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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Sep 12. 2023

존 파울즈의 <마법사>

영화 <메이거스The Magus> 1968년

영국 최고의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로 꼽히는 존 파울즈(1926~2005)는 <마법사>를 비롯해 <컬렉터>(1963), <프랑스 중위의 여자>(1969), <만티사>(1982) 등 일련의 작품들에서 인간 본질에 대한 실존적 문제를 독창적이고 실험적 형식으로 성찰한 작가이다.      

영화 <메이거스>는 앤서니 퀸, 마이클 케인, 캔디스 버겐 주연, 가이 그린 감독의 영화이다. 제목인 마구스(Magus)는 원래 기원전 8세기 메디아 왕국의 사제 계급을 일컫는 말에서 출발해 고대 페르시아의 마구시(Magush), 중세 페르시아의 무그(Mugh), 고대 중국의 목호(穆護), 아라비아의 마주스(Majus), 그리스의 마고스(Magos), 영어로 메이거스, 복수로 메이자이(Magi) 학자, 현자, 박사, 마법사, 마술사, 점성술사, 철학자로 조로아스터교의 사제를 뜻하며 아기 예수를 찾아간 세 명의 동방박사가 The Three Magi라고 불린다. 영화는 자살한 교장의 후임으로 부임한 한 영어 선생이 영국에서 그리스 에게 해의 프락소스 섬에 도착하면서 시작되어 대 여섯 가지 이야기들이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꼬여서 돌아가는 대단히 비정형적인 미스터리 구조를 가진, 존 파울즈 (John Fowles)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누군가가 떠나는 것이 어떤 건지 알아. 처음 한 주는 지옥처럼 괴롭겠지. 그다음 한 주는 아파할 거고. 그러고는 잊기 시작하겠지. 그런 다음에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식이 될 거야. 마치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있었던 일인 것처럼. 그다음엔 어깨를 으쓱하게 될 거야. 그러고는, 그래, 이게 인생이야, 이런 법이야, 하고 말하겠지. 또, 이런 일에 연연해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야. 하고, 마치 뭔가를 영원히 잃은 게 아닌 것처럼.”

“난 잊지 않을 거야, 절대로 잊을 수 없을 거야.”

“당신은 잊을 거야, 나도 그럴 거고.”

“어쨌든 우리는 계속해서 살아가야 해. 삶이 아무리 슬프더라도 말이야.”

한참 후 그녀가 말했다. “당신은 슬픔이란 게 뭔지 모르는 것 같아.”         (P70)   

  

내가 읽은 어떤 책도 불길하면서도 매혹적인, 그리스의 이키르케적 속성을 설명해 주지 못했다. 영국에서는 사람들이 아직 남아 있는 자연의 풍경 그리고 북구의 부드러운 빛과 무척 억제되고 차분하며 순치된 관계를 맺은 가운데 살아간다. 반면 그리스에서는 풍경과 빛이 너무도 아름답고, 온전히 존재하고, 너무도 강렬하고, 너무도 야성적이어서 관계라는 것이 그 즉시 사랑과 증오처럼 열정적인 것이 된다. 내가 이 사실을 이해하는 데는 몇 개월이 필요했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는 몇 년이 걸렸다.            (P74)  

   

고독만이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 문제였다. 그리스는 어떤 것이 도덕적이고 어떤 것이 비도덕적이냐에 대한 영국의 인습적인 개념을 우스꽝스럽게 만들었다. 내가 사회적으로 용서받지 못할 행위를 했느냐 안 했느냐는 그 자체로는 새로운 상표의 담배를 피우느냐 않느냐처럼 취향의 문제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은 도덕적인 견지에서 보면 그 정도로 사소한 것이었다. 북쪽 나라들에서는 선함과 아름다움이 분리될 수도 있지만 그리스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그리스에서는 피부와 피부 사이에 오로지 빛만 존재했다.           (P86-87)  

   

시는 늘 내가 필요로 하는 순간에 의지할 수 있는 그 무엇, 정당화할 수 있는 수단이자 비상구 또는 구명조끼 같은 것이었다. 한데 이제 나는 구명조끼가 납덩이처럼 물속으로 가라앉은 상태에서 바닷속에 있었다. 그것은 자기 연민의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한 노력이었다. 나의 얼굴은 조각상의 뻣뻣한 가면처럼 굳어 있었다. 나는 몇 시간을 걸었고, 지옥 속을 헤매는 것 같았다. 

