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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Sep 25. 2023

파올로 코녜티의 <여덟 개의 산>

영화 <여덟 개의 산> 2022년

영화 <여덟 개의 산>은 제75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이다. 제39회 선댄스영화제 스포트라이트 부문 공식 초청 및 이탈리아 대표 영화 시상식 제68회 다비드 디 도나텔로상 4관왕 (작품상, 각색상, 촬영상, 음향상)을 거머쥐며 일찌감치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뷰티풀 보이’로 유명한펠릭스 반 그뢰닝엔 감독과 그의 부인이자 배우 겸 작가 샤를로트 반더미르히 감독이 공동 연출·각본을 맡아 지나간 시절과 뒤늦게 알아차린 진심에 관한 회상을 선사한다.     

아버지에게는 산을 타는 자신만의 방식이 있었다. 그는 사색에 거의 잠기지 않고 대담하고 억척스럽게 산을 탔다. 체력 안배 없이 언제나 누군가와 혹은 무언가와 경쟁하듯 산을 오르며, 오솔길이 길어 보인다 싶으면 가파른 비탈길로 가로질러 갔다. 아버지와 산을 오를 때는 잠시 쉬는 것은 물론이고, 배가 고프다거나 힘들고 춥다고 징징대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대신 비바람이 칠 때나 짙은 안개 속에 있을 때 좋은 노래 한 가락을 뽑거나 만년설을 바라보며 온몸으로 고함치는 것은 괜찮았다. (P11)     

“어떠니?” 아버지가 가방 자물쇠의 고무 밴드를 풀면서 내게 물었다. “어떤 것 같아?”

무척 좋다고 대답하고 싶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건초, 마구간, 나무, 연기 냄새가 확 느껴졌는데 뭔지 모를 희망으로 가득한 냄새였다. 하지만 맞는 대답인지 몰라서 이렇게 말했다. “나쁘지 않아 보여요. 아버지는 요?”

아버지는 어깨를 으쓱했다. 짐에서 시선을 떼고는 우리 앞에 있는 오두막을 힐끗 쳐다보았다. 오두막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지지하던 버팀목 두 개가 빠져서 무너져버린 것이 틀림없었다. 안에는 건초 더미가 쌓여 있었고 건초 더미 위에는 누군가가 벗어놓고 간 데님 남방셔츠가 있었다. 

“나는 여기와 비슷한 곳에서 자랐단다.” 그 기억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생각해볼 여지도 주지않고 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짐 가방의 손잡이를 당겨서 아래로 눕히려 했다. 그때 아버지의 머릿속에 뭔가 스쳤다. 제법 재미있을 것 같은 그 생각을 마음속으로 하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과거가 다시 한 번 지나갈 수 있을 것 같니?”

“힘들겠죠.” 내 생각이 맞는지 몰라서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는 항상 이런 수수께끼 같은 질문을 했다. 논리와 수학적 재능이 뛰어난 내 지적 수준이 아버지와 비슷하다고 생각했고, 나를 시험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저기 강이 보이니? 강물을 흐르고 있는 시간이라고 가정해보자. 우리가 있는 이곳이 현재라면 미래는 어느 쪽에 있을까?”

생각해보니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나는 자신감 있게 대답했다. “미래는 저 아래 물이 떨어지는 곳이에요.”

“틀렸어,” 아버지가 단호히 말했다. “다행히도 말이지.”

그런 다음 부담감을 떨쳐 버린 듯 “오팔라”하고 말했다.          (P29-30)     

     

나는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다른 사람과 무언가를 함께 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이런 점이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 그날 난 뭔가를 느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친밀감이었다. 이 친밀감은 낯선 곳에 정박해 있는 것처럼 나의 호기심을 잡아 끈 동시에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머릿속으로 상상하기 시작했다. 개울, 연못, 폭포 그리고 강물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꼬리를 힘차게 흔드는 송어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잎을 생각했다. 그리고 사냥감 앞에서 파다닥 튀어 오르는 송어를 생각했다. 그때 강물에 사는 물고기에게 벌레, 나뭇가지, 나뭇잎 그리고 이외의 모든 것들은 산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하나의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래서 물고기는 앞으로 흘러내릴 것을 기대하며 위쪽을 바라본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 현재라고 한다면 과거는 나를 지나쳐 흘러간 물이다. 그 물은 아래 방향으로 흘러간다. 반면에 미래는 놀라움과 위험을 품은 채 위에서 내려오는 물이다. 아버지에게 이렇게 대답했어야 했다. 운명이 어떻든 간에 그 운명은 우리 머리 위, 산에 있다고. (P42~43)    

 

