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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May 10. 2023

이디스 워턴의 <순수의 시대>

영화 <순수의 시대The Age of Innocence> 1993년

1993년에 개봉한 영화 <순수의 시대The Age of Innocence>는 마틴 스콜세지가 제작했으며, 다니엘 데이 루이스, 미셸 파이퍼, 위노나 라이더, 로버트 숀 레너드 등이 출연했다.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뉴랜드 아처에게 ‘취향’에 대한 모욕보다 끔찍한 것은 거의 없었다. 취향은 ‘예법’조차도 거기 비하면 단지 외적인 표현이며 부차적인 지위에 불과할 정도로 손에 닿지 않을 신성한 가치였다. 올렌스카 부인의 창백하고 진지한 얼굴은 지금 상황이나 그녀의 불행한 처지와 잘 맞아떨어져 그의 상상력에 호소했다. 그러나 터커도 없는 드레스가 야윈 어깨에서 흘러내리자 그는 충격과 함께 곤혹감을 느꼈다. 메이 웰랜드가 이렇게 취향의 명령에 무신경한 젊은 여자의 영향권에 노출되어 있다고 생각하니 불쾌해졌다.    (P23)     

올렌스카 백작 부인의 사례를 맞닥뜨리자. 오래 굳어진 신념이 뒤흔들려 그의 마음속에 위험스럽게도 붕 떴다. “여성들도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우리들처럼 말입니다.” 그의 선언은 그의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치부하기로 합의한 문제의 뿌리를 건드렸다. ‘참한’ 여자라면 아무리 학대를 당해도 그가 의미한 것과 같은 자유를 절대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그와 같이 너그러운 남성들은 뜨거운 논쟁에서 기사도 정신을 발휘하여 그들에게 이 권리를 기꺼이 허용해 줄 자세가 되어 있다. 이러한 말뿐인 관대함은 사실 모든 것을 묶어 놓고 사람들을 낡은 양식에 속박하는 엄격한 관습을 기만적으로 위장한 데 불과했다. 그러나 아처는 약혼녀의 사촌 편에 서서, 자기 아내를 위해 그녀가 교회와 국가의 격렬한 비난을 받아 마땅할 행동을 하더라도 옹호해 주겠다고 맹세했다. 물론 이 같은 곤란한 상황은 어디까지나 가정이었다. 자신이 그 폴란드 귀족 망나니가 아닌 이상, 만약 자기가 그라면 아내에게 어디까지 권리를 허용해줄까 따져 보는 것도 우스꽝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뉴랜드 아처는 바보가 아니었으므로, 그와 메이라면 훨씬 덜 추잡하고 모호한 이유로도 서로의 유대 관계가 허물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점잖은’ 남성으로서 그녀에게 자신의 과거를 숨겨야 하고, 그녀는 혼기에 든 처녀로서 숨길 과거가 없어야 한다는 이유로 말미암아, 그들은 진짜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없지 않은가? 상대방에 대한 사소한 일들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서로에게 싫증이 나고 오해가 생기거나 짜증을 내게 된다면? 그는 친구들 중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한다는 이들을 떠올려 보았으나, 메이 웰랜드와 영원히 열정적이고 애정 넘치는 부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리라는 답을 희미하게나마 제시해 주는 예는 하나도 찾지 못했다. 그는 이러한 관계가 되려면 먼저 경험, 다양한 재능, 자유로운 판단력이 전제되어야 하나, 메이는 이러한 요소들을 갖지 않도록 세심하게 교육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의 결혼도 물질적, 사회적 이해로 맺어진 지루한 관계가 한쪽의 무지와 다른 쪽의 위선으로 유지되는 대다수의 결혼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는 오싹한 예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러한 이상을 질투가 나리만치 가장 완벽하게 구현한 남편으로 로렌스 레퍼츠가 떠올랐다. 로렌스는 예법의 최고 고수답게 아내를 자기 편한 대로 완벽하게 길들여 놓아서, 세상이 떠들썩하도록 유부녀들과 불륜을 저지르고 다녀고 아내는 아무것도 모른 채 만면에 미소를 띠고 “우리 집 양반은 얼마나 엄격한지 모른답니다.”라는 말을 하고 다녔다. 행여 누가 그녀의 면전에서 줄리어스 보퍼트가 태생이 의심스러운 ‘외국인’답게 소위 “딴살림을 차렸다.”는 말이라도 꺼낼라치면, 분개하여 얼굴을 붉히고 눈길을 돌렸다.     (P59-60)     