어떤 사람들은 사회 속에 편입되어 있지만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며, 반면 어떤 사람들은 사회를 통제하면서 그 안에 참여해 들어간다. 전자는 기어 또는 톱니바퀴의 이이며, 후자는 엔지니어 또는 운전자이다. 하지만 그 모두로부터 벗어나 있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존재와 무 사이의 괴리 상태를 표현할 수 있는 능력밖에는 없다. <나는 생각한다>가 아니라, <나는 쓰고 묘사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식이다. 그 후 며칠간 나는 내가 허무로 꽉 차 있다고 느꼈다. 나는 예전의 육체적, 사회적 고독감이라기보다는, 무인도에 고립된 것 같은 형이상학적 느낌으로 채워져 있었는데 그것은 암이나 결핵처럼 거의 만져질 듯한 무엇이었다.    (P88)  

   

그 주의 나머지 기간 동안 나는 학교에서 몇 가지 사실을 더 알게 되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교사 생활을 해온 사람들 가운데 현재 남아 있는 교사는 두 사람뿐이었다. 그들도 한두 번 콘키스를 만난 일은 있었지만 1949년에 학교가 다시 문을 연 이후로는 한 번도 못 만났다고 했다. 한 교사에 따르면 콘키스는 은퇴한 음악가였다. 또 다른 교사는 그가 몹시 냉소적인 사람이며 무신론자라고 했다. 하지만 콘키스가 사생활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는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했다. 전쟁 중 독일군은 콘키스를 강제로 마을에 살게 했다. 어느 날 그들은 본토에서 레지스탕스 요원 몇 명을 잡아와 콘키스에게 그들을 처형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거절했고, 마을 사람들 여러 명과 함께 독일군 총살 집행대 앞에 서게 되었다. 하지만 콘키스는 기적적으로 곧바로 죽지 않고 살아났다. 이것은 사란토플로스가 우리에게 해준 얘기였다. 많은 마을 사람들과, 독일군의 보복으로 친지를 잃은 사람들의 생각에 따르면 콘키스는 독일군이 지시한 대로 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지나간 일이었다. 만약 콘키스가 잘못했다면 그것은 그리스의 명예를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 후 그는 다시는 마을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P114)     


그 다음 토요일은 늘 불던 햇빛을 머금은 바람이 그치면서 찌는 듯 무더웠다. 매미들이 울기 시작했다. 전혀 박자가 맞지 않는 매미들의 울음소리는 듣는 이의 신경을 건드렸지만, 결국에는 그것에 너무도 익숙해져 어느 날 드물게 내리는 소나기가 쏟아져 울음소리가 그쳤을 때에는 정적이 마치 폭발음처럼 여겨졌다. 매미는 소나무 숲의 성격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제 그것은 살아 있고 광대했으며, 들을 수는 있지만 볼 수는 없는 에너지의 저장소가 되었다. 순수한 고독은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             (P117)     

“이쪽은 가정부 마리아요.”

그는 무척 정확한 그리스어로 노파에게 말을 했고, 나는 그가 내 이름과 학교 이름을 말하는 것을 들었다. 노파는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눈을 바닥으로 향한 채 내게 머리를 한 번 까딱하고는 테이블 위에 쟁반을 내려놓았다. 콘키스는 접시 하나 위에 씌운 모슬린 보를 마술사처럼 침착하면서도 재빠르게 벗겨 냈다. 오이 샌드위치가 담겨 있었다. 콘키스는 차를 따르면서 레몬을 가리켰다. 

“제가 누구인지 어떻게 아시죠, 콘키스 씨?”

