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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Aug 13. 2023

피에르 쇼데를로 드 라클로의 <위험한 관계>

영화 <위험한 관계> 1988년

현대판 <위험한 관계>(2022)     

영화 <위험한 관계Dangerous Liaisons>(1988)는 18세기 프랑스 소설인 쇼데를로 드 라클로의 '위험한 관계'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 이 영화 뿐만 아니라 <발몽Valmont>(1989),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1999), 한국 영화인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2003), <위험한 관계>(2012)도 이 소설과 관련이 있다. 18세기 프랑스 혁명 전야의 파리 귀족 사회. 사람들은 사치가 극에 달한 감미로운 생활에 취해 쾌락을 추구한다.   

    

[발몽 자작이 파리의 메르테유 후작 부인에게]

노여워 마시고 제 얘기를 들어주십시오. 제 마음의 비밀을 모두 알고 계시는 부인께 이제껏 품었던 그 어떤 계획보다도 큰 계획을 털어놓겠습니다. 저한테 어떤 일을 제안하셨지요?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아가씨, 저항도 없이 이내 몸을 내맡길 그런 아가씨를 유혹하라는 것이었나요? 사랑보다 먼저 호기심에 끌려 넘어올 그런 아가씨를 말인가요? 그 정도라면 저 말고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준비하고 있는 일은 다릅니다. 성공하는 날에는 쾌락뿐 아니라 명예도 한 몸에 누릴 수 있는 일이죠. 사랑의 신도 저에게 씌워줄 왕관을 준비하면서 도금양 잎으로 할까 월계수 잎으로 할까 망설이게 될 겁니다. 아니 저의 승리를 기리기 위해서 두 가지를 같이 씌워줄 겁니다. 저의 소중한 벗인 부인께서도 성스러운 존경심을 느끼며 열광적으로 외치게 될 겁니다. “이 사람은 정말 마음에 들어”라고요.

투르벨 법원장 부인을 아시죠? 신앙심이 두텁고, 한 남자의 아내로서 정숙하며, 엄격한 도덕 원칙을 따르는 여자지요. 전 바로 그 여인을 정복하려고 합니다. 진정 제가 상대할 가치가 있는 적이죠.

설사 내가 그것을 얻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시도해보았다는 영예를 얻으리라.

별로 좋은 시는 아니지만, 훌륭한 시인의 작품이니까 인용해도 좋을 겁니다.       (P17-18)     


[볼랑주 부인이 투르벨 법원장 부인에게]

부인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합니다. 탕아의 영혼을 부인 같은 사람이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보기 드물게 솔직’하다고 했던가요. 그렇죠. 발몽의 솔직함은 아주 보기 드뭅니다. 그래서 상냥하고 매력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음흉하고 위험한 인물입니다. 젊었을 때부터 그 사람이 하는 행동과 말은 모두가 계획적이었죠. 모든 계획이 거짓이고 사악했습니다. 부인도 알고 있죠? 내가 얻으려고 노력하는 미덕들 중에는, 물론 제일 중요한 건 아니지만, 관용도 포함됩니다. 그러니까 만일 발몽이 넘치는 욕정에 끌려서 그런 행동들을 했고 그저 그 나이에 빠지기 쉬운 과오를 범한 것이었다면, 물론 그의 행실에 대해서는 비난을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 자체를 미워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냥 그 사람이 다시 올바른 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될 날을 아무 말 없이 기다릴 겁니다. 하지만 발몽은 다릅니다. 그의 행실은 분명한 원칙에서 얻어진 결과입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자신은 다치지 않으면서 온갖 끔찍한 일을 할 수 있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여자를 희생시켜 자기는 모든 위험에서 피해가면서 잔인하고도 사악한 짓을 하죠. 그가 유혹한 여자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데, 그중에 상처를 입지 않은 여자는 없을 겁니다.                   (P32)     

[발몽 자작이 메르테유 후작 부인에게]

방으로 돌아온 후에도 여전히 마음이 좋기 않았고, 결국 전 하인한테 얘기를 했습니다. 하녀와 정분이 난 사이니까 그래도 좀 신용이 있겠지 싶었습니다. 내 말대로 하게 만들든가 아니면 입을 다물겠다는 다짐이라도 얻어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평소에는 뭐든 덥석 덤벼드는 하인이 이번에는 자신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더니 놀랄 만큼 심오한 말을 하더군요.

“나리께서 저보다 잘 아시겠지만, 여자하고 잔다는 건 그 여자가 좋아하는 걸 해주는 거지, 여자한테 우리가 원하는 걸 시키는 것과는 많이 다릅니다.”

