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만타 슈웨블린의 <피버 드림>

영화 <피버 드림Fever Dream> 2021년

by 노용헌

소설 <피버 드림>은 2017년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르고 셜리잭슨상 중편 부문을 수상한 아르헨티나 작가 사만타 슈웨블린의 대표작이다. <피버 드림Fever Dream>은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 수상자인 페루 감독 클라우디아 요사에 의해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슈웨블린의 공포가 더욱 서늘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의 소설이 현실의 문제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슈웨블린은 아르헨티나의 무분별한 농약 살포와 그로 인한 환경오염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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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라에게 일어난 일이 나한테도 일어날 수 있을지 궁금해. 나는 항상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거든. 지금 당장은 니나가 느닷없이 수영장으로 달려가 뛰어든다면 내가 차에서 뛰쳐나가 그애한테 이르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계산하는 중이야. 나는 그걸 ‘구조 거리’라고 불러. 딸아이와 나를 갈라놓는 그 가변적인 거리를 그렇게 부르는 거지. 나는 그 거리를 계산하며 반나절을 보내. 그러나 항상 실제로 일어날 법한 상황보다 더 많은 위험을 상상하지. (P27-28)


--구조 거리에 대해 좀더 얘기해주세요.

--그건 상황에 따라 달라져. 예를 들어, 우리가 이 집에 온 뒤 처음 몇시간 동안에는 니나가 항상 내 가까이에 있길 바랐어. 나는 집에 출구가 몇 개 있는지 알고, 바닥에서 가장 많이 파손된 부분이 어디인지 파악하고, 계단이 삐걱대는 소리가 어떤 위험을 뜻하지는 않는지 확인해야 했어. 니나한테도 이런 것들을 보여주었지. 니나는 겁이 많진 않지만 말을 고분고분 잘 들어서 두 번째 날에는 우리를 연결해주는 보이지 않는 실이 또다시 늘어났어. 그 실은 존재하지만 느슨해서 우리에게 때때로 약간의 독립성을 허용해줘. 그런데 구조 거리가 정말 중요하니?

--아주 중요해요.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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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러는 거죠?

--우리가 여기 도착하고부터 생긴 습관이야. 매일 점심 먹을 때마다 두세바퀴 정도 돌더라고.

--이건 중요해요. 이건 벌레랑 관계가 있을지도 몰라요.

--니나가 큰 창문 뒤를 지나가다 유리창에 대고 얼굴을 납작하게 눌러서 우리는 마주 보고 웃어. 나는 니나가 에너지를 분출하는 게 좋지만 이번에는 그 아이가 집 주위를 도는 게 불안해. 카를라와 나눈 대화는 우리를 연결하고 있는 실을 팽팽하게 조였고, 구조 거리는 다시 짧아졌어. 지금 너는 6년 전의 다비드와 얼마나 다른 거니? 도대체 무슨 심한 짓을 했길래 너희 엄마가 너를 자기 자식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거니? 그게 내가 계속 궁금해하는 점이야.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은 일이에요. (P50)


그때 나는 녹색 집을 떠올리고, 그 집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 궁금해져. 녹색 집은 너를 돌봐준 여인의 입이야.

--네.

--너를 중독에서 구해준 사람 말이야.

--중요하지 않아요.

--어떻게 안 중요하니? 이건 우리가 이해해야 할 이야기야.

--아니요. 그건 이야기가 아니에요. 정확한 순간과 아무 상관도 없고요. 딴생각하지 마세요.

--난 위험을 측정해야 한단 말이야. 이걸 측정하지 않으면 구조 거리를 계산하기가 어려워. 여기 도착하자마자 집과 주위를 점검했듯이 지금은 녹색 집을 보고, 그 중대함을 파악해야 돼.

--이 구조 거리는 언제부터 재기 시작하셨어요?

--그건 우리 어머니한테 물려받은 거야. “네가 가까이에 있으면 좋겠어.” 어머니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곤 하셨어. “우리 구조 거리를 유지하자.” (P5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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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 모두 한참 뒤에야 차를 댄 곳으로 돌아가요. 카를라가 한쪽에 하나씩 아주머니와 니나의 손을 잡고 데려가죠. 아주머니 또는 니나가 몇걸음마다 멈춰서면 모두가 다 같이 기다려주죠. 그뒤에 카를라는 운전하는 내내 자갈 때문에 말없이 운전대만 꽉 붙잡고 가요. 세 사람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아요. 차가 그날 아침 아주머니가 떠나오신 집의 대문을 지나쳐서 헤세르 씨의 개들이 전속력으로 쥐똥나무 울타리 아래로 빠져나와 마구 짖어대며 차를 따라 달릴 때도요. 개들은 잔뜩 화가 났지만 아주머니도, 카를라도 그걸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아요. 해는 벌써 머리꼭대기에 떠 있고 열기가 땅에서도 느껴져요. 하지만 중요한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고, 지금부터 중요한 일이 일어나지도 않을거예요. 그리고 저는 아주머니가 그걸 납득하지 못하실 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해요. 이 얘기를 계속 진척하는 게 아무 의미가 없다는 생각도요.