“내 이름을 영국식으로 발음해 주시오. 나는 <ㅋ>을 좀 더 부드럽게 말하는 게 더 좋소.” 그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당신이 헤르메스에게 질문을 했다면, 제우스가 아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소?”

“제 동료가 부주의했던 것 같군요.”

“나에 관해서는 모든 것을 알아냈겠구려.”

“알아낸 게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데도 이렇게 환대를 해주시니 더욱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는 바다 쪽으롯 시선을 돌렸다. “당시(唐詩) 가운데 이런 게 있소.” 그의 성문 폐쇄음 발음은 정확했다. “<여기 변방에는 낙엽이 지고 있네, 내 이웃은 모두 오랑캐들뿐이고, 그대는 천 리 밖에 있지만 내 식탁엔 언제나 찻잔 두 개가 놓여 있네.>”

나는 미소를 지었다. “언제나라고요?”            (P123)    

   

“영혼과 소통한다는 것도 이것과 관계가 있는 겁니까?”

“그건 내가 우연에 대해 말한 것과 관계가 있소. 누구에게나 인생의 전환점 같은 시간이 찾아오는 법이오. 그런 순간이 오면 자기 자신을 받아들여야만 하오.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자신이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자신이 어떤 존재이며, 늘 어떤 존재로 남을 것인가 하는 것이오. 당신은 이것을 알기에는 너무 젊소. 여전히 뭔가가 되어 가고 있으니까. 어떤 존재인 것이 아니라.”

“아마 그럴 수도 있겠죠.”              (P168-169)     


내가 제일 처음 알게 된 것은 각자가 고립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던 것 같소. 사람을 고립시키는 건 전쟁의 상태가 아니오. 잘 알려진 것처럼 전쟁은 사람들을 하나로 만들지요. 하지만 전쟁터는 다른 어떤 것이오. 진짜 적이, 죽음이 나타나는 순간이기 때문이오. 나는 더 이상 숫자에서 어떤 따뜻함도 느낄 수 없었소. 숫자에서는 오직 죽음의 신과 나의 죽음만이 보일 뿐이었소. 죽음의 신은 보이지 않는 독일군에게서만큼이나 내 전우들과 몬터규에게서도 느껴졌소.

그건 광기 그 자체였소. 니컬러스. 3월의 어느 날 아침, 영국인, 스코틀랜드인, 인도인, 프랑스인, 독일인 등 수천 명의 인간이 땅에 판 구덩이 속에 서 있었소. 도대체 무엇을 위해? 지옥이라는 게 있다면, 바로 그게 지옥이었소. 불덩이와 쇠스랑 따위는 필요없소. 그날의 뇌브 샤펠처럼 이성의 가능성이 없는 곳이 곧 지옥이오.            (P190-191)       

나는 밤새 그 구덩이 속에 있었소. 코를 찌르는 악취에도 익숙해졌소. 점점 추워졌고, 몸에서 열이 나는 것 같았소. 하지만 나는 전투가 끝날 때까지 꼼짝 않겠다고 결심했소. 부끄러움 따위는 없었소. 독일군이 우리 진지를 접수해, 포로로 투항할 수 있기를 바라기까지 했소.

열이 나는 것 같았소. 하지만 내가 열이라고 생각한 건 존재의 불길, 존재하려는 열정이었소. 이제는 그것을 알 수 있소. 그건 <존재의 섬망 상태>였소. 나 자신을 변호하려는 건 아니오. 모든 섬망 상태란 다소 반사회적이고, 나는 철학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임상학적 차원에서 말한 것이오. 하지만 그날 밤 나는 육체적 감각에 대한 거의 모든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소. 지극히 단순하고 전혀 숭고하지 않은 것들, 즉 한 잔의 물이나 베이컨 굽는 냄새 등에 대한 기억이 내게는 최고의 예술과 가장 고상한 음악, 심지어는 릴리와 함께 보낸 가장 감미로운 순간들에 대한 기억을 능가하는 것으로, 혹은 그것들과 맞먹는 것으로 여겨졌소. 금세기 독일과 프랑스의 형이상학자들이 진리라고 주장한 것, 즉 타자인 모든 것은 개인에게 적대적이라는 것과는 정반대되는 것을 나는 경험한 거요. 나에게는 타자인 모든 것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게 보였소. 그 시체와 찍찍거리는 쥐까지도 말이오. 춥고 배고프고 구역질이 났지만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기적이었소. 어느 날 당신이 그때까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감각, 즉 촉각이나 시각 따위의 인습적인 다섯 가지 감각으로는 이해될 수 없는 육감을 지니게 된 것을 발견한다고 상상해 보시오. 그것은 훨씬 더 심오한 감각으로 다른 모든 감각이 비롯되는 원천과 같은 거요. <존재>라는 말이 더 이상 수동적이고 기술적인 단어가 아니라, 적극적이고....... 거의 절대적인 것이 되는 것이오.           (P202-203)     