[순수함]

그녀를 한번 슬쩍 훑어보면 이 모든 솔직함과 순진함이 단지 인공적으로 꾸며진 데 불과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낙담했다. 길들여지지 않은 인간의 본성은 솔직하지도 순진하지도 않다. 본능적으로 뒤틀린 교활함에 가득 차 방어 태세를 취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는 이 순수가 어머니, 숙모, 할머니들과 이미 죽은 지 오래인 여자 선조들의 음모로 교묘하게 조작되고 인공적으로 만들어졌으며, 왕처럼 마음껏 부술 수 있는 눈으로 빚은 조각인 양 그가 원하고 가질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도록 강요되어 왔다는 점 때문에, 이 순수에 억눌리는 느낌이 들었다.       (P62)     


아처 부인은 자식들에게 곧잘 이런 말을 했다. “쓰레기 같은 요즘 신문들이 뉴욕의 귀족에 대해 뭐라고 떠드는지 내 앞에서는 말도 꺼내지 마라. 귀족이 있다 해도 그 안에는 밍고트 가도 맨슨 가도 못 끼어. 뉴랜드 가도 치버스 가도 아냐. 우리 조상님들은 점잖은 영국이나 네덜란드 상인들일 뿐이야. 한 밑천 잡아보려고 식민지로 건너왔다가 일이 잘 풀리는 김에 눌러앉으셨던 거지. 너희 조상님 중에는 독립선언문에 서명하신 분도 있고, 워싱턴의 참모부에서 장군이 되어 새러토가 전투를 치르고 버고인 장군의 칼을 받은 분도 있지. 자랑할 만한 일이긴 하지만, 지위나 계급과는 아무 상관없어. 뉴욕은 줄곧 상업 공동체였고, 진정한 의미에서 귀족 혈통이라고 할 수 있는 집안은 딱 셋뿐이야.”

아처 부인과 그녀의 아들딸은 뉴욕의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 특권층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핏츠가와 폭스가와 혈연관계인 오래된 영국 명문가에서 내려온 워싱턴 스퀘어의 대거닛 가, 그라스 백작 후손과 혼인한 래닝 가, 네덜란드 출신 맨해튼 초대 지사의 직계 후손이며 프랑스와 영국의 귀족 가문과도 혁명 전 시대에 여러 명이 혼인한 밴 더 루이든 가였다.      (P65-66)     


아처는 결혼에 대해 옛날부터 이어받은 사고방식으로 되돌아갔다. 거칠 것 없이 자유롭던 총각 시절 장난삼아 탐닉했던 이론을 실행에 옮기기보다는, 전통을 따르고 메이를 친구들이 아내를 다루는 것과 똑같은 식으로 대하는 편이 덜 번거로웠다. 자기가 부자유하다는 생각 따위는 꿈에도 하지 않는 아내를 굳이 해방시키려고 애쓸 필요가 없었다. 메이가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자유를 쓸 데가 있다면, 아내의 본분을 다해 남편을 섬기는 제단에 그 자유를 바치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그는 이미 오래전에 알았다. 그녀는 타고난 품위가 있으니 자신의 자유를 함부로 쓰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남편을 위해서라고 생각될 때 그녀가 그 자유를 되찾을 힘을 발견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대단히 단순하고 평범한 결혼관을 가진 만큼 그의 행동에서 참을 수 없이 부당한 점이 드러나지 않는 한 이런 위기가 닥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는 그에 대해 좋은 감정만을 갖고 있으므로, 그런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다.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메이는 항상 성실하고 용감하며 잘 참을 것이다. 메이의 이런 점 때문에 그로서도 똑같은 덕성을 실천하겠다고 맹세하지 않을 수 없었다.    (P244)        

 

[세련됨]

아처의 귀에 로렌스 레퍼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상에, 저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 메이처럼 활을 다루는 사람은 아무도 없군.” 보퍼트가 대꾸했다. “맞아요, 메이가 제대로 하는 건 그것뿐이지요.”

