, 상대방을 파괴하려 하는 것이다. 그들만큼 배짱이 없는 구경꾼들에게 대상적 공포를 제공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 뻔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스포츠라는 미명을 만들어 내고 그에 더하여 경기 결과를 두고 도박을 벌이는 것이다. 그는 전에는 권투를 그런 관점에서 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그가 가장 싫어하고 또 견딜수 없는 것은 남을 속이는 것이었다.   (P43)    

 

프루는 거기 열중쉬어 자세로 중대장과 인사계에게 딕시 웰스 스토리를 말해 주었다. 두 사람이 이미 소문을 들어 알고 있어서 깊은 얘기를 반복한다는 것이 무의미했지만, 중대장이 요구했으니 반복해야 했다.

“그건 안된 일이군. 자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권투에서는 그런 일이 가끔 발생해. 권투를 할 때는 그런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해.”

“바로 그 때문에 권투를 그만두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중대장님.”

“하지만 말이야....” 홈스의 목소리는 이제 다소 차가워져 있었다. 

“그걸 한번 이렇게 생각해 보라고, 모든 권투 선수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일이 어떻게 되겠나?”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중대장님.”

“알았어.” 홈스가 한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단 한 사람이 다쳤다고 권투 프로그램을 아예 폐지해야 하나?”

“중대장님, 저는 그렇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말한 거나 다름없어. 한 사람이 전사했다고 해서 전쟁을 하지 말라는 얘기와 같아. 본국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권투 경기는 아주 굉장한 사기 진작 방법이야.”

“저는 프로그램을 폐지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프로는 지루한 얘기를 반복해야 한다는 데 무기력감을 느꼈다. 하지만 공을 끝까지 드리블하여 골대에 넣어야 했다. “단지 권투가 싫은데도 권투를 계속할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홈스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 눈빛에는 약간 짜증이 섞여 들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27연대에서 우리 연대로 전출되었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제가 권투를 하지 않겠다고 의사를 밝혔는데도 계속시키려고 했습니다.”  (P74-75)   

  

그는 언덕 아래쪽 도로변에 내려와 그녀의 집이 보이지 않는 지점에 서자 비로소 배우의 역할을 끝내고 고개를 돌려 위쪽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깊은 상실감을 느꼈다.

그가 볼 때, 모든 인간은, 바에서, 기차에서, 사무실에서, 거울에서, 사랑에서(특히 사랑에서) 자기 자신을 찾으려고 한다.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 다른 장소에서 찾으려 하는 것이다. 사랑은 자기 자신을 주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묘사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사랑의 개념은 지금껏 잘못 정의되어 온 것이다. 인간이 만져 볼 수 있고 또 이해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의 어떤 부분이라는 것은, 결국 그가 그 자신에게서 발견하는 그 부분뿐이다. 그런데도 그는 자기 자신의 벌집 속에 밀봉된 상태를 견디지 못한다. 어떻게든 그것으로부터 도망쳐서 그보다 더 큰 벌집에 연결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P140)     