나는 이것이 근원적인 현실이며, 그 현실은 우주적인 입을 통해 내게 그렇게 말하고 있다고 느꼈다. 신성이니 영적 교감이니, 인간에 대한 형제애니 하는 느낌도 내가 최면에 걸리기 전에 예상했던 어떤 것도 없었다. 범신론도, 휴머니즘도 없었다, 훨씬 더 넓고, 더 멋지며, 더 심오한 무엇이었다. 그 현실은 끝없는 상호 작용이었다. 선도 악도, 아름다움도 추함도 없었다. 공감도, 반감도 없었다. 오직 상호 작용만이 있었다. 한 존재의 끝없는 고독과 다른 모든 존재로부터의 완전한 고립은 모든 존재의 전적인 상호 작용과 동일한 것처럼 보였다. 각각의 존재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모든 대립하는 존재들이 하나인 것처럼 보였다. 모든 존재의 무용함과 필요 불가결함이 하나로 보였다. 나는 그때까지 경험하지 못한, 앎에 대한 새로운 감각으로, 다른 모든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P374-375)    

 

[2]

나는 우리를 만나게 한 기적 같은 신비 --콘키스와 그의 목적--를 다시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개인 동물원이 있을 경우 동물들을 우리 안에 있게 하면 되지 그것들이 그 안에서 뭘 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지시할 필요는 없다. 그는 우리를 부라니에 계속해서 묶어 놓을 수 있는 미묘한 심리적, 성적 창살을 우리 주위에 만들었다. 그는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어떤 귀족과 비슷했다. 우리는 레스터 백작의 개인 소유 극단이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실험>에 하이젠베르크의 원리를 도입해, 그 실험의 많은 부분이 관찰자이자 몰래 훔쳐보는 자인 그와 관찰당하는 인간 미립자인 우리 모두에게 불확정적인 것일 수도 있었다. 그는 부분적으로는 우리로 하여금 너무도 현명한 유럽과 미숙한 영국이라는 잘못된 비교를 하게 하고자 한 것 같았다. 그가 내뱉은 그 모든 격언적인 말에도 불구하고 그는 무수한 다른 유럽인들과 똑같아서, 삶에 대한 영국인의 정서적 깊이와 미묘함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P587)      


나는 남자가 있어야 할 장소가 존재한다는 것과 자기중심적인 관점의 한계에 대해 어떤 모호한 형이상학적인 교훈에 대한 가르침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떤 진정한 가르침이라기보다는 멍청한 동물을 고문하는 것에 더 가까운 불필요한 잔인함이기 십상이었다. 나는 --겉으로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더 깊은 동기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 지경에 빠지고 말았다. 몇 주 동안 나는 내가 분해되고 있으며, 이전의 자아로부터 --또는 자아를 구성하는, 서로 연결된 관념의 구조와 의식적인 감정으로부터-- 분리되고 있다고 느꼈다. 그런데 지금 이것은 엔지니어가 사라진 상태에서, 부품들이 널린 작업대 위에 누워...... 자신을 다시 어떻게 조립할지 확실히 모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P611)     


“여러 가지 암시가 당신에게 주어졌소.”