아처는 화가 불끈 치솟았다. 메이의 ‘세련됨’에 대한 주인의 경멸 섞인 칭찬은 남편이라면 오히려 기뻐해야 할 것이었다. 아내에게 매력이 부족하다고 비꼬았다 해도, 그 사실을 들먹인 이가 천박한 남자라면 아내가 뛰어난 자질을 지녔다는 반증이 될 뿐이었다. 그러나 그 말은 그의 가슴속에 희미한 전율을 일으켰다. 최고의 경지까지 다다른 ‘세련됨’이 무에 불과하다면, 텅 빈 공간을 커튼으로 가려 놓은 것일 뿐이라면? 그는 마지막으로 과녁 한복판을 맞히고 붉게 상기된 얼굴로 침착하게 돌아오는 메이를 보면서, 아직 한번도 그 커튼을 들추어 보지 않았다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P263)     


그는 클럽까지 어슬렁거리며 걸어와서 인적 없는 서재에 홀로 앉아 그들이 함께한 시간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되새겨 보았다. 자세히 되새겨 볼수록 그녀가 결국 유럽으로, 남편에게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면 새로 제안 받은 조건이 있다 해도 과거의 생활에 이끌려서는 아니라는 생각이 점점 더 굳어졌다.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 때문에 아처가 그들 둘이 세운 기준에서 벗어나려는 유혹을 느낀다고 생각되면 가 버릴 것이다. 그녀의 선택은 그가 그녀에게 더 가까이 오라고 요구하지 않는 한 그의 곁에 머물겠다는 것이었다. 그가 그녀를 거기 그대로, 안전하지만 손 닿지 않는 곳에 둘 수 있는가에 달린 문제였다.   (P305)     

아처가 아는 뉴욕은 사행활에서의 위선은 용인해주더라도 사업문제에서는 투명하고 흠 없는 정직성을 요구했다.    (P319)     

“세월이 흐르면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게 되고...... 이렇게 작은 부스러기에 불과한 것이 되어, 이제는 확대경 밑에 놓여 ‘용도 불명’이란 딱지를 붙이고 있어야 한다니 잔인한 일이에요. 잊혀진 이들에게 한때는 꼭 필요하고 소중한 것이었을 텐데.”   (P381)     


“다 끝났다니.... , 그게 무슨 소리요?” 그가 알아듣기 힘들게 더듬거리며 물었다. 

메이는 여전히 맑디맑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엘렌이 이렇게 빨리 유럽으로 되돌아가게 됐으니까요. 할머니도 찬성하고 이해하시고, 엘렌이 남편에게서 독립하도록 일을 처리해 주셨어요.”

그녀는 말을 중단했고, 아처는 벌벌 떨리는 한 손으로 벽난로 모서리를 꽉 잡고 몸을 지탱한 채 어지러이 빙글빙글 도는 생각을 최대한 다스리려는 부질없는 노력을 했다.

아내의 차분한 목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오늘 저녁은 일 때문에 사무실에 계속 계신 줄 알았어요. 오늘 아침에 결정된 일이에요.” 그녀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는 그의 시선 밑으로 눈을 내리 깔았고, 다시 한번 얼굴에 홍조가 잠깐 스치고 지나갔다.     (P399) 

      

이 견고하고 낙천적인 무지 덕분에, 그녀는 자기 코앞의 세계는 늘 변하지 않은 채 예전 모습 그대로라고 믿었다. 변화를 인식할 줄 모르는 그녀의 무능력함 때문에 아처가 자기 견해를 그녀에게 감추듯이, 자식들도 엄마 앞에서 자기들 생각을 드러내지 않았다. 처음부터 아버지와 아이들이 무의식적으로 협력하여 꾸며 낸 속임수랄까, 순진한 가족의 위선 같은 것이 있었다. 메이는 세상이 자기 집처럼 사랑과 조화 넘치는 가정으로 가득한 좋은 곳이라고 믿으며 죽었다.     (P426-427)     

“예. 아시다시피 아버지는 시대에 뒤떨어졌다고요. 하지만 어머니 말씀이......”  