어머니 말이 옳았는지도 모른다. 우리 각자에게는 산에서 특별히 좋아하는 고도가 따로 있고 우리와 닮은 풍경과 잘 맞는 장소도 있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것은 전나무와 낙엽송이 무성한 해발 1,500미터의 숲으로, 나무 그늘 아래는 블루베리 와 향나무, 진달래가 자라고 노루가 숨어 있다. 나는 산에 더욱 끌렸고 그다음로는 고산 초원과 개울, 습지, 고산 식물, 방목장의 가축도 좋았다. 산꼭대기로 올라갈수록 초목은 사라지고 초여름까지 사방이 눈으로 덮였다. 가장 두드러지는 색상은 석영의 결이 드러나고 노란 이끼가 무늬를 아로새긴 절벽의 회색빛이었다. 거기서부터 아버지의 세상이 시작된다. 세 시간을 걷고 나니 초목은 온데간데없고 돌길과 빙하호, 산사태로 파인 도랑과 얼음장같이 차가운 샘물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산은 더욱 험준하고 사람이 살기 어려운 순수 자연의 공간으로 변해갔고 그곳에서 아버지는 행복했다. 예전의 산과 그 시절로 되돌아간 듯 활기를 되찾은 것 같았다. 발걸음도 가볍고 잃어버렸던 민첨합을 되찾은 듯 보였다. 

반면에 나는 기진맥진했다. 피곤한 데다 산소가 부족한 탓에 속이 거북하고 현기증이 났다. 발걸음을 땔 때마다 고통이 심해졌다. 아버지는 눈치채고 말고 할 여력이 없었다. 해발 3천미터로 향하는 산길은 위험했고, 돌투성이인 땅 위에는 돌무덤과 페인트 자국만 남아 있었다.   (P56-57)    

 

빙하는 아직은 산악인이기 이전에 과학자인 아버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에게 물리와 화학 연구와 자라면서 공부했던 신화를 떠올려주었다. 다음날, 메잘라마 대피소로 올라가는 동안 아버지는 우리에게 그런 신화와 유사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오솔길에서 아버지는 나와 브루노에게 빙하는 산이 우리를 위해 소중히 간직한, 지나간 겨울에 대한 기억이라고 말했다. 어떠한 특정 높이에 그 기억을 간직하고 있어서 지나간 어느 겨울에 대해 알고 싶으면 그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설선(만년설 고도)이라고 하지. 여름이 되어도 겨울에 내린 눈이 완전히 녹지 않는 곳이야. 일부는 가을까지 녹지 않고 버텨서 이듬해 겨울에 내린 눈에 덮이기도 한단다. 그렇게 살아남는 거지. 그 아랫부분은 천천히 얼음으로 변해. 나무의 나이테처럼 늘어나는 빙하 층이 되는 거란다. 우리는 그것을 세어보면 몇 년이나 된 건지 알 수가 있지. 빙하는 단지 산 정상에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움직여 다닌다는 거야. 언제나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오지.”

“왜요?” 내가 물었다.

“왜 그런 것 같니?”

“무거우니까요.” 브루노가 말했다. 

“바로 그거란다.” 아버지가 말했다. “빙하는 무겁고 빙하를 지지하고 있는 암석은 매우 미끄럽지. 그래서 아래로 내려오는 거야. 느리지만 쉼 없이 움직여, 빙하는 아주 뜨겁다고 느끼는 고도에 도달할 때까지 산을 타고 내려와. 그것을 용해 고도라고 한단다. 저기 끝이 보이니?”    (P68-69)     


아버지는 놀랐다. 우리 셋을 묶은 밧줄을 뒤엉키게 하면서까지 황급히 다시 크레바스를 뛰어넘어 나에게 달려왔다. 겁에 질린 아버지의 모습에 나는 당황했다. 나는 아버지가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우리를 여기로 데려오면서 아버지가 감수한 위험에 대해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열한 살이었고 아버지의 고집에 따라 그럭저럭 장비를 갖추고 궂은 날씨를 견디며 빙하 위로 힘겹게 몸을 이끌었다. 아버지가 아는 고산병을 치료하는 유일한 방법은 하산하는 것이었고 아버지는 망설이지 않았다. 내가 맨 앞에서 걸어갈 수 있도록 그리고 몸이 힘들면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도록 아버지는 순서를 반대로 해주었다. 내 위 속에는 이제 아무것도 든 것이 없었지만 이따금씩 구역질이 올라왔고 나는 침만 뱉어냈다.     (P76)   

  