“콘키스 씨, 선생님이 남은 여름에 대해 줄리에게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알아요. 나는 선생님과 싸우러 이곳에 온게 아니에요. 그러니 내가 어떤 점에서 당신에게 실망을 안겨 주었다는 그 말도 안 되는 우스꽝스러운 얘기는 그만둘 수 없을까요? 선생님이 내가 실패하기를 의도했거나, 내가 실패하지 않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다른 대안은 없어요.” 

“연출가로서 말하건대 당신은 배역을 얻는 데 실패했소. 하지만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당신이 배역을 얻었다 해도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는 못했을 거요..... 당신이 무척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그 젊은 여자를, 처음부터 이번 여름은 그렇게 끝나게 되어 있었소.”

“그 이야기는 그녀에게 듣고 싶군요.”

“그녀를 다시 보고 싶어 하지 않은 것은 당신이오. 희극은 끝났소.”

“하지만 나는 나중에 우리나라에서 그 여배우를 볼 생각입니다.”

“물론 그녀는 그렇게 약속을 했소.”

“선생님보다 훨씬 더 진실하게요.”

“그녀의 약속은 아무런 가치가 없소. 이곳의 모든 것은 술책이오. 그녀는 당신과 즐기는 연기를 하고 있소. 말볼리오인 당신에게 올리비아 역을 연기하는 거요.”

“그리고 그녀의 이름은 줄리 홈스가 아니겠죠?”

“그녀의 진짜 이름은 릴리요.”               (P640-641)     

“한 가지 단서를 주죠. 평생에 걸쳐 모리스가 연구한 전문 분야는 정신 이상의 망상적인 증상의 본성에 관한 것이었어요.” 그녀는 손을 호주머니에 넣었다. “정신의학은 한편으로 더욱더 흥미로운 게 되어 가고 있어요. 왜 제정신인 사람은 제정신이고, 왜 그들은 망상과 환상을 실제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가 등에 관한 거죠. 제정신인 기니피그, 이번 경우에는 더없이 제정신인 기니피그에게 그가 듣게 될 모든 것이 그를 속이려는 시도라는 얘기를 한다면 탐구가 무척 어려운 건 분명해요.”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녀는 말을 이었다. “당신은 우리가 의학 윤리에 있어 아주 위험한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우리는...... 그 점을 인지하고 있어요. 하지만 어느 날 당신처럼 제정신인 일시적인 희생자가 아주 아픈 사람들을 도울 수도 있다는 데서 우리의 작업은 정당성을 갖게 될 거예요. 어쩌면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요.”              (P751)     

나는 내가 처한 상황을 점검해 보았다. 나는 지난겨울 이후로 한 번도 안 입었던 풀오버 스웨터와 능직 바지 차림이었다. 높다란 곡면의 천장은 어느 집 지하 수조 천장이었다. 창이 나 있지 않은 벽은 건조했지만, 땅 밑에 있었다. 전등도 있었다. 내 작은 여행 가방이 한쪽 모퉁이에 놓여 있었다. 그 옆에는 내 재킷이 옷걸이에 넣어져 못에 걸려 있었다.

테이블이 기대어 있는 벽은 최근에 벽돌로 지은 것이었다. 거기에는 육중한 나무문이 있었다. 손잡이도, 들여다보는 구멍도, 열쇠 구멍도, 심지어는 경첩도 없었다. 문을 밀어 보았지만, 바깥에 빗장이나 가로장이 걸려 있는 듯했다. 한쪽 모퉁이에는 또 다른 삼각형 탁자가 하나 더 있었다. 그리고 구식 세면대가 있었고, 그 아래에는 변기통이 있었다. 나는 내 여행 가방을 뒤적였다. 깨끗한 셔츠와 내의, 여름 바지가 한 벌씩 있었다. 면도기를 보면서, 내 턱에 일종의 시계가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거울을 보자 수염을 적어도 이틀은 안 깎은 것 같았다. 거울에 비친 얼굴이 낯설었다. 모욕을 당한 것 같기도 했지만 기이하게 무관심해 보였다. 나는 위쪽 벽에 있는 죽음의 형상을 올려다보았다. 죽음의 형상, 사형수의 독방, 전통적인 마지막 아침 식사. 모의 처형은 내가 치러야 하는 마지막 모욕이었다.          (P774)     


