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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Apr 28. 2023

에드워드 올비의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영화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1966년

영화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1966)는 마이크 니콜스가 감독하고 엘리자베스 테일러, 리처드 버튼, 조지 시걸, 샌디 데니가 출연하였다. 이 영화는 1966년 가장 찬사를 받은 영화중 하나였으며 아카데미상 1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5개 부문을 수상했다.  

    

마사  (조지의 놀이에 재밌어 하며) 아, 음..... 그래, 괜찮으면 담뱃불이라도 붙여 주지 그래.

조지  (생각해 보더니 걸음을 옮긴다) 아니.... 한계가 있어. 내 말인즉, 인간은 어떤 한계까지만 참을 수 있는 거라고, 그렇지 않으면 진화의 사다리를 한두 계단 내려가는 거지.... (닉을 보며 재빨리 방백으로) 자네 전공이군...... (다시 마사에게) 타락하는 거야, 여보..... 웃기는 사다리야..... 돌이킬 수가 없다고..... 일단 내려가기 시작하면 다시 올라올 수 없어. (마사가 조지에게 도전적인 키스를 날린다)  자..... 당신은 귀신을 무서워하니까 날이 어두워지면 내가 손을 잡아 줄게. 자정 넘으면 당신 술병도 몰래 내놓아 주지. 아무도 보지 못하게...... 하지만 당신 담뱃불은 붙여 줄 수 없어. 바로 그런 얘기야.      (P48)      

조지  ..... 우리 가장 소중한 것.... 씨앗..... 새끼..... (내뱉는다) ..... 우리 아들..... 게다가 다른 얘기까지 건드린다면, 경고하지만 여보, 나 화낼 거야.

마사  (비웃는다) 아, 그러셔?

조지  경고하는 거야.

마사  (못 믿겠다는 듯) 뭐 한다고?

조지  (아주 조용하게) 경고하는 거라고.

    우리가 정말 이런 것까지.....?

마사  나 경고 먹었어! (사이..... 다시 허니와 닉에게) 어쨌든 그래서 난 그 개자식과 결혼을 했고 계획을 다 세워 뒀어..... 데릴사위였고..... 후계자가 될 예정이었지. 언젠가 일을 물려받을 테지..... 우선 역사학과를 접수하고 나면 아버지가 은퇴하실 때 대학을 접수하는 거지..... 알겠어? 그렇게 될 거였어. (카운터로 몸을 돌리고 있는 조지에게) 자기 화났어? 그런 거야? (다시) 그렇게 될 거였지. 아주 간단명료해. 아빠도 그 생각이 좋다는 눈치였어. 한참 그랬어. 그런데 한 이삼년 두고 보니! (다시 조지에게) 더 열 받고 있는 거야? (다시) 그런데 한 이삼년 두고 보니 이게 별로 좋은 생각 같지 않았거든..... 우리 조지 어린이가 그게 없는 거야. 그게 없더라고!

조지  (여전히 등을 돌리고) 그만해, 마사.

마사  (짓궂게 의기양양하여) 엿이나 먹어! 이봐, 조지는 말이지..... 배짱이 없었어.... 그다지..... 저돌적이지가 않아. 조지는 오히려..... (조지의 등에다 대고 말을 내뱉는다) 얼간이야! 무지..... 완전..... 왕..... 얼간이!   (P72-73)      

조지  (닉 쪽으로) 자네들은 애써 문명을 건설하고...... 사회를 만들지..... 그 원칙은..... 원칙은.... 사람 마음속의 부자연스러운 무질서로부터 도덕을, 자연스러운 질서로부터는 의사소통의 의미를 이끌어 내려고 애쓰지..... 자네들은 정부와 예술을 만들어 내고, 두 개가 결국은 똑같은 것이라는 것을 깨닫지..... 너희들은 모든 것을 가장 서글픈 상태로 만들어 버려..... 무언가 잃어버릴 수 있다면 서글픈 거야..... 그러다 갑자기 그 모든 음악을 뚫고, 사람들이 짓고 시도한 모든 이성적인 소리들을 뚫고 모든 것을 파괴하는 신의 분노가 울리는 거야. 그게 뭐냐고? 분노의 뿔 나팔 소리가 어떻게 나냐고? 야 이 개자식아. 이런 세월 끝에 심판이 있는 거지..... 개자식아.