그는 안젤로가 앨범을 꺼내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것은 페이지가 거의 다 채워진 커다란 앨범이었다. 전에 하도 여러 번 보아서 자기 앨범처럼 그 내용을 훤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프루는 자신의 앨범을 갖고 있지 않았다. 늘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사진은 진짜가 아니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설사 그게 진짜가 아니더라도 때때로 저런 앨범이 내게도 있었으면 하고 생각할 때는 있었다. 사진 그 자체는 진실이 아니지만, 사진 찍을 당시의 사람들이나 장소에 대한 진실한 추억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안젤로의 앨범은 분명 그런 기능을 잘 수행하고 있었다. 안젤로가 늘 먼저 보여 주는 앨범의 첫 3분의 1은 브루클린의 애틀랜틱 애버뉴에서 성장한 안젤로의 어릴 적 모습이다. 열다섯 명의 대식구를 거느린 가족의 초상화였다. 뚱뚱한 몸집, 둥근 얼굴, 지나칠 만큼 인정이 많은 듯한 안젤로 아버지, 그는 웃지 않으려고 혼신의 힘을 다했으나 불행히도 실패하고 있었다. 아버지보다 더 뚱뚱한 몸집, 성깔 있어 보이는 길쭉한 얼굴, 식료품 가게에 가면 혹독하게 값을 깎을 것 같은 인상의 안젤로 어머니는 위엄 있는 모습보다는 빙그레 웃는 얼굴을 하려고 애썼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사진기 앞에 선 사람들이 늘 그렇게 하듯이 안젤로 부모는 사진기를 속여 자신의 실제 모습보다 더 멋지게 나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나머지 열세 명의 식구들도 마냥 행복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보면서 활짝 웃고 있었다. 몰래 카메라에 찍히지 않는 한 사진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런 행복한 표정을 지으려고 애쓰는 것이다(하지만 예술가들은 그 웃는 얼굴 아래의 우는 얼굴을 꿰뚫어 본다. 프루는 자신이 소등나팔을 불 때의 일이 생각났다. 그 나팔은 드러내 놓고 말하기에는 부끄러운 충동을 은밀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모든 예술가들은 그처럼 감추면서 드러내고 싶어 하는 것이다).     (P277-278)          

그래. 너는 그들이 너를 위해 뭘 해주기를 바라는 거야? 프루는 생각했다. 반역이라도 일으켜 너를 구제해 주기를 바라냐? 넌 이런 기합을 받도록 강요당한게 아니야. 너도 알다시피 너는 자유 의지로 이런 결과를 선택했어. 그렇지 않아? 네가 자유 의지를 주장하다 보니 이런 사태가 온 거라고.

자유 의지, 그래. 자유 의지라는 게 있지. 또 자유로운 사랑이라는 것도 있어. 그걸 잊지 마. 또 자유로운 건 뭐가 있나? 에, 자유 -- 그래. 자유 정치도 있겠군. 아니야. 자유 정치라는 건 좀 말이 안 되는 데. 그럼 자유로운 게 뭐가 있나? 그래, 자유(공짜) 맥주가 있군. 자유 의지, 자유 사랑, 자유 맥주.

그래, 문제는 자유 의지야. 너의 자유 의지가 이런 일을 빚어낸 거라고. 저들이 이런 짓을 하는 게 아니야. 그들은 단지 너의 자유 의지에 자유 선택을 주는 것뿐이야. 선택안은 다음 세 가지야. 첫째, 권투부에 들어간다. 둘째, 권투부에 들어가지 않고 화를 내며 반격한다. 반격할 경우 너는 영창에 가지. 셋째, 권투부에 들어가지도 않고 반격도 하지 않는다. 이 경우 너는 이런 불쾌한 고통을 계속 당해야 하는 거지. 넌 민감하고 예술가 기질이 있는 나팔병이기 때문에 그런 고통을 불쾌하게 생각해. 네가 그냥 권투 선수이기만 했더라면 문제는 아주 간단했을 텐데. 네가 자유롭게 선택했고 아무런 악의도 없는 이 불쾌한 현상을 계속 감수한다면(이런 기합은 앞으로도 줄기차게 계속될 터인데), 논리적 결론은 이런 거야. 중대는 너를 능력 부족으로 처벌할 것이고, 가외 업무를 부과할 것이고, 외출 금지를 명령하겠지. 그리고 최종적으로 영창행이 되겠지.

이런 과정을 좀 더 간단하게 간추려 본다면 권투부에 들어가거나 영창에 가거나 둘 중 하나로군.   (P371-372)     


프루는 평생 힘센 사람을 상대로 힘없는 사람 편을 들어 싸우는 것을 신봉해 왔다. 그는 가정, 학교, 교회에서 그것을 배운 게 아니었다. 그는 사회적 양심의 건설자인 제4의 힘으로부터 그것을 배웠다. 그 힘은 바로 영화였다. 루스벨트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후에 나오기 시작한 영화들로부터 그것을 배웠다. 