한번은 어머니가 일요일에 내게 눈을 구경시켜주고 싶으니 함께 외출하자고 아버지에게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무뚝뚝하게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에요, 애가 좋아하지 않을 거예요.” 겨울 산은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기에 평온하게 내버려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올라가고 내려오는 것에 대해, 혹은 아래쪽에서 우리를 괴롭히는 것들을 피해 위쪽으로 도피한다는 그의 철학에 따르면 가벼움의 계절(여름) 다음에는 반드시 일하는 시기, 평지에서 생활하는 시기 그리고 우울한 시기인 중력의 계절(겨울)을 따라야 한다.       (P79)     


산 위가 천국이라면 왜 우리는 여기에 살지 않는 걸까? 산에서 나고 자란 한 아이를 왜 다른 곳으로 데려가려고 하는 걸까? 도시가 그렇게 진절머리가 난다는데 왜 구태여 아버지를 우리 곁에 두고자 했던 것일까? 아버지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도 이렇게 묻고 싶었다. 타인의 인생에 무엇이 이로운 건지 안다고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나요?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어째서 못하는 건가요?            (P97-98)     


아버지는 예순둘의 나이로 돌아가셨고 그때 나는 서른한 살이었다. 장례식 때에야 비로소 내가 태어났을 때의 아버지 나이를 알게 되었다. 내 나이 서른한 살은 그의 서른한 살과 닮은 구석이 없었다. 나는 결혼을 하지 않았고 공장에 취직하지도 않았으며 아들도 없었다. 반은 어른이고 반은 아이인 인생을 사는 것 같았다. 나는 원룸에서 혼자 살았고, 이것은 감당하기 힘겨운 사치였다. 다큐멘터리 제작자로 돈벌이를 하며 살아가고 싶었지만 월세를 마련하기 위해 온갖 종류의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나 또한 이주민이었다. 청년기의 어느 시점이 되면 사람은 태어나고 자란 곳과 작별하고 어른이 되기 위해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한다는 부모님의 생각을 물려받았다.      (P127)     

“이곳에 이름이 있어?” 내가 물었다.

“그럴 거야. 우리 어머니 말씀이 예전에 이곳은 바르마 드롤라라고 불렸대. 우리 어머니는 이름에 관해서는 틀리는 법이 없어. 모든 이름을 기억하고 있거든.”

“바르마는 거기 있는 그 암벽?”

“맞아.”

“그러면 드롤라는?”

“이상하다는 뜻이야.”

“너무 희어서 이상하다는 거야?”

“그런 것 같아.”

“이상한 암벽.” 나는 어떻게 들리는지 보려고 말해보았다.

그곳에 잠깐 앉아서 주위를 살펴보고 그 유산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우리 아버지, 평생을 집을 떠나 있었던 그는 산 위에 집 하나를 지을 희망을 키우고 있었다. 그것을 실현시키지는 못했지만 언젠가 죽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그 장소를 내게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나에게 원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브루노가 말했다. “나는 이번 여름에 준비됐어.”

“뭐가 준비됐다는 거야?”

“일하는 거 말이야.”

내가 못 알아듣자 그가 설명했다. “집은 너희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설계했어. 내가 그것을 짓기로 약속했고, 나한테 이 일을 부탁하셨을 때 그는 지금 네가 있는 바로 거기에 앉아 계셨어.”

그 시기에 새로운 것들이 끊임없이 발견됐다. 오솔길 지도, 검은색과 동행하던 빨간색과 초록색 선, 그리고 브루노가 나에게 들려줄 더 많은 다른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했다. 집에 관해서 아버지가 그렇게 모든 것을 준비해뒀다면 한 가지를 제외하고 그의 뜻을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나는 돈이 없어.” 내가 말했다. “받은 돈은 내 처참한 계좌 상태를 해결하는 데 써버렸거든. 아직 조금 남아 있기는 하지만 집 한 채를 지을 만큼은 충분하지 않을뿐더러 거기에 쓰고 싶지 않아.” 실행에 옮겨야 할 일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브루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내가 반대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자재만 구입하면 돼. 그리고 비용도 많이 아낄 수 있을 거야.”       (P148-149)     


“브루노는 항상 네 안부를 물었어, 네가 어떻게 지내는지, 뭘 하고 있는지. 나는 네가 편지에 쓴 대로 그에게 이야기해주었어. 그에게 네 소식을 계속해서 전해주었단다.”

“저는 몰랐어요.” 내가 다시 한 번 말했다.