--그렇지만 일이 계속 일어나고 있잖아. 카를라는 자기 집의 포플러나무 세그루 옆에 차를 세워. 그밖에도 네가 듣고 싶어할 세세한 점들이 더 많아. (P134)


두 사람은 아까보다 서로 더 거리를 둔 채로 함께 차를 향해 걸어가, 그때 남편이 너를 발견하지. 너는 뒷좌석에 앉아 있어. 머리가 등받이 위로 살짝 튀어나와 있어. 남편은 차에 다가가서 운전석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봐. 너를 차에서 내리게 하고, 지금 당장 그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야. 너는 의자에 꼿꼿이 앉아서 마치 애원하듯이 그이의 눈을 쳐다봐. 나는 남편을 통해 보고 있어. 네 눈 속에 있는 다른 사람의 눈을. 안전벨트를 매고 좌석 위에 올린 책상다리. 살며시 니나의 두더지 인형으로 향하는 손, 인형을 잡으려는 듯 인형의 다리 위에 올려놓은 더러운 손가락.

“내리렴.” 남편이 말해. “지금 당장 내리라고.”

“이 녀석이 어딜 가려고.” 너희 아빠가 뒷좌석 문을 열면서 말해.

네 눈은 남편의 시선을 간절히 좇아. 하지만 너희 아빠는 안전벨트를 풀고 네 팔을 잡아끌지. 남편은 화가 난 채 차에 올라타. 두 사람의 형체가 점점 멀어져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보여. 두 사람은 멀찍이 떨어진 채 차례로 집에 들어가고, 안에서 문이 잠기지. 그제야 남편은 차의 시동을 걸고 언덕을 내려가 자갈길로 접어들어. 그이는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고 느껴. 읍내에서 차를 멈추지도 않고, 뒤를 돌아보지도 않아. 콩밭도, 메마른 땅을 가로질러 흐르는 개울도, 가축 한 마리 없이 몇킬로미터나 드넓게 펼쳐진 들판도, 별장과 공장도 쳐다보지 않고 도시에 다다르지. 집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수많은 자동차가, 갈수록 더 많은 차들이 아스팔트 위를 덮고 있다는 것도. 교통이 정체되어 몇시간 동안 오도 가도 못한 채 뜨거운 배기가스를 내뿜고 있다는 것도. 그이는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해. 어딘가에서 불붙은 도화선처럼 마침내 느슨해진 실을. 이제 곧 분출되기 일보 직전인, 움직이지 않는 재앙을. (P170-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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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피버드림>은 사만타 슈웨블린의 이름을 전세계 독자들에게 각인시킨 그의 대표작이다. 영어판에서 제목을 따온 이 책의 스페인어 원제는 앞서 썼듯이 ‘구조 거리’(Distancia de rescate)이다. 구조 거리는 주인공 아만다가 딸 니나가 위험에 노출될 경우 딸을 구하러 갈 수 있는 최단거리를 가리키며, 소설 속에서 끊임없이 거론되는 주요한 모티프이다. 이 작품은 병원에서 죽어가는 젊은 여자 아만다와 다비드라는 소년의 대화만으로 이루어진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배경은 아르헨티나의 어느 시골이다. 아만다와 그의 어린 딸 니나는 여름휴가를 보내기 위해 시골에 오자마자 이해할 수 없는 비극적인 사건들에 직면한다. 그곳은 기형아로 가득하고, 동물들이 원인 모를 떼죽음을 당한다. 이 마을의 재앙, 즉 중독, 질병, 죽음의 원인을 탐색하기 위한 아만다와 다비드의 대화는 크게 두가지 질문으로 구성된다. 바로 벌레가 생기는 결정적 순간이 언제인지와, 아만다의 딸이 어디에 있느냐다. 이에 대한 대답을 얻기 위해 두 인물은 아만다가 병원에 도착하기까지의 사건들을 되짚는다.

소설 속에서는 남자들이 드럼통을 옮길 때 생기는 듯한 ‘이슬’이 결정적 순간과 결부되어 있으리라는 점이 암시되지만, 등장인물은 마을의 비극이 초자연적인 힘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공포와 불안에 시달린다. 슈웨블린은 “문학에서는 말해지지 않는 것이 때로는 이야기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라고 말한다. 이와 같은 생각을 반영하듯 이 작품은 비극의 원인을 직접적인 방식으로 밝히는 대신 일련의 비극이 환경에서 기인하며, 환경문제는 언제 어디서든 우리 삶을 위협하고 여기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는 점을 미스터리 형식으로 제시한다. (P177-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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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중심은 두 질문이다.

다비드의 ‘벌레(병의 원인)는 정확히 언제 생겨났는가?’ 그리고 아만다의 ‘니나는 어디에 있는가?’ 아만다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고, 두 사람은 서로 알고 싶어 하는 것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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