그는 당시 어린아이였다. 아직 떠돌이 생활을 하기 전이었다. 그는 1932년과 1937년 사이에 만들어진 영화들을 보며 자랐다. 그 당시의 영화들은 오늘날 제작되는 <막다른 골목의 주인공> 시리즈 같은 상업적 영화들이 아니었다. 그는 막다른 골목 영화의 최초의 것, <윈터세트>, <분노의 포도>, <먼지는 나의 운명> 같은 영화를 보며 자랐다. 그런 영화에는 존 가필드나 레인 자매 같은 배우들이 나왔다. 또 제임스 캐그니, 조지 래프트, 핸리 폰더 등이 출연한 떠돌이 영화 혹은 감방 영화들도 보았다.

그는 아직 어린애에 불과했으나 이런 영화들을 보면서 힘없는 자들을 위해, 힘센 자와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는 영화로부터 자신의 인생철학을 정립했다. 그래서 스페인에서 공산주의자들이 힘없는 자들일 때, 그들을 위해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러시아에서는 공산주의자들이 힘센 자들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반역자들(러시아로 반역자를 가리켜 뭐라고 하지?)을 위해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독일에서는 유대인을 위해 싸워야 하고 월스트리트와 할리우드에서는 유대인에 반대하여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국에서는 자본가가 힘센 자이고 프롤레타리아가 힘없는 자였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편에 서서 자본가에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뿌리 깊은 인생철학 때문에 남부 출신인 그는 흑인들 편에 서서 백인을 상대로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디를 둘러봐도 흑인이 힘센 자인 곳은 없었기 때문이다.    (P372-373)     

[2. 영창]  

개연성과 개연성이 서로 얽히고 엮이면서 필연성을 낳느니라. 하고 상사는 생각했다. 하늘 아래 인간이 개연성에 기대어 취하는 이익치고 확실한 것은 하나도 없느니라. 하나의 개연성이 지나가면 또 다른 개연성이 등장하고 모든 것은 개연성으로 가득 들어차게 되느니라. 그리하여 필연성이란 결국 호텔 방에서만 영원히 머문다고 말할 수밖에 없느니라. 그곳에는 예전의 개연성에 대한 기억도 없고 나중에 닥쳐올 개연성에 대한 기대도 없느니라. 이것은 한때 예루살렘에 있던 이스라엘의 왕인 나 상사가 말하는 것이니라. 나는 호텔 방의 그늘진 계곡에서 나의 사랑하는 샤론의 장미와 함께 살았느니라. 그녀는 또한 그늘진 호텔 방의 백합이기도 하느니라. 그곳에는 모순도 개연성도 전혀 없고 오로지 필연성만 있는바. 오 슐레미테여(사랑스러운 이스라엘의 여인이여), 여기 내 곁에 머물라. 호텔 방의 석류에서 뽑아낸 즙액으로 만든 향기로운 와인을 내게 마시게 하라. 이 호텔 방에는 모순되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고 필연성만이 존재하나니, 앞으로 모든 것이 이대로 있고 또 무수한 나날 동안 그대로 남을 것이니라. 개연성이 이 세상에 아무리 많이 흘러들지라도 세상이 차고 넘치는 일은 없을 것이니라. 아멘.

하지만 그의 내부에 있는 <마음속의 마음>이 다시 깨어났고 그리하여 개연성이 다시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 개연성은 언제나 있고 그 개연성이 차고 넘쳐서 최종적 필연성에 도달하는 일은 결코 없어. 그걸 아직도 몰랐나. 워든.     (P439-440)     

