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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Aug 09. 2023

E.M. 포스터의 <전망 좋은 방>

영화 <전망 좋은 방A Room with a View> 1986년

<전망 좋은 방>은 ‘제임스 아이보리(감독), 이스마일 머천트(제작자), 루스 프라워 자발라(각본)’ 트리오가 처음 영화로 각색한 영국의 문호 E..M. 포스터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아이보리 감독은 20세기 초 영국 상류층 사회의 인습적이며 위선적인 생활 풍속도와 이기심, 인간 내부의 혼돈과 모순의 무질서를 들추는 이중구조적 시각으로 다루었다. E..M. 포스터의 작품은 머천트 아이보리 프로덕션의 걸작인 <전망 좋은 방>(1984), <모리스>(1987), <하워즈 엔드>(1992)를 포함, 데이비드 린의 <인도로 가는 길>(1984)과 찰스 스트릿지의 <몬테리아노 연인>(1991)까지 주요 작품 5편이 모두 영화화되었다.    

  

보수적인 사회에 길들여진 ‘루시’, 전형적인 권위주의자 ‘샬롯’, 속물 근성의 보수주의자 ‘세실’, 위선적인 사회를 혐오하며 몽상가적 삶을 사는 ‘조지’, 자유 분망한 삶을 사는 독신 여성 ‘엘리너’.      

“아르노 강을 보고 싶었어요. 시뇨라가 그때 편지로 약속한 방에서는 아르노 강이 보인다고 했잖아요. 이러면 정말 안 되죠. 너무 실망스러워요!”

“나야 어떤 방이라도 상관없어. 하지만 너마저 전망이 좋은 방을 갖지 못하다니 나한테는 그게 괴로워.” 샬럿이 말했다.

그 말에 루시는 자신이 이기적으로 느껴졌다. “샬럿, 그렇게 나를 응석받이로 만들지 마요. 당연히 언니도 아르노 강을 봐야죠. 정말이에요. 그러니까 앞쪽에 있는 첫 번째 빈 방을.....”

“그 방은 네가 써야 해.” 샬럿이 말했다. 샬럿은 여행 비용 일부를 루시의 어머니로부터 보조받는 형편이었고, 그에 대한 고마음을 여행 중에 여러 차례 요령 있게 암시했다.

“아니에요. 언니가 써야 해요.”

“그럴 수 없어어머니가 나를 용서하지 않을 거야. 루시.”

“언니를 홀대하면 어머니가 <절>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두 사람의 목소리가 뜨거워졌다. 그리고 사실대로 말하자면 거의 싸우는 양상이 되었다. 두 사람은 피곤했고, 서로를 위한다는 핑계 아래 한껏 언성을 높였다. 식탁에 앉은 다른 사람들이 서로 눈짓을 주고 받는 가운데, 어떤 사람 -- 외국에 나가면 만나게 되는 교양 없는 부류의 -- 이 식탁 위로 몸을 내밀더니 두 사람의 언쟁을 자르고 끼어 들었다. 

“내 방은 전망이 좋아요. 아주 좋아요.”

샬럿은 깜짝 놀랐다. 펜션 같은 데서는 대개 하루 이틀이 지나야 말을 거는 법이고, 그럴 만한 이유를 찾기도 전에 헤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샬럿은 그가 교양 없는 부류라는 걸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그는 육중한 몸집의 늙수그레한 남자였는데, 깨끗이 면도한 얼굴에 눈이 컸다. 그 눈은 어딘지 어린아이 같은 데가 있었다. 노망에서 오는 아이 같음은 아니었다. 그게 정확히 뭔지 샬럿은 생각해 보려 하지 않고 남자의 옷부터 바라보았다. 그다지 마음에 드는 옷차림은 아니었다. 남자는 아마도 두 사람이 언쟁을 벌이기 전부터 그들에게 말을 걸고 싶어 한 것 같았다. 그래서 샬럿은 일부러 얼이 빠진 듯한 표정으로 남자의 말을 듣고 나서 말했다.

“전망이라고요? 아, 전망! 전망이 좋으면 기쁜 일이지요!”

“이 아이는 내 아들 조지예요. 이 녀석 방도 전망이 좋습니다.” 남자가 말했다.