하인의 상식이 때로 나를 놀라게 하도다.                (P126)     


[발몽 자작이 투르벨 법원장 부인에게]

하지만 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관능의 도취, 허영의 광기는 내 마음속에까지 미치지 못했습니다. 불장난 같은 연애는 그저 심심풀이일 뿐. 진정한 사랑을 위해 태어난 내 마음을 사로잡지는 못했습니다.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경멸스런 여자들에 둘러싸인 채 그중 누구도 내 영혼에 닿지 못했습니다. 쾌락을 얻을 수는 있었지만 내가 찾는 건 미덕이었습니다. 결국 난 내 자신이 한군데 정착하지 못하는 바람둥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섬세하고 예민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당신을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사랑의 매력이란 영혼이 가진 자질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오직 그것만이 사랑을 넘쳐나게 할 수 있고 또 사랑을 정당화해준다고 말입니다.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건 불가능하고, 또한 당신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P153-154)   

   

[메르테유 후작 부인이 발몽 자작에게]

자작님의 충고와 걱정은 한번 남자에 빠지면 정신이 나가는 여자들, 스스로 감정이 풍부하다고 자부하는 여자들한테나 주세요. 그런 여자들이 공상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태어날 때부터 모든 감각이 머릿속에 들어앉은 듯하죠. 깊은 생각이란 없고 언제나 사랑과 애인을 혼동합니다. 매번 허황한 환상에 빠지는 것이죠. 한 남자와 쾌락을 추구하고 나면 마치 이 세상에서 그 사람 혼자만 사랑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버리면서요. 말하자면 미신에 빠져서 오직 하느님께 바쳐야 할 존경과 신앙을 사제에게 바치는 셈이죠.

자작님은 그런 여자들이나 걱정하세요. 신중하기보다는 허영심이 강해서 필요할 때 상대방이 떠나는 것을 받아들일 줄 모르는 여자들 말이에요.

특히 한가하면서도 적극적인 여자들. 남자들이 민감한 여자라고 부르는 여자들이 문제죠. 그런 여자들은 쉽게 사랑에 빠지고 또 일단 빠져들면 정신이 없답니다. 즐겁지 않은 사랑일지라도 사랑에 빠져 있고 싶어하거든요. 그런 여자들은 끓어오르는 생각에 무조건 마음을 내맡긴 채, 달콤하지만 위험한 편지를 씁니다. 그러곤 자신의 약점을 담은 그 증거들을 정작 원인을 제공한 상대에게 덥석 보여주고 말죠. 오늘의 연인이 내일의 적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모르고 말입니다.             (P242)      


[발몽 자작이 세실 볼랑주에게]

아가씨 방에서 복도 쪽으로 난 문의 열쇠가 항상 어머님 방 벽난로 위에 놓여 있는 걸 본 것 같습니다. 그 열쇠만 있으면 모든 게 해결될 겁니다. 열쇠를 빼내고 그 자리에 대신 놓아둘 열쇠는 제가 마련해드리겠습니다. 한 시간 혹은 두 시간 정도면 충분합니다. 아가씨라면 열쇠를 손에 넣을 기회를 쉽게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 편지에 들어 있는 열쇠를 그 자리에 갖다 놓으면, 진짜 열쇠가 없어진 걸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 겁니다. 원래 열쇠와 아주 비슷하게 생겨서 직접 사용해보지 않고는 구별하지 못할 정도랍니다. 어차피 그런 일을 없을 테지만요. 한 가지, 원래 열쇠와 똑같이 파랗고 낡은 리본을 묶어놓는 것만 잊지 마십시오.

내일이나 모레 아침식사 때까지 손에 넣어야 합니다. 열쇠를 전해주기 좋은 시간이고, 또 저녁이면 아가씨의 어머님이 열쇠에 신경을 쓰실테니 그 전에 마무리지어야 하니까요. 우리가 잘 협력한다면 점심식사 때는 다시 제자리에 가져다 놓을 수 있을 겁니다.

아가씨도 아시겠지만 거실에서 식당으로 옮겨갈 때 언제나 로즈몽드 부인께서 제일 뒤에 서시죠. 전 그분의 손을 잡고 가겠습니다. 당신은 수틀에서 좀 천천히 일어나든지 아니면 뭔가를 떨어뜨려서 조금 뒤처지기만 하면 됩니다. 내가 열쇠를 쥔 손을 등 뒤로 하고 있으면 열쇠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일단 열쇠가 손에 들어오면 바로 로즈몽드 부인께 다가가서 다정하게 붙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혹시 열쇠를 떨어뜨리더라도 당황할 것 없습니다. 내가 떨어뜨린 척하고,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P260)      

[투르벨 법원장 부인이 로즈몽드 부인에게]