그래. 알고 있군. 그래서 은유는 종교의 세계에서나 가능하고, 돌이 땅에 떨어지면 툭 하고 소리가 나는 이 세상에서 항상성은 없고 따라서 필연성은 없다는 걸. 다시 말해 개연성의 법칙이 존재한다는 걸. 자네는 인정하겠지? 불공평합니다! 불공평합니다! 이의 신청! 이의 신청을 수용한다. 그걸 삭제하시오. 그 진술은 본 건과 관련도 없고 불필요한 오해를 일으키며 증인에게 엉뚱한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이의 신청을 수용한다. 하지만 시간이 다 되어 종이 울린다. 이걸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거부하라. 그걸 받아들이면 남자에게는 64달러를 지불하고 짠물이 민물보다 빠져 죽기가 훨씬 어렵다는 걸 알고 있지? 알아. 그리고 말이야. 빠져 죽기로 말한다면, 있지도 않은 필연성의 바다에 빠져 죽는 것보다는 민물에 빠져 죽는 게 훨씬 더 나아. 우린 그것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그건 정말 어렵다고 하더군. 그렇다면 나는 1만대 1의 확률을 가지고 필연성에 한번 걸어 보겠어. 미안한데, 우린 그런 낮은 개연성에 대하여 보험을 들어 주려면 먼저 고객의 정신 건강을 철저히 진찰해야 할 것 같아. 우리 보험 회사는 그런 황당한 확률을 믿고는 장사를 할 수가 없어. 그럼 내게 64달러만 줘. 난 그냥 갈 테니까. 미안, 시간이 다 되었어. 자네는 그걸 받아들이기보다는 박차려고 하는 것 같군. 친구.   (P441)     


“하지만 물질주의와 기계 시대가 오면서 그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어. 우리의 시대에 이미 세계가 바뀌었다는 것을 보게 되었어. 기계는 과거의 적극적 도덕률의 의미를 파괴했어. 단지 명예라는 이름만 가지고 사람을 기계에다 묶어 놓는 일은 어렵게 되었어. 사람들이 그걸 더 잘 알고 있어.”

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독창적인 아이디어였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법률로 명시된 부정적 측면을 표준화하는 것뿐이야. 과거에는 부차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았던 권위에의 공포가 이제 주된 문제가 되었어. 남아 있는 문제는 그것뿐이니까.

기계를 명예로운 것이라고 하면서 사람을 기계에다 묶어 놓을 수는 없어. 그러니 이제는 기계에 의탁하지 않으면 벌을 받게 된다는 두려움을 주입해야 돼. 그 두려움은 친구들의 거부를 무서워하게 함으로써 유도할 수 있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회적 무위도식자가 된다고 말함으로써 그에게 부끄러움을 안겨 줄 수 있어. 기계를 위해 일하지 않으면 굶게 된다고 하면서 겁을 줄 수 있어. 혹은 가장 높은 효율성을 발휘하면서, 처형에 의한 죽음을 암시할 수도 있어.

하지만 그에게 이게 명예로운 일이라고는 더 이상 말할 수 없어. 그에게 겁을 주어야 하는 거야.”

“정말  그렇군요!” 홈스는 주먹으로 자신의 손바닥을 치면서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샘 슬레이터는 느긋하게 웃어 보였다. “바로 그 때문에 우리의 하급 장교들(과 고급 장교들)이 두려움 이외에 다른 것은 가지고 있지 않아. 그들은 이 시대가 부여한 코드에 따라 살아가는 거야. 남북 전쟁 때만 해도 장교들은 명예를 위해 싸운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아. 이미 남북 전쟁 때도 기계가 개인들을 상대로 필연적인 승리를 거두었어. 명예는 죽어 버린 거야.

따라서 명예를 가지고 사람들을 통제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야. 그것은 비효율성 혹은 비효과적인 통제만 가져올 뿐이야. 이 시대에 우리는 사람들을 완벽하게 통제해야 돼. 왜냐하면 사람들은 사회라는 기계에 철저히 복종해야 하기 때문이지.   (P460-461)     

“이성은 인간이 발견해 낸 가장 훌륭한 도구야.” 샘 슬레이터가 말했다. “하지만 가장 무시되고 또 가장 소홀히 사용되고 있지. 합리적이고 민감한 사람이 환멸을 느끼고 비통해하는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야.”

“나는 늘 그것을 보아 왔습니다.” 홈스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평생 동안 그걸 보아 왔습니다. 멀리서 말입니다.”

“그건 모두 공포에 바탕을 두고 있어.” 샘 슬레이터가 미소 지었다.