“아.” 샬럿은 루시가 뭐라고 말하려는 것을 막으며 짧게 내뱉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두 분이 우리 부자의 방을 써도 좋다는 겁니다. 우리가 두 분의 방을 쓰고 말이에요. 그러니까 방을 바꾸자는 거요.” 남자가 계속 말했다.         (P11-13)     

루시는 중세의 여인을 표상하지 않는다. 중세의 여인은 진지함을 느낄 때 우러러보라고 교육받은 이상적인 존재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반항의 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저런 속박이 그녀에게 불만을 안겨 주었고, 그녀는 그것을 벗어던지고 싶었다. 그렇게 하고 나면 아마도 후회하리라. 그날 오후 그녀는 특히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이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뜻에 반하는 무언가를 몹시 하고 싶었다. 전차를 탈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대신 알리나리의 가게로 갔다. 

거기서 그녀는 보티첼리의 그림 <비너스의 탄생>을 찍은 사진을 샀다. 이 그림은 유감스럽게도 비너스가 전체적인 아름다움을 망쳐 놓고 있었기 때문에, 샬럿은 루시에게 그것을 사지 말라고 했다(예술에서 유감이란 물론 누드를 의미했다). 그런 유감의 목록에는 조르조네의 <템페스타>, <이돌리노> 그리고 시스티나 예배당의 벽화 몇 점과 <아폭시오메노스>가 더해졌다. 그러고 났더니 마음이 좀 가라앉아서 그녀는 프라 안젤리코의 <대관식>과 조토의 <성 요한의 승천> 그리고 델라 로비아의 아기 그림들과 구이도 레니의 마돈나 그림을 몇 점을 샀다. 그녀는 취향이 폭넓었기 때문에,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이라면 모두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거의 7리라에 이르는 돈을 썼는데도, 자유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녀는 마음속에 흐르는 불만을 의식했다. 이런 것이 의식되기는 처음이었다. <세상은 분명 아름다운 것들이 가득해. 문제는 내가 그런 것에 다가갈 수 없다는 거지>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루시의 어머니가 딸을 성마르고 허황되며 예민하게 만든다고 음악을 싫어하는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P54-55)     

그녀는 안타까운 눈길로 베키오 궁전의 탑을 바라보았다. 탑은 거친 황금으로 만든 기둥처럼 땅 위의 어둠을 뚫고 솟아 있었다. 그것은 탑도 아닌 것 같았고, 땅 위에 서 있지도 않은 것 같았고, 그저 고요한 하늘에서 고동치는, 손에 넣을 수 없는 보물 같았다. 그녀는 탑의 밝은 자태에 매혹되었고, 그 자태는 그녀가 고개를 땅으로 내리고 숙소를 향해 돌아선 뒤에도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났다.

이탈리아인 두 명이 아까부터 로지아 옆에서 돈 문제로 다투고 있었다. <Cinque lire(5리라), cinque lire!> 하고 떠드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그들은 마침내 드잡이를 시작했고, 그 가운데 한 명이 가슴을 가볍게 얻어맞았다. 그는 인상을 쓰더니 흥미로운 표정으로 루시를 향해 몸을 숙였다. 마치 그녀에게 전할 중요한 말이 있는 것 같았다. 그가 그 말을 하려고 입을 열자, 벌어진 입에서 붉은 액체가 흘러나와서 구레나룻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러고는 끝이었다. 땅거미 속에서 삽시간에 군중이 모여들었다. 

군중들은 이 기막힌 남자를 둘러싸더니 분수 앞으로 데리고 갔다. 조지 에머슨이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있었다. 군중들이 사라지자 맞은편에 서 있던 루시가 보였다. 기이한 일이었다! 그런 장소를 가로질러서 그녀를 보다니, 그녀도 그를 보았지만 그의 모습은 금세 흐릿해졌다. 궁전 전체가 흐릿해져서 머리 위로 흔들리다가 소리 없이 천천히 무너져 내렸고 하늘도 함께 무너졌다. 

그녀는 생각했다. <아, 내가 무슨 일을 한 거지?>

“내가 무슨 일을 한 거지?” 그녀가 중얼거리면서 눈을 떴다.

조지 에머슨이 아직도 그녀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조금 전까지 아무 일도 없다고 불평을 했건만, 지금 벌어진 일을 보라! 한 남자는 칼에 찔려 죽고, 다른 남자는 자신을 안고 있었다. 

두 사람이 있는 곳은 우피치 미술관의 아케이드 계단이었다. 그가 그녀를 거기까지 데리고 온 게 분명했다. 그녀가 입을 열자 그가 일어나서 무릎에 묻은 흙을 털었다. 그녀가 다시 한 번 말했다.  

“내가 무슨 일을 한 거죠?”