나는 떠나는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배우는 중이었다. 그가 없어도 다른 사람들은 계속해서 살아간다는 것. 브루노가 스무 살에서 스물다섯 살이었을 때 그들끼리 보내는 저녁 시간을 상상해보았다. 그는 나 대신 우리 아버지와 이야기하며 그곳에 있었다. 내가 떠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거나 그 순간을 나도 함께 했을 터였다. 질투심보다는 그 자리에 있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기억조차 나지 않는 별것 아닌 일로 바빠서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P166)   

  

“대들보는 크기가 어느 정도여야 하고 간격은 얼마나 두어야 하는지, 어떤 종류의 나무를 사용해야 좋을지. 전나무는 부드러운 나무라서 적합하지 않아. 낙엽송은 그보다 견고한 나무야. 너희 아버지는 내가 그렇다고 하는 말로는 성에 차지 않았어. 늘 모든 이유를 알고 싶어 하셨지. 전나무는 그늘에서 자라고 낙엽송은 양지에서 자라거든. 햇빛은 나무를 단단하게 만들고 그늘과 물은 나무를 부드럽게 만들기 때문에 그런 나무는 대들보로 적합하지 않아.”     (P168-169)     


유일한 희망은 피에로가 그 아래서 에어록을 만들어서 숨쉬고 있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사람들이 자고 있는 대피소를 향해 내려갔다. 삽조차도 갖고 있지 않았던 아버지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이성적인 결단이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 푹신한 눈 속으로 몸이 쑥 빠졌다. 위로 돌아와서 한쪽밖에 남지 않은 스키를 신고 좁은 보폭으로 쉴 새 없이 미끄러지고 넘어지면서 용케 내려왔다. 발을 빠뜨리며 걷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아버지는 오후 중반쯤 되어서 대피소에 도착해 구조 요청을 했다. 날이 어두워져서야 사람들이 도착했고, 다음 날 아침 1미터의 눈사태에 묻혀 질식사한 외삼촌을 발견했다.      (P182)   

    

흰 콧수염이 조금 난 한 남자는 나에게 이것이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1년에 한 번 예전에 갔던 산길을 오르는 것이 추억을 비집고 들어가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 같다고 말이다.        (P193)     

내가 네팔어로 몇 마디를 해보았더니 히말라야에 관심을 갖게 된 연유를 물었다. 내겐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있었다. 내가 자란 산이 하나 있는데 그 산에 강한 애착이 있다. 그 산을 알게 된 후에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다른 아름다운 산을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 노인이 말했다. “그렇군요. 그럼 당신은 여덟 개의 산을 돌고 있는 거네요.”

“여덟 개의 산요?”

노인은 지팡이를 들어 바닥에 원 하나를 그렸다. 완벽한 원이 그려졌다. 이런 그림을 자주 그려본 듯했다. 그는 원 안에 지름을 그리고 가운데 수직선을 하나 그린 다음 중심을 지나는 이등분선을 두 개 더 그어 8등분 된 원을 완성했다. 그런 모양을 그려야 한다면 나는 십자가부터 그렸을 텐데, 동그라미를 먼저 그리는 것은 전형적인 아시아인들의 특징인 듯했다. 

“이런 그림을 본적이 있나요?” 노인이 물었다. 

“네.” 내가 대답했다. “만다라에서요.”

“맞아요. 세상의 중심에는 높은 산이 하나 있다고들 하죠. 메루산이에요. 이 메루산 주변에는 여덟 개의 산과 여덟 개의 바다가 있어요.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죠.”

그는 8등분 된 조각 옆에 작은 점을 찍고 점 사이마다 파도물결 표시를 해두었다. 여덟 개의 산과 여덟 개의 바다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원의 중앙에 왕관을 하나 그려 넣었다. 메루산의 눈 덮인 정상인 듯했다. 자신의 그림을 잠시 감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수천 번은 연습했을 그림이 좀처럼 만족스럽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쨌든 지팡이로 중심을 가리키면서 마무리를 했다. “여덟 개의 산을 돌아본 사람이 많은 것을 깨달을까요? 아니면 메루산 정상에 올라본 사람이 더 그럴까요?”  (P210~211)     