“공포가 핵심이야. 각각의 사람들에게 깃들어 있는 공포의 정도를 측정할 수 있으면 그들을 어느 정도까지 믿을 수 있는지 예측할 수 있어. 또 어느 정도까지 움직일 수 있는지도 알 수 있어. 그다음 단계는 의도적으로 공포를 유도하는 거지. 공포가 이미 그 개인 속에 깃들어 있다면 그걸 불러내기만 하면 되는 거야. 공포의 범위가 크면 통제 범위도 그만큼 커져.”  (P471-472)     


프리윗은 그동안 내내 사람들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강요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가 사태의 진상을 깨닫게 되는 것은 일이 터지고 난 후였다. 그런 생각은 언제나 그를 두렵게 했다. 그는 대부분 그런 생각을 잘 억눌러서 마음 바깥으로 내쫓았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부드럽게 억제하는 것이 곤란해져서 마음의 날갯짓을 허용해야 될 때가 있었다. 그러면 잠자던 마음은 한껏 하품을 하면서 깨어 일어나고 그의 발밑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이 열렸다. 그것은 언제나 그를 두렵게 했다. 어쩌면 사물 안에는 인간이 애써 보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하는 어떤 것이 깃들어 있는지 몰랐다. 바다 속 깊숙한 곳에 잠복해 있는 괴물 크라켄을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어야 하듯이, 사물의 그런 측면은 애써 외면하는 것이 좋다고 프루는 생각했다. 그는 때때로 그것이 인생의 진실이라고 느꼈다. 그런 인생은 때때로 그에게 두려움을 안겨 주었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특별한 성질은 그 자신도 통제할 수 없는 어떤 것, 멈출 수 없는 어떤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생활이 잘나갈 때는 그 특질을 대면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어떤 피해를 입히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대면하는 것이 더 좋다고 보았다. 그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또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생활이 어려운 국면에 접어들 때, 인생은 그 믿기지 않는 잔인함, 그 어처구니없는 불공정, 그 황당무계한 무의미함으로 그를 두렵게 했다. 안젤로가 영창에 들어가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지금 그는 어려운 국면에 들어가 있었다. 그는 그날 밤 안젤로가 까마득한 벼랑에서 떨어지려는 것을 막지 못한 데 대해 죄책감을 느꼈다. 그런 추락을 야기한 것이 프루 그 자신이었더라도, 마땅히 그 추락을 막았어야 했다고 느꼈다. 왜 그것을 미리 예상하지 못했을까. 수영복을 버리기 위해 해변으로 내려갔을 때 그를 혼자 내버려 둔 것이 잘못이었다. 안젤로가 뭐라고 소리치든 개의치 않고 헌병들과의 싸움에 뛰어들었어야 했다. 둘이서 대적했더라면 헌병의 곤봉을 물리치고 무사히 도망쳐서 중대로 돌아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마땅히 행동했어야 했으나 그렇게 하지 못한 수많은 사항들을 떠올렸다. 그는 안젤로에게 벌어진 일에 대하여 개인적인 책임을 느꼈다. 바로 그 때문에 그는 안젤로를 면회하여 자신의 심정을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안젤로를 만날 수가 없었다.    (P552-553)      

  

[3. 재입대 블루스]     

고문을 당하지 않는다고? 그럼 미 육군에 있는 병사는? 영창에 들어간 병사는? 고문을 당할 때마다 자살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거야?

“사람들은 모두 자유에 대해서 이야기해.” 덩치 큰 사내가 부드럽게 말했다. 그는 또다시 그 자신만이 알고 있는 개인적 지식을 원용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두 자유를 원하는 건 아니야. 그들 중 절반은 자유를 원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그렇지 않아. 그들이 정말로 원하는 건 아내나 회사 동료들 앞에서 자신이 자유롭다는 환상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거야. 그건 만족스러운 타협이지. 그런 자유의 환상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들은 남들과 잘 지낼 수가 있어. 그런데 그걸 유지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지. 게다가 한 가지 문제가 있어. 친구들에게 자기가 자유롭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런 환상을 유지하고 또 증명하기 위해 자기 아내나 종업원들을 노예로 만들어야 한다는 거야. 브리지 클럽 친구들 앞에서 자유의 환상을 유지하려는 아내는 자신의 가정부, 남편, 자녀들을 계속 부려야만 하는 거야. 그렇게 억지로 유지하자니 전투가 되어 버리는 거지. 이런 식으로 누군가 이기려면 누군가는 져야 해. 이 세상에서 장군 한 명을 내놓으려면 6천명의 졸병이 있어야 하는 거야.