“기절했습니다.”                        (P55-56)     

둘은 이미 펜션 근처에 이르러 있었다. 그녀는 강둑 난간에 두 팔꿈치를 기댔다. 그러자 그도 그렇게 했다. 같은 자세가 된다는 것은 때로 마술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그것은 영원한 우정을 암시하는 일들 가운데 하나다. 그녀는 팔꿈치를 조금 움직이고서 말했다. 

“오늘 제 행동은 어리석었어요.”

그는 자기 생각에 몰두해 있었다. 

“제 평생 이렇게 부끄러웠던 적은 없어요. 어쩌다 그렇게 됐던 건지도 잘 모르겠어요.”

“저도 기절할 뻔했습니다.” 그가 말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행동이 그를 불쾌하게 하고 있다고 느꼈다. 

“천 번이라도 사과드릴게요.”

“아, 아닙니다.”

“그리고....... 이게 중요한 건데.... 소문이란 게 그렇잖아요..... 특히 여자들이 말이에요. 제가 걱정되는 건..... 제 말 이해하시겠죠?”

“무슨 말씀이신지......”

“오늘 제 어리석은 행동을 아무한테도 말씀하시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루시 양이 한 행동요? 예, 알겠습니다...... 그러죠.”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또 말씀드리자면......”

하지만 그녀는 부탁을 마무리 짓지 못했다. 강물이 발밑으로 출렁거렸고, 물빛은 어스름 속에서 검게 변해 있었다. 이 남자는 먼저 강물 속에 사진을 던져 놓고 그 다음에야 이유를 설명했다. 이런 남자에게 기사도를 기대하는 건 헛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생각 없는 잡담으로 그녀를 곤란에 빠뜨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믿을 만했고 똑똑한 데다 친절하기까지 했으니까. 어쩌면 그녀를 높이 보고 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 사람에게는 기사도가 없었다. 그의 행동과 마찬가지로 그의 생각에도 경외심이라는 게 들어갈 여지가 없었다. 그런 그에게 <그리고 또 말씀드리자면.....>이라고 말을 꺼내고 나서 그가 그 아름다운 그림에 나오는 기사처럼 발가벗은 그녀에게서 고개를 돌린 채 문장을 대신 마무리해 주길 기대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그의 품에 안겼고 그는 그걸 기억했다. 그녀가 알리나리 가게에서 산 사진들에 묻은 피를 기억하듯이, 한 사람이 죽은 것만이 아니었다.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무슨 일인가 일어났다. 그들은 이제 인격이 입을 여는 상황, 유년이 문을 닫고 젊음의 갈림길이 열리는 순간에 이르러 있었다. 

“정말 고마웠습니다. 순식간에 모든 게 지나가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네요!” 그녀가 다시 말했다.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녀는 불안을 느끼고 그에게 무슨 뜻인지 물었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더욱 수수께끼 같았다. “저는 아마도 살고 싶을 겁니다.”

“네, 에머슨 씨?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저는 살고 싶을 거라고요.”

팔꿈치를 난간에 기댄 채 그녀는 아르노 강을 바라보았다. 강물의 울부짖음이 낯선 멜로디가 되어 그녀의 귀로 밀려들었다.                 (P59-60)     

계절에 맞지 않음에도 바이스 부인은 원유회를 한 차례 열었는데, 파티의 손님은 모두 유명한 사람들의 손자, 손녀들이었다. 음식은 형편없었지만, 오가는 대화에 담긴 발랄한 권태는 그녀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사람들은 모든 것에 쉽게 싫증을 느끼는 것 같았다. 열변을 토하는 사람은 어김없이 우아하게 실패했고, 주위의 공감하는 웃음 속에 다시 몸을 추스렸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펜션 베르톨리니도 윈디 코너도 별 차이 없이 조악하게만 보였고, 루시는 자신이 런던에서 살게 되면 예전에 사랑했던 모든 것들과 어느 정도 멀어지게 될 것을 예감했다. 

유명인의 손자, 손녀 들이 그녀에게 피아노를 쳐달라고 했다. 그녀는 슈만의 곡을 쳤다.