“네 어머니 말이냐?”

“예, 돌아가시기 전날이었죠. 저만 곁에 부르셨을 때 말이에요. 기억나시죠? 우리가 아버지와 함께 있으면 안심할 수 있고, 앞으로도 늘 그럴 거라고 하셨어요. 왜냐하면 옛날에 아버지가 어머니의 청에 따라 가장 원하는 것을 포기하신 적이 있기 때문이래요.”

아처는 이 이상한 이야기를 말없이 들었다. 그는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살이 그린 네모에 멍한 눈길을 박은 채로 있었다. 마침내 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네 어머니는 내게 한번도 청한 적이 없었다.”

“예, 저도 잊었어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로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신 적이 한번도 없었어요. 그렇죠? 그저 앉아서 서로를 쳐다보고 그 밑에서 무엇이 움직이고 있는지 짐작하셨을 따름이죠. 사실 귀머거리에 벙어리들 수용소 같았달까. 하지만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알 수 있는 것보다, 부모님 세대가 서로의 은밀한 속마음을 더 많이 알고 계셨다고 생각해요. 아버지.....” 댈러스가 말을 끊었다. “저한테 화나신 건 아니지요? 화나셨다면 푸시고 우리 앙리에 가서 점심 먹어요. 전 그다음에는 베르사유로 서둘러 달려가야 해요.”       (P436-437)     


미국인들은 역사와 문화가 부족하다는 점에서 유럽에 대한 열등의식에 시달렸으며, 유럽의 도덕적 타락을 비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세련된 문화와 전통에 이끌리는 양가적인 의식을 보였다. 이러한 미국인의 딜레마는 헨리 제임스의 소설 <어느 귀부인의 초상(The Portrait of a Lady)>에서도 다루어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순수의 시대>가 아처를 주인공으로 한 <어느 신사의 초상(The Portrait of a Gentleman)>으로 불리는 것이다. 유럽인에 가까운 엘렌에게 뉴욕 사람들이 느끼는 매혹과 선망, 반감과 두려움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은 당대의 미국인들이 유럽에 대해 가졌던 감정을 반영한다. 그러나 모순투성이에 실체 없는 허구에 불과할지라도 ‘미국적인 순수’를 자기 정체성의 핵심으로 믿는 뉴욕 사람들에게 이 모순과 허구성을 드러내는 엘렌의 존재는 너무나 위협적이다. 뒤집어 말하면, 그들의 피라미드는 견고해 보이지만 실은 이질적인 존재 한 명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만큼 허약하고 협소하다. 따라서 그들은 뉴욕 사회의 동질성을 보존하기 위해 엘렌을 추방하는 쪽을 택한다. 

아처는 엘렌을 통해 이러한 뉴욕 사회의 허구성에 눈을 뜨게 되었지만, 그 틀을 깨고 나와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행동에까지는 이르지 못한다. 아처는 엘렌과 헤어진 후, 예전부터 막연하게 동경해 왔던 예술적이고 자유분방한 삶에 대한 열망을 엘렌의 기억과 함께 그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마련한 제단에 안치해 놓고, 사회적 지위와 인정을 얻는 성공적인 삶을 산다. 성실한 가장, 존경받는 시민으로서의 삶은 엘렌으로 상징되는 그의 내밀하고 본질적인 욕망을 희생시킴으로써 가능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점점 더 그에게 엘렌은 그가 자기 삶에서 간절히 원했으나 가질 수 없었던 모든 것, 자신의 현실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버려야 했던 이상, 그의 ‘인생의 꽃’이 되어 간다. 마침내 엘렌은 그의 삶 속으로 들어와 그와 관계 맺을 수 있는 살아 있는 인간이 아니라 추상화된 하나의 개념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P451-452)


이전 15화 제임스 써버의 <월터 미티의 은밀한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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