바로 그 때문에 나는 어떤 사람이 자살하겠다고 하면 말리지 않아. 만약 그 사람이 내게 다가와 총을 좀 빌려 달라고 하면 그에게 총을 내주겠어. 그는 자살을 아주 진지하게 생각하는 자이거나 내가 방금 말한 자유의 환상을 유지하려는 자이지. 만약 그가 진지하다면 나는 진심으로 그가 총을 가져가길 바라. 만약 허세를 부리는 거라면 그 허세를 지적해 줄 거야.”  (P779)     

“그 경험은 내게 두 가지를 가르쳐 주었어.” 말로이가 슬쩍 웃으며 말했다. “첫째, 프로파간다만을 가지고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는 거야.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시켜 주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프로파간다만으로는 결과를 달성하지도 못해. 대중을 어떤 공통분모로 나누고 그걸 기준으로 일을 벌이면 반드시 낭패 난다는 거야. 수학적으로는 정확할지 모르지만, 막상 개인에게 적용해 보면 안 통하는 거야. 대중을 갑이라고 한다면 개인들의 집합체는 을인 거야. 그러니까 생판 다른 거라는 얘기야. 설사 그들을 초등학교 4학년 수준의 지능으로 평준화한다고 해도 그 역설을 해결할 수는 없어. 뭔가 더 좋은 방법을 찾아야 했어. 나는 그 방법이 무엇인지 또 어떻게 하면 찾을수 있는지 몰랐어. 지금도 몰라. 하지만 언젠가 알아내야 해.

둘째, 사람은 후세를 위해서 살 수는 없다는 거야. 엄숙주의자일수록 더욱 그래. 왜냐하면 후세의 도덕은 언제나 오늘날의 도덕과 다르기 때문이지. 업턴 싱클레어는 랠프 채플린 못지않게 섹스에 엄숙주의자였어. 두 사람은 모두 결혼을 했어. 우리 평범한 조합원들이 창녀 집에 들락거리는 것을 보고 굉장히 가슴 아파했어. 그들은 끝내 우리를 설득하지 못하니까 모르는 체하더군. 나는 그들의 혁명적 활동이 어디서 연원하는지 생각해 보았어. 그건 그들의 부모가 심어 놓은 남녀 생식기에 대한 혐오증과 이상적 사랑에 대한 동경이었어. 하지만 눈먼 사람 노릇을 하면서 인생을 피해 갈 수는 없듯이 반항만 하면서 인생을 피해 가지는 못해. 그러니까 경제라는 한 과목에 집중하면서 인생의 다른 문제들, 가령 섹스를 피해 가지는 못하는 거야. 그리하여 거짓말쟁이가 되지 않는 한, 자기가 달아나려고 하는 그 문제로 되돌아오게 되는 거야. 따라서 그 유령 같은 대중을 구성하는 어떤 개인에게 무엇인가 되기를 강요할 수는 없어. 그가 그것을 원하기 전에는 절대 안 되는 일이야(공산주의자들도 언젠가 이 진리를 깨우치게 될 거야. 안 그러면 싱클레어의 사회주의처럼 공산주의도 죽어 버릴 수밖에 없어). 사람들에게 총을 꺼내 싸우도록 만들고 싶으면, 다른 근본적 사실들과 함께 이 근본적인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해.    (P851-852)     


“평범한 인간에게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면 안 돼.” 프루가 말했다.