그들의 모든 이야기는 거짓말이거나 밑밥이었다. 그 편지들도 명백하게 위조된 것들이었다. 그것들을 통해 내가 그렇게 쉽게 그들을 추적할 수는 없었다. 문득 불길한 마음이 일며 내 우편물들 중 어떤 것도 누군가에게 읽히지 않은 채 섬을 떠나거나 섬에 온 적이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그들이 줄곧 앨리슨에 관한 진실을 알았을 거라는 불길한 깨달음으로 도약했다. 콘키스가 내게 영국으로 돌아가 앨리슨과 결혼하라는 충고를 했을 때 그는 그녀가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릴리도 앨리슨이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마치 세상의 가장자리 너머로 발을 뗀 것처럼, 내 마음은 역겹게 곤두박질쳤다.             (P775)     

앨리슨.

나는 거울 속의 내 눈을 응시했다. 갑자기 그녀의 솔직함과 충실함 --그녀의 진짜 죽음--이 마지막 남은 닻이 되었다. 만일 그녀 역시, 만일 그녀가...... 나는 파도에 휩쓸려 가버린 것이다. 삶 전체가 음모가 되었다. 나는 시간을 거슬러서 앨리슨을 붙들고, 그녀에 대해 절대적으로 확신하고자, 그녀의 사랑과 증오의 능력과, 그것들의 부패를 넘어서서 본질적인 앨리슨을 붙들고자 했다. 그리고 잠시 마음이 바닥 모를 광기 속을 헤매도록 내버려 두었다. 만일 지난 1년 동안의 내 삶 전체가 콘키스가 삶 일반에 대해 너무도 자주 말한 --다시 한 번 나를 속이기 위해 너무도 자주-- 것과는 정반대되는 것이라면, 러셀 광장의 그 아파트...... 하지만 나는 <뉴 스테이츠먼>에 우연히 실린 광고를 보고 연락을 해 그 집을 얻었다. 첫날 저녁 앨리슨과의 만남..... 하지만 나는 얼마든지 그 파티에 가지 않았을 수도 있었고, 몇 분을 기다리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마거릿과 앤 타일러, 그들 모두....... 가정은 불안정한 것이 되었고, 무너져 버렸다.            (P776)  

   

노인이 더 이상의 토론을 잠재웠다. “어프 씨, 당신의 의미 있는 제스처가 나로 하여금 우리가 여기서 당신을 만나는 목적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당신이 우리 가운데 최소한 몇 명에게 깊은 분노와 증오를 품고 있다는 건 우리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발견한 몇몇 숨겨진 자료는 다른 상태를 드러내 주고 있지만, 내 동료 해리슨 박사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에게 주로 관심이 있는 것은 우리가 살면서 믿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오늘 여기에 모인 것은 당신이 우리를 재판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신을 판사석에 앉힌 것도 그 때문입니다. 당신에게 말을 못 하게 한 것은 선고의 순간까지는 정의가 침묵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우리에 대한 당신의 판단을 듣기 전에 당신은 우리가 우리에게 <불리한> 추가의 증거들을 제시할 수 있도록 허락해야 합니다. 우리가 정말로 정당화하고자 하는 것은 과학적인 것이지만, 내가 설명한 것처럼, 이미 우리 모두는 훌륭한 임상적 실천에 대한 요구가 우리가 그러한 변명을 하는 것을 금했다는 데 동의했습니다. 이제 나는 마커스 박사에게 당신을 실험 대상이 아니라 보통의 인간으로 대하는, 당신에 관한 보고서 일부를 읽어 달라고 부탁하는 바입니다. 마커스 박사님.”                 (P800)     