그분으로부터 멀어지겠다는 힘겨운 결심을 했을 때, 떨어져 있으면 힘과 용기를 되찾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완벽한 착각이었습니다! 오히려 힘과 용기를 모두 빼앗긴 것 같습니다. 물론 그전에도 이미 힘겹게 싸워야 했던 건 사실이지만, 저항할지언정 완전히 다 빼앗긴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이따금 그분을 볼 수 있었으니까요. 때로 제 쪽에서 쳐다볼 용기를 내지 못한다고 해도 그분이 절 바라보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부인, 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분의 시선이 제 영혼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 시선은 제 시선을 거치지 않고서 바로 마음으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전 소중한 모든 것을 잃고 고독과 싸우면서 오직 저의 불행만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슬픈 제 삶은 눈물뿐입니다. 그 무엇으로도 이 쓰라린 고통을 달랠 길 없고, 제 희생을 위로해주는 것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치른 희생들은 결국 앞으로 치러야 할 희생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P357)     


[발몽 자작이 메르테유 후작 부인에게]

전 정말 기대가 크답니다. 그래서 결국 부인의 계획에 어긋나는 일인줄 알면서도 부인의 신중한 벗 당스니를 돕기로 했습니다. 첫사랑의 대상으로 선택한 아가씨를 향한 열정이 더욱더 불타오를 수 있도록 말입니다. 어제 부인께서 후견하는 아가씨가 열심히 편지를 쓰고 있더군요. 그 달콤한 작업을 처음에는 보다 더 달콤한 작업으로 방해를 했죠. 그러다가 편지를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차갑고 어색한 글이더군요. 이래서는 애인을 위로할 수 없으니 불러주는 대로 다시 쓰라고 했습니다. 허튼 소리만 쫑알거리는 아가씨의 평소 편지를 가능한 한 흉내 내면서, 우리 젊은 청년의 사랑에 보다 확실한 소망을 준 겁니다. 아가씨는 자기가 편지를 이렇게 잘 썼다는 게 너무 기쁘다고 하더군요. 저야 당스니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못하겠습니까?그의 친구이며 의논 상대자이고, 동시에 그의 연적이고, 또 정부라도 되어줄 겁니다. 우선 지금은 부인과의 위험한 관계에서 그를 구해내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위험한 관계죠. 부인을 소유했다가 잃는 것은 한순간의 행복을 누리는 대가로 영원한 회한을 남기는 것이니까요.

그럼 아름다운 벗이여, 이만 작별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용기를 내셔서 하루빨리 벨르로슈를 쫓으십시오. 그리고 당스니는 그냥 두십시오. 부인과 저, 우리 두 사람 모두 첫 관계 때의 달콤한 쾌락을 되찾을 수 있도록 준비해주십시오.             (P384-385)      

[발몽 자작이 메르테유 후작 부인에게]

편지 두 통을 옮겨 써 보낼 테니 읽어보십시오. 나의 연인에게 다시 다가가기 위해서 누구를 중개자로 선택했는지, 그리고 그 성직자가 우리 두 사람을 다시 결합시키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 보십시오.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것은, 이미 아시는 대로 중간에 편지를 가로채서 알게 된 것인데, 신앙심 깊은 나의 연인은 내가 떠나는 것이 두렵고 창피한 나머지 신중함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 그 마음과 머릿속에 온통 상식을 벗어나는, 하지만 상당히 흥미로운 감정들이 가득 찼다는 겁니다. 전 바로 이런 예비지식을 지니고 어제 28일 목요일, 그러니까 매정한 나의 연인이 미리 정해준 날짜에 그녀의 집으로 갔습니다. 잘못을 뉘우치는 소심한 노예처럼 들어갔지만, 그 집을 나설 때는 승리의 왕관을 쓴 정복자가 되었죠.        (P413-414)    

  

[로즈몽드 부인이 투르벨 법원장 부인에게]

나의 아름다운 벗이여. 사랑에 빠지게 되면 완벽한 행복을 꿈꾸게 되죠. 나는 부인이 완벽한 사랑이 다가오리라는 꿈에 빠지지 말고 내가 말한 것을 한번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인간이란 희망을 버려야만 하는 순간에도 거짓 희망에 집착하게 되고, 그 희망을 잃고 나면 더욱 격렬한 정열이 뒤따라오게 됩니다. 그래서 안 그래도 쓰라린 괴로움이 더욱 괴로워지죠! 그럴 때 부인의 괴로움을 달래주고, 또 조금이라도 줄여주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고 또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치료할 약이 없는 병에는 식이요법을 권할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점은, 일전에 말했듯이 아픈 사람을 가엾게 여기는 것은 그 사람을 비난하는 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겁니다. 우리가 누구를 비난할 수 있을까요? 우리를 판단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보실 수 있는 분께 맡깁니다. 하느님께서 아버지의 눈길로 보시면 한 번의 실수 정도는 수많은 덕행으로 속죄될 수 있으리라고 믿고 싶습니다.              (P435)     