     (잠시 사이..... 박수를 치며) 하, 하! 브라보! 하, 하! (계속 소리 내 웃는다)    (P100)     

우선 제목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해야 하겠다. 이 제목은 디즈니 만화영화 <세 마리 아기 돼지>에 나오는 동요 <누가 두려워하랴, 커다란 나쁜 늑대를? (Who's Afraid of Big Bad Wolf?)>에서 따온 것이다. 아기 돼지들은 이 노래를 부르면서 허세를 부리다가도 늑대 기척이라도 들리면 벌벌 떨며 숨기 바쁘다. 극의 초반부터 등장인물들은 이 노래의 가사를 바꿔 부르면서 재미있어하는데, 이것은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원래 노래의 경박한 리듬과 내용을 떠올리게 하는 데다, wolf/Woolf라는 동음이의어를 사용해 문학사의 거대한 아이콘을 ‘커다란 나쁜 늑대’로 치환해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라는 우리말 제목으로 옮겨지면서, 이같이 우스꽝스러운 어감이 사라져 버려 적잖이 아쉽다. 올비는 어느 술집의 화장실 거울에 쓰인 낙서를 보고 이 작품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하는데, 대학가에 나도는 재기와 치기가 어우러진 농담이 작품 제목으로 된 셈이다. 그렇다면 커다란 나쁜 늑대, 즉 버지니아 울프로 대변되는 무서움의 대상은 무엇일까?    (P195-196)     

성실한 가장이 중심이 되어 현모양처와 귀여운 아이들이 이루는 단란한 가정의 이미지는 2차세계대전 이후 가장 강력한 ‘미국의 꿈’이었고, 이것은 안정과 합의를 바라는 정치와 광고에 널리 애용되는 이상이기도 했다.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주인공 로먼이 자신의 빛나는 과거를 그리는 회상 장면은 언제나 빨래 바구니를 옆에 낀 아내와 아버지의 귀가를 기다리는 활달한 두 아들, 그리고 반짝이는 자동차로 형상화되지 않았던가? 그러나 1949년의 이 작품에서도 이미 낌새가 보이거니와, 아이젠하워 당시(1953~1961) 미국에서는 이 같은 꿈을 회의하는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존 업다이크의 <달려라 토끼>(1960), 리처드 예이츠의 <레볼루셔너리 로드>(1961년 작으로 2008년 샘 멘디스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기도 했다) 등의 소설은 ‘행복한’ 중산층 가정의 공허함을 조명하는 소설이고,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는 브로드웨이에서 미국적 이상의 허구성을 파헤친 작품이다. 올비는 겉으로 보기에 평온한 사회 속에 묵직하게 자리잡은 환멸을 드러내 보임으로서 반항의 60년대를 예고하고 있다.  (P196-197)  

   

허상과 실제 사이의 긴장 관계에 대한 탐구는 미국 현대극을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라고 할 만하다. 허상은 현대 사회를 지탱하는 거대한 거짓말이다. 이데올로기와 각종 도시 괴담, 정치, 광고, 텔레비전은 갖가지 허상으로 넘쳐난다. 현대 미국 극작가들은 작품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이 같은 거짓말을 탐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는 오래된 부부 사이의 애증과 허상을, <얼음 장수 오다>는 지리멸렬한 현실 대신 차라리 허위의식을 택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테네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또한 현실을 맞대면하기보다는 거짓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데 몸을 맡기는 남부 여자를 보여 주며, 앞서 언급한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 역시 미국적 이상이라는 거대한 허구 아래 깔려 죽는 소시민을 주인공으로 한다. 올비는 허상과 실제의 긴장 관계에 대한 꾸준한 탐구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오닐, 윌리엄스, 밀러 다음으로 미국 극의 계보를 잇는 지극히 미국적인 극작가라 할 수 있다.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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