“이제 베토벤을 쳐봐요.” 귓전을 때리는 음악의 아름다움이 사라지자 세실이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젓고 다시 슈만을 연주했다. 선율의 도약은 마술 같았지만 소득은 없었다. 연주가 잠시 멈칫하다가 재개되었고, 그 절뚝거리는 걸음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단번에 행진해 나가지 못했다. 이런 서투름에 대한 안타까움 -- 인생에서는 흔하지만 예술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 이 뿔뿔이 흩어지는 악구들 속에서 고동쳤고, 듣는 사람들의 신경도 그와 함께 고동쳤다. 베르톨리니 펜션의 작은 피아노를 칠 때는 이러지 않았다. 그리고 연주를 마쳤을 때 비브 목사가 <아무래도 슈만의 영향이 너무 큰 것 같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P150)    

 

“우리 집에서 보는 전망이 어떤가요, 에머슨 씨?”

“저는 전망들의 차이를 잘 모르겠어요.”

“그게 무슨 말씀이죠?”

“전망들은 다 비슷하니까요. 중요한 건 확 트인 시야와 대기뿐이니까요.”

“흠!” 세실이 반응했다. 그는 조지의 말이 훌륭한지 아닌지를 판단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말씀하시기를......” 그는 그녀를 올려다보았다(그의 얼굴에는 홍조가 약간 떠올라 있었다). “완전한 전망은 하나뿐이래요. 우리 머리 위로 올려다보이는 하늘의 전망 말이에요. 땅 위에서 보는 전망들은 다 그걸 어설프게 흉내 낸 거래요.”

“아버님께서 단테를 읽으셨나 보군요.” 세실이 손가락으로 소설책을 넘기며 말했다. 그가 대화를 이끌어 나가도록 해주는 건 오직 그 소설뿐이었다.

“한번은 우리한테 이렇게 말씀하신 적도 있어요. 전망은 군중이다. 나무와 집들과 언덕의 군중이다. 이것들은 사람의 군중이 그렇듯이 서로를 닮게 된다. 그리고 바로 똑같은 연유로 우리에게 초자연적인 힘을 발휘한다고요.”

루시의 입술이 벌어졌다.

“군중은 언제나 그 속의 사람들을 합한 것보다 더 큰 존재가 되죠. 거기 무언가가 더해져요 --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 그건 저 언덕들에 무언가가 더해지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P194)

     

지금 닥친 문제는 사랑과 의무의 싸움이 아니었다. 그런 싸움은 아마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것은 진실과 가식의 싸움이었고, 루시의 첫 번째 목표는 자신을 무찌르는 것이었다. 머릿속에 구름이 끼고, 전망들에 대한 기억이 흐릿해지며, 책에 적힌 글들이 사그라지자, 그녀는 다시 모든 것은 신경 탓으로 돌렸다. 그리고 <신경에 닥친 위기를 극복했다>. 진실을 뒤틀면서 그녀는 진실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었다. 자신은 세실과 약혼한 처지라는 걸 되새기면서 조지와 함께 한 기억을 뒤헝클었다. 그는 그녀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언제고 그 이상이었던 적이 없었다. 그는 언제나 극악한 행동만 했다. 자신은 그에게 아무 빌미도 주지 않았다. 어둠을 재료로 만들어지는 미묘한 거짓의 갑옷은 다른 사람들의 침입뿐만 아니라 자기 영혼과의 소통도 막아버린다. 짧은 시간 안에 루시는 전투에 나설 준비를 갖추었다.       (P198)     

“정확히 그런 뜻은 아니에요. 당신이 자꾸 물어보니까 뭐라도 말해야 해서 그런 거예요. 어쨌거나 비슷해요. 우리가 친지 정도의 사이라면 당신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했을 거예요. 하지만 당신은 자꾸만 나를 보호하려고 들었어요.” 루시의 목소리가 솟구쳤다. “나는 보호받기 싫어요. 어떤 게 여자다운 건지 옳은 게 뭔지 나 자신이 판단하고 싶어요. 보호받는다는 건 나한테 모욕이에요. 내가 왜 진실과 바로 만나지 못하고 당신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접해야 하죠? 그게 여자의 자리라고요? 당신은 우리 어머니를 한심하게 여겨요. 저는 잘 알아요. 어머니가 인습에 얽매이고 푸딩 같은 것에 안달한다고요. 하지만 아, 기가 막혀!”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인습에 얽매인 건 세실 바로 당신이에요. 당신은 아름다운 것들을 이해할지는 모르지만 그걸 사용할 줄은 모르니까요. 당신은 미술과 책과 음악에 둘러싸여 지내면서 내게도 그런 걸 강요하려고 했어요. 나는 음악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그런 것에 숨 막혀 죽고 싶지 않아요. 왜냐면 사람이 그보다 훨씬 아름다우니까요. 하지만 당신은 나와 사람들 사이에 장벽을 세웠어요. 그래서 내가 약혼을 깨는 거예요. 당신은 사물들하고 있을 때는 아무 문제  없어요. 하지만 사람들하고는.......” 그녀는 거기서 말을 멈추었다.           (P211-212)     