[투르벨 법원장 부인이 로즈몽드 부인에게]

아, 부인. 행복의 환상을 드리우던 베일이 갈가리 찢어졌습니다. 제가 알아야만 하는 진리가, 그 불길한 빛이 절 비추고 있습니다. 이제 눈에 보이는 것은 하나, 피할 수 없이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뿐입니다. 치욕과 후회 사이로 죽음의 길이 나 있습니다. 전 그 길을 따라가겠습니다. 제 삶을 단축시켜주기만 한다면 이 고통도 기꺼이 사랑하겠습니다. 어제 받은 편지를 보내드립니다. 제 생각은 덧붙이지 않겠습니다. 그 안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으니까요. 이제 한탄할 여유도 없습니다. 온전히 고통뿐입니다. 저에게 필요한 것은 동정이 아니라 힘입니다.    (P470)  

   

[당스니 기사가 로즈몽드 부인에게]

한 통은 복수를 위해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저와 발몽 씨 두 사람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고, 발몽 씨도 저더러 꼭 복수를 하라고 했으니까요. 부인께서도 아시게 되겠지만 메르테유 부인은 발몽 자작과 저 사이에 있었던 일의 진짜 원인이며 또한 유일한 원인이었습니다. 메르테유 부인처럼 위험한 여자의 가면을 벗기는 것은 사회를 위해서도 유용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 편지는 프레방 씨의 누명을 벗겨주어야 한다는 정의감 때문에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프레방 씨를 잘 모르지만 억울하게 가혹한 대우를 받았고 또 사람들의 냉혹한 판단 -- 이것이 더 무서운 법이죠 --을 감당했잖습니까. 그는 지금도 스스로를 변호하지 못한 채 괴로움을 겪고 있습니다.             (P531) 

    

[로즈몽드 부인이 당스니 기사에게] 

그리고 내 나이에만 할 수 있는, 당신 나이에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생각을 하나 얘기하겠습니다.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은 법과 종교가 정한 한계를 벗어나면서까지 행복을 원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당신이 맡긴 편지들은 잘 보관하겠습니다. 한 가지 양해를 구하자면, 이 편지를 앞으로 아무한테도 내주지 않을 작정입니다. 당신한테도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때가 아니라면 마찬가지입니다. 반대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정당한 복수라고 해도 복수를 하고 나면 고통스럽게 된다는 것 역시 알고 있을 테니까요.             (P536)     


[볼랑주 부인이 로즈몽드 부인에게]

단 한 번 위험한 관계를 맺은 것이 이렇게 큰 불행을 초래하는 걸까요? 그 누가 전율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조금만 더 깊이 생각했더라면 아무리 엄청난 불행이라도 모두 피할 수 있었을텐데! 누가 딸에게 말을 걸면 바로 경각심을 가졌을 텐데! 하지만 이런 생각은 언제나 일이 터진 후에 오는 법이죠. 그래서 가장 중요한 진리. 가장 널리 알려진 진리이면서도 정작 결국 우리의 무분별한 풍속의 소용돌이 속에 묻혀버리고 아무 소용이 없게 되나 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우리의 이성은 불행을 경고해줄 능력이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불행을 위로해주지도 못한다는 걸 절실히 느낍니다.                (P546)      

결국 이 소설에서는 투르벨 부인과 두 젊은이를 파멸로 이끌어간 것은 사랑이라기보다는 사랑의 환상이라고 말한다. 환상은 욕망의 대상을 변형시키며, 따라서 이들은 사랑의 실체를 알고 연애감정을 조롱하는 자들과의 게임에서 절대 이길 수 없다. 위험한 관계는 미덕과 방종의 싸움이 아니라 환상과 현실의 싸움 속에 자리 잡는 것이다. 더구나 투르벨 부인의 파멸이 순결한 희생으로 그려지는 것과 달리 당스니와 세실의 희생에는 자기기만이라는 또 다른 악이 개입된다. 순진하던 두 젊은이가 놀라울 정도로 간교한 자기합리화를 통해 타락해가는 과정은 귀족사회의 부도덕한 실상과 함께 인간 본성에 대한 예리한 묘사를 제공한다. 이렇게 소설 <위험한 관계>는 환상의 위험과 위선을 보여주면서 ‘환멸’이라는 우리 삶의 조건을 그려낸다.         (P548-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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