“그건 그래. 내 말을 들어. 스피노자라는 사람이 한때 이렇게 말했어. <인간이 신을 사랑한다고 해서 신 또한 그에 대한 답례로 인간을 사랑해 줄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이 말에는 아주 심오한 뜻이 있어. 여러 가지 뜻이 말이야. 나는 수동적 저항이 내게 무얼 가져다주리라고 기대하기 때문에 수동적 저항을 하는 게 아니야. 난 그게 결과를 가져다주리라고 기대하지 않아. 그건 요점이 아니야. 만약 그게 요점이었다면 나는 오래전에 그걸 실패작이라고 생각하며 포기했을 거야.”

“내가 패트소를 죽이겠다는 게 잘못되었다는 건 알아. 그래도 패트소를 죽일 거야. 이건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한 것처럼 확실한 사실이야. 나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어. 패트소 같은 놈은 그런 대접을 받아야 자기가 잘못한 걸 깨달아. 그게 유일한 방법이야.”   (P873)       

그는 공습 8일차 되는 날 오후에 신문에서 어떤 자그마한 기사를 발견했다. 그는 그동안 정기적으로 신문을 읽었다. 읽는다기보다 하얀 바탕위에 검은 표시를 눈으로 한번 훑는 것이었다. 신문 뒤쪽에 난 자그마한 기사였는데, 공습일이던 12월 7일 오전 스코필드 부대의 영창 당국이 영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수감자 전원을 원대 복귀시켰다는 것이었다.

일본 놈이나 기타 적국이 록 지역에 쳐들어온다면 그냥 풀어 줄지도 모른다는 워든의 말이 과녁을 맞힌 화살처럼 프루의 마음에 와서 꽂혔다. 이제 모든 것이 그 주위에 병렬의 소용돌이를 이루었다. 워든은 당초 프루의 입창 모면 가능성이 아주 낮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그런 사례를 들었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갑자기 모든 것이 합리적으로 보였다. 그는 자신의 마음이 얼어붙은 진흙으로부터 빠져나와 환한 햇볕을 쬐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그가 해야 할 일은 헌병의 검문을 당하지 않고 부대로 돌아가는 일이었다. 그는 군복을 꺼냈고 책상 서랍에서 알마의 38 구경을 꺼내 탄창이 끼워져 있는지 확인하고 여분의 탄창을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 자그마한 기사의 마지막 문장은 이러했다. <영창 당국이 12월 7일 영창문을 열어젖힌 이래 지난 8일 동안 영창에 새로 들어온 자가 영창 역사상 가장 적었다> 그건 잘된 일이었다. 그는 전적으로 찬성이었다. 그는 새로 영창에 들어가는 사람이 될 생각은 없었다. 그는 이제 중대에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헌병들은 그를 검문하지 않을 것이었다.   (P1018)     


“저자는 탈영병이었어.” 중령이 말했다. “내 부하들이 연행하려고 하자 갑자기 달아났어. 내 부하들이 총을 쏘자 갑자기 멈춰 서면서 몸을 돌려 사선(射線) 정면으로 나섰어. 장교가 와야 하는 건데. 자네 중대장한테 내일 헌병대로 와서 홉스 중령을 만나라고 좀 전해 주게. 이상이야. 상사, 여기 서명을 하게. 유물 인수증이야. 공식 조사단 판정은 어떻게 날지 나도 모르네. 그게 나오면 자네에게 알려주지.”

“이자의 친척들을 위해서.....” 워든이 말했다. “조사 보고서에 <임무 수행 중 피살>이라고 사인을 적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관련 헌병들의 이름도 안 나오게 될 테고 사고를 처리하기가 한결 쉬울 것 같습니다.”     (P1039)     

소설 <지상에서 영원으로>는 1953년 영화로 제작되어 몽고메리 클리프트(프리윗), 버트 랭커스터(앤서니 워든), 데보라 카(카렌 홈스), 프랭크 시나트라(안젤로 마지오), 도나 리드(알마 슈미트), 어니스트 보그나인(저드슨 중사) 등의 호화 배역이 출연하여 공전의 대히트를 기록했으며, 한국 전쟁 직후인 1954년 피난지 부산에서 <애수>와 함께 상영되어 많은 한국 영화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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