정서적 사막이 내 앞에 놓여 있었다. 릴리의 사실상의 죽음과 앨리슨의 현실적 죽음을 겪은 나는 다시는 사랑에 빠지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릴리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났다. 하지만 그녀의 상대가 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실망은 부분적으로 나 자신의 성격에 대한 실망이 되었다. 내가 다른 여자와 어떤 관계를 갖더라도 그녀가 그것을 오염시키고, 망령처럼 따라다닐 거라는, 원치 않은, 하지만 불가피한 감정이 들었다. 그녀는 모든 취향의 결여와 멍청함 뒤에 망령처럼 서 있을 것이었다. 오직 앨리슨만이 그녀의 망령을 쫓을 수 있었다.       (P868)     


철학의 승리란 섭리가 결국에는 인간에게 제기하는 방식의 어둠에 빛을 던지고, 그에 따라 이 불행한, 두 발 달린 개인에게 알려질 수도 있는 어떤 통제 계획을 추적하는 것이 될 것이다. 누군가는 변덕으로 끝없이 동요하는 이 존재가 섭리를 전체적으로,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이 천명을 해석하는 것이 필요한 방식으로 몰고 간다고 말한다. 

-시드, <쥐스턴, 미덕의 불행>                   (P889)      


“앨리슨이 기다리게 하는 만큼 기다려요. 그렇게 길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그녀를 당신한테 데려다주는 일은 할 수 없어요. 이제 그건 오로지 당신과 그녀 사이의 문제예요. 그녀가 당신을 용서하기를 나도 바라고 있어요. 하지만 그녀가 그렇게 할 거라고 확신해서는 안 돼요. 당신은 아직 그녀를 되찾지 못한 상태예요.”

“양쪽에서 서로를 되찾아야죠.”

“그럴 수도 있겠죠. 그건 당신들 둘이 해결할 문제예요.”

그녀는 손에 든 은색 토스트를 잠시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신의 유희는 끝났어요.”

“뭐라고요?”

“신의 유희.” 그녀의 눈에는 한순간 희미하게 장난스러우면서도 빈정대는 듯한 기색이 어렸다. “그건 신이 없기 때문이고, 이것이 유희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P978)     

"그렇다면 육체적 쾌락과 도덕적 책임은 아주 다른 두 가지라는 것을 가르쳐야 하겠군요.“ 나는 릴리가 그 침대에서 내게 마지막으로 한 말을 떠올리며 한 가지 작은 비밀은 지켜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날 밤은 계획된 교훈보다 훨씬 더 복잡했거나 덜 확실했다. 아니, 최소한 어떤 교훈 또한 그랬다. 그녀의 어머니가 말을 이었다. ”니컬러스, 존재를 지배하는 비밀스러운 목적의 뭔가를 --아무리 부분적으로일지라도-- 재현하고자 한다면, 그 목적을 차단하기 위해 인간이 만든 인습 가운데 일부를 넘어서서 가야 해요. 그것은 우리가 일상적인 삶에서 그러한 인습을 타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아요. 그것들은 필요한 허구예요. 하지만 신의 유희에서 우리는 실제로 모든 것은 허구이지만 어떤 단 하나의 허구도 필요하지 않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죠.“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P981)     


작품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니컬러스는 허구의 세계를 동경하는 젊은이였다. 그는 삶의 진실과 직면하기를 회피하고 낭만과 환상을 좇아 이국의 삶으로 도피한다. 건강한 일상성을 지닌 앨리슨에게서 벗어나 신비롭고 매혹적인 릴리와의 사랑을 동경한다. 그러나 그는 콘키스가 설정한 허구의 늪에 빠져 고통당하고 단련됨으로써 픽션의 세계가 갖는 부정직성과 불확실성에 각성하게 되고 그리하여 <리얼리티에 굶주리고 삶의 고통을 받아들이는> 태도로 무장하고 현실 속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앨리슨의 남루한 일상성이 갖는 미덕의 가치를 깨닫는다. 그가 그리스를 떠나 다시 런던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이제 픽션과 리얼리티 사이에서 혼란을 겪으며 방황하거나, 혹은 환상과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픽션의 세계에 대한 리얼리티의 우월성을 만족스럽게 즐기는 피동적인 존재로 남지 않는다. 그 대신 픽션과 리얼리티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자기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지배하는 <마법사>로 거듭날 수 있게 된 것이다.    (P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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