우리는 알프스 주변에 이 같은 실험이 있었다는 것을, 그런데 전부 오래가지 못했고 결과가 좋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바로 이런 점이 우리에게 주제를 제공했고 공상에 잠기는 것을 방해하지 않았다. 음식은 어떻게 할 거야? 전기는? 집은 어떻게 만들 거야? 여전히 돈은 조금이라도 필요할 텐데 어디서 구할 거고? 우리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공동체의 파괴범이자 재산이나 권력보다 최악인 가족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거야? 우리가 매일 밤마다 하던 유토피아 게임이었다. 자신의 이상적인 마을을 실제로 건설하고 있던 브루노는 우리의 이상을 파괴하는 것을 즐겼다. 그가 말했다. 시멘트가 없으면 집을 세울 수 없고 비료가 없으면 방목장에 풀이 자랄 수 없어, 휘발유 없이 어떻게 목재를 자를 건지 보고 싶네. 겨울에는 뭘 먹을 생각이야, 노인처럼 폴렌타와 감자?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도시에서 온 너희는 그것을 자연이라 부르지. 너희의 머릿속에서 너무 추상적이라 이름도 똑같이 추상적이야. 이 동네에서는 그걸 숲, 목초지, 개울, 절벽이라고 불러.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 있는 것들이지.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야. 사용할 수 없는 거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름을 붙이지 않아.   (P213)     

“산을 내려가지 않으려는 사람하고 누가 결혼하겠어? 산에서 치즈나 만들려고 전 재산을 바친 사람하고?”

“상황이 그렇게 심각해?”

“생각해봐. 일 시작한 지 한 달 반이야. 그리고 이게 우리가 가진 전부이고.” 우리 등 뒤를 암시하면서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진지해졌다. 그 근심거리를 생각하느라 잠시 말이 없었다. “우리가 하는 일이 나는 무척 좋아. 하루 종일 비가 올 때도 비를 맞으면서 소들이 풀을 뜯게 해주고 있어.” 거의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 “그 일을 하면 마음이 무척 편안해져.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을 것 같고, 다른 많은 것은 중요한 것 같지 않아. 만약에 돈을 생각한다면 이건 미친 짓이지. 하지만 지금 나는 다른 삶은 원치 않아. 내가 원하는 것은 이거야.”     (P238)     


그날 아침 나는 색이 바래고 바람에 너덜너덜해진 기도 깃발을 걷었다. 잠시 후에 네팔에서 보았던 사리탑을 생각하며 두 개의 통나무에 걸어놓는 대신 암벽과 집의 모퉁이 사이에 다시 걸어두었다. 깃발은 우리 아버지의 비문 위에서 바람에 휘날리며 마치 축복을 빌어주는 것 같았다. 내가 지붕 위로 돌아왔을 때 브루노는 깃발을 보고 있었다. 

“천에 뭐라고 쓰여 있는 거야?” 그가 질문했다.

“행운을 기원하는 기도야. 번영, 평화, 조화.”

“너는 믿어?”

“어떤 거? 행운?”

“아니, 기도 말이야.”

“글세, 그렇지만 내 기분을 좋게 해. 그 정도면 됐잖아?”

“응, 맞아.”

그때. 우리의 행운의 물건이 떠오른 나는 어떻게 자라는지 보려고 찾았다. 작은 쳄브라 소나무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내가 옮겨 심었던 때처럼 앙상하고 휘어진 채였지만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 나무도 벌써 일곱 번째 겨울을 맞이하고 있었다. 소나무도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지만 평화나 조화를 불러오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오히려 끈기를 드러냈다. 삶에 대한 집착이었다. 이런 집착은 네팔에서는 미덕이 아닐지 모르지만 알프스에서는 그렇다.   (P262-263)     

그가 말했다. “사람은 인생이 가르쳐준 일을 해야 돼. 아주 젊을 때라면 길을 바꾸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어느 순간 멈춰 서서 이렇게 말해야 돼. 좋아. 이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이것은 아니야. 그렇게 나 자신에게 물었어. 그러면 나는? 나는 산에서 살아갈 능력이 있어. 산에 혼자 올라가서 그럭저럭 잘살 거야. 쉬운 일은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런데 어떤 가치가 있는지 알려면 마흔 살은 되어야 해.”

나는 피곤했고 술기운에 마음이 편안해지고 있었으며 비록 그의 말에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그렇게 말하는 것이 듣기 좋았다. 브루노에게는 나를 항상 매료시키던 뭔가 절대적인 것이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동경했던 그의 완전하고 순수한 점이었다. 우리가 지은 집, 바로 그 자리에서 나는 그의 말이 옳다는 쪽으로 마음이 거의 기울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인간미 없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한겨울에 홀로 약간의 식량과 자신의 손, 생각 외에는 아무것도 없이 지내는 것이 그에게 맞는 삶의 방식이다.         (P295-296)    

 

아버지를 따라 산을 타던 것을 그만둔 지 한참이 지나서야, 어떤 인생에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산이 존재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깨달았다. 나와 그의 인생에서 정중앙에 있는 산, 우리의 인생이 시작된 처음으로는 결코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가장 높은 첫 번째 산에서 친구를 잃은 우리 같은 사람은, 단지 여덟 개의 산을 배회할 뿐이다.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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