“아뇨, 그렇지 않았어요. 세실은 아주 좋은 사람이었어요. 다만...... 이미 들으신 게 있으니 모두 말씀드려야겠지만..... 통솔하려는 성향이 강한 것뿐이에요. 그 사람이 저한테 자유를 주지 않을 게 분명해 보였어요. 그는 나의 개선 불가능한 점들을 개선하려고 했을 거예요. 세실은 여자의 결정권을 인정하지 않아요. 아니 감히 인정하지 못하는 거죠. 아, 도대체 제가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건가요? 하지만 말하자면 그렇게 된 거예요.”

“저도 그동안 바이스 씨를 지켜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고, 루시 양을 보면서도 그랬습니다. 루시 양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동의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꼬집고 싶군요. 이런 일이 그리스로 허겁지겁 떠나야 할 만큼 큰 사건입니까?”               (P224)     

“이 늙은이 말을 들어요. 이 세상에 혼란보다 나쁜 건 없어요. 죽음이라든가 운명이라든가. 무시무시해 보이는 그런 것에 맞서기는 오히려 쉬워요. 지난날을 돌아볼 때 두려운 건 내가 만났던.... 어쩌면 잘 피했는지도 모르는 혼란들이에요. 다른 사람의 도움은 한계가 있어요. 나는 한때 젊은이들한테 인생을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을 버렸습니다. 조지에게 가르친 모든 게 결국 이런 결과를 낳았으니까. 혼란을 떨쳐야 해요. 그 교회의 일 기억합니까? 아가씨는 나 때문에 기분이 상한 척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어요. 그 전에 전망 좋은 방을 거절했던 일도 기억합니까? 그런 게 혼란이에요.... 모두 사소한 일들이지만 심오한 징조를 품고 있어요. 지금 아가씨가 그런 혼란에 빠진 게 아닌가 싶어 걱정이구려.” 그녀는 침묵했다. “내 말을 믿어요. 허니처치 양. 인생은 눈부시지만 또 힘든거요.” 그녀는 계속 침묵했다. “한 친구가 이런 말을 쓴 적이 있어요. <인생은 바이올린 연주회와 같다. 그런데 그 연주법은 연주를 해나가는 무대에서 익혀야 한다>고 말요.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해요. 사람은 살아가는 현장에서 살아가는 능력을 익혀야 해요...... 무엇보다 사랑하는 능력을.” 그러더니 그가 갑자기 열띤 목소리로 말했다. “그거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그거라고. 아가씨는 조지를 사랑하는구려!” 장황한 사설의 끝에 달라붙은 마지막 세 마디가 대양에서 밀려드는 파도처럼 루시에게 와서 부서졌다.                (P247)     

“...... 당신의 사촌 언니는 처음부터 그걸 바라고 있었다는 거예요. 우리가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그분은 마음 깊은 곳에서 우리가 이렇게 되기를 바랐어요..... 물론 마음속 아주 깊은 곳에서였지만요. 겉에서는 우리와 싸웠지만, 그래도 속으로는 바랐어요. 다른 방식으로는 그분 행동이 설명되지 않아요. 봐요. 그 여름이 지나가는 동안 그분은 당신이 나를 잊지 못하도록 했어요. 당신을 계속 괴롭혔죠.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분은 점점 더 기이하고 믿을 수 없게 되었어요. 우리 두 사람의 환영이 그분을 쫓아다닌 거예요...... 안 그랬다면 우리 일을 친구에게 그런 식으로 설명할 수 없었을 거예요. 그렇게 자세하게 말이에요. 마음속에 생생하게 타오른 거죠. 나중에 내가 그 책을 읽어 봤어요. 루시, 그분은 차가운 분이 아니에요. 그리고 메말라 버린 것도 아니에요. 처음 두 번은 우리를 갈라놓았지만, 그날 저녁 목사관에서 우리에게 행복을 줄 또 한 번의 기회를 얻었어요. 우리가 그분하고 친해진다거나 고마움을 전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마음속 아주 깊은 곳, 너무 깊어서 어떤 말이나 행동도 이르지 못하는 그곳에서 그분은 만족하고 있을 거예요.”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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